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기독사상의 서평원고
이제 10월호도 발행되있으니, 9월호 원고를 공개하여 친구들과 함께 읽는다.
백수 기념이 진행되는 동안 토미야마 다에코는 별세했다.
이 또한 공교롭다.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진취적 태도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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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원고>
<東洋文化>101(동양문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2021.4)
사회참여 화가 토미야마 타에코(富山妙子, 1921-) 특집호
서 정 민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정기 간행물에 대한 책 소개가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동양문화>101호는 한일 관계 근현대사를 생각할 때 꼭 소개해야 할 사명을 느낀다.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저널 <동양문화> 101호는 민중화가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토미야마 타에코의 100수를 기념하는 특집호이다. 단지 한 인물을 기념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녀의 ‘참여예술’ 활동을 통해 회상, 재고, 예견 할 수 있는 여러 테마들을 학술적으로 접근한 의의가 깊다. 식민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젠더 등등의 수많은 키워드를 함축한 논문집이다. 특히 한일 관계가 전후 최악을 말하는 시점에서, 가장 주목해 볼만한, 학술적 전개가 가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집 제목을 ‘세계사를 월경(越境)한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편집의도가 그 내용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토미야마 타에코의 삶과 예술
1921년 11월 6일 코베(神戸)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일본의 실질적 지배하에 있었던 만주국으로 이주했고, 1938년 하얼빈여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진학하지만, 중퇴하고 말았다. 전쟁 후인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 방향은 이른바 ‘참여예술’, 즉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예술적 표현, 저항의 방향이었다. 초기에 주로 ‘츠쿠호우(筑豊)탄광’ 노동자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그 애환과 문제의식을 대변하였다. ‘히타네(火種)공방’이라는 작업실을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사회 저항적 미술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일본의,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한 식민통치와 전쟁책임 등을 크게 자각하고, 이를 재 성찰하는 활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작품전시회도 개최했고 문필활동도 겸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컸다. 그녀의 책 “피어나라 봉선화”(はじけ鳳仙花, 筑摩書房, 1983)를 원작으로 1984년 츠지모토 노리아키(土本典昭) 다큐멘터리 감독이 “피어나라 봉선화, 우리 츠쿠호우(筑豊), 우리 조선”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민주화 운동, 여성문제 등등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계속 표현했다. 2010년 11월에는 도쿄YWCA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며, 식민지와 토미야마 타에코의 화가인생- 한일병탄 100주년 기획”을 주제로 회화전을 열었다. 올해로 100세를 맞는다.
<동양문화> 101호 게재 논문의 대강
특집호의 서문은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마나베 유코(真鍋祐子)교수가 기고하였다. “서문에 대신하여, 큰 쓰나미(津波) 후로부터”라는 제목인데, 도미야마 타에코의 작품, 실제 화가와의 만남 이후 등을 담담히 정리하며, 특집호의 각 주제와 의의를 소개하였다.
게재 논문은 서문 이외에 일본어와 영문 논문 총12편이 게재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과 관련이 있는 주제의 논문을 중심으로 몇 편의 제목과 필자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미술가 토미야마 타에코의 궤적과 전개: 199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小林宏道), “토미야마 타에코 ‘새로운 예술’의 모색: 패전 후부터 1960년대까지를 중심으로”(서윤아), “화가 토야마 타에코와 ‘트랜스 내셔널’한 연대: 월경(越境)하는 작품, 공진(共振)하는 감각”(이미숙) “예술로 보는 식민지주의와 여성의 몸: 토미야마 타에코의 중국, 만주국, 한국과의 만남”(坂元ひろ子), “5.18, 그리고 통일: 베를린 독일에서의 한국 민주화운동”(이은정, 真鍋祐子), “한국 민주화운동 및 김지하 구명운동의 멕시코로부터 연대”(알프레드 로메로 카스티쟈, 高際裕哉) 등등이다.
