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 국민 빠순이 만들기' 프로젝트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일하는 신문사 벽에는 숱한 텔레비가 걸려있습니다.
제가 있는 층에만 한 20대는 넘게 있는 데 이렇게 많은 텔레비가 있는 이유는 다른 곳에선 어떤 것들이 방영되는지 참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통로를 돌리면 심지어 북한 방송도 실시간으로 나옵니다.
이런 환경이고, 또 제가 북한 관련 기사를 많이 쓰다 보니 북한 영화도 가끔 보는데, 한 1년 전에 입이 딱 벌어지는 영화가 나오더군요.
‘소원’이라는 예술영화인데 이 영화 주인공을 따라 배우는 모임까지 전국에서 열렸다고 하니 여러분들도 당연히 아시겠죠.
주인공인 희천발전소 건설부대 중대장 김옥철 대위에게는 소원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승진하거나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평생의 소원은 딱 하나 김정일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는 어쩌다 휴가를 받고 왔다가도 아내와 몇 마디 나누고 다시 건설현장으로 떠납니다. 완전히 일벌레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일하는 목적은 열심히 공로를 세워 김정일과 기념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것이죠.
북한 영화가 의례 그렇듯이 마지막은 주인공의 마음에 품은 소원을 김정일이 헤아려서 그를 불러다 사진을 찍었고, 주인공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됐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북한 영화들을 보면 어떤 영화는 참 감동을 잘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도 내일이면 김정일이 부대에 찾아오고, 주인공이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데, 갑자기 중요한 임무가 떨어지자 당을 위해 주저 없이 평생의 소원을 뒤로 미루고 다시 떠난다는 그 장면이 핵심 감동 포인트죠.
그리고 그런 김 대위의 정신세계를 김정일이 신처럼 헤아려 다시 불러준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장면을 보면서 감동해서 주인공처럼 살겠다는 생각 아주 조금이나마 들 게 만들려는 것이 이 영화가 노리는 바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북한이라는 우물 속에서 살다보니 잘 모르시겠지만, 외국에서 그 영화를 본다면 누구나 참 주인공이 정신병자 같다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그런 영화를 따라 배우는 모임에 참가했던 탈북자라도 바깥에 나와서 몇 달만 물을 먹어보면 자신이 감동했던 일이 세상 바보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몹시 흠모하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사진을 찍으려는 충동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행사장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오빠~오빠~”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여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애들을 ‘빠순이’라고 합니다.
대개 사춘기 여학생들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진 한번 찍는 것이 소원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빠순이들도 철이 들면 자기 자신과 가족이 첫째가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진을 찍는 것이 평생의 목표라고 하면 아줌마나 할머니도 오빠오빠 이러면서 하루 종일 쫓아다녀야 하지만 현실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저는 소원이란 영화를 보면서 더 황당했던 것은 김정일과의 사진촬영을 위해 자기의 개인적 삶과 가족, 심지어 목숨도 내놓는 주인공을 따라 배우라고 선동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참 훌륭하다고 노동신문에까지 평가가 실렸던데 그걸 보면 “우리 병사들의 삶의 의무, 한생의 소원이 어떤 것인가를 생활적으로 진실하게 밝혀내고 있다”느니 “희천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의 정신세계의 본질을 밝혀낸 철학적 깊이가 있는 명작이라느니” 평가를 합니다.
결국 온 나라를 김정일의 빠순이로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지향하는 목적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진 하나에 목숨 거는, 세계 보편적 기준에서 볼 때 이상한 주인공을 선군시대 본보기로 내세우고 철학적 깊이니 명작이니 운운하니 정말 가슴이 먹먹합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김정일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라고 합니다. 애초에 북한이 운운하던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이런 것에 목숨을 걸도록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와 사진 찍기 위해 목숨 거는 인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북한이 괴상한 나라가 되는 것은 당연하죠.
며칠 전 유럽의 한 저명한 철학자가 “북한은 공산주의 좀비”라고 규정하던데 정말 공감합니다. 좀비란 현실에는 없는, 몸은 인간의 몸이지만, 정신은 조종당하는 산송장을 말합니다.
공산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사상을 구현한다면서 현실은 그와 전혀 다르게 모든 인민의 정신을 독재자가 조종하는 이상한 나라로 만드는 북한은 진정한 좀비 국가인 것이죠.
아무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공을 세우라고 했으니, 잘 하는 사람에겐 보상으로 사진을 찍어주어야겠죠. 아무 것도 없는 거지 국가이니 결국 상을 김정은의 몸으로 때우는 셈인데, 사진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 자꾸 만들어야 김정은 본인만 바빠집니다. 지도자를 해야지 사진모델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모델을 하는 것이 맞긴 합니다. 김정은 취임 직후인 2012년 1월 1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455일 동안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 사진을 분석했더니 이 기간 김정은과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무려 12만 4000명이나 됩니다.
어떤 집체사진에는 무려 1925명이 함께 찍었습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약 50만 명, 즉 2500만 북한 인구의 2% 정도 되는 가족이 김정은에게서 사진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젊으니까 확실히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어줍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많이 찍으면 모델료나 사진 가치가 폭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자가 사진 찍느라 기력을 쇠진하면 되겠습니까. 그럴 열정이 있으면 나라를 발전시키고 인민을 잘 살게 하는 일에 깡그리 쏟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9월 28일 방송분입니다.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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