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친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조사해본다.
이 것도 내 생각입니다. 다른 페친 분들과 생각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언제 또 바뀔지도 모릅니다.
나는 과거 어느 대통령 집권때에도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불만족한 건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떤 대통령은 이 면에서는 괜찮았지만 저 면에서 보면 정말 아니올시다였습니다. 나도 단체의 장을 해 보니 같이 하는 분들이 같이 힘써 잘해주어야 힘도 나고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부흥하게 됩니다. 나 혼자 힘을 써 봐야 힘만들지 제대로 일도 안되고 모든게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단체 일도 힘이 드는데
나랏 일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또 어떤 친구는 자기가 장이 되어야 그 단체가 잘 된다고 해서 시켜 놓으면 제 이익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그 장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잡으면 그 수하들이 그들이 취한 자리에 얼마나 취하게 될까 그림이 뻔 합니다.
그런데 이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는 방법은 적절하게 장을 바꿔주면 됩니다. 그 장 자리를 다른 진영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바꿔주면 독재도, 무능한 결점도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얼 기대할까요. 단 시간 내에 모든 문제들의 해소를 기대합니다. 가능할까요? 역사를 보면 이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기에 문제들을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점진적 해소로 권력을 5년마다라도 바꿔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권의 후보뿐 아니라 야권의 후보에게도 관심을 가져 보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이 정말 대통령 후보인가 자꾸 의심이 드는데 이는 나 만의 생각이겠지요?
대통령 후보면 대통령 후보다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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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媤家)의 좋은 풍습을 결혼 전에 얘기를 해 주었다면 지금 보다는 며느리가 더 이해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친정에서의 삶과 자신의 힘듦, 그리고 꼬여있는 마음가짐으로는 '거부'밖에 답이 없겠지요. 친척들의 오고 감이 반가울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서러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의 해결을 '거부'로만 한다면 그게 요즘 삶의 형태라면 내가 용납하기 싫어도 받아야겠지요. 그러나 내 나이, 내 삶을 통하면 나는 시끌벅절한 명절이 더 좋습니다. 나는 차례대신 명절 예배를 준비하고 아내와 며느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들들은 상을 펴고 예배드릴 준비와 식사를 같이 하는 장소를 정결하게 하는 겁니다. 식사 후에는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즐기고, 평소에는 거리가 있어 잘 모르는 친척, 조카들의 안부를 알게 되는 거지요. 문제는 신경을 건드리는 말들이 오갈 때 대부분 발생하는데 이러한 말들을 100%없애기는 불가능하고 하지 않으려고 애 써야 합니다.
나는 명절이 커가는 아이들에게나 큰 어른들에게 사회성을 성장시켜주는 중요한 공부의 場이 될 것으로 봅니다. 물론 '거부'가 답이 아니듯이 무조건 '예스'만도 답은 안되겠지요. 식구들이 모여 그 가족만의 슬기로운 명절의 삶을 만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참고로 나는 어머니 한 분만 계십니다. 내 여동생들은 자기들 식구들이 있어 명절을 전 후해서 어머니를 방문하고 남동생네는 절대 안 옵니다. 아마도 뭔가 대단히 마음 상한 일이 있는거 같은데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아들네들은 미국에 직장이 있어서 모두 미국에 살기에 명절에는 어머니만 모시고 명절 예배만 드립니다. 나도 몇 년 전에는 어머니, 아들들 내외, 동생네들 모두 시끌벅절한 명절을 지냈었지만 세월이 가니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요양병원에 계신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나 이렇게만 남게 되네요. 아들네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카톡으로 영상전화를 통해 소식을 잘 보내지만 어찌 만나는 것만 하나요.
나는 젊은 분들에게 감히 권합니다. 세월은 지나갑니다. 그 사이에 '시끌벅절'을 즐기세요. 그 것도 재미입니다.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시끌벅절을 즐기고 싶어도 그 때에는 없습니다. 몸이 힘듦은 쉬면 되지만 마음의 힘듦은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어려움을 삶의 일부로 즐기시면서 건강하고 기쁘고 좋은 삶이 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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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문학을 공부하며 살아 왔다. 집이 가난하여 친구들 보다 대학에 일찍들어 가게 되었다. 2지망으로 쓴 학과가 천문기상학과였다. 주변의 시선이 '아니 하고 많은 학과 중에 천문기상학과?' 였다. '집이 가난하면 돈을 벌 수 있는 학과로 가야지'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학과를 옮기고 싶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입시 공부를 하기가 두려웠다. 원래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물리학과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며 정말 머리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천문기상학과에 들어 온 것이 어쩌면 운이 좋았으리라 생각했고, 평소 이공계 수학을 조금 잘 했기에 천문학 과목들을 따라 가는데 지장이 없었다.
나하고 같이 천문학 공부했던 친구들 모두 대학교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솔직히 그 친구들이 천문학 전반을 보는 눈이 있음을 나는 학부 때 부터 부러웠다.
나도 남들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어찌 어찌하여 유학을 가게 되었고 운좋게 박사학위도 하였다. 역시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정말 돈 하고 연결 안되는 유일한 학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위가 끝난 뒤 거의 바로 대학에 갈수 있었고 35년간을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다.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사범대에 재직하였기에 천문학 연구를 뒤로 하고 과학교육, 천문교육, 과학영재교육 연구에 뛰어 들었으나 어려웠다. 그래도 제자들과 많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말 고맙다.
은퇴 후에 나는 역사천문 연구를 즐기게 되었고 다시 한국천문학회, 한국지구과학회에 구두 발표를 매 학기 학술대회 때마다 계속하고 있고 연구한 것들을 저서로 집필하고 있고, 강의도 하고 있다. 이제 공부를 정녕 즐기고 있다.
오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안 알아 주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삶이 풍족한 삶 이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동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과 상대하면서 막아 보려고 애도 써 봤고 그들의 공격을 당해도 보았다. 그러나 세상은 공정의 편은 아니었다. 늘 그래 왔듯이... 그들이 그렇게 살아도 나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 살지는 않는 것 같다.
왜 조선의 뜻 있는 선비들이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는지 이해가 된다.
