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4

식민지 유산을 새롭게 생각하기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이정선, 2017, 역사비평사)

식민지 유산을 새롭게 생각하기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이정선, 2017, 역사비평사)

식민지 유산을 새롭게 생각하기
 
–  『동화와 배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이정선, 2017, 역사비평사)
 
전영욱 |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I. 식민지 경험과 현재의 관계
II. 내선결혼의 의미–이념과 정책과 현실이라는 퍼즐 조각
III. 평등의 미래–실질적 평등을 위한 역지사지


I . 식민지 경험과 현재의 관계
<유로파 유로파(Europa Europa)>라는 영화가 있다. 아그네츠카 홀랜드 (Agnieszka Holland)라는 유명한 감독이 1990년에 연출한 영화다.  영화의 독 일어 제목은 <Hitlerjunge Salomon>인데, 해석하면 “히틀러 청년, 살로몬”이 라는 뜻이다. 살로몬 페렐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순수’ 유 대인인 그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유대인과 볼셰비키 당원,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위태롭게 넘나든다.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한때는 자신의 정 체성을 증명했던 러시아어를 독일의 승리를 위해 사용한다거나, 독일인 여성과 의 사랑을 위해 할례의 흔적을 지우려고 자신의 생식기를 억지로 꿰맨다거나, 독일이 패전한 후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스스로 유대인임을 증명하지 못 해서 처형될 위기에 처하는 등, 참으로 처절해 보이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살로몬은 히틀러유겐트(HitlerJugend)로서 독일인들 사이에 섞여 수업을 받는데,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가 골 상학(骨相學)을 활용하여 그의 인종을 공개적으로 판별한다. 해당 장면의 대사 를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어떻게 유대인을 알아낼 수 있을까? …… 아주 간단하지. 유대인의 피는 근본적 으로 우리와는 다르다. 유대인들은 이마가 넓고, 매부리코에, 뒤통수가 납작하고, 귀는 뾰족하게 섰으며, 걸음걸이는 마치 원숭이 같지. 눈은 삐뚤고 아주 교활하게 생겼지. …… 과학은 객관적이다. 명백하지. 내가 말한 종족 간의 차이점을 완전히 이해해서 유대인에게 절대 속지 않도록 해라. 
[주인공을 향해–인용자] 앞으로 나와 봐. 눈동자, 두개골, 이마, 옆모습을 봐라. 수 세대를 거치면서 조상들의 피가 다른 민족과 섞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아리안족 만의 두드러진 특징을 알아볼 수 있다. 발트해 동쪽의 민족과 섞여서 가장 고귀한 게르만족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너는 틀림없는 아리안족이다. (강조는 인용자)
교수는 유대인을 향해 “너는 틀림없는 아리안족”이라고 단언한다. 이 장면
은 당시에 최첨단 과학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허용되지 않았던 우생학 자체가 사실은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이 마냥 창작된 상상 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들이 역사 속에 넘쳐흐르는 가운데, 영화 자체 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이 겪은 ‘점령(식민지)’의 경험은 무엇인가? 그 경험은 당대에 어떤 방식
으로 형성되었고 변화해 갔는가? 이런 종류의 경험들은 지금도 남아 있는가? 아니면 사라졌는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외형적으로 해소된 것처럼 보이 는 오늘날, 이런 고민들은 어느 정도나 정당할까? 독서가 끝난 후, 이미 본 지 20년 가까이 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비 록 책의 소재인 일본 제국주의와 영화의 소재인 서구 제국주의는, 인종주의를 통치에 활용하는 데 있어 꽤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두 매체가 불러일으 킨 의문이 종국적으로 같은 궤적 위에 있다. 그것은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활용 할 수 있게 한 인종주의의 원리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종주의적 유산이 매우 교묘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관한 문제 제기일 것이다.
