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사림, 조선의 586 - 그들은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
유성운 (지은이)
이다미디어2021-06-28
책소개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는 과정과 집권 후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면서
586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짚고 있는 책.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조선이 처음부터 이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그랬던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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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한국의 586, 조선 사림의 귀환
프롤로그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나?
1장 성리학과 사림의 탄생
1519년 11월의 밤, 기묘사화의 서막 ┃ 조광조를 우두머리로 하라 ┃ 조선, 사림이 만든 나라 ┃ 훈구와 사림의 배경에 차이는 없다 ┃ 《소학》과 《해전사》, 이념의 전사를 만들다 ┃ 성리학의 이상 국가를 꿈꾼 사림들 ┃ 성종과 중종 때 완성된 성리학 질서 ┃ 계유정난은 사대부들에게 큰 충격 ┃ 성종 대 사림의 정계 진출 ┃ 중종시대에 사림의 복권 ┃ 사림의 총아 조광조의 등장 ┃ 기묘사림은 조선의 0.1% 특권층 ┃ ‘현량과’를 설치한 조광조의 목적 ┃ ‘현량과’를 둘러싼 훈구와 사림의 대립┃ 뜻이 같으면 천거, 뜻이 다르면 배척
2장 도덕주의 사림의 계보학
실력보다 족보가 더 중요하다! ┃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 성리학 계보를 집대성한 주희 ┃ 조선 최초 도통에 거론된 권근 ┃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권근 ┃ 태종이 정몽주 복권을 결정 ┃ 권근의 패배, 정몽주의 승리 ┃ 역사의 패자가 된 대한민국 건국 세력 ┃ 친일파로 전락한 인촌 김성수 ┃586 세력의 김원봉 영웅 만들기 ┃ 조선 창건을 막은 정몽주가 적통 ┃ 중종 12년 여름 ① - 김굉필의 등장 ┃ 중종 12년 여름 ② - 사림의 승리 ┃ 선조와 사림의 문묘 종사 공방 ┃ 광해군 때 5현의 문묘 종사 확정
3장 사림의 위선, 586의 내로남불
20년 유배된 유희춘의 인생 역전 ┃ 사림이 보여준 축재의 카르텔 ┃ 586이 받은 민주화운동의 보상 ┃ 인간의 도리를 말하며 노비는 늘렸다 ┃ 정약용도 공노비 해방을 비판 ┃ ‘열녀 만들기’에 나선 조선 사림 ┃ 임란 후 ‘열녀전’에 꽂힌 양반들┃ 안희정과 박원순의 차이는? ┃ 정치인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성역화 ┃ 미네르바와 김지하에게 죽음을 권한 세력 ┃ 서원과 향약으로 지방 권력 장악 ┃ 과전법 대신 유향소 챙긴 사림 ┃ 유향소 통해 향리 집단을 지배 ┃ 현대판 유향소를 추진하는 이유 ┃ 혈세에 빨대 꽂는 세력은 누구인가? ┃ 서원을 통해 중앙 정계를 좌우
4장 군자와 소인, 사림의 당동벌이
‘당동벌이’의 사림 정치 ┃ 자신은 ‘군자당’, 반대파는 ‘소인당’ ┃ 사림의 부활은 연산군의 ‘유산’ ┃ ‘박근혜 탄핵’과 586 세력의 부상 ┃ “군자와 소인은 함께하기 어렵다” ┃ 군자와 소인의 논쟁이 끼친 악영향 ┃ 남이 하면 ‘적폐’, 자기가 하면 ‘적법’ ┃ 가덕도 신공항의 내로남불 정책 ┃ 군자가 정치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
5장 이상주의자 조광조의 왕도
원·명 교체기와 고려 말의 혼란 ┃ 원나라에서 들어온 성리학 ┃ 조선 전기 집권층은 문무의 균형 ┃ 여진족 속고내를 놓고 벌어진 내분 ┃ 연산군이 ‘연은분리법’으로 은 생산 지시 ┃ 중종반정으로 막힌 은 생산 ┃ 세계 2위가 된 일본의 은 생산량 ┃ 해외 자원 개발에도 적폐 딱지 ┃ 명분 앞세운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
6장 무본억말 조선의 망국
안빈낙도를 노래한 양반의 위선 ┃ 사대부는 도덕, 권력에 부까지 장악 ┃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왜 가난할까 ┃ “백성이 상공업에 종사하면 간사해진다” ┃상업을 무시하고 농업만 바라본 사림 ┃ 국법으로 금지된 민간 무역 ┃ 중국에 팔 물건이 사신의 수레에 가득 ┃ 사라능단에 집착한 조선의 지배층 ┃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을 버틴 이유 ┃ 절대적 빈곤이 초래한 체념과 무기력 ┃ 도성 안의 집 매매와 전세를 모두 금지 ┃ 매매를 막아도 급등한 한양 집값 ┃ ‘인 서울’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약용 ┃ 18세기 한양의 인구는 20만 명 정도
7장 사림의 반청과 586의 반일
2차례 호란과 대기근을 겪은 17세기 ┃ ‘뜨거운 감자’ 명나라 모문룡 딜레마 ┃“중국에 죄 짓고, 백성들 원한을 샀노라” ┃ 명나라의 패배를 예상한 광해군 ┃ 후금에 대해 무시와 낙관론으로 일관 ┃ ‘부자 관계’가 된 명나라와 조선 ┃ 병자호란 전야 ① - 인조의 분노 ┃ 병자호란 전야 ② - 홍타이지의 격분 ┃ 10만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홍타이지 ┃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 ┃ ‘간신’ 최명길과 ‘충신’ 김상헌 ┃ ‘조선’의 망국보다 중요했던 ‘중화’의 보존 ┃ 송시열의 북벌과 586의 반일 ┃ 국제 관계를 국내 정치용으로 악용
에필로그 도덕을 외친 사림은 특권을 챙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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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유성운 (지은이)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마음을 바꾸어서 기후환경학을 공부했다.