현재의 상태에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봅시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가 제일 잘 하는 것에 정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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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례 성적 좋은 학생들이 칭찬 많이 받고 실수들을 눈 감아 주니 지가 하는 행동은 모두 용납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오는 듯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더구나 남 핑계를 늘상 달고 다닌다. 그러니 이런 학생이 남을 지도하는 위치가 되면 자기를 위해 남들을 이용하기만 하고 주변을 돌보는 행위도 결국 지를 위한 것이다. 요즘 이런 자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차라리 조금 모자라지만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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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판단하기 어려워 이 글을 쓴다. 정경심 교수에게 내린 판사의 판결 때문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사를 통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무죄임을 변호한다. 그런데 가끔 판결을 보면 이러한 변호가 죄를 짓고 반성을 안한다는 괘심죄를 더하여 판결한다. 마치 검사가 보기에, 판사가 보기에 피고인 너는 죄가 있어 그 죄를 인정해 변호하지 말고 변호하면 그건 변호가 아니야 죄에 대해 반성이 없는거지. 이는 피고인을 이미 죄인으로 정하고 네 태도를 봐서 거기서 減해 주든지 더 加하든지 하겠다는 것과 같다. 재판은 왜 하나?
죄를 지었어도 그렇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핑게라도 있지 않나... 핑게를 대고 이리 저리 변호를 하면 반성이 없어 죄질이 나빠 너는 더 감옥에 있어야 돼. 이거 아닌가요? 억울하게 있지도 않은 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것은 뭐라 이름 붙여야 하는지 모르지만 폭력이요 협박으로 보인다.
변호사가 정말 필요한가?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변호사는 큰 죄를 짓더라도 이해가 안 되는 형량으로 판결하기도 하고 힘 없고 백 없고 혹은 정치색이 다른 변호사가 변호하면 무시하고 판결하는 듯 보인다.
내가 법에 대해 뭐 알랴마는 이렇다 저렇다 궁시렁이라도 해야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릴 것 같다. 아직도 판단 無, 마음은 답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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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는 에비가 그후 50년 뒤에는 딸래미가 뭐 이런 똑같은 짓을 해... 정신차리자 나라도... 늙어 가지만 똑바로 기억하고 기억하자. 그리고 자손들에게 전해야 한다. 벗으로 대하지 말고 겉과 속이 다른 속물로 대하라고...
20년 지기 친구도 지 이익을 위해 배신을 때리고 제 이익을 위해서 친구인척 하다 필요가 없어지면 모른 척하는 속물도 있는데... 국가는 더 하겠지요. 그걸 그들은 외교, 정치라고 부르겠지요.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순간 이익이 오는 듯 하지만 관계가 끊어 지고 죽은거나 같습니다. 생명이 없음은 과거는 물론 현재도 미래도 없는 모든게 무시된 상태겠지요.
어떻게 하면 생명이 있게 되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생명의 시작은 우주가 시작된 후에 거의 100억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어느 순간에 생명이 시작되었겠지만 그 시작을 위해 카오스 상태에서 뭔가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런 자연 현상에서 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네요. 세계도, 우리나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항상 카오스 상태인데 이런 상태에서는 쓸만한 정보와 쓸데없는 정보가 난무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쓸만한 정보로 인해 갑자기 새롬이 창발하지요. 우리는 쓸만한 정보로 모든 사람들이 공유되기 시작하기를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해 초조하지 말고 노력하면 될 걸로 보입니다. 우선 우리는 쓸만한 정보에 신경을 써 봅시다.
세상은 쓸데없는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많이 모아지고 쓸모 있는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은 외면하지요. 쓸데없는 정보는 대개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요. 그런데 그들은 결국 그 때문에 역사에서 오명으로 남게 됩니다. 쓸모있는 정보를 모으는 바로 그 사람들은 결국 대다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 정보를 공유하며 새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역사에서는 유명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분하고 화도 나지만 기억하고 쓸모있는 정보를 만들어 냅시다. 그리고 이 정보들 더욱 풍성히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시간은 창발을 발현합니다. 그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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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1년 8월31일이 되면 은퇴 후 만 2년이 된다. 지난 2년동안 시헌력과 관련된 천문역법을 공부해 왔다. 그 동안은 태양의 운행과 관련된 내용들만 정리하여 왔는데 몇 달 전부터 달의 운행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며 여기에 그림 한 장을 올려 본다.
중국의 천문역법책인 '숭정역서'의 월리역지에 기록되어 있는 달의 운행모델인 본륜-차륜 모델로 달이 한 달간 지나간 궤도를 그려보았다. 원지점에서 출발하였고, 태양도 원지점에서 시작하였다. 현재는 삭 후 8일째 되는 위치이고 달의 위상은 상현이다. 붉은 점들이 계산된 달의 실제 위치이고, 달 궤도 바깥에 그려진 주황색 곡선위 검은 점이 계산된 태양의 실제 위치가 된다.
