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2

Sejin Pak - [한국에서의 톨스토이 사상의 시작] 이광수의 역활

(10) Sejin Pak - [한국에서의 톨스토이 사상의 시작] 이광수의 역활 -- 시작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 | Facebook


[한국에서의 톨스토이 사상의 시작] 이광수의 역활
--
시작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 (1908-1911)
- 잡지 <소년>은 최남선 시작에, 이광수가 중요 필진으로 합류.

- 톨스토이는 이광수에게 정신적인 스승이고 숭배의 대상.
- 박애주의, 비폭력주의, 무저항주의

사진에 글 참조할 것. 강준만의 <한국근대사 산책 제5권>
--
이광수가 시베리아에 간 이유는?
- 만약 소설 <그의 자서전>이 이광수의 자전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톨스토이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자서전>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
[나는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말을 끝으로 하였 다. 실상 이 시절에는 방랑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K학교를 통과해서 간 사람만 해도 십여인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 서울서 여러 가지운동에 종사하던 명사로서 망명의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모두 허름한 옷을 입고 미투리를 신고 모두 비창한 표정을 가지고 가는, 강개 한 사람들이었다.
이때에 이 모양으로 조선을 떠나서 방랑의 길을 나선 사람이 수천명은 될 것이다. 그들이 가는 곳은 대개 남북 만주 나 시베리아었다. 어디를 무엇을 하려 가느냐 하면 꼭 바로 집어 대답할 말은 없으면서도 그래도 가슴속에는 무슨 분명 한 목적이 있는 듯도 싶은 그러한 길이였다. 그것도 시대 사조라고 할까, 이렇게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 무슨 영광 인 것 같이도 생각되었던 것이다.]
--------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기독교와 톨스토이와의 만남
---
[나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 하늘이 쪼개지고 하나 님의 신이 비둘기같이 내려 왔다는둥, 하늘에서 소리가 나 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다는둥 하는말이 믿기 지 아니하여서 픽 웃기까지 하였지만는, 예수께서 사십일, 사십야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시던 끝에 먹을것, 입을 것 에 대한 탐욕과 명예에 대한 탐욕을 이기시고 갈릴리 바닷가로 혼자 돌아 다니시면서 어부들에게 설법을 하시는 것, 이런 것이 다 내 마음에 들었다. 

만일 H라는 성경 선생이 좀더 종교적인 인물이었들 나는 좀더 감격을 얻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H선생은 성경을 가르치면서 국가주의만 선전하였다. 그것이 내 비위를 거슬렸다.

 그리고 기도회 시간에 기도하는 선생들이 대부분 바리새인 같음을 느낄 때에 더욱 나는 반감이 생겼다. 오직 하나 W라는 늙은 미국 선생 한 분 만이 진실로 예수를 믿고 예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 같아서 나는 무척 그를 숭배하였다. 그는 얼굴이 벌겋고 머리가 허옇고 키가 훌쩍 크고 언제나 화평한 낯과 언사로 우리를 대하였다. 그는 결코 성내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웃지도 아니하였다. 도무지 말이 많지 아니하였다. 그는 〈바이블 스토오리〉라는 책을 영문으로 가르쳐 주는 선생이었거니와, 나는 그에게 배운 〈바이블 스토오리〉에 대한 기억은 없어도 그의 화평한 태도, 자비스러운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키 작은 교장은 교만 하였고, 얼굴이 길다란 부교장은 수신을 가르치면서도 너무 정치가적이었고, -수염 빠뚜룩한 교무주임은 평생 양미간을 찌푸리고 짱짱거렸고, 우리에게 수사법을 가르치던 I선생은 심술궂었고, 아라사 병정 이라는 체조선생은 야비하고 우락부락하였다. 그런중에 W선생만이 인자하고 점잖고 참되어서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W선생을 대할 때마다 내가 어려서 가끔 하던 T절의 노장을 생각하였다. 나는 이 노장의 이름을 모른다. 아버지가 그를 「방주」하고 부르던 것만 기억한다.

