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7

알라딘: [전자책] 김사량 작품집

알라딘: [전자책] 김사량 작품집

[eBook] 김사량 작품집  |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epub 
김사량 (지은이),임헌영 (엮은이)지식을만드는지식2013-01-25 

전자책정가
12,8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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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36세의 나이로 한국전쟁 때 사망한 문제적 작가 김사량의 '빛 속에'와 '칠현금'을 모아 놓은 작품집. 그는 국군 편에 있다가 사망한 것이 아니다. 인민군의 종군작가, 즉 재북작가(원래 평양 부유층 출생)였다. 게다가 '빛 속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로 써서 일본의 문학상까지 탈 뻔했던 작품이다. 어떻게 봐도 문제적 작가로 생각해 볼 만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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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빛 속에
칠현금 ·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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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7-18
**≪김사량 작품집≫, <빛 속에

“아니!”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도 제국대학이나요?” 그는 정말로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 “조선 사람도 넣어 주나요?”
“그야 누구나 다 넣어 주지. 시험만 잘 치면…”
“거짓말이에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다 말해 주었어요. ‘요 조선 놈, 할 수 없구만. 소학교에 넣어 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하고.”
“어,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도 있나. 그래서 학생이 울었나.”
“울 게 뭐예요. 울지 않아요.”
“그래. 그 애 이름이 뭐냐? 한번 선생님한테 데려오너라.”
“싫어요.”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없어요, 없어요.”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았어요.”
그는 흥분해서 제 말을 취소했다. 정말 이상한 아이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 그와 거의 동시에 나에게는 혹시 이 애가 조선 아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나는 놀란 듯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표정이 굳어진 그는 경계하듯이 뒷걸음질을 쳤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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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사량 (지은이)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 <빛 속에>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수상식에 참석한 김사량은 조선의 작가로서 민족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민족의 현실을 진솔하게 써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답답한 것이었고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노마만리... 더보기
최근작 : <일본어판 김사량 전집 + 고향 - 전5권>,<꽃을 묻다>,<[POD] 노마만리> … 총 4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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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엮은이)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문학』을 통해 『장용학론』(1966)으로 문학평론가가 된 후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월간 『독서』 등 잡지사 주간을 지냈다. 유신통치 때 두 차례에 걸쳐 투옥, 석방 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년까지)를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 부소장, 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창조와 변혁』, 『민족의 상황과 문학』,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불확실 시대의 문... 더보기
최근작 :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 총 4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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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김사량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그가 일제 말기에 일본어 창작을 했고 일본의 문학상까지 탈 뻔했다는 사실을 두고 자칫 친일파 운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1945년 5월에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피해 항일 근거지인 중국 연안(태항산 남장촌)으로 망명한 바 있다. 이러한 김사량의 인생 굴곡은 조선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가로지르는 동북아의 역사에 폭넓게 관련된 그의 문제적 삶을 보여 준다.
그는 비록 일본어 창작을 했지만, 일본 식민주의와 협력하는 조선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강한 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빛 속에>와 <천마>에서 조선적인 것을 지워 버리려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포착한다. 이로써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불안을 야기하는 실체를 우회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김사량의 의도는 이런 인물들의 ‘위선과 비굴’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비겁하고 모순된 존재들을 낳게 한 제국주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었다. 북한에서는 <빛 속에>를 두고 ‘저항 의식이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맞는 저항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본어로 조선의 현실을 그렸다는 점은, 탄압을 피해 가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른바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에서 일본어 창작을 하면서 재일 조선인의 현실을 쓰던 그는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그에게 망명은 우회적 글쓰기(일본어 글쓰기)의 돌파구였다. 즉 저항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연안에서 항일 투쟁을 했던 얘기는 ≪노마만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조선의용군의 행적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학적 사료다. 이 시기부터 그의 작품에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보다는 혁명가로서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서는 <칠현금>을 썼고 곧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기’ 등을 썼는데 여기서는 혁명가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비록 모국어를 되찾았지만 북한 체제상 그의 문학이 개화하는 데는 제약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북한에서 남긴 작품들을 보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일제 말,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유리알 같은 정신’으로 날카롭게 직조하여 아쿠타가와상 후보에까지 오른 작가의 모습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렇듯 김사량은 일제강점기-해방-6·25라는 격랑에 몸을 실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인이자 혁명가다. 이러한 삶의 굴곡은 남·북 어디에서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남한에서는 일종의 월북 문인으로 간주되어 논의가 배제됐다. 북에서는 연안파라는 계보와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성분 때문에 배척됐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씩 풀려 북한에서는 1987년에 ≪김사량 작품집≫이 나와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북한은 <빛 속에>를 두고 그 한계성을 지적하면서도 ‘우리 인민의 비참한 모습과 식민지 인텔리의 정신적 고민, 민족적 의식을 잘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남한에서도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그에게 붙었던 친일 논란이 거의 해소됐다는 점은 그의 문학이 정당하게 평가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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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만리의 작가가 그 이전/이후에 어찌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음. 빛 속에는 뛰어난 작품! 식민지란 존재는 관계된 모든 이의 인성을 왜곡시킴. 그런 아이의 복잡한 마음을 뻔하지 않게 그렸음. 단, 아이/선생과 엄마 간 거리에 주목해야. 아이가 무용가가 되는 것이 이 여성이 구출될 방법은 아님. 
피치 2018-02-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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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에서 모두 잊혀진 작가 새창으로 보기
경향신문이었는지 노 문학가의 해방전후 회상기를 읽은적 있는데,김사량이라는 작가가 해방후 북한에서 주요인사로,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관심이 갔다.그리고,"빛속에"라는 작품은 월북작가작품선에서 읽은적이 있는 것이었고,동 작가의 "토성랑"이란 작품도 만화로 그려진 작품을 읽은적이 있다."칠현금"이란 작품은 해방후 북한에서(1949년)발표된 작품인데 뭐랄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아마도 사회주의 사상에 충실한 작품에 충실하고자 한듯하나 너무 도식화된듯한 느낌.일제시대 제철소에서 일하던 가난하고 못배운 청년이 일본놈들의 부당한 작업지시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 척추를 다쳤으나 제대로 치료도 해주지 않아 반신불수가 되었으나,해방후에는 소련군의사의 도움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여 새삶을 살게되었다는..,일제시대의 잔악함과 해방된 조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그리는..,

이 작가의 삶이 안타깝다.평양대지주의 차남으로 태어나 일본유학을 떠났으나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소설로 표현하였고,전쟁말기에는 중국연안으로 탈출하여 조선의용군에 가담하고 해방후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북한에 돌아온다.하지만 대지주집안이라는 출신성분과 김일성이 집권한 북한에서 "연안파"로 분류되면서 입지가 좁아질수밖에 없었다.한국전쟁당시 종군기자로 복무하다 심장병으로 병사하였다 한다.살아남았서도 아마도 한국전쟁후 "연안파숙청"을 피해가지 못했을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한에서는 월북작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연안파'라는 이유로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진정성"을 가지고 식민지 조선의 아픔과 함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식민지 조선의 아픔에 눈감고 대지주의 아들이었으니 편안하게 일본유학마치고,남한에 돌아왔다면 그후 비슷한 부류들의 삶을 보더라도 남한사회에서 대접받는 사람으로 살아갔을것이다.

이런사회는 잘못된 것이다.남,북한의 정치성향을 떠나서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제대로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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