숭정역서, 역상고성, 역상고성 후편을 통하여 태양의 운행 모델들을 공부해 왔었다. 달의 운행 모델도 프톨레마이어스, 코페르니쿠스, 티코브라헤, 케플러를 거치며 발전하고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모든모델들이 숭정역서, 역상고성, 역상고성 후편에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의 천문학자인 허원의 세초류휘에 남병길의 시헌기요, 남병철의 추보속해에도 중국 천문역법책들을 참고로 하고 자신들의 공부를 하여 잘 정리를 하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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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서 감정이 확 상한다. 어찌 했든 일본이 하계올림픽을 잘 치르기를 바란다. 왜 이 나라가 이렇게 찌질하게 변했나... G7중의 하나인 나라가 이 정도인가? 몇 몇 정치인들과 언론인 때문인가? 이를 보고 우리도 생각 좀 하자.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행동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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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자 최혜림 양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같이 천문역법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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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존경하는 나의 친구~최승언 목사님! 늦었지만 생일 맞이하심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려요 주님의 은혜로 평안하시고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길 빌며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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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목요일 오후 3시 이수포럼에서는 허원의 세초류휘 천문역법책에서 태양의 위치를 어떠한 방법을 이용하여 알아내고 달력에서 절기 시각을 어떻게 알아 냈는지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동안 공부했던 숭정역서, 역상고성, 역상고성후편에 기록된 일전(태양의 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한 덕일 것이다. 비록 중국 청나라의 역법책이기는 하나 얼마나 자세하게 서양의 역법을 공부하여 훌륭하게 작성하였다. 조선은 이를 공부할 수 없어 너무 고생을 하였다. 참 지식을 공부하는게 힘이 없는 나라는 어찌나 어려웠는지... 여하튼 자세히 설명하려 하니 관심있는 분은 그 시각에 zoom으로 들어 오기 바랍니다. zoom 주소는 zoom(ID:380-389-5679)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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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해를 끼치면서 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나 국가나 모두 주변에 해를 끼치는 만큼보다 10배 정도를 더 해를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해를 받은 사람이나 국가는 힘과 능력을 더 기르자. 그래야 해를 끼친 사람이나 국가가 정신을 차려 반성하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 같이 살려고 할 것이다. 이게 사랑이다. 그저 무시하는 게 사랑이 아니다. 요즘 이런 사람들이나 국가가 자꾸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약한 사람이나 국가를 통해 자만에 빠진 사람들이나 국가를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이루실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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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월 28일 금요일에 발표있어요. 관심가져 주어요. 줌주소는 ID : 845 2260 8359 / 비밀번호 : 1111 입니다. 내 발표는 수학 식을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책 자체가 한문으로 수학 식을 표현하였기에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면 지금의 수학 식으로 표현해야 천문학적으로 판단이 가능합니다. 책에 기록된 내용은 현대 천문학 역법 내용과 동일합니다. 한문 용어들 생소합니다. 익숙해 지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옛 책들은 모두 한문으로 써져 있기에 한문 공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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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지구과학회에 zoom으로 참석하였다. 오랜만에 들려서 그런지 나이든 반가운 분들이 눈에 띠었다. 멀리서 학회를 하면 가기가 쉽지 않은데 zoom으로 하니 마음만 있으면 참석이 가능하다. 논문 발표도 나름 괜찮았다. 단지 Q&A시간이 적어 아쉬웠지만 듣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제 발표는 허원의 세초류휘에 기록된 태양의 위치를 추보하는 방법과 절기 시간 등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중국 시헌력의 시작을 알리는 역법책인 숭정역서의 내용을 요약하기는 했지만 허원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요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적인 방법으로 태양의 위치를 추보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단지 역원이 다르기에 이에 따른 기준 위치가 다르고 사용한 상수들이 지금 사용하는 상수들과 조금 차이가 있어 거기서 부터 오는 오차가 있을 뿐이다. 한문으로 쓰여진 내용을 지금 사용하는 수학으로 풀이를 해 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고 어떤 태양 운동 모델을 사용하는지도 알 수 있다. 숭정역서도 이에 영향을 받은 세초류휘도 티코브라헤의 책에서 많은 내용을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코페르니쿠스는 과거의 태양 관측 자료로 부터 지구의 운동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여 여러 주기 운동을 고려하였는데 이로 인해 태양의 위치를 추정하는 방법도 어렵거니와 태양의 위치를 알아내도 오차가 많이 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 유럽에서도 코페르니쿠스보다는 티코브라헤의 추보를 더 신뢰했을 것이다. 숭정역서에 있는 표들은 티코가 제시한, 이심모델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제시된 Equant 모델에 의한 것이고 이 모델은 후에 제시된 타원모델과 이심률이 작을 때에는 사용하는 상수 값들의 부정확에 따라 거의 그 차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태양의 고도를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의미는 이로 인해 여러 상수들의 정확한 값을 알아 낼 수 있어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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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이 내 마음에 편하다. 그렇다고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보적인 신앙인들의 몇 모습을 바람직하게 보기도 한다. 보수적인 신앙을 좋아 하면서도 몇 모습은 기독교인으로의 모습인지 불분명하다. 그 동안 신앙생활에서 내가 싫어 했던 것은 신앙인들이라 하는 분들이 윤리를 무시 함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떠한 기독교인의 모습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70이 가까워지는 이 순간에도 방황하고 싶지 않은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뭔가를 아는 체, 깨달은 척 하기는 싫다. 내가 아는 만큼만 이라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내 믿음과 확신함을 가지고 살고자 한다. 그 수준으로 살 수 있어도 감사하다. 내 인생의 삶이 지금 많이 부족하지만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 그리고 내가 요즘 좋아하는 역사천문학 공부하는게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소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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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2021년 부활절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1980년 나와 아내는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그 전까지의 나는 죽었고 새로 예수님과 함께 태어 났다. 올해 부활절은 느낌이 남다르다. 재가수도가나안공동체 수도자로서 첫번째 부활절을 맞이 한다. 새로 태어난 수도자로서, 이제 석달 뒤면 만 67세가되는 나는 하나님을 만나 뵐 때까지 진정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동안의 삶도 잘 살아보려 했지만 실수 투성이였다. 앞으로도 비슷하겠지만 조금 더 노력해 보련다. 지금하고 있는 역사천문학 공부가 재미있고 결실도 풍부해 진다. 수도자로서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아주 잘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 본다. 천문학회 발표도 참여할 수 있어 좋다. 마음을 공부하는데 쏟으니 다른 잡념이 없다. 실수를 해도 공부에서 하니 고치기도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과 함께, 역사천문학 공부와 함께 그리고 재가수도공동체 수도생활과 함께 하기에 다른 시간을 낼 짬이 없다. 하늘 나라에 가기 까지 죄 지을 틈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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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 소리들을 하는지 너무 시끄럽다. 인의예지가 모자라면 신뢰하기 어렵다는데... 요즘 의도적인 (이익) 추구를 심판하기 보다 잘 못하는 실수를 심판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하기야 인간의 이기심 추구를 어떻게 잡을 수 있나... 자기 혹은 자기 소속의 이기심 추구를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들이 지적질과 마타도어 그리고 지속적인 협박과 고자질이다. 열심히 신뢰를 갖고 일 하면 얻는 것은 별로 없고 실수 투성이라 주변 원망만 크다. 주변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나라가 유지되는 걸 보면 실수를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이익의 순간 흔들린다. 아니 흔들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이익 추구를 위해서 모의하거나 조작질 하지는 않지 않는가... 적폐는 모의와 조작질에 있다. 그 것만 잡아도 이 나라는 더욱 부강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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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가 오늘 낮 12시로 끝났다.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 미국에 다녀오기도 점점 힘들다. 그래도 손주 보기 위해 다녀 와야겠지...
