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새 프레임이 필요한 북핵 정국 / 진징이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세계의 창] 새 프레임이 필요한 북핵 정국 / 진징이
등록 :2019-04-07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연합뉴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석달 안에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국에서의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했다. 그렇지만 정치회의는 소집되지 않았고, 그 내용은 이듬해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논의됐다.
남북한은 제네바 회의에서 각자의 평화적 통일 방안을 내놓았지만, 한반도 문제를 좌우하는 키는 남북에 있지 않았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전부터 이미 미-소의 전략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사실 미국의 한국전 개입에도 한국을 잃으면 일본과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전략적 고려가 큰 몫을 했다. 그렇기에 전략적으로 한국은 다른 한 의미에서 완충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후 미-소 냉전이라는 전략 프레임 속에서 남북은 무력 통일도, 평화적 통일도 억지되면서 이른바 ‘차가운 평화’를 유지해왔다. 동서 냉전이 끝난 뒤 소련은 사라졌지만, 냉전의 유산을 물려받아 여전히 ‘남방 삼각’ 대 북한이라는 미국 주도의 전략 프레임에 갇혀왔다. 북핵 문제는 바로 북한이 미국의 이 전략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물이라 하겠다.
지난 30년 이 프레임은 북핵 프로세스를 거쳐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전례없이 강화해왔으며, 오늘에 와서는 그 연장선에서 ‘제재 프레임’으로 동북아를 꽁꽁 묶어놓고 있다.
지난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다. ‘9·19 공동선언’에도 명시된 내용이지만 북-미 양 정상이 직접 약속했다는 데는 획기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기반은 동맹 체계다. 미국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핵심 동맹국’을 뜻하는 ‘린치핀’과 ‘주춧돌’로 묘사해왔다. 곧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은 다시 한-미 동맹을 ‘린치핀’이라 칭하였다.
미국의 이 동맹 체계가 ‘가능’한 것은 주로 북한이라는 적대국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북핵이 있기에 더더욱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북한과 관계 개선을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한미군, 유엔사, 주일미군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전략적으로 볼 때 한반도 현상유지는 미국에 이익이 된다고 했다.
결국 미국에 있어서 북핵 문제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연동된 복잡한 문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이어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파생될 지각변동을 전략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하노이에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빅딜 청구서를 존 볼턴이 내민 것은 바로 미국이 그러한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하면서도 “북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 유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제재는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를 죄는 긴고주(손오공 머리의 금테처럼 사람을 통제하는 물건)가 돼가고 있다. 미국이 주문을 외우면 이마에 쓴 쇠굴레가 관자놀이를 옥죄듯 남북 관계, 북-중 관계, 한-중 관계가 진통을 겪어왔다. 결국 ‘제재 프레임’은 미국 전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와 대북 관계를 통제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세계는 북한의 ‘새로운 길’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든 무엇이든 발사하면 미국의 ‘전략 프레임’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와 북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 어떻게 될까? 작금의 난국을 타개하려면 이젠 새로운 프레임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이슈한반도 평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9070.html?fbclid=IwAR2f3vri72_1eT22ofT5u8XollKWxgv-WXh0qyp9lRgAiioAogkX4RSVYx8#csidxb2b7497154b7d87888dd0d401153d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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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칼럼] 북핵 중재자의 조건, 남북관계의 자율성
등록 :2019-04-07 18:03수정 :2019-04-07 19:09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9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중대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주에 평양과 워싱턴에서 각각 열리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이 협상 재개와 상황 악화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 같다. 바로 이 중대 국면에서 한국의 중재 역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발로 ‘남한도 당사자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맞는 말이지만, 한국이 북핵 문제의 당사자라고 해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미 3자 간의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북-미 간 의견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한국이 중재를 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자협상에서 특정 국가나 집단, 혹은 개인이 근본적으로는 당사자 위치에 있으나 특정 국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는 흔하다.
