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4

[전자책] 동화와 배제 -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이정선

알라딘: [전자책] 동화와 배제

[eBook] 동화와 배제 -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이정선 (지은이)역사비평사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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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6권. 제국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표방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조선인의 사상.정신, 일상 생활양식, 나아가 혈통까지 일본인화할 수 있는 동화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내선결혼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제적.문화적.혈연적 경계를 흔드는 식민통치의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

민족이 다르고 식민자와 식민지민으로서 서로 지위가 다른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은 양 집단 모두에게 문화적.혈연적 혼효를 야기하고, 그 부부와 자녀를 어느 집단에 포함시킬지 혹은 배제할지를 결정해야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선결혼 정책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인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다.

일제시기 가장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던 내선결혼을 둘러싸고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들이 맞물리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해방으로 법제적 평등을 얻은 국민국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동원된 포섭과 배제의 논리들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생각할 단서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제1부 1910~30년대 ‘내선결혼’ 법제의 형성 및 운용
제1장 법제상의 민족 구별과 내선결혼 문제
1. ‘병합’ 이후 조선(인)과 일본(인)의 구별
2. 내선결혼 문제의 발생
3.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 문제 해결 시도
제2장 ‘내선결혼’ 법제의 형성 과정
1. 공통법의 제정 및 민족 구별 원칙의 결정
2. ‘내선결혼’ 법제의 정비와 시행
제3장 ‘내선결혼’ 법제에 의한 호적 이동
1. 일본 호적에서 조선 호적으로의 이동
2. 조선 호적에서 일본 호적으로의 이동
3. 호적 이동이 허가되지 않은 관계
소결 동화와 구별의 긴장, ‘내선결혼’ 법제의 보충과 초과

제2부 1910~30년대 내선결혼의 선전 및 실태
제1장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 선전과 조선인의 반응
1. 동화정책 논란과 ‘내선융화’의 제창
2.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 장려론
3. 조선인 식자층의 내선결혼 반대론
제2장 조선에서의 내선결혼 유형과 추이
1. 연도별·유형별 추이
2. 지역별·직업별 추이
제3장 내선결혼 가정의 결혼 동기와 생활양식
1. 관공리와 왕공족·귀족의 정략결혼
2. 경제적 이해관계의 합치
3. 신분 사기, 성범죄, 동지적 결합
제4장 내선연애·내선결혼으로 인한 사회문제
1. 연애와 결혼의 불연속 및 변심
2. 일부일처제 가족제도와의 충돌
3. 민족 차이·민족 감정으로 인한 갈등
소결 ‘융화’와 ‘불화’의 공존, 내선결혼을 통한 동화의 어려움

제3부 전시체제기 내선결혼 정책과 내선혼혈 문제
제1장 ‘내선일체’ 정책에서 내선결혼의 위상
1. ‘내선일체’의 제창과 적극적 내선결혼 장려론
2. 조선총독부의 소극적 내선결혼 장려 정책
3. 일본 정부의 내선일체 옹호와 내선결혼·혼혈 경계
제2장 내선결혼·혼혈 연구와 일본(인)의 순일성 문제
1. 내선혼혈아에 대한 우생학적 연구
2. 내선일체 정책의 역류와 일본(인) 보호
제3장 공통법체제의 재검토와 통혼 장려의 방기
1. 호적상 민족 구별 원칙의 논리적 동요
2. 조선총독부의 전적안과 ‘황민화’의 조건
3. 내무성의 이적안과 ‘일본인화’의 조건
소결 내선결혼·혼혈의 일본(인)에의 역류, 통혼 정책의 동요

결론
1. 동화정책의 작동 방식: 이념, 시책과 선전, 현실의 상호작용
2. 동화정책의 성격: 조선인의 법제적, 문화적, 생물학적 동화
3. 차이와 차별: 민족, 계급,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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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정선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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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한국 근대사이며, 대표적인 연구로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국가의 가족, 가족의 국가 - ‘조선인사조정령’을 통해 본 가족보호 정책의 이중성」 등이 있다. 일제시기를 중심으로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 관계가 교차하며 빚어내는 역사상을 그려냄으로써 역사학자로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작 : <가족의 재의미화 커뮤니티의 도전>,<다시 국가를 묻는다>,<동화와 배제> … 총 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포섭하면서 배제하는,
끌어당기며 경계 짓는,
일제의조선인동화정책
법제적·문화적·생물학적 동화의 전략과 현실의 길항을 살펴본다