큰 아들은 미국에서 노바벡스 백신 만드는데 관여 하고 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이 사람들에게 이롭게 쓰여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백신 생산에 참여함으로 이루어져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연구도 동참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져 이제는 열 분이나 모여 매주 한 번씩 2시간 가량 세미나를 한다. 동서지행포럼, 재가수도공동체, 이수포럼, 낮은교회 그리고 여러 다른 곳의 분들과 일을 벌려 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퇴 후의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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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언 shared a memory.
나이가 들어가긴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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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의 질투가 만든 오명
한겨레 입력 2020. 12. 12. 13:46 수정 2021. 01. 02. 16:56 댓글 17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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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1) 쥘 르페브르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예수 부활 처음 목격한 '성녀'
남성 제자 공동체서 외면당해
'초대 교황' 베드로 이후엔
아무렇게나 후려치는 존재로
'여성 영웅' 부정하는 교회
막달라 마리아 성적대상화 용인
쥘 르페브르,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1876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쥘 르페브르,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1876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한 여성이 동굴 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마치 자신의 온몸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두 팔까지 머리 쪽으로 들어 올렸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림 제목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같이 있었고, 특히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중요한 인물, 성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화가 쥘 르페브르(1834~1912)는 막달라 마리아를 전혀 신성하게 그리지 않았다. 북유럽 신화의 요정 이름이나 비너스, 아니면 이브를 그림 제목에 대신 박아 넣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즉 제목에 ‘막달라 마리아’를 넣어 위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그림의 효용이 뭐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림 속 적나라하고 선정적인 연출은 남성들이 여체를 거리낌없이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으리라. 실제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는 러시아 혁명 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겨울궁전 속 사적인 방에 은밀하게 걸려 있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쥘 르페브르는 ‘불경하게도’ 어떻게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를 일반 누드화 속 여인처럼 관능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다. 그래도 됐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사라진 성녀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중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성인이다.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라고 명시된 구절은 3번 등장한다. 예수 덕분에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본 막달라 마리아,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본 막달라 마리아 등 세 구절이다. 이 세 장면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재구성해본다면 자신의 정신질환을 고쳐준 예수를 열렬히 따른 제자였으며,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를 외면하고 도망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십자가 아래에 있었던 용기 있는 여성이었으며, 부활한 예수가 자신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주고 다른 사도들에게 부활 사실을 전하라고 할 정도로 가장 믿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신학자 하희정의 책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에 따르면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 사막에서 문서 뭉치가 하나 발견된다. 바로 ‘성서 밖의 성서들’이라 불리는 13권의 <나그함마디 문서>였다. 내용을 보면 정통파 교회 입장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다. 막달라 마리아가 왜 예수 부활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는지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예수가 가장 총애한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였음을 말해준다. <나그함마디 문서> 중 빌립복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구세주의 동료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녀를 나머지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셨으며, 그녀에게 자주 입맞추곤 했다(친밀함을 표현하는 그 지역 특유의 인사법). 나머지 제자들은 이에 마음이 상하였다. (…) 그들은 예수께 여쭈었다. 왜 우리들보다 저 여인을 더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는 그들에게 왜 내가 저 여인을 사랑하는 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는 남성 제자 공동체 안에서 ‘왕따’ 신세였다. 특히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드러내놓고 적대했다. <나그함마디 문서> 중 토마스의 복음서 114장은 이렇게 전한다. “시몬 베드로가 여자는 구원에 맞지 않으니 마리아를 내보내자고 하자, 예수가 답하길 나는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 Anthropos)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될 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된 여자는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렇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으니, 예수의 죽음 이후 막달라 마리아가 철저히 배제된 건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어 교회 제도를 이루고, 부활에 의심을 품었던 사도들마저도 교회 주류 전통 속에서 왕좌에 올랐을 때, 예수의 가장 신실한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열두 제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부터 막달라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후려쳐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었고 다른 남성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린 메신저였다는 것도 못마땅한 사실이었다. ‘왜 예수는 자신이 부활한 모습을 여인에게 처음으로 보여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는 항상 신학자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가장 기발한 설명은 아마 중세시대에 진지하게 제기된 다음과 같은 주장 아니었을까. “소식을 퍼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실한 제자, 막달라 마리아
이에 더해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라는 이름까지 얻기도 했다. 그가 성판매 여성으로 인식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시작은 591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년)의 설교였다. 그가 루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로 해석해 다음과 같이 그녀를 ‘회개한 창녀’로 설교한 것이다. “우리는 이 여인이 루가의 죄 많은 여인, 곧 요한이 마리아라 부르는 그 여인이자 마르코가 마리아에게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줬다고 말하는 그 마리아임을 믿습니다.”(복음서 강론 33편) 성경에서도 향유 부은 여성을 ‘죄지은 여자’라고만 말했을 뿐 성판매 여성이었다는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때는 중세 말. 성적인 죄는 모두 여자에게 씌워지던 시대였기에, 막달라 마리아의 죄는 손쉽게 성을 파는 여성으로 치부됐다. 나중엔 아예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마저도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해석됐다. 즉 막달라 마리아는 신학적으로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무형의 빈 공간’(null)이었다. 그녀에게 날을 세운 베드로가 세운 정통파 교회가 기독교 주류가 되면서, 그 빈 공간은 너무도 쉽게 얼룩덜룩한 이미지로 채워졌다.
