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잔재들 ‘반민족연구소’ 협박 - 시사저널
친일 잔재들 ‘반민족연구소’ 협박
오민수 기자 ()
승인 2006.04.26 00:00
facebook twitter kakao story naver band share
1만5천명 수록 <친일인명사전> 발간 추진하자 “가만 있지 않겠다‘
친일파 청산은 차지하고해방 48년째를 맞이하면서도 변변한 일제침략사 하나 엮어내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지난 89년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쳐온 임종국씨의 타게는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임씨로부터 ‘정신적 세례’를 받은 후학들이 91년 2월 27일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를 만들었고,이 연구소를 통해 임씨의 유업이 하나씩 세상에 나오고 있다. 천안임종국씨의 옛집에 있던 그의 저서와 논문, 유고들은 반민족문제연구소로 옮겨졌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이미 임종국씨가 정리한 자료를 기반으로 <실록친일파> <한국문학의 민중사><일제침략과 마적단>을 펴냈다. 이는 반민족문제연구소가 16권으로 펴낼 <임종국 전집>중의 일부이다.
요즘 반민족문제연구소는 1만5천여명에 달하는 친일파의 행적을 속속들이 담아낼<친일인명사전. 발간사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해방 50년을 맞기 전에” 임씨가 공책에 꼼꼼하게 정리한 친일 명단 1만명에 5천명 정도를 추가해 사전을 펴낼 계획이다.
사학계가 이 사전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친일파 당사자와 그 후손들도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그들은 요즘 이 연구소에 간간이, 그러나 집요하게 협박전화를 건다. 내용은 “당신들 몇 명 죽어봐야 정신차릴 것이다” “고생 좀 하게 될 것이다”하는 위협에서부터 무슨 근거로 우리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얘기냐“면서 조목조목 따지는 전화까지 다양하다. 연구소에 직접 찾아와 소동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만약 인명사전에 조사의 이름이 올라가면 가만히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협박에 이력이 붙었다. 좀 심하다 싶게 극성을 떠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해방후에도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친일파의 자식이나 손자 또는 그 문중 사람들이다. 특히 명백하게 친일을 했으면서도 역대정권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은 경우 자신의 조상을 애국자로 착각했기 때문에 더욱 격렬하게 항의한다“ 김봉우 소장은 ”아직 조사작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니 막상 사전이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리 간다“면서 ”그러수록 더 완벽한 근거를 가지고 사전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전 발간에 1백40억원 필요
사실 완벽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내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연구소측에 따르면 사전 발간에 필요한 자금을 무려 1백40억원이 넘는다.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일간지·잡지·각종 총독부 간행물·일본 미국 중국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용할 수 있는 3백평 크기의 건물과 각종 사무기기 등 시설비에 약 14억원, 2년동안 전적으로 사전 발간작업에 매달릴 1백명이 넘는 전문인력을 고용하는 데 43억여원이 소요된다. 그밖에 홍보 및 활동비 10억원·사무용품비 3억원·출판비 20억원·연구소 운영비 13억원이 필요하다. 물론 이 액수는 ‘어림잡아’ 계산한 것이다.
여하튼 현재 자금은 마련하기는 요원한 상태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한달 운영비 3백만원도 독지가들의 성금에 기대는 형편이다. 그러나 연구소측은 ‘처음에는 임선생의 자료를 정리해 사전을 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친일파 이름 몇자 올리는 인명사전이 되어서는 오히려 해방이후 민족의 최대 과제를 그르칠 수 있다고 판단해 사업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단순한 인명사전이라기보다는 민족사전이어야 한다, 말이 사전이지 사실상 역사 심판서다. 돈 몇푼 가지고 할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하면 안했지 섣불리 건드리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전 국회의장·부총리도 명단에
결국 사전 발간을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하지 않고는 사업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김봉우 소장도 “사업 성격상 범국민운동으로 승화되지 않으면 설사 사전이 무사히 나온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년 초쯤 사업에 착수할 예정인데, 우선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 국민선언을 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친일파 인맥에 뿌리를 대고 있는 지배계층은 협박전화 수준이 아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반민족문제연구소가 보유한 친일인사 1만2천명의 인명카드에는 생존한 유명인사들이 눈에 띈다. 국회부의장의 지낸 윤길중씨와 신현확 전 부총리는 일제 관료 출신으로,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백선엽 전 육군대장,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 등이 일본군 출신으로 올라있다. 연구소측은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객관적이고 완벽한 사전을 만드는 것만이 친일파의 방해공작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한다.
뒤늦게나마 <친일인명사전>이 나온다면 환영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시정권에 협력했던 반민족세력을 완전히 처단해 사전 발간이 필요하지 않은 프랑스에 견주면, 이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지 자랑거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민수 기자다른기사 보기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