대부분의 논문이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토미야마 타에코의 예술과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 그리고 그로부터 확산, 전개되는 현대사, 한일관계사의 주제에 대한 정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집필된 논문으로 평가된다. 특히 민족주의에 대한 재 성찰, 그리고 식민지주의가 지닌 통괄적 비판을 넘어서 각론으로서의 여성과 약자에 대한 억압 문제도 구체화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미숙의 논문 “화가 토야마 타에코와 ‘트랜스 내셔널’한 연대: 월경(越境)하는 작품, 공진(共振)하는 감각”에 대해 한걸음 더 리뷰 하기
위 논문을 쓴 이미숙(李美淑)은, 현재 도쿄 릿쿄(立敎)대학 글로벌 리버럴 아츠 프로그램 운영센터의 조교(한국의 기간제 전임강사에 해당)로 있는 연구자이다.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 연구원과 도쿄대학 특임조교를 거쳤다. 학위논문의 테마는 사회정보학 분야에서 “한일 연대운동 시대의 트렌스 내셔널 공동권(公同圈)과 미디어”에 관한 것이다. 박사논문은 2018년 도쿄대학 출판부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본인의 연구기반과 주제를 그대로 이번 논문에서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근에 자주 회자되는 ‘트렌스 내셔널’의 관점을 동원하였다. 물론 이 개념이 국경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운동으로 실천된 역사는 짧지 않다. 논자가 서론에서 밝힌대로, 노예해방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등이다. 그러나 이것이 때로 정치적 행위로, 그 주체와 목표와 연대 실현의 차원에 따라 예민하게 목도해 보아야 할 전제들을 상세히 구명해 나갔다. 그리고 본론인 토미야마 타에코의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 화가의 월경하는 작품을 분석하고 배경을 이해하는 것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전개를 보인다. 그리고 토미야마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애, 만남, 경험 등에서 자신의 논지를 확인, 검토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특히 토미야마의 예술 실천 속에서 그 실제 경험이 어떻게 구현되어 나가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김지하, 광주 5.18, 식민지책임 등등이 모두 실천, 표현의 키워드이다.
그러나 서평자의 눈에, 이미숙의 논지는, 트랜스 내셔널리즘으로 월경하고 연대하는 전개 이상으로 이른바 ‘공진’(共振)에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본어로는 빈번히 사용되는 ‘공진’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 지나치게 물리적 용어로 한정되기 때문에, 차라리 ‘공명’(共鳴), 혹은 ‘공감’(共感)이라는 말로 바꾸어야 하 것 같다. 즉 관련성이 있는 지역에서 작은 단위의 월경을 통해 공감을 획득해 나가는 전개가, 점점 그 울림을 확산해 나가며, 보편적 공명을 획득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토미야마의 작품과 실천적 예술이 한일을 넘어, 북미와 유럽, 동남아시아로 확산되는 것을 이른다. 그런데 그 공명의 기재로는 반드시 효과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바로 토미야마에게서 그것이 공명을 얻어나가는 네크워크로 각국의 NCC를 비롯한 기독교의 연대, 조직이 역할을 감당한 측면을 또한 규명하였다.
결국 이 논문은 토미야마 타에코가 예술활동을 통해 표현하고 실천한 트래스 내셔널리즘의 연대 가능성을 보인 주제들, 식민지 책임, 민주주의, 젠더, 인권 등등이 국경을 초월한 민중 예술의 연대, 구체적으로 기독교 네트워크가 실제적 역할을 주로 담당하면서, 공명을 불러 일으키는 사례를 면밀히 재구성, 재해석 해 나갔다.
이미숙의 논문은, <동양문화>101호가, 토미야마 타에코의 예술, 생애, 경험, 실천, 그것을 통해 월경하는 가치의 연대와 공명의 전개를 점검하고자 한 목표에 가장 충실히 응답한 논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숙의 논문은 물론, 앞서 논급한 <동양문화>101호, 토미야마 타에코 특집에 게재된 논고들은, 해방 후 가장 혹독한 갈등의 시대로, 한일의 높은 장벽 상황 중에 재음미 해야 할 필수적 논의들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어와 영어 논문으로만 편집된 저널로, 독해의 제한이 있으나, 되도록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
서정민/ 연세대학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박사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대학원 교회사 교수 역임, 현재 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대학 교수, 동 대학 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 『日韓関係論草稿』(朝日新聞出版, 2020)외 한, 일어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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