쥘 르페브르가 그린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는 이런 배경 아래 탄생한 그림이다. 예수 부활의 증언자이자 성경 속 영웅을 이렇게 성적인 존재로 표현한 것은 그녀의 권위를 부정하는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르페브르가 막달라 마리아를 동굴 속에서 벌거벗은 것으로 묘사한 것은 9세기부터 유행한 막달라 마리아의 전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전설은 그녀가 예수 승천 후 동굴에서 ‘은둔 수도자’로 30여년을 살았고 고행으로 옷이 다 닳아 머리카락으로 몸을 가렸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페브르의 그림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행한 강도 높은 금욕적인 생활의 자취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막달라 마리아의 진짜 모습을 그린 이는 성적 매력이 여전히 충만한 ‘전직 창녀’로 묘사한 르페브르가 아니라,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통곡하는 ‘신실한 제자’로 표현한 이탈리아의 화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1450~1496?)일 것이다.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75~1485년께, 프레스코, 이탈리아 볼로냐 국립회화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75~1485년께, 프레스코, 이탈리아 볼로냐 국립회화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가 그린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는 소실된 벽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일부로 추측되는 작품이다. 스승이 죽음을 받아들이자 가만히 손을 놓았던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해 다른 남성 제자들도 절망과 두려움에 떠나간 빈자리. 로마 군인들이 창을 들고 감시하던 그 엄혹한 자리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소리 내어 운다. 섬세한 묘사에 적합하지 않은 프레스코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는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공들여 그렸다. 다른 화가들이 보통 박제된 것처럼 조용한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표현했다면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는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방울 아래, 입을 벌린 채 격정적으로 우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막달라 마리아는 이때 존경하는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을 테니까. 이것이 바로 생전 예수가 믿고 사랑했던 제자 막달라 마리아의 본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지만 교회가 막달라 마리아의 본모습을 바로잡은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였다. 1969년에야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우스 1세의 설교에 실수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철회했다. 그러나 2004년 개봉한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여전히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으나 회개해 성녀가 된 여자로 일반적으로 지칭되곤 한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권한을 제한하고 남성에게만 사도적 권위를 부여한 정통파 교부들이 승리한 증거다. 막달라 마리아의 자리는 그렇게 효과적으로 ‘도둑질’당했다.
올해는 영국의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그에 관한 특집 기사를 읽다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프랭클린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탄식한 적이 있다. 프랭클린은 디엔에이(DNA)의 구조가 이중나선형이라는 사실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과학자였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연구 업적을 도둑질당했다. 1952년 프랭클린은 디엔에이 샘플을 추출해 실험을 하던 중 디엔에이가 이중나선 구조임을 보여주는 ‘51번 사진’을 엑스(X)선으로 촬영했는데, 프랭클린과 함께 연구하던 모리스 윌킨스가 그녀 몰래 이를 빼낸 것이다.
윌킨스는 사진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라는 과학자에게 건넸고, 그들은 프랭클린의 51번 사진을 근거로 디엔에이 구조가 이중나선형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1953년 발표했다. 이 논문은 ‘20세기 유전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됐지만, 정작 해당 사진을 찍은 당사자 프랭클린의 이름은 논문에 빠져 있었다. 이뿐이랴. 왓슨과 크릭, 윌킨스는 이 논문으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렇다면 프랭클린은? 디엔에이 사진을 찍느라 엑스선에 자주 노출돼 안타깝게도 그 전에 숨졌다. 프랭클린의 업적을 훔쳤다는 사실을 의식해서였을까. 왓슨은 1968년 <이중나선>이라는 책에서 프랭클린을 “까다롭고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다”라고 일부러 깎아내리기도 했다. 마치 막달라 마리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주류 남성 교회가 그녀를 “창녀 출신”이라고 거짓으로 헐뜯은 것과 쌍둥이처럼 똑같은 대응이다. 도둑질의 역사는 여전히 질기게 살아 있다.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낸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뤄보려고 한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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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언
3t0 NovSembhreor oet2e0s2o0r ·
앞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나는 이 반론에 동의하는 편입니다만...
Lewis J. Lee
3t0 NovSembhreor oet2e0s2o0r ·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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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 교수가 드디어 글을 올렸네요. 기다리던 글이라 시간을 내어 답글을 적었습니다. 좀 길어졌네요. 여기에도 나눠봅니다. 장 교수의 글은 댓글에 링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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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신 글 잘 봤습니다. 글의 요지는 창조과학이든 진화론이든 어차피 추론이 개입되어 있으니 창조과학이나 진화론이나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로 이해됩니다. 맞나요? 일단 왜 그 이해에 문제가 있는지 창조과학을 과학이라 여길 수 없는지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창조과학을 과학의 잣대로 검증하는 과정을 한 번 해보도록 하죠.
과학은 전에도 언급했듯이 관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당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검증을 거쳐 이론을 확립해가는 과정입니다. 실험과학이나 기원 과학 같이 자기 입맛에 맞는 그런 구분은 필요 없습니다. 실험으로 데이터를 얻거나 자연의 관찰로 데이터를 얻거나 하는 거죠.
1) 관측된 데이터
진화의 모델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를 여러 방면으로 얻게 됩니다. 화석이 있죠. 화석과 그 화석의 연대를 통해 생물이 어떻게 변천했는가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야 뼛조각 하나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겠지만, 이 방면을 연구하는 사람은 뼈의 모양과 손상 정도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죠. 실제 생물을 보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고리 종이 있죠. 한 장소에서 출발해 격리의 과정을 거쳐 나중에 같은 곳에서 만나더라도 종이 구분되는 정도의 변이는 많은 곳에서 발견됩니다. 이렇게 진화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DNA도 있죠. 요즘은 이 분야의 발전이 상당해 종과 종 사이에 유사점과 차이점을 완전히 분석해 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 간에 인종적 교류가 있었음도 DNA 연구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죠. 이렇듯 진화론을 위한 데이터는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을 위한 데이터를 찾아보죠. 음... 없네요. 창조과학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데이터가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경구절 말고요. 아,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이 같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있었네요. 나중에 사람의 발자국이 후에 만들어졌다고 판명되었지만요. 벽화에 그려진 공룡을 근거로 사람과 공룡이 같이 살았다는 주장도 합니다. 그렇다면 용이나 이무기도 같이 살았겠지만요. 그 외 과학적인 데이터가 있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2) 타당한 가설
진화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지만, 진화론 안에서도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 봐라 진화론도 아직 문제가 많다’라고 할 수 있지만, 진화(정확히 표현하면 다양성의 증가)가 있음은 관련 분야의 어떤 과학자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진화론 내의 여러 가설은 주로 진화 속도에 대한 이견입니다. 연속적으로 꾸준한 진화가 있었다는 점진론과 환경의 변화가 진화에 적당한 시기에 폭발적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단속론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기에 폭발적이라고 하지만 최소 몇십만 년의 기간입니다. 생명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죠.) 어쨌든 관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당한 가설들을 과학자들은 만들어냅니다.