정치부와 문화부를 거치며 〈중앙일보〉지면과 온라인에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歷)발상’, ‘역지사지’ 등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펴냈고,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을 우리말로 옮겼다. 접기
최근작 : <사림, 조선의 586>,<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걸그룹 경제학> … 총 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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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는가?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후조선’을 살고 있다는 체념어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와 학벌과 계급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 일본 앞에서는 너무나 당당하면서 중국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집값을 폭등시키고,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쌓아주기 바쁜 그들을 보면서
-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조선이 처음부터 이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다. 그랬던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사림이다.
<소학>의 가르침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원리주의자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를 성리학의 종주로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후 정계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실력이 아니라 절의를 기준으로 세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소인’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중화(中華)’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 망한 명나라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나라 전체를 이념화, 교조화시켰다.
조선 사림의 위선과 대한민국 586의 내로남불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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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림이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는 과정과 집권 후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여주면서 586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짚고 있다. 마치 둘로 쪼개진 거울을 하나로 맞추는 것 같은 유사한 흐름을 보면서 지금 우리 앞에 ‘후조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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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분포 7.6
시의적절한 내용과 분석 구매
인디멍멍 2021-08-22 공감 (1) 댓글 (0)
다 필요없고 책 끝자락 인용.
-적어도 사림은 중화가 아니라고 여긴 청나라나 일본으로 자녀들을 보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비판했던 서양의 문물은 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점에서 사림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일관성을 유지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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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보 2021-08-0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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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니 자랑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만주벌판을 내달리며 주변 강대국들을 벌벌 떨게 만든 호방하고 진취적인 성향의 고구려, 중국과 일본에까지 진출하며 우수한 자국 문화를 전한 백제, 삼국을 통일한 신라, 그 뒤를 이은 고려 등 각각의 나라마다 긍정적인 평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단 하나, 조선만은 예외이다. 조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적인 평가가 더 우세하다. 왜 그럴까? 아마 국민보다는 소수의 특권 계층만을 위한 나라, 조선시대에 발생한 치욕의 역사,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그들 때문이라는 시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에 대한 평가가 전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종, 성종, 정종 등의 시대는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의 순간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긍정적인 순간을 완전히 묻어버릴 정도의 어두운 시대가 조선에는 더욱 강하게 이어졌다. 그런 어둠의 시대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바로 사림이다. 그렇다면 사림은 악한 세력일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역사의 한 귀퉁이에 그 이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을 위해, 오직 자신들의 신념만을 귀히 여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해갔을 뿐이다.
이런 생각이 옳은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에 깔렸던 어둠에 그들이 한 축을 이루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발견했다고 말한 이가 있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기자로 활동한 유성운으로, 그는 <사림, 조선의 586>이라는 책에서 사림과 586세대를 비교하며 그들이 어떤 공통점을 지닌 집단인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한 사림과 586세대의 공통점을 보면 다른 것들처럼 독자의 반응도 극명하게 나누어지리라 생각한다. 마치 모세가 일으킨 홍해의 기적처럼 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주장하는 것도 다르니까 그건 그것대로 인정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다만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동의하는 사람대로,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대로 논리적으로 대처하기를 바란다. 절대 감정적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이후의 감정은 요새 표현으로 하자면 ‘할많하않’이다. 역사가 또한 이 땅을 지켜온 백성들이 때가 되면 평가할 테니까. 그래도 딱 한 가지만 말한다면 지금의 모습이 이어진다면 어느 순간 586세대를 사랑하는 이들보다는 절대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는 이들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예전에 그 어떤 집단을 향한 국민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런 일이 절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지금의 모습에 아파하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아파하기를 바란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건 한 개인에게 한정된 말이 아니니까 말이다.
- 접기
potato4 2021-07-04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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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 40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586세대라는 말은 단순히 1960년대생이 아니라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경우만을 지칭했던 말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세대차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생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자녀들이 지금의 2030세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아픔은 있다. 등에 빨대를 두개 꽂힌채 살아가는 세대라는 말과 함께 끼인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러가지로 시대의 혜택을 받기도 했겠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끼인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세대로도 그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현재 정치권을 쥐고 흔드는 586세대를 향해 일갈하고 있다. 하긴 60년대 초에 태어난 나조차도 현재 정치권의 기득권자들이 물러나 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저자의 말처럼 586의 나라가 되었다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불안하고 막연하기까지 하다. 마치 지금을 위해 그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무슨 보상심리에 싸여 눈에 뵈는 것없이 행동하는 저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저들의 모습속에서 조선시대 사림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오로지 저자만의 생각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무엇을 믿고 저리도 방자한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40대가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사림들과 현재의 정치인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백퍼센트 공감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게다. 그들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40대에게 간곡하게, 그야말로 진심을 다해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혀져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586을 조선사림의 귀환이라고 말하겠는가.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을 '후조선'이라고까지 말하겠는가. '실력보다 계보를 따지고, 집권자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윽박지르고,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계승’을 맹세하고, 중화주의에 쩔쩔매는 조선의 잔재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조선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는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는 이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배웠던 조선 사림의 뒷면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유성운이란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고 나온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기자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는 걸 보면 그가 느꼈을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어땠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시선과 그런 안타까움이 모여 이런 책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권은 어떤가? 조선 사림이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에 분노하고, 기묘사화라는 탄압을 통해 도덕적 명분을 획득하고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586은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에 분노하고, 5.18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명분을 얻고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HELL조선이라고 말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앞에서 좌절하고, 웬만한 것은 다 포기해야 하는 그들을 N포세대라고도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더니 거기에 내 집마련의 꿈까지 무너져버렸고, 이제는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말이다.