제국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표방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조선인의 사상·정신, 일상 생활양식, 나아가 혈통까지 일본인화할 수 있는 동화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내선결혼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제적·문화적·혈연적 경계를 흔드는 식민통치의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 민족이 다르고 식민자와 식민지민으로서 서로 지위가 다른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은 양 집단 모두에게 문화적·혈연적 혼효를 야기하고, 그 부부와 자녀를 어느 집단에 포함시킬지 혹은 배제할지를 결정해야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선결혼 정책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인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다. 일제시기 가장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던 내선결혼을 둘러싸고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들이 맞물리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해방으로 법제적 평등을 얻은 국민국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동원된 포섭과 배제의 논리들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생각할 단서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내선결혼 법제의 형성 과정과 운용 양상을 밝히다
일제시기 제국 일본 전체를 아우르는 법제사 연구가 부족한 학계의 현실에서, 이 책 <동화와 배제>의 제1부는 가족법과 호적제도에 대한 제도사적 접근의 촘촘함이 돋보이는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이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한 일제는 조선인이 일본인과 유사한 ‘동문동종’임을 전제로 동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천황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일시동인’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조선에 호적상의 본적을 갖는 자를 법제적 의미의 조선인으로 삼아, 조선 민족과 일본 민족을 구별했다. 그리고 다시 공통법(1918)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혼인이나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되는 때는 당사자 일방의 본적 이동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내선결혼’ 법제는 개인이 속한 지역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인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내선결혼 법제의 정비·시행을 더욱 서두르고, 동화의 측면만 부각시켰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비공식화한 ‘내선결혼’ 법제는 그만큼 논리적·제도적으로 불안정했고, 일제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운용되었다. 조선인 남성 가운데는 일본인이 되기 위해 ‘내선결혼’ 법제를 활용하려는 사람도 나타났지만 ‘내선결혼’의 법제적 장벽을 가급적 제거한다는 입장이었던 일제에게는 위장결혼 등 탈법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친족입적마저 지역적을 변경할 수 있는 요인이 되면서 이론상 조선인의 일본 호적 입적이 무제한 가능해졌다. 일제가 지역적의 약점을 보완하며 무차별의 상징으로 선전한 ‘내선결혼’ 법제는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서는 오히려 지역적을 동요시킬 수도 있는 제도가 되어간 것이다.

융화와 불화의 공존, 내선결혼에서 드러난 ‘동화’의 허구성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저항에 봉착하자, 민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 저항을 무마할 방책의 하나로 주목되었다. 조선인이 마음으로부터 식민 지배에 순종하게 하는 방책, 즉, 조선인을 동화시키기 위한 전제가 ‘융화’였고, 1920년대 내선결혼은 내선융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조선총독부는 1921년 ‘내선결혼’ 법제의 시행을 전후하여 내선결혼을 양 민족이 서로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는 융화의 결과로 표상하고, 사랑을 연쇄시킬 융화책으로서 통혼을 장려한다는 선전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당시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을 이상으로 하는 결혼관이 유행하는 가운데, 조선인 식자층은 내선결혼 자체를 정략결혼으로 보고 배척했으므로 조선총독부도 직접적인 통혼 장려책을 시행하지는 않았다. 또한 내선결혼이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선전과 달리, 실제로는 정략적 혹은 경제적 동기로 인한 통혼도 많았다. 심지어 성범죄나 인신매매가 통혼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유연애 또는 자유연애로 맺어진 결혼이라도 반드시 원만하거나 영구결합하지는 않았다. 연애 중이거나 결혼한 뒤에도 결별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자유연애는 오히려 기혼 남성의 작첩·중혼이나 기혼 여성의 간통으로 발현되어 일부일처제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 통계에는 이들도 민족 간 ‘융화’의 결과로 집계되었지만, 이러한 내선융화의 가정은 현실에서는 다양한 ‘불화’를 수반하면서 역으로 내선융화의 취약성을 보여주었다.

내선결혼과 내선혼혈에 대한 회의, 통혼 정책의 동요
1930년대 이후 전시체제기는 일제의 조선인 동화정책에서 정신적·문화적, 생물학적, 법제적 동화의 각 측면이 뚜렷이 구별되고, 그중 내선결혼과 혼혈으로 실현될 생물학적 동화에 대한 회의가 강해지면서 통혼 정책이 동요한 시기였다.
먼저 조선총독부는 노동력·병력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조선인들이 일본인이라는 국민의식을 가지고 일본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내선일체’, 곧 반도의 일본화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 본토에서도 재일조선인의 정신적·문화적 일본인화를 꾀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는 내선결혼의 급격한 확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문화적 동화 없는 내선결혼의 확산이 조선에서 민족 간 ‘불화’를 야기하는 것을 경계했다면, 일본 정부는 더 나아가 동화정책 자체를 재검토했다. 내선결혼이 주로 하층 계급의 ‘밀통’, 사기 등으로 이루어져 불건전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조선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을 내연의 처나 첩으로 삼는 등, 내선일체 정책이 지도자여야 할 일본인을 압박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내선결혼이 현실에 방임된 결과로 통혼과 혼혈이 본토의 문제가 되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계층, 국민의식, 생활양식의 차원에서 일본인보다 열등하게 보고 일본(인)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다. 급기야 패전 직전에 이르러 일제는 병합 이래 유지해온 내선결혼 장려의 슬로건마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서구와 달리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문동종’의 유사성을 전제로 성립된 일본의 동화주의는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정신적·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혼혈을 거부하고 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패전 후 일본이 재일조선인을 포섭할 여지마저 부정하고,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며 일본국적에서 조선인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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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ille 2017-07-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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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본은 무엇인가




