알라딘: 거대한 뿌리
거대한 뿌리 |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
김수영 (지은이)민음사1995-11-01
정가
8,000원
8.0 100자평(3)리뷰(5)
이 책 어때요?
160쪽
148*210mm (A5)
208g
책소개
온 사력을 다해 '자유'를 노래하고 옹호했던, 보다 정확하게는 '민주주의'를 현실화하고자 시로써 항거했던 김수영의 시선집이다.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비겁한 자신을 질책한 시편 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싸우고자 입을 악무는 시인이 있다. 무엇과 싸울 텐가, 무엇을 지킬 텐가, 왜 싸워야 하는가는 너무나 명확하다. 문제는 어떻게 '적'을 넘어뜨릴 것인가일 뿐.
때로 적과 대적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연민과 탄식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시종일관 이 대결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김수영 시의 생명은 이러한 긴장에 있다. 스스로 안일에 빠지지 않으려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인하는 냉철함 또는 결의.
시대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폭포', '눈', '풀' 등의 시편을 비롯해 시인의 일상에서 시상을 취한 35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목차
공자(孔子)의 생활난 | 아버지의 사진 | 달나라의 장난 | 풍뎅이 | 시골 선물 | 구나중화(九羅重花)
나의 가족 | 거미 | 헬리콥터 | 거리 2 | 구름의 파수병 | 여름 뜰 | 백의(白蟻) | 병풍 | 눈
폭포 | 서시 | 사령(死靈) | 가옥찬가 | 말복 | 파리와 더불어 | 하..... 그림자가 없다
푸른 하늘을 | 거미잡이 |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 그 방을 생각하며 | 사랑
여편네의 방에 와서 | 등나무 | 모르지? | 누이야 장하고나! | 먼 곳에서부터 | 시(詩) | 적
마케팅 | 장시(長詩) 1 | 피아노 | 플란넬 저고리 | 여자 | 돈 | 반달 | 우리들의 웃음 | 참음은
거대한 뿌리 | 강가에서 | 말 | 현대식 교량 | 적 1 | 적 2 | 절망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 한국문학사 | H | 눈 | 설사의 알리바이 | 엔카운터지 | 전화 이야기 | 사랑의 변주곡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 꽃잎 1 | 꽃잎 2 | 꽃잎 3 | 미농인찰지(美濃印札紙) | 성(性) | 풀
- 해설 | 자유와 꿈 - 김수영의 시세계 (김현)
- 연보
- 시작품 연보
책속에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본문 p.111 중에서) 접기
추천글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 이현우 (서평가,『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수영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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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1941년 선린상업학교에 재학했다. 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이후 동경 성북예비학교에 다니며 연극을 공부했다. 1943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일본에서 귀국했으며 안영일 등과 연극을 했다. 1945년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 《예술부락》이라는 잡지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했다. 1946 ~1948년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으며 졸업은 하지 않았다. 1949년 김경린 등과의 친교로 시론과 시를 엮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북한군 후퇴 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다 탈출했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지냈다. 1957년 12월, 한국시인협회상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1959년, 1948~1959년 사이에 발표했던 시를 모아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춘조사) 을 출간했다. 1960년 4·19 혁명 발발. 이후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시평 등을 잡지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보였다. 1968년 6월 15일 밤 귀갓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김수영은 과감하고 전위적인 시작법으로 오늘날 모더니즘 시의 뿌리가 되었고 문학의 정치 참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 또한 보여 주었다. “내일의 시”, “미지의 시”를 향한 그의 실험 정신은 언제까지나 신선한 충격으로 남을 것이다. 접기
최근작 : <시인의 거점>,<다시, 사랑하는 시 하나를 갖고 싶다>,<꽃잎> … 총 33종 (모두보기)
평점
분포
8.0
25.0%
62.5%
여전히 그의 시가 그리운 시대를 살다
웽스북스 2009-06-10 공감 (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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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집에 무슨 다른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역시나 멋집니다.
아씨 2010-03-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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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거대한 뿌리
김수영!
그는 죽기 전까지 자유 시인이었다.
자유는 그에게서 3번의 변모를 감수한다.