그런데도 두 눈 크게 뜨고 LH사태를 바라봐야 했고, 허울좋은 주택정책으로 인해 작은 집마저 살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을 쳐야 했다. 그래놓고는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충고만 지껄여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서글픈 단어가 노오~~~~~~력이란 말이다. 조선 초기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던 사림은 집권 후에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향유했고, 자신들의 불의와 영달에 대한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라고 변명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의 청문보고서 없는 임명 강행과 4대강보다 많은 가덕도신공항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이후 정의와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의 反面敎師 라는 옛말이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지금의 집권세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보여진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한 뒤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는 챙기지 못하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다.
국민들에게는 임대주택도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만들어주기 바쁜 그들이 조선의 무능한 양반 지배층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 등 재야 세력을 복권시키고 국가적 공인을 받기 위해 투쟁했던 사림은 정권을 잡은 뒤엔 자신들만 '정의로운 세력'이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은 '불의한 세력'으로 끌어내렸다. 586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사들을 '항일민족주의자'로 평가하고, 건국에 참여한 이들은 '친일친미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는 말에 자신있게 아니라고 말 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저들의 모습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들어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백성들이 문자를 알고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갖게 되면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오직 그 한가지 이유로 한글창제를 반대했으며 상업을 천한 것으로 매도했던 조선의 사대부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를 자신들만의 잔치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처연하다.
일전에 보았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섬에 들어와 만난 청년 창대에게 자신이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해 주던 모습.. "주자의 힘이 강하구나!" 그러면서 또 이런 말도 했었다. "나는 이 가슴에 서양학을 포함한 세상을 품었건만 이 나라는 이 한가슴조차 품지 못하는구나!" 상당히 강한 느낌을 전해주었던 말이다.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얼마나 편협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다보면 열받는 정치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말이 길어졌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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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2021-06-29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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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중종의 총애 아래 정계를 좌지우지하던 조광조는 귀양가는 동안에도 '이것은 중종의 뜻이 아닐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한 달 뒤 그는 기다리던 사면 대신 사약을 받았다. 조광조의 동지들도 칼 끝을 피하지 못했다. 김정, 김식 등은 섬으로 귀양을 갔고, 기묘사화의 밤을 목격했던 유나임은 귀양길에 도주하다가 자결했다. 그 밖에도 조광조와 연루된 이들에 대한 추적과 심판이 진행됐다. (-24-)
군주제의 지도자를 끌어와 민주공화정의 지도자와 같은 계보라고 내세우다니, 세계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억지스러운 시도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측이 루이14세나 나폴레옹을 자신들의 뿌리로 내세우며 집권의 정당성을 주장한다고 쳐보자.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나. (-61-)
"정치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공동체 사업의 전국ㅎ판 버전으로 보고 있다. 박시자은 마을공동체 975개 설립, 마을활동가 3,180명 양성을 목표로 2012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왔다. 선거법 위반 등이 적발된 적은 없지만 시의회 야당 측에서는 세금으로 좌파 운동가들을 위한 정치적 사업이라고 비판해왔다." (-128-)
오구라 기조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의 사대부는 도덕과 권력에 부(富)까지 거머쥐었다고 지적했는데 , 고려의 권문 세족에게 없는 도덕적 권력까지 업었으니 이들을 견제할 세력은 없었다. 이것은 정도전과 조준뿐이 아니다. 사림에서 도학의 계보로 만들어진 김종직, 정여창, 김굉필 등은 가옥 여러 채와 막대한 전답, 노비 수백 명을 두고 있었다. 이황만 해도 소유 노비가 367명이고 예안, 봉화, 영천, 의령, 풍산 등지에 걸쳐 논은 1,166마지기, 밭은 1,787 마지기라는 엄청난 규모 (약 36만 3,542평)였다. (-189-)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오랑캐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광해군보다 더욱 심각한 '배명'행위였다. 정권을 지탱해준 지지층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인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강화도에서 세자 일행이 모두 생포했다는 소식을 접한 인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오랑캐에게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결전을 독촉했던 김상헌은 동문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248-)
정치와 권력은 안에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예민하게 다루어야 하는 정치가 ,바른 정치를 추구해야 하는 정치인이, 도리어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 때가 있다. 정치 연륜이 깊어질수록 허언과 실수가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보면, 우리의 문제들을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고, 지금의 586 세대에 해당되는 조선시대의 사림의 사회적 기득권 확보와 사회적인 문제들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이 책의 취지는 저자처럼 묻따민인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안고 있는 내부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있으며, 그 아에 썩어 있는 문제들을 도려내야 하는 과정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림들이 이분법적으로 조선사회를 다루었던 것처럼,지금 민주당 정치와 정치인들 또한 이분법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그건 고려말 정몽주에서 조선시대 중종 때 조광조까지 이어졌던 사대부, 사림들이 해왔던 사회적인 문제들을 고찰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들이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원들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모습들이 지금 현재 전국의 마을공동체와 같은 형태로 재탈바꿈하고 있었다. 그건 그들이 추구해왔던 것들이 자신들의 어떤 문제들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그 안에 내포된 상황들은 우리에게 많은 문제점이 되었다. 지금 도덕과 정의를 강조하고 있는 부류들은 조선시대 사림들이 추구해왔던 도리와 명분을 추구하였던 이들과 일치하고 있으며며, 조선시대 척화파와 주화파의 갈등의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중화사상에 젖어 있었고,왜 와 청을 멀리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거머 쥐고,조선의 주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역사에서 중종반정이 일어났고,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에게 사약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180석을 얻은 거대 여다이 된 민주당이 당면한 과제들 ,그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과거 조선시대 사림의 몰락이 재현될 수 있음을 역사는 그 하나하나 따져보고 ,물어보고 있다.특히 내부의 문제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등한시한다면 과거와 같은 일이 되물이 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깐도리 2021-07-1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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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말아먹은 위선 특권층 사림의 현대판인 586에 대한 신랄한 비판
