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8

『전쟁과 사회』(김동춘 2000) - 교수신문



본격서평 : 『전쟁과 사회』(김동춘 지음, 돌베개 刊, 2000, 372쪽) - 교수신문



본격서평 : 『전쟁과 사회』(김동춘 지음, 돌베개 刊, 2000, 372쪽)

윤택림 정문연
승인 2004.11.07  
기억투쟁으로서의 전쟁 조명…풀리지 않는 국민·민중의 정체



윤택림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류학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라는 저자의 질문은 우리에게 ‘다른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볼 것을 요구하며, 동시며 ‘우리’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성찰하게끔 한다. 이러한 저자의 질문은 사실상 불행히도 2000년 전후 학문적 변화가 아니라, 다행히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 등 한국전쟁에 대한 비공식적인 기억들, “파편화되고 억압된 기억”들을 통해 “다른 목소리들”을 접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기억’을 통해 다시 봐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다른 시각’이란 한국전쟁을 정치사회학적 과정으로 보고 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질문과 전쟁이 어떻게 진행됐고, 전쟁 동안 일어난 일들이 전후 한국정치에서 왜 재생산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배경은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그 이후의 제3의 시각이라는 정치학적 분석들이 한국전쟁을 단지 전쟁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역사가나 사회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들에 의해 주로 연구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전쟁은 단지 전투가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정치학자들이 기존 양대 틀 속에서만 한국전쟁을 분석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에 이론적 시각을 제공하는 클라우제비츠나 푸코 정도의 논의는 이 책을 연구서로 만들기에는 너무 빈약하고,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나, 인류사적으로 봤을 때나, 전쟁은 항상 국가 권력의 정당한 폭력화였고, 그러한 전쟁을 통해서 제3세계뿐만 아니라 제 1, 2 세계도 근대국가를 형성한 것이다.


저자가 성찰하게끔 하는 ‘우리’는 해방 후 미소라는 양대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半국가” 속에서 우리가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친일 친미세력, 중도적인 지식인, 자영업자들, 농민들이라는 다양한 계층들로 구성돼 있는 분단된 국민 내지는 민족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우리” 안의 다름을 저자는 “다른 목소리들”로부터 찾는다. 저자는 그 목소리들이 바로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사실-경험적 차이의 증거들을 알려주고, 한국전쟁을 침략전쟁/조국해방전쟁, 전통주의/수정주의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에서 각기 부분적인 전쟁 경험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저자가 사용하는 다수의 증언들은 대개가 지배층에 속하는 정치인, 지식인, 군인들, 몇몇 양민 학살의 증언집, 그리고 학생들의 가족사 증언들이다. 증언이란 지극히 상황적이고, 증언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그리고 어떻게 증언이 채록되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증언 사용에 대한 엄격한 검토 없이 단지 “경험의 차이”을 보여주기 위해서 증언이 사용될 때, 증언자의 성, 계층, 지역, 세대 등 구체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서, 그 경험의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되기 힘들다.

서울 중심적 분석에 기울어

저자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인 기억과 私的, 비공식적 기억의 대립 구도로 파악한다. 공식적인 기억은 한국전쟁을 북한의 침략전쟁으로 이해하는 이승만과 친일, 친미 엘리트와 지주계층, 친일 군대와 경찰들이 만들어낸 지배담론을 말한다. 기득권들의 한국전쟁 체험은 공식적인 경험으로서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지식권력화돼 그들의 기득권을 전후사회에서 재생산해왔던 것이다. 반면, 비공식적 기억은 “보통 한국인들”이 체험한 미군과 한국군이 준 피해를 중심으로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공식적인 기억에 억압되고 흩어진 기억들이다.