미국 쪽에서는 ‘한-미 동맹인데 미국 편에서 북한을 설득해야지 왜 중재를 하려 하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이 역시 온당한 주장이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대북 제안이 합리적이고 현실성이 있다면 당연히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안을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 안을 조정하고자 미국과 협의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하다. 그 협의가 때로는 북한과의 절충을 위한 대미 설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진정한 의문은 ‘중재자 개념’이 아니라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의 중재 역할은 북한을 설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말발이 서야 하는데, 그것은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해 축적한 상호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남북관계가 한-미 관계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어서 남한의 북한 설득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오늘의 남북관계는 한-미 간 철저한 대북제재 공조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속박되어 발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남북교류 분야에서조차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심지어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지난 3년간 방치된 자기 공장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방북하겠다는 것도 미국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공장 기계를 돌리겠다는 것도 아닌 단순 방문인데, 이마저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의약품 지원도 미국이 ‘노’ 하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과연 우리에게 남북관계의 자율공간이 존재하는지 자문해야 할 지경이다. 이쯤 되면 북한이 남한을 쳐다볼 이유가 없어진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무엇을 밑천으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남북관계를 한-미 관계의 틀 속에 구속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남북관계가 비핵화 논의나 북-미 협의보다 단 한걸음도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1년 전의 경험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1년 전 전쟁의 암운이 드리웠던 한반도에서 한국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으로 남북관계의 발전을 이루어냈으며 이를 발판 삼아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실현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다.
이처럼 남북관계의 우선 발전이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고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켜온 것이 작금의 역사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한-미 관계의 포로가 되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중재의 무거운 역할을 또다시 맡았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설득을 부탁하면서 맡는 중재 역할이다. 그러나 미국은 말로만 북한 설득을 부탁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그 여건은 바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자율성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 입장에서 남북관계의 대미 자율성은 미국의 시혜적 조처를 통해 확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애초에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의 자율적 판단 영역이다. 정부는 이 점을 꼭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필요에 따라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기도 하나, 국익 증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한-미 워킹그룹이 아니라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결정해야 한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신한반도체제를 담대하게 추진할 의지가 진정 있다면 어렵더라도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자주적인 결정권을 회복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슈한반도 평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9066.html#csidxf3621684443e0c093daa7ab356a75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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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제재 ‘창조적 해법’ 내야 할 한-미 정상회담
등록 :2019-04-07 17:56수정 :2019-04-07 19:25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당시 두 정상은 주요 20개국(G 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올바른 합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 요구에 북한이 응할 것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북-미 대화 지속의 뜻도 분명히 했다. 대화의 창은 열어놓겠지만, 비핵화 이전엔 대북제재 해제나 완화를 해줄 수 없다는 ‘빅딜’ 방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선 ‘빅딜 원칙’ 고수만으로 부족하고, 북한이 관심을 보이는 제재 문제에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한 번에 맞교환하는 빅딜 방식은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확고부동한 협상 전략으로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다. 앞서 5일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대북제재와 관련해 “우리가 2년 전 설정한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반면 북한은 ‘빅딜’에 대해 지금과 같은 낮은 신뢰 수준에선 북한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무리한 주장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협상은 적절한 타협 없이는 성과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2월 말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대화를 되살려내기 위해선 북-미가 서로 기존 입장만 고수할 게 아니라 마땅히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협상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미국이 먼저 나서야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11일(현지시각)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더욱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한-미 공조에 기반한 해법을 정상회담에서 제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 회담에서 비핵화 대화의 물꼬를 틀 방안을 두 정상이 모색하길 기대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89064.html#csidxdf375b04aecd8e8aa4a2abdc6a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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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k Nakchung
3 hrs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를 죄는 긴고주(손오공 머리의 금테처럼 사람을 통제하는 물건)가 돼가고 있다. 미국이 주문을 외우면 이마에 쓴 쇠굴레가 관자놀이를 옥죄듯 남북 관계, 북-중 관계, 한-중 관계가 진통을 겪어왔다. 결국 ‘제재 프레임’은 미국 전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와 대북 관계를 통제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긴고주(緊箍咒) 비유는 참으로 적절합니다. 이걸 어떻게 걷어낼까요?
같은 날짜(2019.4.8) <한겨레>의 '이종석 칼럼'에서 주장하듯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자주적인 결정권을 회복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건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긴고주를 두르고 있는 주제에 당장에 '결정권 회복'은 좀 과한 욕심이겠지요. 결정권을 조금씩이라도 되찾아가는 끈질기고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도고 말하는 게 더 방불하겠습니다.
동시에 중국정부더러도 너무 미국 앞에서 몸 사리며 자국이익만 챙기려 하지 말고 동북아 전체에 드리운 저 주박(呪縛)을 풀어나가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우리가 설득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G2' 행세를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거든요.
진교수는 일본 이야기는 안했습니다만 일본도 똑같은 긴고주의 피해자이고(때로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한국과 중국만이 당하고 있는양 좋아하기도 합니다만ㅠㅠ) 우리가 포기할 상대는 아닙니다. 일본정부가 북일수교를 추진함으로써 이른바 '저팬 패싱'을 면할뿐더러 한일관계 개선과 일본국민의 장기적 이익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우리의 '결정권 회복'에 중요한 일부가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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