장서가로서 읽어볼만한 일본사 서적을 틈틈이 정리하는 나는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바로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일본에 대한 서적들이 한국에 출판된 일본사 서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근대란 메이지유신부터 일본국 헌법의 제정으로 제국 일본 체제가 무너진 1947년까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에도 시대, 전국시대, 고대 일본에 대한 서적은 매우 적다.

사실 한국에 일본근대사 서적이 많은 이유를 추측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근대'는 단순히 하나의 시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근대는 역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가치 척도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근대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식민지 경험에 대한 기억까지 합해져, '근대화'에 실패하고 근대적 개혁을 이루지 못한 조선은 '열등'하다는 식의 논리가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사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일본은 애증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폭력적인 지배를 행사한 악의 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짧은 시간 안에 근대화에 성공하여 강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일본에 대해 선망의 정서가 공유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특별하다.




왜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일본은 성공했을까. 이 문제야말로 일본 근대에 대한 한국의 비상한 관심의 근원이다.






















































이런 점에서 박훈의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제목에서부터 한국인의 관심을 끄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 박훈 선생은 '근대'를 절대적 가치로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각해볼 문제는 이런 제목의 저변에는 어떠한 배경과 인식이 깔려 있는지다.




일본의 근대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은, 메이지유신으로 시작하여 근대 일본의 체제와 문화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구체적으로 번역과 근대 천황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관심사는 일본의 침략주의적 행보이다.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기본적으로 침략주의자로 규정짓고, 그러한 관점에서 후쿠자와를 맹비난하고 일본의 역사관, 나아가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이들도 비판한다. 정일성도 책은 그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대개 이런 책들은 근대 이후 일본의 역사를 '침략'과 '제국주의'로 특징짓는데, 이 역시도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이 투영되었다 할 수 있다.




참고로 야스카와와 정일성의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편향적이기도 하며, 너무 '침략'이라는 결론을 강하게 내린 상태에서 책을 썼기에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러일.청일전쟁>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읽을만하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이 노골적인 침략 행보를 보였기에 그 시작점인 청일전쟁과 경복궁 점령은 정리해볼 역사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시기부터는 일본 자체보다는 일본의 한국 지배 양상과 총독부의 정책을 다룬 책이 더 많다. 혹은 일본은 어떻게 패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책.















































































































































일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몰려 있다 보니,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고대 일본이나 19세기 이전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을 뿐더러, 실제로 서적도 얼마 없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는 각각 전기가 한 종씩 있을 뿐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예 소설 <대망>을 제외하고는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전국시대 전체에 대한 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어, 그나마 몇 년 전에 이계황 선생 덕분에 지적 공백이 채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더 특이한 현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1947년 이후의 일본 현대사를 다룬 책은 근대와 대조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근현대사 통사 책을 제외하고, 몇 권 나열해보자. 근대와 대비하여 현대에 대한 이러한 상대적 무관심은 무엇이 원인인 것일까.




































이를 생각해보기 전에, 근대 이전 일본의 역사에 대한 한국의 대략적인 인식부터 봐보려 한다.

19세기 이전, 조선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교류를 했다. 흥미로운 그 통신사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다.








"지난 3년에 걸쳐 우리는 조선통신사의 행로를 더듬어 가며 뱃길이 머무르던 곳,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오롯이 남아 있는 당신들의 긍지와 애국심을 하나씩 수습했다. 그때마다 목이 메어오는 감격을 누를 수가 없었다. 조선통신사가 중첩되는 어려움을 견디며 평화의 터를 다지고 문화의 향기를 흩뿌리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단선적이었을까를 생각하자 숙연해지는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 표지글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열두 차례 파견되었던 조선의 문화 사절단입니다. (....) 아이들은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통해 세계 속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배우게 됩니다." <조선통신사 - 평화를 전하는 발걸음>




이상의 두 인용문에서 보이는 인식은 시사적이다. 두 책은 조선통신사를 일종의 문화사절단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조선이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린 인식이다.




한국이 비록 근대화 이후에는 일본에 밀리고 지배까지 당했지만, 원래는 일본보다 더 강국이었다, 백제와 가야가 일본의 문명을 발달시켜주고, 조선도 문화사절단을 보내 일본을 발달시키려 했다, 그럴 정도로 뒤쳐졌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유일하게 자체적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러한 발상이 은연 중에 있는 것은 아닐지..