이런 고민은 결국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을 연구한다는 것이 지금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사실 이런 뉘앙스 의 질문은 한국사학계가 식민지 경험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기되었다. 보통 이 문제를 풀어 갔던 과정에는 ‘식민지 유산’으로 표현되는 수 많은 식민지적 현상의 규명과 이에 대한 고발·반성 등이 있었다. 성과는 분명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성격상 ‘국민국가’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몇 가지 난점을 낳았다. ‘유산’에 대한 ‘청산’은 ‘한국(인)’의 경계 선을 명확히 하는 데 일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어느덧 한국(인) 의 경계가 원래부터 흐릿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산을 청산해야 하는 주체로서 한국(인)이 강조될수록 무의식적인 배제도 동반 되었다. 유산을 발견하고 청산을 행할 때마다 ‘동화와 배제’가 등장하는 이 예기 치 못한 역설은, 식민지기 연구와 현재의 관계를 시나브로 유리시켰던 것은 아 닐까?
모든 문제의식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
을 강조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내밀히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려하고 또한 식민지기 연구가 이 문제를 드러 내는 데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면, 유산과 청산의 관계 역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평자는 최근 들어 등장하는 식민지기 연구 대부분이 이런 종류의 고민들을 나름대로 거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책 『동화와 배 제–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역사비평사, 2017)의 기본적인 의의 또한 바 로 이 고민을 통해 현재를 건드린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II . 내선결혼의 의미–이념과 정책과 현실이라는 퍼즐 조각
간략하게나마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의미를 추출해 보자. 다만 이 글의 성격을 고려하고자 한다. 평자가 식민지기의 어떤 것을 전공하는지와 상관없이 이 책의 소재는 그 자체로 접근하기가 녹록치 않다. 일단 ‘서양자(婿養子)’나 ‘이성양자 (異姓養子)’, ‘인지(認知)’ 등의 법률용어가 적잖이 등장한다. 게다가 특정 법령 이 입안·공포되며, 다시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을 읽어 나가다 보면, 독자의 입 장에서는 서술과 서술 사이의 연결고리를 부여잡는 일이 생각보다 곤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복잡함에서 기인하는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저자 는 “적어도 방법상으로는 철저히 이성적·실증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정통’의 길을 걷겠다는”(5쪽) 스스로의 다짐에 매우 충실했다. 내선결혼을 뒷받침하는 제 도가 왜 복잡할 수밖에 없는가? 이 독서의 출발은 이 지점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인 「일제의 ‘내선결혼’ 정책」(서울대학교 대학 원 국사학과, 2015)을 저본으로 집필되었다. ‘내선결혼’이란 표현은 저자의 창 작물이 아니다. 저자는 이 표현이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을 가리키는 용 어 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음을 근거로 일종의 역사용어로 규정하고 있 다. 또한 저자는 일제의 내선결혼 정책을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이자 일본 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던 것”(19쪽)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단순 히 사적 행위로만 치부하지는 않았다. 저자도 지적하는 것처럼 “해방 이후 한국 은 일본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했지만 일제시기의 제도들을 대부분 승계했 다.”(459쪽) 결혼과 가족을 제도라는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한국에서 이것이 근 대적인 제도가 되는 과정에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로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저자는 거의 같은 중요도로 내선결혼이 정책의 결과가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민지라는 현실에서 개개인이 내세우는 각양각색의 생활전략들은 결혼이라는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작동되었다. 저자 는 이 전략들이 정책 또는 이념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남김없이 보여주 고자 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단순한 사적 행위로 치 부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사적 행위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복합적인 논증 방식의 결론은 아마 다음의 구절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단, 내선결혼을 장려한다는 구호와 선전은 그 자체로 간접적·소극적 장려정책의 일환이었지만, 전시체제기에 들어서는 내선결혼에 대한 인식과 동화의 이념이 비 관적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허구적인 정치 선동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처럼 일 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에 대한 이념과 시책의 변화를 야기한 동력이야말로, 식 민당국의 의도와 통제에서 벗어난 내선결혼 행위자들의 선택과 그들의 생활 현실
이었다(451~452쪽).
