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7

'빨리빨리'는 부려먹는 제도의 갑질하는 언어

'빨리빨리'는 부려먹는 제도의 갑질하는 언어





옥 교수의 글 /단상
'빨리빨리'는 부려먹는 제도의 갑질하는 언어사용자 lutheroak
2019.02.01 16:10댓글수0공감수 4


1898년 게일의 <Korean Sketches>를 보면 여행할 때 마부나 일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구절을 만나게 된다.




조선에서는 참을성이 많아지게 되는데 서양인으로서 더 빨리 그렇게 될수록 더 좋다. 여행할 때 행복하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인들에게 시간 여유를 주는 것이다. 순례에서 그들이 맡은 일을 그들 방식대로 하게 하라.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리 일을 시키려 애쓰고 짜증을 내고 서둘러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느린데다가 우리들을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이상한 나라에 '서드르는' 뜻의 말은 왜 그리 많은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서, 급히, 얼른, 속히, 빨리, 바삐, 즉시, 잠깐, 날리, 냉큼 등은 우리가 쓸 수 있는 흔한 말의 일부에 불과하고 매일 들을 수 있다. 조선인들은 이런 말을 흔히 듣지만 효과는 전혀 없다. (p. 78) ​

이 밖에도 빨리를 나타내는 순 한국어로는 당장, 곧바로, 이내, 후딱, 신속히, 날쌔게, 잽싸게, 금새, 날래(평안도, 함경도 말), 싸게(전라도 말), 퍼뜩(경상도 말), 혼저 재게(제주도 말) 등 수없이 많다.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종군기자로 한국을 방문한 미국 작가 잭 런던(Jack London)은 이런 단어가 20개나 되는 사실은 "한국인이 게으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결론을 내렸다. 피상적 관찰이었다.



19세기 말이나 일제시대까지 서양인이나 일본인들의 글에 나오는 한국인--대부분은 농부(상당수는 소작인)와 하인(머슴이나 종)과 일꾼--들은 "게으르고 느렸다." 왜 그랬을까?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인의 노동 강도는 높았고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리는 자들이 아무리 "빨리"를 외쳤지만, 천천히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는 법을 익혔다. 농사는 농번기나 철따라 일을 해야 했지만, 집수리 일꾼이나 가마꾼과 같이 고용된 일을 할 때는 천천히 느리게 했다. 가마꾼은 아무리 급해도 10리를 가면 한 시간 이상은 쉬면서 막걸리라도 먹고서 갔다.



서양의 문화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의 소위'원시적'인 마을에 가서 처음 본 것도 "더럽고 게으른" 부족들이었다. 그러나 '원시인'들의 게으름은 다르게 보면 자유로운(flexible and free) 시간의 운용이었다. 돈에는 가난했으나 시간에서는 부자였다. 일은 적당히 살만큼 하면 되었기 때문에 아둥바둥하지 않아도 되고 함께 공동체를 조화롭게 꾸려가면 되었기에 '게으르게' 보였다.



내 전임 전도사 시절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그만큼 시간 없어, 돈 없어, 투 잡 서리 잡, 일 많아, 정신 없어 하던 때가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전도사와 부목사들의 상황은 더 악화된 듯하다. 그렇게 빨리빨리 성장시킨 대형교회들이 오늘 적폐가 되어 청산 대상이 되고 있다. 성장은 수단인데 목적으로 착각했다. 성장한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할 일을 잃어버리고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서 '빨리빨리병'에 중독되어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과 돈과 시간이 적절히 조화된 삶이 행복하고 좋은 삶이다. 미국에서는 돈을 조금 적게 벌어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인문학 교수가 되는 똑똑한 이들을 많이 만난다. 사실 미국 인문대 조교수나 부교수 월급은 소방관이나 경찰관 수준이다. 대신 교수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만족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같다. 우리를 부리는 갑질하는 분이 아니다. 누가 내 귀에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다. 차근차근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 째 안식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른, 속히, 빨리, 당장, 즉시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지금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 "빨리"를 외치는 자는 나를 부려먹으려는 자들이니, 하나님과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이여! 그런 죽음으로 몰고가는 사탄의 갑질하는 목소리에 "NO!"를 외쳐라.



흔히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 과속은 금물이다. 정해진 속도와 절차를 지키고, 이웃과 함께 가는 것도 중요하다. 바른 방향, 바른 속도, 동행의 한 해가 되자.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다. 풍성한 시간을 누리는 한 해가 되자.




(2018. 1. 2, 옥성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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