첫째는 설움과 비애라는 소시민적 감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했고
둘째는 사랑과 혁명으로 표현했고
셋째는 적에 대한 증오와 연민 탄식으로 표현했다.
작품 초기 그는 (바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반란 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
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
이룰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
괴로움도 모르고
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
그저 멀리 보고 있는 것이 타당한 것이므로
나는 괴롭다.
「아메리카 타임지」
오늘 또 활자를 본다.
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
瓦斯의 정치가들을 응시한다.
「이」
어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수염을 바로는 보지
못하였다.
바로 본다는 생각은 자기가 바로 보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주체에게 괴로움을 부여한다. 그에게 바로 본다는 행위는 언제나 괴로움과 결부된다.
「바뀌어진 지평선」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이여.
돌은 자유로운, 바로 보려는 정신이며, 물결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삶이다. 거기에서 비애가 생겨나는 것이다.
김수영의 反詩論은 언어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으며 또 자유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시론은 폭로 주의와 재치 주의의 배격으로 초현실주의에 투철한 점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처절한 초 현실주의적으로 종교의 해탈처럼….
내가 좋아하는 두 편의 시를 띄워본다.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김수영의 전집에는 시와 산문이 작성한 날짜별로 기록되어있다》
『헬리콥터』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 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해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1950년 7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중략-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자유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 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동물 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갖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바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 접기
metaphor 2015-07-05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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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1 -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은 나락의 자태
꽃잎1 -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은 나락의 자태
근래 내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남들은 하루에 12시간씩 말 그대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일해도 200만원을 겨우 버는데, 나는 일주일에 그 정도 일하고 그 만큼을 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자유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나는 대학로의 방송대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시늉을 한다. 실상, 공부보다는 주로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 전부지만, 그 만큼 여유롭고 한가하다. 말 그대로 일종의 선비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인지 다소 게을러져서 평소 10시 넘어서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어쩔 때는 12시 넘어 2~3시까지 잠에 취해 있을 때가 있다. 물론, 늦게까지 잠을 안자는 부엉이 생활패턴이 그 주원인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다음 날 마뜩하게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나는 그 무언가를 상실했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던 그 무언가를.
외로움, 그리움 혹은 공허함, 이런 것들은 사실 이제까지 줄곧 너무나 익숙하게 곁에 있어 와서인지 그리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때때로 이런 감정들에 휩싸일 때면 주체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나는 그런 주기들을 견디는 법들을 배우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상실감은 무엇 때문일까? 오후 3시 늦게 일어나서, 5시께나 대학로 도서관에 당도하여 하릴없이 산책이나 하는 내 자신의 일과에 대한 무력감? 혹은 그럴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이제 끝나버린 관계들의 아쉬움? 이 역시 모두 앞에서 말한 범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결정적으로 상실한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내가 그 동안 그토록 두려워하며 경계했던 열정이다. 열정.......