현 정권의 중심세력에는 소위 586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운동권 출신으로 데모하다
징역 산 걸 훈장으로 여기고 군대 등은 당연히 안 갔고 마치 자신들이 민주화투사이며 정의의 화신인 것처럼 굴면서 정치권에서 한 자리씩들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로 볼 때 그들은 내로남불이 주특기인 기득권 적폐세력에 지나지 않았고 각종 특권과 특혜를 누리며 반칙을 일삼으면서도 위선적인 행태를 선보여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정의롭고 깨끗하게 만들 것처럼 하다가 적나라한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골수분자들의 맹목적인 지지만 믿고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데 이 책에선 이들의 실체는 조선의 사림이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후조선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선의 사림도 출발은 주로 공신들인 훈구파에 맞선 개혁세력으로 비춰졌다. 중종반정 이후 조광조가 중종의 총애를 받으며 실세로 등장하면서 집권세력 못지 않은 세력으로 급성장하지만 4대 사화를 거치며 시련기를 잠시 겪은 후 선조시대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권력의 주체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방 중소지주 계급 출신으로 기득권층에 대항하는 청빈한 선비가 아닌 지방에서 상당한 권력을 누리던 상위 0.1%에 들어가는 특권층이 바로 사림의 실체였다. 그런 사림의 중심이었던 조광조는 추천에 의해 등용되는 현랑과를 설치하게 만드는데 이는 과거를 통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특권층들을 정계로 진출시키는 통로 구실을 했다. 그리고 축재에도 밝았고 서원과 향약을 통해 지방 권력을 장악하며 자신들만 군자이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은 소인으로 몰아붙이는 독선과 아집으로 허황된 이념과 사대에 목매면서 조선을 잘 말아먹는다.
이런 사림들의 모습과 586들의 모습을 비교하는데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닮았다. 위선과 내로남불로 무장해 비리나 범죄에 연루되어 자살한 자들을 우상화하고 겉으론 도덕과 정의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축재와 편법에 혈안이 되어 있고 편가르기와 무능 속에 정신승리에 집착하는 이들의 작태는 시대를 넘어서 사림들의 환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이들을 응징하려면 결국 선거로 처절한 심판을 할 수밖에 없는데 조선의 망국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들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지 않도록 정말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할 것 같다. 멀쩡한 원전을 폐쇄시키지 않나 집값,물가 폭등으로 나라를 망쳐 놓고도 입으로만 정의니 공정이니 타령하면서 맨날 남탓만 하는 자들과 그들에게 세뇌된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우치려면 이런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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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21-07-0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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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언제부터인가 386, 486, 586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세대들, 물론 이외에도 이들과 구분되어 불리는 젊은 층에 대한 이름들도 있지만 근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세대를 지칭하는, 이것만큼 가깝게 다가오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이란 나라에서 훈구파에 대항한 사림들과 오늘날의 한국의 실정을 비교해서 쓴 글이다.
조선의 사림들은 훈구파가 지지했던 정치에 반한 자신들만의 이상향과 정치적인 의견을 통해 새로운 조선을 이루고자 했다.
정치적으로 그들이 주도권을 잡고 집권 후에 조선의 판도가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대한 글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586이란 실세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지금의 현실 상황을 짚어나가는 비교는 많은 유사한 점들을 비친다.
사림인 그들은 처음에 고려 시대가 망한 원인의 한 부분인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고 그런 반면교사를 통해 자신들만의 정치 이상향을 이루려 했다.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주도하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 했지만 과연 조선 전체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수양대군의 쿠데타와 기묘사화를 통해 그들만의 독보적인 세력을 이루었던 것처럼 지금의 586세대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 이어서 5.18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정치세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유사함을 보인다.
이후 사림 그들만의 독선적인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한편 일본에 대한 다른 정책 관점들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 그렇다면 현시점에서의 대한민국 외교 정책들은 사림들이 행했던 정치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묻는다.
사림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사노공상에 대한 차별, 노비의 증가, 권력 유지에 힘을 쓴 점들은 오늘날 흙수저가 금수저로 성공하기 위한 발판은 현 실정에서는 힘들어간다는 부분, 계급 이동과 부에 대한 현실적인 갭은 점차 두터지고 젊은 세대들은 포기하는 것이 더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점과 비교해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조선의 사림들이 쥐고 있던 권력의 힘 발산이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비교를 통해 지금의 현실적인 대안 방안은 무엇인지를 고심하게 한 부분들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역사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개선점과 받아들일 점을 고루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비춰볼 때 저자가 쓴 글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준 책이다.
***** 출판사 도서 제공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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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조선의 사림을 통해 그들의 행적을 찾아보고 지금의 모습을 비춰 문제점을 생각하도록 글을 쓴 의도는 아주 좋았다.
조선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의 부정적인 예시를 통해 현대에서는 조선의 인식이 아주 안 좋았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선이 원래부터 초라하고 가난한 꽉 막힌 나라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조세 제도를 운용했고 과거제라는 당시로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로 인재를 선발했다는 것이다.