여담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조선과 한국만의 생각이다. 애초에 어쩌다 한번 가던 통신사로 일본 사회에 변화가 생겼을리가 없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조선의 문약을 비웃었으며, 조선의 유학에 대해서도 일본이 더 낫다는 미묘한 대결심리를 보여주었다.






























중국과 대비한다면, 이러한 경향이 한층 뚜렷하게 보인다. 중국 근대사 관련 서적이 적은 편인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한국인의 관심사는 중국 고대사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공맹, 노장, 묵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들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고, 또 사마천의 <사기>나 나관중 <삼국지>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는 고대 중국의 선각자들에게서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지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 지혜를 배우려 한다.














































































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당장 일본 사상가 중에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후쿠자와 유키치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거니와, 근대 일본에 대한 관심도 실용적 수준에서 머물지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겠다는 모습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류는 아니다.































일본 현대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심리가 아닐까? 한국이 한때는 일본에 뒤쳐지기는 했지만, 원래부터 지금까지 그렇듯이 한국인 일본보다는 더 우월한 국가이다, 그러니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일본에게서 배울 것은 없다.




우스갯소리 중에 '전 세계에서 일본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라는 말도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말로 생각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일본을 선진국으로 보기도 했지만, 2010년대, 특히 2019년 이후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제 일본은 한국인에게, 한국은 일본처럼 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이자 새로운 군국주의로 나아가려는 도상 위에 있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원수이다.










책이 어떤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 먹고 살려고 책을 만드는 출판 자본은, 책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관심 가질 법한 책을 만든다.




즉, 일본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출판시장을 보며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 분석 없이 편견 가득한 인상론과 책 목록만 보고 한 영양가 없는 소리이다.
- 접기
김민우 2021-06-24 공감 (2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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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24 1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관해서 읽어보기 전에 이 페이지를 참고하면 좋겠네요! 상대적으로 일본은 우리 나라에 관해 열심히 연구한다고 들었는데 우린 특정 시기에 치우친 것이 아쉬워요. 그런 것들부터 극복하면 어떨까 싶어요. 🤔

김민우 2021-06-24 21:22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그리고 더 다양한 주제가 나와야 할텐데 말입니다.. 우선 그런 책을 내도 적자 볼 일은 아니라고 출판사를 안심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의 관심사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왜 이렇게 일본을 싫어하는가? 이런 식으로요

북다이제스터 2021-06-24 1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항인데요, 일본은 개항 시점이 아니라 일찍이 1500년대부터 근대화되어 훨씬 앞서 갔다고 하는데요, 맞는지요?

김민우 2021-06-24 22:17   좋아요  2 | URL
정확히 어떤 주장인지 알지 못해서 대답을 드릴 수 없겠지만 일본의 근대, 동아시아 근대에 대한 주장을 몇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동아시아에는 근대가 없다. 이때 근대란 서양식 근대를 가리킵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19세기 서양과의 접촉을 통해서야 근대가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둘째, 동아시아에도 근대가 있었다. 여기서도 근대는 서양식 근대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마루야마 마사오는 오규 소라이 같은 사상가를 분석 하면서 일본도 서양식 근대의 맹아가 발견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견해는 그의 제자 와타나베 히로시에 의해서 전면 부정당했습니다. 최근 견해는, 오규 소라이는 근대적 사상가가 아니라 완전 반근대적 사상가라는 것 입니다.

마지막도 동아시아의 근대를 주장하는데, 이때 근대란 서양식 근대를 전혀 참고하지 않은, 동아시아 독자적 근대를 의미합니다. 최근 출판된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저자 쑹녠선 같은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그분은 16세기, 임진전쟁 예수회의 선교 만주 굴기 등으로 근대 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근대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져서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동아시아로 분류되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특이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네덜란드와 교류로 난학 등도 발달하고 서양의 정보와도 단절되지 않았고요. 이런 것이 조선과 비교하자면, 훨씬 나았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6-25 11:02   좋아요  1 | URL
우문에 현답을 주셨습니다.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해소 되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김민우 2021-06-25 16:31   좋아요  1 | URL
부족한 답변임에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보다는 더 도움이 될 책을 몇 권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16세기 일본에 대해서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김시덕 일본인 이야기 1 입니다
그리고 쑹녠선의 동아시아를 발견하다도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근세 일본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상업 사회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야미 아키라의 <근세 일본의 경제발전과 근면혁명>이 좋습니다. (사실 이 책말고는 없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초딩 2021-06-30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이지유신에 대해 읽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요 :-)

김민우 2021-07-01 15:22   좋아요  0 | URL
좋은 독서 되시기를 바랍니다 ㅎㅎ 제 마이리스트 <일본사>에 더 정리되어 있으니, 그쪽도 봐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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