꽤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논증 구도가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저
자가 취한 관점 덕분이다. 저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이라는 사적 행위가 한국병합 이전부터 현실에 존재했다는 점, 즉 동화정책에 선행하고 있었다는 점 을 논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어서 식민당국이 동화를 표방하는 이상,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정책으로서 내선결혼 법제의 운용이 필수적이었음을 강조한 다. 그러는 동시에 조선인이 ‘구별해야 하는 대상’이었음을 드러낸다. 저자에 따 르면 내선결혼과 관련된 정책과 이념은 이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 어야 했다. 따라서 법제와 선전 논리는 자연스럽게 모순될 수밖에 없었고, 이 모 순은 현실과 조우할 때 보다 분명히 가시화될 것이다. 이때의 현실이란 결혼 당 사자가 처한 환경, 즉 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 그리고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 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힘의 역전 등으로 정리된다. ‘동화와 구별’ 또는 ‘융화와 불화’라는 표현이 말해 주는 것처럼 내선결혼을 가리키는 이념, 정책, 현실이라 는 세 가지 퍼즐이 맞아떨어진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내선결혼을 민족과 계급 그리고 젠더라는 관점으로 엮고
자 했다. 최소한 세 개의 속성을 지닌 것을 다시 세 개의 관점으로 파악하려 한 시도 덕분에 내선결혼에 접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해졌다. 이는 기 존의 정책사가 취한 방법론과 확실히 구별되는 지점이면서 이 책이 지닌 가장 강력한 연구사적 의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동화’의 이념이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상세히 추적하면서 이것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방식의 의의와 한계를 매우 세밀히 분석하였다. 그리고 당시 조선과 일본에 존재하던 내선결혼의 사례를, 거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집하여 풀어 놓았다.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식민지
기 연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기 구분을 대체로 따른다. 이는 일제의 동화정책이 각각 ‘일시동인, 내선융화, 내선일체’ 등으로 그 내용과 표 현을 달리하는 시점을 분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다. 더불어 동화정 책이 생물학적·문화적(정신적)·법제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
다. 제1부는 「1910~1930년대 ‘내선결혼’ 법제의 형성 및 운용」이고, 제2부는 「1910~1930년대 내선결혼의 선전 및 실태」, 제3부는 「전시체제기 내선결혼 정책과 내선혼혈 문제」이다. 각각의 내용을 개략하겠다.
저자가 제1부를 통해 밝히려는 것은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동화와 구별이 
섞여 있는 법적 구조이다. 한국병합 이후, 일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인종적으 로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일시동인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민적과 호적으 로 두 민족을 구별했다. 이러한 혼선은 조선과 일본이 법역(法域)을 달리하기 때 문에 생긴 것이다. 조선에 호적제도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은 “병합 이후 조선인 과 일본인은 같은 일본 국적민이 된 결과 혼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역설적인 문 제”를(62쪽)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법적인 논리로 해소할 수 있어야 일시동 인의 이념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일제가 만든 내선결혼 법 제, 즉 1918년의 「공통법」, 1921년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혼인의 민적 절차에 관한 건」, 1923년 「조선호적령」 등이 모두 ‘일인일적’의 원칙을 벗어난 적이 없 음을 강조한다. 내선결혼의 ‘법제적 장벽’을 낮추면서 결혼 당사자 한쪽의 전적 은 허용하되 복본적(複本籍)을 제거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족 차별의 존재를 인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활용”(106쪽)된 것이지만, 당연히 논 리적으로 불안정한 제도였다. 저자는 법제 자체가 법에 관한 ‘탈법행위’를 무한 정 가능하게 했음을 논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한다면 법제의 허약함 자체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제2부에서는 3·1운동 이후, 새롭게 등장한 내선융화라는 이념과 내선결혼