즉, 사다리가 보장이 되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조선의 부정적인 모습은 언제부터이고 누구로 인해 이렇게 됐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그 원인을 사림에서 찾았다. 조선의 사대부 전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그룹으로 그들만의 이념하나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난도질하고 어두운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의 행태를 지금 사회의 여당을 기준으로 하나하나 분석하고 대입하는 모습으로 기술하였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조선의 유향소는 유력양반들이 조직한 자치기구이다. 과거에 급제하고도 관직을 받지 못한 선비, 은퇴한 관료, 유력가문의 인사 등이 주축멤버였다. 조선 건국과 함께 자연스럽게 조직됐는데 처음에는 악질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 잡는다는 등 명분도 그럴 듯 했다. 하지만 곧 자기만의 리그를 만들면서 변질되었다. 지방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 정도의 성격을 가직 유향소가 점차 양반을 위한 이익 집단이자 통치기구로 변모한 것이다.
사림파는 고상한 이념을 들고 나오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굶주린 배고픈 세력이기도 했다. 돈과 밥이 샘솟는 권력으로부터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 폐지되었던 유향소의 부활을 내세웠다.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보호하고 향촌 사회에서의 신분제적 우위를 확고히 하려면 유향소가 필요했다. 유향소가 있으면 설령 중앙에서 관직을 잃고 권력을 잃더라도 지역에 구축한 성리학 월드에서 평생 존경받으며 명예로운 여생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122~124쪽
이 부분을 현대에서 여당이 내세운 정책과 연관지어 서울시에서 하는 마을공동체 사업, 도시재생 사업 등 여러 가지를 추진한다고 서술한 뒤 주민 자치를 교육할 필요가 있는지, 그런 자리에 참여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있는지. 정규과정에서는 도대체 뭉서을 배우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그리고 풀뿌리 자치 활성화를 위해 읍, 면, 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해 현대판 유향소, 즉,전형적인 유향소가 누렸던 특권에 가깝다고 한다.
이 책은 현대의 정책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을,, 이해가 안되는 상황을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드려고 하는 큰 그림으로 진행하는데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그 정책들을 모아 조선 후기 사림그룹을 586으로 잠정 결론지어 정권을 다시 잡으려는 모습과 유지하는 패악의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기에는 사림의 여러 문제들을 지금 여당의 문제점을 연결짓는데 급급하다보니 설익은 정책이나 폐기된 정책, 아직 과정중인 정책 등에 마구 잣대를 들이대고 칼날을 들이대고 있어 의문점이 많이 들었다.
무조건적인 까기식인가? 조심스러운 점은 개인적으로 역사의 깊은 의미와 사실에 대한 여러 객관적인 사료의 부족으로 저자가 말한 역사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식밖에 대지 않아 사림의 여러 시각이 담긴 내용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는 출발점부터 틀렸다. 우리가 학교의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사림은 대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이들은 기득권 타파를 위한 개혁에 앞장섰고 이 때문에 나라의 온갖 이익을 착취하던 훈구파에게 억울하게 탄압받았다는 것이다.
사림이 본격적으로 대두한 성종시대에서 그들은 훈구파의 비리를 파헤치고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삼사로 등장하여 신선한 바람을 이끈 것은 맞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서 안방정치, 인척, 세도정치의 온갖 비리의 온상은 사림이 이끈 것이다.
훈구파의 대담함에서 나아가 무자비한 자만심과 오만함도 문제였지만 그들은 처음에 문무를 겸비한 조선을 건국하고 부국강병의 기초를 만들었던 세력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변질된 것은 사림이고 훈구파이고 모든 권력을 누리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문제이지 않던가.
한쪽의 문제는 다른 한쪽의 긍정을 부정하는데서 시작한다. 그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병폐는 누구 한쪽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림의 역사와 왜 그들이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얻기 위해 선택한 도서에서 약간의 쓴맛을 느끼긴 했지만 나와 다른 시각의 시선으로 쓴 책을 고른 맛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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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아 2021-06-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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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사림은 본디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정책적으로 키운 데서 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조선 자체가 성리학 원리에 기반한 국가였으며, 여말에 원에서 본격적으로 이 체계를 배운 유학자들이 대거 확산하며 종래의 불교 중심 국가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성리학자들이 갓 활동 범위를 넓혀갈 무렵 역성 혁명이 일어났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만 본격적으로 선비를 우대하겠다는 새 나라의 비전 표방이 있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기로도 훈구는 적폐, 사림은 도덕적이고 청렴함, 뭐 이런 이분법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사림이 집권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세뇌 작업(의 잔재)"라고 이를 평가절하합니다.
중종실록을 보면 "<소학>은 기묘사림이 숭상했던 것이라 부형들이 자제를 가르치고 훈계함에 있어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언급할까 걱정했습니다."라는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p31). 이는 당시 아직도 세를 크게 떨치던 훈구 세력이 사림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인데, 세상은 과연 그리 변하여 사림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는 유학적 도그마를 바탕으로 군주의 행보를 강력 견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은 게 말하자면 <소학> 등의 유교 경전이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586이 1980년대에 즐겨 읽던 <해전사>에 비기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소학>은 p91에 이황의 입을 빌려 다시 등장합니다.