십대 후반부터 스무 살까지 품었던 신에 관한 열정, 그리고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한 스무 살 적, 한 여자에게 품었던 열정, 신과 여자 모두 잃고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황에 품었던 열정, 이런 방황 가운데 훌쩍 서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영어에 매달렸던 열정, 끝으로 최근까지 가슴 속에 품었던 막연한 프랑스에 관한 열정 등등. 이제껏 나는 이런 열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었고,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잃어왔다. 신에 관한 열정 때문에 신을 잃었고, 한 여자에 관한 열정 때문에 그 여자를 잃었고, 방황에 대한 열정 때문에 종국엔 방황의 길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떤 열정을 상실했음을 나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왜? 대체 무엇 때문에?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의 하루의 일과 중에서 산책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하는데, 학교에 당도해서 한 번, 오후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정도 한 번 할 때 마다 30분 이상 소요되는 산책을 즐기고 있다. 장소는 대학로 방송대와 가까운 낙산공원이다. 그리고 산책을 할 때면 나는 위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때론 무력해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어떤 영감을 받아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에 대한 갈피를 잡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내 화두는 나의 이런 상실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이었다. 아니, 어떤 부름이었다. 산책 코스 중 내가 혼자서 명명한 ‘생각 벤치’라는 곳이 있다. 다른 곳의 벤치와 달리 대학로의 전망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무언가 탁 막혔던 가슴이 트이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즈넉해져서 그렇게 명명하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이런 저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결국엔 숱한 상실감들에 지쳐 생각 벤치에 몸을 기대었다. 그런데 그 때, 가슴 속에서 어떤 시 구절이 울렸다.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같고
김수영의 유명한 ‘꽃잎1’의 마지막 시 구절이었다. 갑자기 왜 그 구절이 떠올랐던 것일까? 그 어떤 시보다도 혁명적인 그 시가 왜 나의 이런 삶 가운데에 문득 떠오른 것일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어떤 위로가 되는 미지의 목소리처럼 가슴 속에 남아 글을 써보려 시도해 보았다. 이 또한 거의 10년만이었던 거 같다. 어떤 스터디에서 내준 숙제가 아닌 내 스스로 내밀한 고백을 담아 무언가 평론을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든 건. 그런데 좀처럼 글이 잘 이어져 나가지가 않았다. 지금의 내 상황과 이 혁명적인 시를 도무지 연결할 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쓸데없는 내 얘기 뿐. 어디에도 내밀한 고백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장 써내려간 글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며칠 째 그 부름에 응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에브리맨’을 읽게 되었다. 속도를 높여, 페이지를 넘겨갈 수록 확신이 들었다. 부름에 응해야한다는. 그러하기에 지금 이 평은 어쩌면 ‘에브리맨’에 관한 평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꽃잎1’에 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그저 쓸데없는 내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죽음이라든가 신이라든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있지가 않다. 신의 문제의 경우는 스스로 뿌리를 잘랐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말할 것이 없고, 죽음의 경우엔 실제로 내 경험의 테두리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30대 중반에 내가 감히 어떻게 죽음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일도 안 되는 허방을 짚는 짓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는 분명이 그랬었다. 그런데 근 2년 사이 나는 죽음에 대해 이제는 조금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버리게 되었다. 다만 벌써 그 이야기를 발설하는 것이 옳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단순히 대화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건 별 일 아니지만, 이렇게 글로 그 죽음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은 사뭇 다른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론 내밀한 글들이란 건 사장되지 않고 되살아나서 칼날을 들이밀기도 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한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과 한 친구의 모습이 어리었다. 모두 괜찮으냐며 알아보겠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내가 하얀 병원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주일간 내가 혼수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밤,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아버지가 문을 열어보니 내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더란다. 그래서 병원에 급하게 데려왔는데, 의사 말이 뇌종양이라고 했다. 뇌종양....... 이상하게 어떤 울림도 충격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냥 원래부터 나와 한통속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친근한 언어로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의사 말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난 뇌종양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경우 30대 중반에 나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내 경우에는 빨리 발견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종양의 진행 속도 또한 급성이 아닌 만성이라 제거하면 바로 완치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8시간의 대수술과 약 1달간의 입원생활을 더 해야 했지만, 실제로 두 달 이후 나는 이 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로 내 몸이 호전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의사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술을 몇 달 후엔 한두 잔씩 마시기 시작하였고, 1년쯤 지나서는 매일 같이 챙겨 먹어야 하는 약도 빼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결국, 한 3개월 전쯤 그 일이 발생했다.
