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6

Chee-Kwan Kim [라오서의 중국, 쓰루미 슌스케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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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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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서의 중국, 쓰루미 슌스케의 미국]

1.
1949년, 북경의 한 인력거꾼의 삶을 통해 1920년대 중국 하층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린 작품 <낙타상자 (駱駝箱子)> 영문본의 성공과 미국내 지인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라오서 (老舍)는 미국을 떠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귀국한다. 라오서는 그러나 귀국 후 중국공산당 치하의 억압적인 환경에서 - 백화제방 운동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 제대로 된 집필활동을 이어가지 못한다.
1966년 문화혁명으로 중국전역이 불타오르던 어느 여름날, 라오서는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모진 구타와 조리돌림을 당하고, 다음날 새벽 자택 근처 호숫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2.
진주만 침공 당시 하버드 대학교에서 재학 중이던 쓰루미 슌스케 (鶴見俊輔)는 FBI에 의해 일본국 스파이 혐의로 연행되고 (무정부주의 서적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거였다) 전쟁포로로서 수용소로 보내진다. 이내 하버드 대학교 교수들을 포함한 미국지인들이 그의 변론에 앞서고, 미국정부의 부당한 연행에 분노하던 와중에도 쓰루미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며 미국 시민사회에 큰 감화를 받는다.

2차대전 종전 20년 남짓되던 무렵, 중국에서 라오서가 “현행 반혁명분자”의 플래카드를 뒤집어 쓰고 조리돌림을 당하던 때와 같은 시기에 쓰루미는 일본에서 <베트남에게 평화를! 시민연합>을 조직하여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베트남 파병을 피해 도주한 미군 탈주병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한다. 쓰루미는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로 미국에서 구금당했을 당시 자신이 미국시민사회로부터 받은 ‘보은’에 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3.
얼마전 미국의 흑인차별 문제와 중국공산당의 위그르족 탄압 문제를 등치시키는 글을 읽었다. 동 글의 취지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혐중’을 비판하면서, 그 불합리성을 지적하면서, 그 논거로써 양국 다 역사적으로 소수민족에게 차별과 탄압을 가한 폭압의 역사가 있는 나라가 아니냐는 취지였다. 즉, 중국와 미국은 체제만 다를 뿐이며, 중국에 대한 비난은 일종의 인종주의 혹은 종미주의에 기인한다는 요지로 나에게 읽혔다.
국가의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미국과 중국은 다를 바 없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법률과 제도, 통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개인의 존재 유무가 그 독성을 어느 정도 제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 여부가 내가 생각하는 미국과 중국의 차이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사회가 – 여러 모순에도 불구하고 - 미국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따라서 나는 양국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실제와 동떨어진 관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4.
1957년, 모택동의 주도하에 중국공산당은 ‘백화제방 백가쟁명 (百花齊放 百家爭鳴)' 방침을 선포한다. 이른바 전 인민에게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장려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리고 백화제방이 일년도 채 못가 반우파투쟁으로 탈바꿈하기 전 라오서는 <찻집(茶館)>을 발표한다. 3막으로 구성된 이 희극은, 1898년 청말, 원세개가 죽은 1917년, 그리고 중국의 대일 전쟁 승리 직후를 배경으로, 한 찻집을 왕래하는 군상의 모습을 통해 현대중국사를 고찰하는 작품이다.
<찻집(茶館)>에서 라오서가 그리고 있는 현대 중국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국가라는 권력자 아래에서 끊임없이 신음하는 중국 민중의 모습이다. 라오서는 암묵적으로 중국공산당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5.
文如其人. 글은 작가를 닮아있다. 라오서와 쓰루미 슌스케의 삶,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글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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