창조과학의 가설을 보죠. 태초에 생명은 종류별로 만들어졌다. 그랜드캐년 같은 지층은 노아의 홍수 때 일순간에 만들어졌으며 대부분의 화석도 그때 만들어졌다. 방주에 탔던 8명의 인간으로부터 4천 년~만년 사이의 시간에 현재의 78억 인구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네요. 그리고 상당한 노력을 과학이 틀렸다는 주장에 들입니다. 중요한 부분이 젊은 지구론이죠. 왜냐하면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임을 인정하면 이는 진화에 충분한 시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에 쌓인 먼지의 두께라던가, 탄소 함유량의 변화, 지구와 달간의 거리 등을 예를 들어 지구의 나이가 만 년 이하라 주장합니다. 뭐 가설은 가설이니까 일단 넘어가죠.
3) 검증 과정
과학자의 검증은 논문을 통해서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는 넘어가지요. ‘보통 사람’도 상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양자역학은 도대체 일반인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라 하더라도 관련 분야를 공부하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요. 뭐 어쨌든.
창조과학자는 중간 화석을 보여달라고 앵무새처럼 말하지만 중간 화석은 많습니다. 관련 논문도 수두룩하죠. 유명한 예로 틱타알릭이 있죠. 지느러미에서 발가락의 초기 형태가 있는 생물입니다. 어류에서 네발 동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건 이런 중간 화석이 있으리라 예상한 시기와 장소에서 이 화석을 발견해냈다는 겁니다. 화석을 통해 진화의 과정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증거를 있으리라 예상한 장소에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여주면 현재에 진행되는 중간단계 실물을 요구합니다. 창조과학 주장처럼 노아의 방주에 탔던 한 쌍의 동물에서 현재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종류들이 4천년만에 나왔다면 혹시라도 지금 진행되는 중간단계를 볼 수도 있겠죠. 치와와에서 진돗개로 변하는 모습이 동네마다 한 마리씩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보이는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DNA 연구는 어떨까요. 사람은 스스로 비타민C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의 유전자가 손상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른 유인원 예를 들어 침팬지나 원숭이, 오랑우탄도 유전자에 같은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기니아 피그 같은 형태가 다른 동물들에서도 같은 특징이 발견됩니다. 이렇게 공통 조상에 대한 가설은 만들어진 후 화석이나 유전자 연구를 통해 검증되거나 혹은 반증되고 수정됩니다.
창조과학을 보죠. 어떻게 검증이 되었나 살펴볼까요.... 어쩌죠. 없네요. 그랜드캐년에서 보이는 지층들은 동위원소 측정법을 통해 연대를 측정하면 분명히 다른 연대를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창조과학은 어떻게 설명하나요? 동위원소 측정을 믿을 수 없다 말고 그들의 과학적 주장이 있나요? 많은 지층이 홍수라는 짧은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노아 가족 8명에서 현재 인류 70억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전혀 식량의 부족이 없고 평균 수명이 고대보다 훨씬 높을 때나 가능한 최고의 인구증가율을 가정합니다. 이걸 과학적 검증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외 소위 젊은 지구의 증거라는 주장들은 잘못되었음이 이미 몇십 년 전에 다 과학적인 설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추론은 과학이 아닙니다. 추론을 했다면 검증을 해야죠. 추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옆 집에서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부부싸움이 있다 추론할 수도 있고, 공사를 하고 있다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검증을 하지 않는다면 그 추론이 무슨 의미가 있죠? 그냥 상상이죠. 상상은 과학이 아닙니다.
4) 창조과학에 기반한 가설
그러면 원하시는 데로 창조과학을 과학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검증을 한 번 해볼까요? 워낙에 허점이 많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계속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기에 그 수준에 맞추어 가설을 하나 만들어보죠.
창조과학의 주장이 맞다면 사람과 공룡은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화석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겠죠. 인정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화석들에서 유전자를 찾아 복원을 한다면 인간의 유전자나 공룡의 유전자나 모두 복구가 가능할 겁니다. 유전자의 반감기는 500년 정도라 추정됩니다. 생체조직이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이나 공룡이나 같은 환경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다릅니다. 인간은 사피엔스를 비롯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완전히 복구했습니다. 하지만 공룡의 경우 극소량의 파편만 있을 뿐입니다.
이 차이는 왜 있을까요? 성경대로 인간과 공룡이 같은 시기에 살았고 같은 시기에 화석화되었다면 왜 이런 극심한 차이가 있을까요? 타당한 설명을 기대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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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언
3t0 NovSembhreor oet2e0s2o0r ·
동의해서 올린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다고 올릴 것 입니다.
장기영
3t0 NovSembhreor oet2e0s2o0r ·
--- (1)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과학인가? ---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께는 미리 다음을 부탁드린다. (1) 이 글은 무신론자가 아닌 유신진화론자와의 대화를 위한 것이다. 나는 대화에 참여하는 분을 하나님을 믿는 분으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왜 과학 이야기에 하나님을 언급하느냐는 식의 태클은 자제를 부탁드린다. (2) 과학 전문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고 트집잡거나, 학술 논문이나 전문 자료를 읽어 보았느냐는 질문이나 강요를 지양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과학 전문가와 대화하고 싶으면 다른 분을 찾으시길 바란다. (3) 어떤 주장이 더 신빙성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책 저자가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면서 논점을 흐리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또 의견에 대한 반대는 환영하지만, 비아냥거림과 조롱의 말투와 태도는 지양해 주시기를 바란다. (4) 새롭게 대화에 참여하시는 분은, 이미 주고받은 댓글의 내용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이미 오간 대화를 대상만 바꾸어 계속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최근 신학교에서 창조과학 수업 개설에 대해 신학자, 목회자들이 창조과학을 비이성적인 맹신 같은 것으로 비하하고 유신진화론만이 과학적인 양하는 태도에 반발하는 글을 적은 것을 계기로, 많은 유신진화론자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약방의 감초같이 그들 대부분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동의하기 힘들다. 그런 말은 진화론이나 창조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 선입관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균형을 상실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여러 개의 글을 통해 진화론은 과학으로 주장할 만큼 그리 탄탄한 이론이 아니라, 근거 없는 추론과 대단한 논리적 비약과 상상력이 가미된 일종의 가설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진화론을 과학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메워야 할 구멍들이 너무나 큰 데 비해, 그것을 메울 만한 과학적 데이터나 방법이 없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우선 이 글에서는 만약 창조론을 과학으로 부를 수 없다면 진화론 역시 그러하며, 진화론을 과학으로 부른다면, 창조론 역시 과학으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하겠다.