임사홍은 조선 내내 간신으로 낙인 찍혔고 저희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만화 등에도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동시대인이었던 유자광도 그러했고, 좀 뒤인 중종 대로 오면 남곤, 심정 등이 그런 포지션이죠. 뒤의 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부정적인 인상입니다만 드라마 <왕과 비>에서 임혁 씨가 좋은 연기를 보여서인지 임사홍은 최근 들어 다소 평가가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pp.34~35에서 흙비, 화재 등 천재, 인재를 두고 사실 그대로를 지적하는 임사홍과 그를 탄핵하는 사림의 태도를 대비시키며 "지금 눈으로는 임사홍이 훨씬 정상"이라 지적합니다. 이런 사림의 태도는 시대를 2400년 역행하여 고대 중국 주나라의 질서로 회귀하려는 일종의 퇴행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계유정난 당시 사림이 받은 충격에 대해 언급합니다. (한참 전의)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던 것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전두환의 12.12나 5.18에 대해 당시 학생들이 느꼈던 충격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어 20년 전인 5.16에 대해서는 초기 오히려 장준하 선생처럼 환영을 하던 움직임도 있었던 것과 확실하게 대비되죠.
p41에서는 저자가 신계륜씨가 정형근씨를 국회에서 보고 "주먹이 쥐어졌다"고 한 말을, 신숙주에 대해 사림이 당시 느꼈을 감정과 비교합니다. 이어, 정말 흥미롭게도 YS가 구 민정계, 혹은 상도동계만으로 국정을 이끌 수 없다고 여겨 김문수, 손학규, 이재오 등 이질적인 민주화운동 경력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정치에 참여시켰던 행적을 성종의 사림 스카웃에 비견합니다. 이 부분 읽으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 세 분(적어도 두 분)은 이후 전 소속 진영과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말입니다.
p53에는 앞서 잠시 언급한 남곤이 등장하여 "우리 나라는 사대뿐 아니라 교린에 있어서도 사화(詞華)가 필요하니 문장 쓰는 능력을 결코 홀대할 수 없다"고 한 말이 인용됩니다. 실제로 앞선 시대의 신숙주도 대(對) 일본 외교를 중시했고 훈구파는 이처럼 국정 운영의 실무 능력 면에서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는 그 앞선 고려 말처럼 왜구의 극심한 병폐가 덜했고 이런 국면이 훈구파의 집권기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죠. 이후 인종~명종 대는 훈구 집권기라기보다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여튼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이른바 "사장파와 도학파의 대립"은 이런 구체적인 역사 기록을 보며 의미가 깊어지기도 하네요.
정치권에서는 종종 적통의 논란이 일곤 하는데 사실 이는 적절치 못합니다. 현재의 유권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선택되면 충분하지 과거사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다른 조건이 같다면 기왕이면 족보 좋은 인재를 선택하겠지만 말입니다. 권근이 학문적인 면모로도 포은과 야은에 못 할 바 없었지만, 도학의 적통을 논함에 있어 배척되고, 끝까지 조선 조정을 외면한 저 두 분이 이후 사림에 의해 내내 숭앙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다음이 포인트인데, 건국 세력이 경멸되고 그 반대 진영이 고평가되는 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합니다(저자의 견해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무관하게 말이죠).
"조선에 있어서는 사습(士習)이 비루하여 나아갈 바를 몰랐는데 김굉필이 젊어서 김종직에게 수업하여 문호를 조금 알고 스스로 송유(宋儒)의 끼친 실마리를 얻어서 규모를 극진히 하고 그 동정과 시위가 바로 정자, 주자와 같았으니..." 김굉필의 문묘 배향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크게 일었을 때 그를 옹호하는 논변 중 일부입니다. 사실 한반도 성리학의 대종은 안향에서 찾을 뿐이며 이분은 원(元)에서 학문한 분인데도 구태여 더 멀리 정주(程朱)의 송(宋)을 거론하는 걸 보면... 여튼 그 앞에는 "멀리 정몽주의 계통을 잇고 염락(濂洛)의 연원을 찾았다"며 김굉필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는 김굉필을 두고 그리 경지가 높지는 못했으나 오로지 제자들을 잘 길러 학맥을 이은 공 하나로 기묘사림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다며 비판합니다. "정의를 독점하고 배타성이 남달랐던(p90)" 사림은 결국 김굉필의 문묘 배향은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썩어빠진 훈구 세력을 몰아내고 세력을 잡은 사림은 그럼 청렴하게 살았을까? 저자는 선조 연간 감사를 지냈던 유희춘을 거론하며, 심지어 첩의 집도 영암 군수와 전라 수사가 맡아 지어 줘야 했을 만큼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김해에 거주하던 박천이라는 인물이 도망한 왜비(倭婢)를 반환할 것을 왜의 사자에 요구하자 "우리는 본래 사천(私賤)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태종 연간의 일화가 나옵니다. 사실 사사로이 노비를 부린 건 고려 말 권문세족 발호 후부터의 폐습이며 딱히 이걸 두고 사림을 욕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여튼 청신한 기풍을 내세웠다는 사림 주도의 사회에서 오히려 노비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건 문제입니다.
가장 문제인 게, 사림은 이른바 "열녀"라는 왜곡된 여성상을 만들어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노예적 삶을 동시대 여성에게 강요하고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근래 여성계 주도로 "고려 때만 해도 자녀 균분 상속 등 여성의 지위가 그리 낮지 않았으나 조선 들어 사림의 교조적 사회 개조 움직임이 크게 일며 남존여비의 사회 풍조가 지배했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하는 것과도 맥이 통합니다. ㅎㅎ
향약을 통해 사림들은 향촌 사회를 확고히 장악했는데 이른바 惡籍을 통해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점도 특이합니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말을 빌려 "모두가 평등하지만 조금 더 평등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군요. 오웰의 저 문장은 참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입니다. 여튼 "당동벌이"의 배타성은 조선을 대외적이건 대내적이건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로 만들었고 국력은 날로 침체하여 결국 중국에 사대하고 왜에 뒤떨어지는 희망 없는 실패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게 사실입니다.
