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경 박사님의 페친님들, 이글에 대하여 꼭 알려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는 친구신청했지만 안되었습니다.
한 페친을 통해 11년간 일본의 조선인 노무동원을 조사, 연구한 정혜경 박사(공개적이니 존칭은 생략)가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박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는 내 중요한 관심사에 대해, 또 내가 아는 문제에 한해서 이야기하고 반론, 질문하겠다. 다음이 해당 내용이다.
"기자: 조선인 징용자들은 임금 착취에도 시달렸다?"
"정박사: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인적·물적·자금의 삼중(三重) 착취 구조를 만들었다. 강제 동원 과정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은 기차 삯과 뱃삯, 밥값까지 빚을 짊어졌다. 작업장에 도착한 뒤에도 일본 기업들은 숙박비와 식비는 물론, 신발과 곡괭이, 이불에도 사용료를 매겼다. 이 빚은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은 우편 저금이나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착취당했다.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정박사에게 질문.
1. 일본 사업장까지 가는 기차 삯, 뱃삯, 식비, 하물며 기차안에서 조선인들에게 나눠준 과자까지도, 또 도착 이후의 숙박비(기숙사는 무료, 단 가족이 있어 사택에 사는 경우는 일본인과 같은 임대비용을 납입해야), 곡괭이... 이는 모두 일본 회사가 부담하였다. 따라서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는 빚, 애당초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동원되는 과정에서 그런 빛을 지게 되었던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혹시 "증언"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것을 알려주셔도 좋다. 내가 '위원회'의 출간물을 읽은 기억과 내 채록에는 그런 내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2. "쥐꼬리만한 임금"도 증언 외에 다른 근거가 있는가?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가 직접 자료를 보고 논문에서 이용한 것들, 예를 들어 박경식이나 하야시 에이다이 등 "강제연행`강제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펴낸, 그들 자신들이 편찬, 공간한 많은 분량의 자료로부터 해당 내용을 찾아 계산해보았다. 역시 대단히 많은 금액이 조선인 노무자의 손에 쥐어졌다(박경식 등, 그들은 자신들이 편찬한 자료 속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연구자로 게을렀거나,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였거나, 그중 하나일 것이다).
3.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알다시피 대부분의 도주자들은 큰 금액을 남겨둔 채 도망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고, 도착후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두달 내에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미수금(개념이 분명치 않지만, 저축, 연금저축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힌다)은 도주를 막을 수 있는 금액, 수단이 결코 되지 못했다. 그것은 상상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저축 등이 조선인의 도주를 막을 만한 것이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대부분의 도주자들이 사업장 도착 이후에 "신속하게" 도주했으므로 그 "미수금"은 미미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에 반하는 자료가 있다면 공개해 주기 바란다.
4. 상기 정박사의 결론,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관련, 나는 정박사의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증언"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증언이라는 것이 당시에그들을 고용하였던 많은 회사, 그 기업단체, 그를 관할하는 일본 정부의 문서 등(이들 문서들은 그 내용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일관성을 갖고 있기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과 크게 배치디는 내용들이다. 연구자로서 이른 바 "사료 비판"을 한다면, 일관성 있는 문서자료가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정박사의 생각은 어떠한가?
5.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결론은 우리 선조들이 '노예, 또는 그와 다를 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20세기 전반, 우리의 선조들이 그와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수 백년동안 발전해온 소농(peasant)ㅇ,로서 자신의 독자적인 경리를 가진 경제생활의 주체였다. 그들이 1939-45년간 "노예"로 사역당하면서도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반인간적 학대'에도 불구하고 전혀 저항할 수 없었던(쟁의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쟁의" 자체가 정치`사회적으로 예속된 존재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저항"이란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봉기하는, 그런 의미의 저항을 말한다) 무기력하고 비굴한 존재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관적인 질문이니 답하지 않아도 좋다.
이상에 대해 정혜경 박사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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