1. 창조론이 과학이 아니면, 진화론도 과학이 아니다
(1) 만약 과학을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연구로 제한한다면, 창조론도 진화론도 모두 실험으로 검증해낼 수 없다. 창조를 재현할 수도, 진화를 재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 진화를 재현할 수 있고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댓글에서 이미 그런 주장을 보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흔히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이론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물 이야기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유전자 이론만 말하지 말고, 일반인이 상식 선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원숭이와 사람 중간쯤 되는 동물을 데려와서 직접 보여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진화가 과거에는 수십억 년 동안 이루어지다가 어느 순간 중지되었다고 주장하지 않고 지금도 계속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이상, 과거에 존재했다고 주장해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자바인, 네안데르탈인의 화석 말고, 지금도 진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단계 실물을 데리고 와서 보여주면 되지 않겠는가?
(2) 창조론은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신을 말하기 때문에 종교로 보아야 하고, 진화론은 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연구방법론에서 창조론도, 진화론도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상당한 “추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진화론은 도저히 자연적으로는 이루어기 힘든 일에 어떻든 자연은 해낼 수 있다며 무리한 추론과 논리적 비약과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렇게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방법도 모르고, 재현도 할 수 없지만, 자연은 어떻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 비약, 상상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추론=과학, 논리적 비약=과학, 상상=과학). 이에 비해 창조론은 도저히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동일한 일에 대해 창조주가 만드셨을 것으로 “추론”한다.
창조론자와 진화론자가 모두 잘 사용하는 비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사막을 지나다 돌이나 나무조각 같은 것이 아니라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멋진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그저 자연이 우연히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아니면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창조론자들은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하다 해서 자연이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추측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보아도 불가능해 보이니 좀 더 가능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추가해 넣은 것이,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과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어떻게 아느냐며 가상적으로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정한다. 결론은 정해 놓고, 그 결론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추가할 속셈이다. 시계 대신 고층빌딩, 우주선, 대도시, 지구 전체를 넣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억지주장이다. 답은 미리 정해져 있다. 자연은 아무리 힘든 일도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이것 또한 신앙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 실험적 검증이 아니라 추론에 근거해 있음은 동일하다. 그런데 정말 신의 개입이 아니면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이는 일에 대해 신의 존재를 “추론”하면 과학이 아니고, 신의 존재를 배제하기만 하면 엄청난 기적에 가까운 일을 “추론” “비약” “상상”을 해도 과학이라니, 과연 공정한 잣대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진화에도 엄청난 믿음이 작용했으니 진화에도 과학보다 신앙을 붙여 “진화신앙”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혹 검증 불가능하고, 추론했다는 사실은 동일한데, 한쪽은 동조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이유로 과학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동조하는 수가 적다는 이유로 과학이 아니라는 것인가? 과학이냐 아니냐를 다수결로 결정하는가?
2. 진화론을 과학으로 부르려면 창조론도 과학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진화론자들은 매우 싫어하지만, 창조과학자들이 과학을 구분하는 두 용어가 있다. 실험과학과 기원과학이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위에서 이미 다루었다. 따라서 실험과학이라는 면에서는 진화론도, 창조론도 모두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기원과학은 이미 주어져 있는 증거들을 취합하고 연결해 추론함으로 우주와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다. 기원과학은 비록 검증하지는 못하더라도 추론을 중요한 연구방법론으로 인정하기에, 진화를 추론하거나 창조를 추론한다 해서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원과학이라는 입장에서는 진화론도, 창조론도 과학으로 부를 여지가 생긴다.
쉬운 예를 들어 기원과학은,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실험과학으로 재현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볼 수 없기에, 법의학자가 남아있는 증거를 취합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맞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법의학자는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여러 증거들을 활용하되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곤 한다. 이 경우처럼 우주와 생명에 대한 기원과학은, 비록 재현하거나 실험으로 검증할 수는 없더라도, 남아있는 증거들을 취합하고 합리적 추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법의학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다. 추론을 사용한다 해서 법의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듯, 기원과학으로서 창조론이나 진화론 역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했고, 사도행전 17:24-27에서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라고 말씀한다.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느끼고, 창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성경의 계시의 말씀이다. 창조세계 연구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자연세계를 비신화화해서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이 크리스천 과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과학 논의에서 하나님을 배제하지 않고, 과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하나님을 경탄하고 찬양했다. 앞으로 과학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나갈 때, 매우 중요한 합의로서 진화론자들도 이런 열린 태도를 가져 주시기를 바란다.
진화론은 비록 실험과학일 수는 없으나 기원과학이라는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창조론도 마찬가지여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추론해 가는 기원과학이라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과학이라 부를 수 있다. 반대로 창조론을 추론에 근거했다는 이유로 기원과학이라는 의미에서조차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진화론 역시 기원과학이라는 의미에서조차 과학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 진화론자들에게 요청한다. 진화를 과학으로 부르려거든, 창조도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창조를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거든, 진화 역시 과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 기준부터 공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목적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흑백 논리로 보는 데 있지 않고, 각 사안별로 어느 주장이 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신빙성 있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성경의 계시와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비록 진화론에 더 신빙성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을 무시하고 폄하하기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논의에 참여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5 comments
Kyung Hoon Lee
수구골통들도 나름 신념을 갖는 것을 보면 저런 신념갖는 정도는 이해못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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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책이 나왔다. 그동안 대중을 위한 책을 써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대중을 위한 것이고 여기에 실린 천체 사진은 두경택 선생이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고 내가 찍은 사진도 몇 장 있다. 그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도 있다. 더구나 아내가 읽어주고 교정도 봐 줘서 감사하다.
