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한국정치] "‘친일파’라는 말은 적어도 ‘일제 부역자’라고 고쳐져야 한다."
- 그건 물론인데, 반일이라는 국민정서를 도마위에 놓아야 한다.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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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단상
(3.1 독립운동 기념일을 지나며 적어보는 민족주의 단상.)
흔히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민족주의란 인간의 모든 선의를 인류가 아니라 민족 단위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본디 위험한 개념이다. 모든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만 한국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에서 민족주의, 즉 방어적인 의미의 민족주의는 한정된 진보성을 가질 수 있으다. 그러나 그 한정성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제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 전체와 일본 민족 전체 사이에서 일이 아니었다. 대다수 일본 민중들 역시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하는 피해자였으며,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제국주의 세력과 이해를 같이 했다. 일제 식민지 경험은 일본 지배계급(제국주의자들)과 한국 민중 사이에서 일이었다.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지지 않은 민족주의, ‘태극기 휘날리는’ 뭉뚱그려진 민족주의는 백이면 백 지배계급의 도구가 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어 경무대(청와대의 전신)의 일제 전기 콘센트를 손수 망치를 들고 다 부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망치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부쉈다. 박정희 역시 내내 반일을 내세우고 일본문화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정책을 펼쳤지만, 일본 극우세력의 정치적 지도를 받았고 식민 지배의 역사를 들추지 않는 조건으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았다. 독도, 올림픽, 월드컵 따위는 지배의 도구로서 민족주의의 매우 좋은 재료가 되어 왔다. 민족과 국가의 깃발을 휘날리며 민족 안의 모순, 국가 안의 억압과 착취는 잊게 만드는 술책이 근래까지도 통했다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식 진전을 생각한다면 이채로운 일이다. 그만큼 민족주의의 폐해가 큰 사회라는 뜻이다.
‘친일파’라는 말은 지배의 도구로서 민족주의에 최적화한 말이다. 친일, 즉 일본 사람들과 친하고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건 ‘일본과 친했느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에 부역했는가’이다. 식민지나 피점령의 역사를 비교적 제대로 청산한 나라 가운데 ‘친일파’ 같은 부주의하고 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인들이 나치부역자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은 ‘콜라보’다. 콜라보는 ‘콜라보라퇴르’(collaborateur, 협력자)에서 나온 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협력자를 표현할 땐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친일파’에 해당하는 ‘게르마노필리’(germanophile, 친독파)는 단지 독일이나 독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친일파’라는 말은 적어도 ‘일제 부역자’라고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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