사림이 오랜 기간 동안 소인배로 낙인 찍은 탓에 수백 년 후의 우리들도 그리 알고 있는 남곤(공교롭게도 북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에도 남곤 심정이가 소인배라는 말이 나옵니다)은,
"인심이 순박하지 못하여 교사한 마음이 날로 늘어나 공도로 과거를 설치하였는데도 폐단이 생겼는데 하물며 천거의 공정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p147)"
현량과의 실시를 반대하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이런 주장을 하면 20대 청년들이 아마 열화와 같이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사실 성리학이 태동했던 시기인 송대에도 道學이 오래 세력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저자는 주장하기를 송을 정복한 몽골의 원나라가 상업과 국제무역을 활성화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과 자본을 발전시켰다(그래서 성리학이 설 땅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남송도 강남을 적극 개발하여 물산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상업의 번성함은 비할 바가 없어서 금나라의 그 거센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경제력 하나로 버텼던 것입니다.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완전히 자리한 국가는 따지고 보면 조선이 유일한 셈입니다. 덕천 막부도 시늉만 하다 결국관두고 중상주의로 갔으니 말이죠. 물론 사농공상의 확고한 신분질서와 성리학 체계를 바로 동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중종 때 속고내(束古乃)라는 여진족 추장의 처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임꺽정>에 중요한, 아주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이장곤이 선제적 정벌의 찬성론자였고, 이에 반대하던 게 조광조 등 기유사림이었습니다. 결론은 조광조 등의 의견을 수용하여 여진족에게 강경책을 쓰지 않았고(이전 세종~세조 연간과는 반대로), 그 결과 백 년 뒤 여진족은 엄청난 세력을 이뤄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는 겁니다. 이 사실은 근래 재주목되어 비단 이 책 저자분뿐 아니라 요즘 신진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p173에 길게 인용된 조광조의 변론은 매우 유려하고 (많이 배운 사람 특유의) 품위를 풍깁니다. 그 담은 내용이 비록 국가 시책의 패착을 부른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사림은 결과적으로 우민화 정책을 폈다고 봐도 되는데 책 p192에는 "백성이 상공업에 종사하면 간사해진다"는 말도 나옵니다. 반면 중국은 오천 년 역사 동안 말만 사농공상이지 상인 세력이 배후에서 힘을 휘두르지 않은 역사가 없습니다. 원도 교초의 남발 때문에 유통 질서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조화한 유림은 대개 상인 세력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국 이는 민생의 피폐로 귀결합니다. 저자는 586 특유의 반기업정서를 이와 연관 짓는 듯합니다.
저자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대해 "전장 최전선에서 직접 전쟁을 겪어 본 그였기에 남다른 현실 감각으로 힘의 향방을 판단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또 병자호란 당시의 한심한 혼란상을 길게 설명합니다. 척화파 주화파 사이의 대립을 마치 구질서 집착 - 신질서 적응 사이의 대립으로 치환시켜 친미는 죽을 길이고 새로 떠오르는 중국과 친해야 그게 실용주의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대략 십 년 전쯤에 있었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역사 기사가 인용되며 이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책을 고른 보람이 충분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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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2021-07-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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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조선 왕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유교적 가치관, 성리학을 추구하는 이념적 지배논리, 상업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권익에만 매몰돼, 민생과 현실을 외면하며 나라를 걱정하기보단 자신의 보신에만 몰입했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며, 조선 후기로 오면서 일제에 강제 편입되는 과정에서는 씁쓸한 감정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의 현실은 어떠한지,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화의 주체로 등장했지만 모든 사회문제와 각종 부정, 비리, 시대변화에 부적응 하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민낯과 내로남불을 실천하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잊은 586 세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과 평가, 조선시대에도 개혁의 주체로 등장했고 결국에는 고인물이 되었던 사림 세력들의 존재와 사회적 영향력, 사림과 586 세대의 비교라는 점에서 이 책은 조금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점에 대한 언급, 세대갈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책의 저자는 제법 괜찮은 비교와 비유를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 해당 세대를 일반화 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의 정치행태나 대한민국의 기득권, 중산층으로 자리 잡은 세대의 모습에서 상대적인 약자로 볼 수 있는 젊은 이들의 상실감, 그 이전 세대들의 질책 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들 만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각종 부정과 비리를 종용하면서도 죄의식조차 없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책에서도 사림과 586 세대를 비교한 공통점 5가지를 강조하며 적절히 비교하고 있다. 실력보다는 족보를 중시한다는 점, 도덕과 명분을 강조한 위선과 내로남불의 실천, 사림의 반청과 586의 반일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점,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제거하여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조차 꺽었다는 점, 이념에 매달려 민생과 현실을 외면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현재 한국사회에도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방관하는 자세, 편승하며 기회 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행태, 국가와 민족, 국민의 개념보다는 나 자신의 안위와 보신주의에만 매몰되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 집단 이기주의가 부른 웃지 못할 촌극과 이로 인해 급변하는 시대변화의 가치나 정신을 애써 외면하거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능력을 말살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항상 권력은 대체될 수 있고 누구나 오래되면 고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엇이 그들을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찬 세력, 기득권화를 이루게 했는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성찰의 자세와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위한 교훈적 메시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읽는 관점에서 내용 자체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불편해서 강한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민생과 현실의 목소리를 외면한 왕조의 사례나 다양한 세계사적 증거로 바라볼 때, 그들의 유효기간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사림과 586에 대한 비교 분석, 이를 통해 알아보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구조적 문제, 사회문제 등이 무엇인지 판단해 보자. 또한 역사적 사실과 사례를 통해 배우면서 조선왕조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이해하며 판단해 본다면 책이 주는 유의미한 가치를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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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kidol 2021-07-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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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조선의 586
조선의 사림은 여말선초 무렵 조선의 건국에 반대해 지방으로 낙향한 지식인들의 후예이다. 중소 지주 출신인 이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지역에서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고,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 성리학에 대한 강력한 실천 의지를 가지고 '소학'을 중시했다. 그런데 당시 훈구 세력과 충동해 네 차례 사화를 입으며 타겻을 입었지만 선조 때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조선을 세운 세력도, 훈구 세력도, 사림 세력도 모두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다. 하지만 조선 초기의 지도층이 성리학을 국가 통치에 유용한 도구로 생각했다면, 사림은 성리학이 사회 밑바닥까지 스며들어 모든 곳에서 적용되는 절대적 이념으로 생각했다.