그 날은 사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날 스터디 모임이 있었는데 후배가 발제를 하는 날이었다. 그 당시 스터디의 경우 내 2~3명의 친한 후배와 외부에서 아는 사람의 경로로 들어온 3~4명의 사람들로 구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추구하는 바가 너무 달랐다. 말은 문학 모임이었는데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둘, 셋 정도 됐고, 나머지는 대체 왜 그 모임을 참가했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여하튼 그러한 간극 때문인지 그 날도 문학이 아닌 영화로 스터디 주제를 삼아 이야기를 했는데, 외부에서 온 멤버들이 가관도 아니었다. 대체 영화는 보고 왔는지도 의심스러운데다, 최소한의 예의로 글을 써오는 것조차 하질 않고서 마구 발제자를 공격해대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떤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의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을 무기로 삼아 허세를 떠는데, 그 때부터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닌 과민해진 나는 심한 두통을 느껴야 했다. 이제까지 평생 처음으로 느껴본 두통이었다. 사실, 난 뇌종양을 달고 태어났음에도 평생 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탓에 스터디가 끝나고서 돌아오는 전철에서까지 나는 그것이 기분 탓인지 두통 탓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 기분을 전환할 마음으로 후배의 기분도 풀어줄 겸해서, 발제했던 후배에게 술 한 잔을 제의했다. 안주는 석화였고, 술은 소주였다. 한 잔을 들이키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두통이 아닌 기분 탓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약 20분, 나의 기억은 소실되어 버렸다. 앰뷸런스 실리면서부터 드문드문 기억이 나기는 한다. 계속 구역질을 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리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후배와 함께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두 시간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놀란 어머니와 아버지는 술을 왜 마셨냐고 다그치기도 하시고, 대체 약을 얼마나 안 먹었으면 약물 기준치가 떨어져서 그 모양이 된 거냐고 말씀하셨다. 그때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두려움이란 걸. 이제부터 내 몸은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약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작지만 나에게는 크다면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프랑스에 대한 나의 동경을 접었다. 물론 앞으로 5년 정도 지나 완치 판정이 내려지면, 다시 나는 또 프랑스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재 내가 프랑스를 꿈꾼다는 것은 그 막연함만큼 먼 이야기처럼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 내가 프랑스에 대한 꿈을 접은 이유는 따로 있다. 무엇이냐면, 더 이상 프랑스를 핑계로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염원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지금 쓰지 못하면, 나는 언제 쓸지 알 수가 없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영영 나는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난 프랑스라는 그 막연한 이름을 통해 얼마나 글쓰기를 미뤄왔던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내 눈 앞에, 내 손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을.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그 제목처럼 보통남자이다. 예술가이기엔 너무 안정 지향적이고, 그렇다고 안정만을 추구하지는 못하여, 3번의 실패한 결혼을 한. 그래서 말년을 외롭게 병과 싸우다 간 보통남자이다. 이 소설 속에서 죽음이란 건 너무 흔하고 일상적이어서 무겁지도 않고 관념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까닭으로 죽음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저자는 말한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이제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우스워져버림을 깨닫는다. 은퇴 후 그림만 그리겠다는 그 꿈도, 망각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그 대단한 결심들도, 그가 한 평생 모아온 책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 앞에서도 각자 주어진 악전고투를 치러간다. 그의 동료 중 어떤 이는 자서전을 쓰려하고, 어떤 이는 그림을 배우는데 열중을 해보고, 주인공은 죽음이란 의미와 맞닥뜨려 그 속에서 동시에 생의 의지를 되새겨 본다. 나는 감히 이렇게 직면한 죽음과 나의 죽음의 문제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나의 죽음의 문제는 이렇게 일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일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되레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러하기에 생명으로 가닿기 위한 느린 걸음이어야만 한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대학 때 한 선배가 매 주 열리던 ‘낚시촌’이라는 시낭송 모임에서 이 시를 낭송한 적이 있었다. 평소 워낙 시인 같은 선배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가슴 속에서 묵직하게 끓어오르는 뜨뜻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전까지 단순하게 내게 교과서에 나오는 ‘풀잎’, ‘폭포’를 쓴 저항시인으로만 알아왔던 김수영 시인이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저항과 혁명정신은 내가 기존에 알던 저항과 혁명이 아니었다.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가 아닌,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은 느리고 부단하게 흔들리며, 떨리는 불안이었음을 그제야 나는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스스로 안위하듯 한 번 더 읊조린다.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이제 두서도 없고 복잡한 이 글을 정리해야만 할 거 같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의 부름에 대한 내 대답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에브리맨’에서의 죽음의 일상화를 통해 깡그리 잃어버린 열정에 관한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실, 처음부터 나는 그 답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마지막 구절이었다.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 같은 나락. 그런 느리고 유려한 흔들림. 많이는 아니고 그렇게 조금. 사실 그러하기에 지금 당장 무언가를 못한다고 해서 그리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엄청난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고 지금의 이 선비놀음으로 인해 앞으로 다소 궁색한 삶이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전혀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업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있다. 오랫동안 나의 화두의 하나였던 뿌리를 자른 꽃잎이 바람에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꽃잎이 어딘가로 날아오르는가와 그리고 어딘가로 흘러들어가는 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어차피 그 꽃잎은 어딘가에서 모르게 썩어질 것이고, 그 자양분을 바탕으로 다른 꽃을 피어낼 것이다. 그러하기에 꽃잎이 어딘가로 가거나 머무는 문제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떨어지는 꽃잎의 자태이다.
