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3

1919년 3월 뿌려졌던 ‘독립신문’ 원본 공개 - 기독교한국신문



1919년 3월 뿌려졌던 ‘독립신문’ 원본 공개 - 기독교한국신문





1919년 3월 뿌려졌던 ‘독립신문’ 원본 공개100주년기념교회 양화진홀서 최초 전시
유종환 기자 | yjh4488@hanmail.net

승인 2019.03.15



▲ 평양에서 미북장로회 선교사 웰본(Arthur G. Welbon, 吳越璠)의 아들 헨리 웰본이 습득하여 전한 전단 (1919년 3월경).


1919년 3월 평양에 뿌려졌던 등사판 ‘독립신문’ 원본을 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 양화진문화원/기록관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1919년 3월 평양에 뿌려졌던 등사판 ‘독립신문’ 원본을 8일부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양화진홀(양화진 선교사 전시실)에서 일반인에게 최초로 공개했다.

이 자료는 1919년 헨리 웰본(당시 15세, 양화진에 안장돼있는 아서 웰본 선교사의 아들)이 평양외국인학교 부근 언덕에서 주워 보관한 것으로, 당시 지하 독립 운동가들이 등사판으로 등사해 평양에 뿌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 거주 중인 에비 여사(웰본 선교사의 손녀)가 소장해왔던 것으로, 원본 보존을 위해 박판을 입혀 놓았다. 자료분석 결과, 1919년 평양지역 3.1운동과 관련해 당시 배포된 원본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일반 공개되는 자료다. 특히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발간했던 독립신문과는 다른 자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100주년기념교회는 지난 2014년 이래 홀선교사와 웰본선교사의 유물과 유품을 전시하며 선교사 후손들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올해 1월 로제타홀 선교사의 손녀 필리스 홀 킹여사의 추모식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웰본 선교사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여사를 예방했다. 그 자리에서 2019년인 올해가 한국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말을 들은 에비여사가 소장해 오던 1919년 자료 일부를 흔쾌히 내어줬다. 그중 하나인 ‘독립신문’ 원본이 이번에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에 관계자는 “앞으로도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교회는 130년 전 당시 조선 땅에 건너와 자신과 가족을 묻으며 헌신했던 선교사님들의 삶을 되새기고, 그분들의 후대 자손들과 합력해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그분들의 삶의 귀한 흔적들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 소장이 원본내용을 활자화해 해석한 것을 토대로 양화진문화원/기록관에서 보다 쉬운 현대어로 풀어 쓴 내용이다. 

 
독립신문(제1호)

△오늘이 어떤 날인가. 공중에 가득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양식으로 삼고, 4천 3백년의 장구한 역사, 이천 만의 피 같은 동족을 통해 세계 평화를 함께 도모한 우리 조선독립단이여. 오늘이 어느 때인가. 임금의 자손인 우리 민족에게 자유활동과 태평복락을 전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전염병이 생길 모양이나 주의하여 없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평소 품고 있는 뜻을 발표한다는 것은 말씨요, 인민의 갖가지 감정현상을 표현하고 공적으로 고함은 세계 문명을 지배하는 작으면서도 새로운 문장이 아닌가.
지금 이 때에 조선에 많이 유행하는 매일신문[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오타]은 다 거짓되고 조작된 말이요, 거짓되고 허무한 글과 말, 혹은 인민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인도하는 글과 말, 패역한 말 뿐이니, 그 하는 일이 어찌 그리 무례하며 어찌 그리 잔악하고 사리에 어긋나 일을 그르치는 것인가. 신용할만한 이가 누구인가. 매일신문아, 네 병은 그저 잠깐 동안일 뿐이다.

△경성시보 3월 1일부터 지금까지 서울에 있는 우리 동포 각 상점에서는 일절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독립의 선도자들을 위하여 단결하며, 일본인 측과 일절 거래하지 않고 멈추고 있는데, 저 간사한 관리 측에서는 강제적으로 위협하고 화를 냄으로 영업을 하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은 여기에 저항하고 강경한 태도에 굳건한 마음이라 하니 평양의 우리 동족은 어떠한가.

△총칼이 정신을 뺏을 수 있는가. 개성 근방에서는 저 간악한 자들이 백지에다가 이름을 적고 날인을 해달라고 한다. 무슨 흉계일까. 우리 평양성에도 있던 걸 거기에 날인한 자 있다 하니, 그런 무당고자는 당연히 죽어도 애석함 없을 것이다.

△상해확보 중화민국 상해시보 3월 15일호에 조선독립운동과 저자들의 폭행을 세세히 기재하였으니 중화민국 유력자와 각 공사관의 공사들은 물론 우리를 찬송하고 있다.

△북경에서 옴 북경 영자신보 3월호에 우리 조선독립운동은 과연 일다 한 글의 제목으로 우리의 진실된 마음 및 정성과 외국인의 비판을 하나도 빠뜨림 없이 보도하였는데 [여기에 더하여] 파리의 소식도 또 있구나. (미완)

△조선혼 평양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 전체는 공중에 가득한 열성으로 조국을 생각하고 자기 동창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생각하고 있는데, 교장인 작자는 자기의 정신을 팔겠다고 야단하다가 도리어 학생에게 말총을 맞고 물러갔으며, 학생은 일반휴학을 하였다. 경성 어떤 OO학교 10세 미만 생도들은 일절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동맹하여 시험을 보지 않으니 교장은 눈물을 흘림이라. O 사랑하는 내 동포여, 나는 이미 갔소이다. 내 피는 줄줄이 흘렀소이다. 나는 방년 10세라. 좌우로 움직이기 어려우나 내 동족 내 나라 내 주권 내 자유 내 강토 생각하니 저 폭탄이 내 머리를 깨뜨리고 내 몸은 저승으로 가게 되나, 내 영혼은 애국혼이라. 내 동포여, 내 동포여. 독립 자유 억만세 길이길이 뜨거운 피 애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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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엄마

이런 귀한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땀, 눈물, 기도와 온갖 노력으로 힘써주신 선교사 분들을 추모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본이 되어주셨던 우리 선배 기독교인들을 따라
우리도 '더불어 같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사회의 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019-03-19 2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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