이런 공식적인 기억과 비공식적인 기억 투쟁으로서의 한국전쟁은 이 책의 본론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과정을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피난, 점령, 학살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서 각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서의 한국전쟁 체험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그 사회구조적 원인들을 규명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피난을 갔는가 안갔는가가 바로 공식적인 기억에서 중요한 잣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서울에서 피난을 가야만 했던 사람들은 고위 관료, 군인, 경찰, 월남민들이었고, 나머지 중도적인 지식인들과 중소기업 상인들, 농민들은 피난을 가야할 절박성이 없었다. 저자가 이렇게 피난에서 “우리”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은 한국 전쟁에 대한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는 1차 피난을 “정치적 피난”으로 보고, 수복 이후의 피난을 “생존을 위한 피난”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피난도 결국은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임으로 정치적인 것과 생존을 위한 것의 경계선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또한 이 부분에서 저자의 서술이나 사용된 증언은 모두 서울 중심적이다. 저자는 정치적이건, 생존을 위한 것이건 피난이라는 상황이 전후에도 한국을 “피난사회”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공포에 대한 충성”에 기초한 “피난 철학”이 전후에도 철새 정치인 등을 만들어내는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왜 전후에도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남한인들이 계속적으로 피난 다니게 되는 사회문화적 기제들에 대한 논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점령시 남한에서 지배층과 일반인들이 점령에 대한 다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 모두 임시국가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점령시 국가 보다는 지방정치의 역학에 따라서 개인적, 가족적 갈등과 증오가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는 통찰력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또한 북한과 남한 정권의 성격을 균형적인 시각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북한과 남한 정권이 모두 일종의 종교적 근본주의를 통해서 국가를 신격화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령 시 정치사회학적 과정 분석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서울 중심적인 분석을 하고 있고, 지방정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161쪽), 지방적 특수성은 간과하고 있다. 또한 농지개혁과 같이 남북한의 중요한 쟁점을 논의하는 부분에서도 계급적인 논의만을 할 뿐 농민들 사이에 있었던 도덕경제적 측면은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학살을 “바로 민중의 체험과 기억 속의 전쟁”으로 적절히 표현하면서, 유태인, 베트남, 스페인 등 다른 나라와 비교적인 시각을 통해서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정치적 학살”으로 보고, 학살은 한국전쟁 전후의 남북한 정권간의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쟁취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적 폭력 행위의 완성판이었다고 규정한다. 이 부분에서 그간 공식적인 기억에서 가리워져 있었던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학살 상황들을 지역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한 학살은 비교적 그 비중이 적어서 점령 부분에서 보여주는 저자의 균형적인 시각이 남한 국가와 우익에 의한 보복적 학살에 너무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저자는 너무나 잔인했고, 증오심에 불탔던 학살의 배경의 하나로 좌익이 핏줄을 나눈 형제 동포들을 배반했다는 점에서 “의사 인종주의”를 논하고 있으나, 나는 저자가 후에 제시하는 “혈통적 민족주의”가 더 정확한 용어가 아닌가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종의 개념은 한국전쟁과 같은 내전에 적용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통상 민족중심주의, 종교적 확신, 인종주의에 기초한 모든 학살에는 이념이 없다”고 하나, 그가 지적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념이고, 학살의 정치는 곧 ‘이념, 사상의 정치다’.

주요 개념과 이념적 구상 모호해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고민들은 저자가 생각하는 국가, 국민, 민족, 민중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미 서론에서부터 기존의 침략전쟁/조국해방전쟁이라는 이분법과 달리 김성칠이 민족적 시각이 있다고 논하고 있다(27쪽). 저자는 무엇을 민족적 시각이라고 보는가. 남한 정권도 북한 정권도 똑같이 민족의 개념을 이용하여 학살과 폭력을 정당화하였다. 이승만 정권에게 민족은 미국에 협조하여 자신의 마키아벨리식 야욕을 충족시키는데 협조하는 한국민일 것이고, 김일성 정권에게는 민족은 “혁명의 대의”를 명분에 협조하는 한국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에게 민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승만이 많은 군인과 시민들을 강북에 놓아둔 채, 한강다리를 폭파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국민과 국가 사이의 괴리를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승만 정권의 구조적 취약성을 언급했고, 당시는 남한인들이 근대 국가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지니기에는 정부 수립 후 2년이 흘렀을 뿐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근대국가와 국민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하게 규정돼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시 국가는 국민과 괴리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그 효과는 전후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론에서 국가주의를 넘어설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이상적인 어떤 근대국가상, 즉 민주적인 대의정치가 실현되는 국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주의와 근대국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자신의 작업이 “외세, 국가, 계급, 국민”이라는 개념들을 “밑으로부터 재구성하는 작업이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저자가 의미하는 민중의 시각을 말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또한 민중이란 기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민중을 말하는 것인가. 저자가 사용한 증언 자료들의 많은 부분들은 결코 민중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의 자료들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50년을 기념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도 역량이 부족한 학문적 상황에서 “다른 시각”을 제공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가히 높이 평가할만 하다. 하지만 이론적 측면이나, 자료적 측면에서, 파편화된 자료들을 짜깁기하기에는 한국전쟁이 너무나 버겁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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