언젠가 몰래 담배를 피러 나온 학교 담벼락과 마주한 꽃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봄이면 매일 눈처럼 떨어지는 것이 꽃잎이지만 그날따라 무슨 일인지 그만 두 눈을 적시고 말았다. 그리고 부끄러워 그 거리를 뛰어서 인적이 드문 놀이터로 가, 서럽게 울었다.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 아무리 눈물을 흘리려 발버둥 쳐도 한 방울도 흘려지지 않는 눈물이 왜 갑자기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는지. 몇 년이 지나고서 문득 그 일을 기억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때 나는 그 떨어지는 꽃잎의 자태를 통해서 내 청춘의 절정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비록 그 순간은 짧았지만, 아직도 내게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릿하고 정지한 화면으로써 각인되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때 그 꽃잎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음을. 그러하기에 아직도 나중에 떨어지는 작은 꽃잎들이 내 가슴속에서 천천히 묵직하게, 그렇지만 절정이란 이름의 유려한 자태로 나락해가는 풍경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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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원 2014-09-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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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펜 끝에 역사가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글을 쓰는 아이들 중 하나이다. 재능이 출중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해 쓰기 시작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그야말로 우연찮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 대체 내가 쓰는 시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남들이 '슬럼프'라고 말하는 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예뻐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시인 '김수영'을 말씀하셨다. 그의 시에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이있으리라 말씀해 주신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풀과 폭포밖에 모르던 나는, 그날로 서점으로 뛰어가 이 책을 사들었다. 과연그랬다. 김수영 그 한 사람의 혼이 담긴 펜 끝에는,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 역사가 머무른다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40,50,60년대의 그 치열한 시대를 작가는 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그런 경험과 작가의 고뇌하는 생각이 김수영 자신의 펜 속에 고이 스며든 것이다.
흐느끼는, 모로 누워버린 갈대마냥 작가는 시 속에서 울부짖고 흐느낀다. 그리고는 탈진해 쓰러져버렸는지 스스로를 어르고 달랜다. 그의, 송곳의 끝마냥 예리한 영혼은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어느 한 토막을 떠올리게 한다. 찌들어 버린 어느 영혼의 한토막..! 현실속에 안주해 버린, 아니 안주하지 못한채 현실의 대기 중에 흩어져버린 그의 혼. 세상이 어수선한 지금, 다시금 그의 문학론이 빛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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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수 2002-08-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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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시정신 ㅡ김수영
(내 좁은 소견으로는)김수영의 시에서 문학적 아름다움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처음으로 김수영의 시를 읽었을 때는 직설적이고 딱딱한 시들에 당황했다.그러나 읽으면 읽을 수록 단어들의 아름다운 조합에서 느낄 수 없었던 치열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김수영의 시는 단순히 대상을 노래하지 않는다.김수영이 주로 노래했던 '자유'는 일반적 시처럼 자유자체를 노래했던 것이 아니라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고발했다.김수영은 날카로운 시로 권위적 사회를 찌르고 나태한 개인을 찌른다.
또한 김수영의 여러 시에서 보여지는 반복과 파격성은 그의 주제를 더 잘드러나게 한다.소재면에서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지나치던 것을 재미있는 발상으로 연결시켜 자유 속에서 살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을 시를 통해 실현한다. 자유시인 김수영은 4.19혁명과 군부정권을 겪으면서 깨어있는 지식인이 되고자 했고 모든이가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반시론을 통해 1960년대의 흔한 참여시들과 또다른 차별성을 보여줬던 김수영에서 독립투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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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합 2002-01-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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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의지의 독백
자괴감에 빠지고 허무함에 무얼해야 할 지 몰라 하던 때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멀거니 책장만 바라보고서. 아무 생각없이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집어 들고 되는 대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뿌리. 진득하니 고여버린 굳은 심지의 독백이 나의 나약함을 꾸짖으며 말하고 있다. 풀이 눕는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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