이 노장이 W선생과 같이 낯은 불콰하고 머리는 허옇고, 그리고 말이 없고, 그러면서도 임자하고 겸손하고 정이 들었 다. 그 노장은 나를 볼 때마다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고 한 번 빙그레 웃는 버릇이 있었다. 나같은 어린애를 대할 때에도 농담도 없고 곡 점잖은 어른을 대하는 듯하였다. 나는 사오세부터 이 노장을 숭배하였다. 내가 절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노장을 보려 하는 것이 주장 목적이었다. 나는 이 노장이 먹물들인 장삼에 주홍 가사를 메고 까맣게 때묻은 목탁을 두드리면서 부처님 앞에 수없이 내 복을 밀어서 절 하던 것을 기억한다.우리 집에서 불공을 가면 반드시 새벽 에 하였다. 환하게 법당에 촛불을 켜 놓고 이 노장이 축원 을 하는 것은 볼 때에 나는 가장 엄숙한 감정을 경험할 수 가 있었다. 나는 이 노장에게 절을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그것을 금하는 것을 불만하게 생각하던 것을 기억한다. 또 나는 내 조부의 풍신이 이 노장의 풍신과 비슷하면서도 밤 낮 술이나 자시고 농담이나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장 이 가진 위엄이 없는 것이 슬펐던 것을 기억한다. 더구나 그 밖에 다른 갓쓴 사람들이 술냄새를 피우면서 이 노장을 보고 히게를 하는 꼴들이 미웠던 덕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W선생을 대할 때에 이 노장을 생각하게 된 것 이다. 이름도 모르는 노장, 조그마한 절에서 혼자 살다가 돌아간 노장은 좋은 집에 행복된 가정에 어른으로 있는 W선 생보다 더 높은 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W선생은 적극적으로 우리를 감화하려고 애쓰는 양 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불만이었으나 또 어찌 생각하면 그 무심한 듯 초연한 듯한 것이 더 고상해 보이기도 했다. 아무려나 예수를 믿어서 잘 닦으면 저러한 인격이 되리라, 그러나 나는 W선생보다 더 열정적이요 적극 적인 인격이 되이라. 그래서 이 세상인류의 그릇된 생활을 다 바로 잡아 주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엉뚱한 생각에 더욱 불을 질러 준 덕은 톨스토이의 사상에 접촉함이었다. 내 동급생에 야마사끼라는 아이가 있 었다. 그는 지금은 상당히 이름있는 문사지만 나보다 한 살 위이요, 얼굴이 아름답게 생기고 그리고 예수교인의 가정에 서 자라라서 몸과 마음과 행동이 참 깨끗하였다. 우리 반에 는 흉악한 강난군들이 많아서 M학교 창립이래 에 가장 말 썽 많은 반이라고 학교 당국에서는 치를 떨던 터이므로, 우리는 스트라익을 한 일은 없지마는 학교에서 석탄을 잘 안 준다고 해서 선생의 의자를 쪼개서 난로에 집어넣기, 또 우리가 원치 않는 선생의 시간이면 방안 가득 석탄 연기를 피워서 그 시간을 쉬게 하기, 이 밖에도 선생을 울리는 일을 많이 한 반 이었다. 그런 중에 야마사끼는 참 성도와 같이 단정한 애였다. 야마사끼는 니와라고 하는 애와 아울러 우리 학교의 모범생이었다. 니와라는 애는 목사의 아들이었고, 지금은 상당히 이름 높은 목사다.

나는 야마사끼하고 가장 친한 동무였다. 우리들은 하학후면 다른 애들 축에 섞이지 아니하고 운동장 한편 모퉁이에 모여 앉아서 성경 이야기를 하였다. 그의 형이 톨스토이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는 톨스토이의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그리고 H라는 우리 성경 선생의 강의가 예수의 참 뜻이 아니란 말을 야마사끼가 힘있게 했는데, 나는 그 말에 굳세게 동감이었다. H선생의 태도는 반그리스도 적이라고까지 극언하였다.
우리는 전쟁을 부인하였다. 「죽이지 말라」,「심판하지  라」는 「마태오 복음」에서 배운 말을 그대로 믿어서 톨스토이와 함께 비전론자였다.

그때는 일로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여서 누구나 전쟁의 승리를 찬미하는 때이므로 야마사끼와 같은 비전론자는 반 다른 애들에게서는 비국민의 지목을 받았다. 수신 시간에 야마사끼가 전쟁은 하나님의 뜻에 어그러진 일이라는 영어 연설을 했기 때문에 오가와니 이시모도니 하는 애국주의자들이 기숙사 뒤 으슥한 데서 야마사끼에게 「철권 체제」를 가하였 다. 그래도 야마사끼는 「악을 악으로 대적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을 지켜서 오른편 뺨을 돌려 대고 도무지 저항 하지 아니하였다.]









===

  • 김희숙
    오...아직 자서전을 못 읽고 있는데. 더욱 관심이 가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Yoo Jung Gil
    저도 톨스토이주의자(?)입니다. 그의 아나키즘을 좋아하고 숭배(?)... 이광수 최남선이 일찌기 영향을 받았군요..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 박정미
    춘원의 글을 소녀시절에 많이 봤는데 여전히 제게 미치는 흡인력이 대단합니다.톨스토이라는 공통지향점이 있어서일까요? 그러고보니 자서전을 읽지 못했습니다. 품절되었는데 도서관에 가봐야겠습니다.
    • Like
    • Reply
    • 2 y
    • Edited
    박정미 replied
     
    2 replies
  • 강길모
    이르쿠츠크가 춘원의 <유정>의 무대였다고 합니다. 아래 글 역사학자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중 끝부분 치타에 이광수와 톨스토이 이야기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이칼에서 만난 '선녀와 사냥꾼', 그리고 '심청'
    NEWS.NAVER.COM
    바이칼에서 만난 '선녀와 사냥꾼', 그리고 '심청'
    바이칼에서 만난 '선녀와 사냥꾼', 그리고 '심청'
    강길모 replied
     
    3 replies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