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 장려론에서는 “‘사랑’이 핵심어가 되었”다(189쪽).동화정책이 “조선인의 마음을 얻어 민족적 저항을 방 지해야”(182쪽) 하는 통치전략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당시 내선융화가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랑을 통해 ‘화목한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했다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이런 선전과 반대되는 현실을 매우 실감나게 묘 사한다. 내선결혼은 정략적이고 경제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지기도 했고, 범죄의 결과이기도 했다. 또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처럼 내선융화에 반대하는 내선결혼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265쪽). 게다가 하층계급의 경제적 조 건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신하기도 했으며(269~273쪽), 단순한 변심이나 가 정불화도 상존했다(273~277쪽). 현지처나 간통처럼 일부일처제를 상징하는 현 상 역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원만한 가정을 방해하는 요소였다(277~287쪽). 민 족 간의 갈등도 사라지지 않았다(287~305쪽). 이처럼 저자는 이념 자체가 지니 고 있는 비현실성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내선결혼이 융화와 불화를 공 존하게 했다는 저자의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3부는 전시체제기에 등장한 내선일체라는 이념이 내선결혼 정책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동화에 대한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의 입장이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는 조 선총독부와 일본 정부가, 약간의 온도차가 있더라도 동화정책의 방향을 공유하 고 있었던 이전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현상을 분석하는 과 정에서 최소한 두 가지 부분을 중요시했다. 하나는 내선결혼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라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내선결혼을 동화의 ‘수단’이 아니라 동화의 ‘결과’로 인식하기 시작한 여러 정황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생물학적 동화’를 의미했던 혼혈에 대한 인식이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 정부는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부정하 면서도 조선인을 열등하게 파악했고, 일본(인)의 순수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 각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내무성은 일본 사회의 안정을 우선시하면서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내걸었는데, 저자가 이를 “조선(인)에 대한 방벽을 쌓은 것”(436쪽) 이라고 묘사한 것은 논증 과정의 백미다. ‘황민화’를 주장하면서 조선인을 효과 적으로 전쟁에 동원하려던 조선총독부가 시간이 지날수록 내선결혼 및 내선혼 혈에 대한 장려를 조선 통치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정황은, 이런 켜들이 쌓여 등장한 것이었다.
III . 평등의 미래–실질적 평등을 위한 역지사지
이상으로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었다. 서평이라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 만, 사실 소개글에 가깝다. 다소 주제넘은 듯하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데, 그 럼에도 독서의 길라잡이를 자처한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이 식민지 유 산을 청산해 온 한국의 경험을 매우 파격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시기 동화정책의 반작용으로 강화된 민족주의는 한국인은 부계혈연적·문화적 으로 동질적이어야 한다는 ‘동화=한국인화’의 이념을 창출했다”(459쪽)는 정리 를 보자. 또한 과거 일제가 활용했던 인종주의의 원리가 “현재 한국에서도 같은 민족 내부에서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458쪽)는 정리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조선총독부의 선전을 그대로 수용한 쌍생아”(460쪽)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평자 개인으로서는 아직 별다른 연구 성과가 없기 때문에 저자의 이러한 비판에 과감히 동조하기도 비판하기도 어려웠다는 점을 글의 말 미에서야 밝혀 둔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핑계와 상관없이, 실증과 관련해 서는 이 지면에서 비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다.
저자의 머리에는 이미 다음 연구의 구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
히 ‘한국의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이 지닌 인종주의적 폭력성을 자신의 연구를 통해 끄집어내고 있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다문화를 존중한다는 표어를 통해 한국인이 이주민에게 베푸는 ‘관용’은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이 대부 분이다. “관용은 평등의 확장이 아니라 평등의 대리보충으로 등장한다”는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의 지적처럼,  국가의 통치는 강요와 배제를 통해 이루어 질 뿐만 아니라 ‘평등’의 이름으로 교묘해졌다. “(이 책이) 진정한 다문화 공존을 모색하는 역지사지의 계기가 되”고, “일제시기의 경험이 동질성을 전제로 한 형 식적 평등이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 평등을 위한 역사적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포부는 과연 독자에게 어떻게 인식될까? “충 분히 다루지는 못했다”(460~461쪽)는 저자의 고백은 단순히 연구자 개인에게 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식민지 연구와 현재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분에 서 우리에게 여전히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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