달력은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 달력에는 우리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해와 달의 움직임이 반영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밤하늘에 관심을 가지면 별자리와 행성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달력에는 이러한 천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없지만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천문력에는 이러한 정보들이 있어 밤하늘을 즐기기 그리 어렵지 않다. 밤하늘의 천체들을 동정하고 그 움직임을 살피는 즐거움도 남다르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서 밤하늘과 놀아 보자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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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부만 하기도 쉽지 않네... 재미는 엄청 있는데 자꾸 무리를 하네... 밤 12시 넘김은 기본. 밤 3시에도 하고 있으니 탈이 날거 같아 겁이 난다. 아쉬워도 12시까지만... 그래서 오늘은 낮에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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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독교인인데 나도 몇 몇 기독교인이라는 ㄴ들이 싫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이 교회에서 지도자란다. 그런 인간들을 그렇게 클 수 있게 주변 토양을 조성해 준 몇 몇 열성? 성도들도 같이 한 몫을 했다.
열 일 제처놓고 지금은 회개할 때다. 회개도 제발 골방에서 남 모르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을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아마도 기독교인을 두고 한 말 같다. 당분간 기독교인 거리두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중에는 자기의 動線을 숨기는 者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라가 웬 만한 건 다 참아주니 별 ㄴ들이 다 날뛴다. 요즘 요런 ㄴ들이 너무 많아진다.
세상이 좋아졌나 보다. 요런 ㄴ들도 인권을 내세운다. 무지 웃긴다. 이런 ㄴ들 일수록 하나님 운운하며 사람알기를 우습게 여기면서 불리해지면 인권을 내세우면 탄압한단다.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자는데 안된단다. 비대면 예배는 예배가 아니란다. 모두 성서적으로 옳지 않단다. 대면예배를 당분간 하지말고 비대면예배를 드려 달라고 권하니 종교탄압이란다. 탄압을 받는 ㄴ이 대면예배를 강행하며 sns에는 왜 올리나? 예배하는 동안 하나님을 대면하면 되는 거 아닌가? 꼭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드려야 하나? 어쨌든 당분간 기독교인 거리두기를 실천해 보도록 해야겠다. 기본 윤리가 안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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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불교인보다 개신교인 향한 부정 이미지 강해"
송고시간2020-08-29
양정우 기자기자 페이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결과…'거리를 두고 싶은·이중적' 등 의견 우세
목회데이터硏 "부정 이미지에 코로나가 더 나쁜 영향 줘" 분석
"천주교·불교인보다 개신교인 부정 이미지 강해"
(서울=연합뉴스) 국민 사이에서는 천주교나 불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6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낸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40.9%)', '따뜻한(29.7%·27.6%)'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2020.8.29 [목회자데이터연구소 제공]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국민 사이에서는 천주교나 불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6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40.9%)', '따뜻한(29.7%·27.6%)'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연구소 측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의 각종 추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교인들이 남들과 다투며 자기 잇속만 차리는 것이 실생활 속에 드러나며 교회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기독교인의 이미지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국내 종교단체가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는 말에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에 그쳤다. 이는 2018년 조사 때인 7%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종교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라는 말에 응답자의 45%만 동의했다. 반면 '코로나 사태라는 중차대한 시국에 솔직히 종교가 한 역할이 없는 느낌이다'에는 동의율이 72%에 달했다.
향후 종교 전망과 관련해서는 종교계 위상이 낮아질 것으로 본 응답자가 57%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종교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 이는 55%, '사회적 거리두기' 경험으로 종교시설을 찾는 이가 줄어들 것으로 본 경우는 39%였다.
한국 종교계의 문제로는 '종교계 자체 부정부패'가 6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교계의 집단 이기주의'(55%), '종교인 생활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35%), '종교계의 정치적 개입이 많아짐'(32%) 등의 순이었다.
다만, 종교의 대사회적 영향력을 묻는 말에 '과거 대비 증가'가 54%로, '과거 대비 감소'(27%)보다 많았다.
이번 조사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6월 23∼26일 전국 만 20∼59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예배 취소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인천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6일 오후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인천시 서구 심곡동 교회 출입문에 예배 취소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0.8.26 tomatoyoon@yna.co.kr
"천주교·불교인보다 개신교인 향한 부정 이미지 강해"
송고시간2020-08-29
양정우 기자기자 페이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결과…'거리를 두고 싶은·이중적' 등 의견 우세
목회데이터硏 "부정 이미지에 코로나가 더 나쁜 영향 줘" 분석
"천주교·불교인보다 개신교인 부정 이미지 강해"
(서울=연합뉴스) 국민 사이에서는 천주교나 불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6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낸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40.9%)', '따뜻한(29.7%·27.6%)'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2020.8.29 [목회자데이터연구소 제공]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국민 사이에서는 천주교나 불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6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종교(인) 및 종교인 과세 관련 인식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인은 '온화한(각 34.1%·40.9%)', '따뜻한(29.7%·27.6%)'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개신교인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싶은(32.2%)', '이중적인(30.3%)', '사기꾼 같은(29.1%)'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연구소 측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의 각종 추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교인들이 남들과 다투며 자기 잇속만 차리는 것이 실생활 속에 드러나며 교회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기독교인의 이미지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국내 종교단체가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는 말에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에 그쳤다. 이는 2018년 조사 때인 7%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종교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라는 말에 응답자의 45%만 동의했다. 반면 '코로나 사태라는 중차대한 시국에 솔직히 종교가 한 역할이 없는 느낌이다'에는 동의율이 72%에 달했다.
향후 종교 전망과 관련해서는 종교계 위상이 낮아질 것으로 본 응답자가 57%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종교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 이는 55%, '사회적 거리두기' 경험으로 종교시설을 찾는 이가 줄어들 것으로 본 경우는 39%였다.
한국 종교계의 문제로는 '종교계 자체 부정부패'가 6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교계의 집단 이기주의'(55%), '종교인 생활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35%), '종교계의 정치적 개입이 많아짐'(32%) 등의 순이었다.
다만, 종교의 대사회적 영향력을 묻는 말에 '과거 대비 증가'가 54%로, '과거 대비 감소'(27%)보다 많았다.
이번 조사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6월 23∼26일 전국 만 20∼59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예배 취소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인천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26일 오후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인천시 서구 심곡동 교회 출입문에 예배 취소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0.8.26 tomato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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