조선의 사림은 1519년 11월의 밤, 기묘사화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중종 14년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는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들을 숙청하게 된다. 당시 중종의 오른팔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조광조와 그 세력이 하룻밤에 몰락했다. 조광조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은 사림계의 기대주였다. 20대에 진사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할 때부터 학문 수준이 높다는 평이 자자했다. 조광조를 가르친 김굉필은 우모사화의 시발점이 된 김종직의 제자였다. 조광조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중종 역시 조광조를 신뢰했다. 사림은 조광조를 중심으로 결집했고 훗날 기묘사화로 숙청되기에 이들을 기묘사림이라고 부르게 된다. 조광조는 현량과를 설치했는데 이는 기존 인재 등용 방식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가묘사림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정책이다. 사림이 장악해야 할 거점으로 삼은 것은 삼사였다. 성리학적 기풍을 진작하고 새로운 정치를 열고자 했던 성종은 삼사를 적극 후원했고 사림은 삼사를 통해 세력을 확장했다. 현량과는 추천제로 무엇오바도 과정과 결과의 불공정 가능성이 지적됐다. 그럼에도 중종은 조광조의 손을 들어줬고 현량과가 실시됐다. 현량과에 대한 세간에서 지적했던 불공정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현량과에 합격한 28명 중 절반이 당시 청요직이라 불린 대간이나 홍문관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뜻이 같으면 천거를 하고 뜻이 다르면 배척을 하게 된다.
당시 조선은 토지 문제로 세워진 나리이다.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에 반발하며 이를 바로잡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조선 공신들이 특권을 향유하면서 관료에게 나누어줄 토지가 바닥난다. 유희춘이라는 인물은 조선 중종부터 선조 때의 인물이다. 문관에 급제한 관료지만 을사사화에 연류돼 20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선대부터 이어온 토지와 노비를 빼앗기고 가족들은 친척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게 된다. 사림파가 복권되면서 유희춘은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에 오르지 이재에 집착한다. 한번에 집을 4채나 짔는데 모든 것을 공공 수단으로 해결해 지역 수령과 군인들, 승려까지 동원해 대규모 주택 공사에 들어갔다. 유희춘의 첩과 누이까지 집을 지었고 남의 녹패를 가져다가 쌀을 수령하는 꼼수까지 부린다. 이런 부도덕에도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었던 것은 사림파 출신 중진이었기 때문이다. 권세가 막강해지자 지난날의 보상을 받기 위해 엄청난 부를 축재하고 국고를 횡령하는 일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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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21-07-0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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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저의 『사림, 조선의 586』 을 읽고
지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대권 후보자를 향한 적임자가 되기 위한 자기 합리화 주장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선택과 심판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란 것을 후보자들은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와 현대사의 대한민국에서도 한때는 불가능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주인인 국민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그런 시대가...
‘누가 대한민국을 ‘후조선’으로 만들었는가?’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저자는 현 집권층에 대한 경고와 분노를 토로한다.
명분과 도덕을 앞세워 집권했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후조선’같이 신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부와 학벌과 계급이 세습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앞에서는 너무나 당당하면서 중국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집값을 폭등시키고, 가붕개로 만족하고 살자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화려한 스펙을 쌓아주기 위한 모습들에서 조선 왕조시대 무능한 양반 지배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고려 권문세족들의 부패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차별화했지만, 조선을 성리학 세계로 바꿔놓은 뒤에는 자신들만의 특권과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오직 중화주의에 빠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상업을 죄악시하며 나라 전체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인을 천시해 국방을 약화시키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노비는 늘리고, 자신들의 특권을 대대로 보장해줄 ‘성스러운’ 족보 만들기에 골몰했다.
조선 초기는 신분제도 느슨했고, 여성의 재혼도 인정했으며, 국방력을 중시했던 역동적인 시대였지만 조선을 바꿔놓은 것은 바로 사림이었다.
《소학》의 가르침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원리주의자 사림 세력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정몽주를 성리학의 종주로 만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후 정계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실력이 아니라 절의를 기준으로 세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소인’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중화(中華)’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 망한 명나라의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나라 전체를 이념화, 교조화 시켰다.
현실의 난제들을 생각하다보면 역사의 그때를 떠올리며 혜안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과거에서 지금의 문제를 풀어나갈 지혜를 바라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 다시금 크게 눈을 뜰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림, 조선의 586”이 되어서 책에 대한 몰입도가 더 커졌다.
이 책에서는 과거 역사의 그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그래서 과연 그네들이 나라를 어떻게 바꿨나를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도와준다.
더불어 이와 같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백성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 또 힘들어 했는가에 대한 것에 마음을 쓰면서 생각하고 또 지금의 경우와는 어떻게 다르고 또 무엇을 반영해볼 수 있는가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 특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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