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에 日들썩...같은듯 다른 한·일 불륜의 사회학 - 매경프리미엄
'부부의 세계'에 日들썩...같은듯 다른 한·일 불륜의 사회학
신윤재
입력 : 2020.05.02
[한중일 톺아보기-13]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 삼국과 관련된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이야기 거리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연일 화제입니다. 선정성, 폭력성 논란에도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넘어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에 등극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세계'에 대해 일본에서도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BS 후지'는 지난달 1일부터 '스카이캐슬'을 방영중인데 트위터 등 SNS에는 한국 드라마 팬들을 중심으로 '스카이캐슬'에 이어 '부부의세계'의 연이은 방영을 기대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죠. 또한 '뉴스위크' 일본어판은 '부부의 세계' 8회분에서 "가방 사주면 애인 해주겠다"는 대사나 VR로 연출된 폭행장면이 나간후, 시청자 게시판이 "비난 댓글로 도배됐다"며 매우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은 한국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일본은 소위 '성진국'으로 불릴 정도로 '성에 대해 관대한 나라'로 인식돼온 만큼, 불륜에 대한 인식이나 관련 법제도 등이 한국과는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 사회의 불륜에 대한 인식이나 법제도는 한국과 비교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혼외 연애' '더블 불륜' 등 기묘한 신조어
▲ '부부의세계'에서 이태오(박해준 분)는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에게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항변한다. 일본에서도 불륜 당사자들은 스스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륜' 대신 '혼외 연애'라는 말을 즐겨쓴다고 한다경제활동 등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낮은 일본에서 불륜은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기혼 여성이 불륜을 범하는 경우가 늘면서 기혼자들끼리의 불륜을 지칭하는 '혼외연애'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탐정·조사업체 '미션 리서치'가 기혼 여성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불륜 경험 유무 설문조사에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13년 21.5%에서 2016년 29.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죠. 원래 기혼자들끼리의 불륜을 일본인들은 '더블 불륜'(W不倫)이라고 부르곤 했는데요. 불륜 당사자들은 자신들은 '불륜'이 아닌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고, '불륜'이란 단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대체표현으로 '혼외연애'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 '퓨리서치'센터의 조사결과, 일본인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영국인보다도 불륜에 관대한 인식을 보였다/그래픽=조보라이처럼 불륜을 지칭하는 기묘한 신조어들이 유행하고 기혼 여성의 불륜행위도 증가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일본이 한국에 비해 불륜에 대해 덜 엄격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단순한 편견은 아닌 듯합니다. 또한 2013년 미국 '퓨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불륜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일본인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영국인보다도 불륜에 관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관대한듯 하면서도 엄격해지는 '이중성'
▲ 지난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일본 배우 카라타 에리카(왼쪽)와 히가시데 마사히로. 지난 1월 터진 두 배우의 불륜 스캔들에 대한 일본네티즌들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 카라타 에리카의 불륜 스캔들은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에 대한 일본에서의 비난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지난달 일본 방송 NHK의 드라마에서 불륜 보도 이전 촬영해 놓았던 그녀의 모습이 등장하자, 항의가 빗발쳐 업무에 차질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불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관대하게 나타난 일본인 이지만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본 주간지 '주간 현대'도 "일본은 전통적으로 불륜에 대해 너그러운 분위기가 있지만, 유명인의 경우엔 달라진다"고 주장한 바 있죠.
▲ 지난 2018년 분쟁지역 취재중 억류됐다 석방됐던 일본 언론인 야스다 준페이(좌). 정부의 경고에도 취재를 강행해 폐를 끼친 만큼 석방에 들어간 돈을 물게 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올 3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코로나 진단키트 사비 지원의사를 밝혔다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난 여론에 철회했다일본인들이 유명인사의 불륜을 유독 비난하게 된 원인을 교육에서 찾기도 합니다. 일본 경제지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멋대로 행동하면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교육을 통해 주입된 이 같은 집단의식이 미디어의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 인해 유명인에 대한 과열된 비난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집단의 규율을 어기는 자를 놔두지 않는 건 어느 사회나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일본의 교육은 전전(戰前)과 비교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며 '무라하치부'(규율 위반자 집단 따돌림)라는 전통 관습이 존재했듯이, 일본 사회가 '개인의 일탈'에 유독 거부감을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2018년 일본 내각부가 세계 7개국 국민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폐를 안 끼친다면 무엇을 하든 개인 자유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일본인 비율(49.4%)은, 한국(20.7%)은 물론 독일(21%), 미국(15.8 %), 프랑스(15.2%)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日, 똑같이 불륜 범해도 여성 더 비난
▲ 일본 여성들은 해외에서 '순종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사진=유튜브 캡처일본 여성들은'순종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몇년전 실시한 '한·중·일 마음지도'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의 81%, 중국인의 71%가 일본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순종적'이라고 답한 바 있죠. 2012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 모리나가 야스코 교수 연구팀이 미국, 중국, 일본 여대생들에게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이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귀가했고, 화난 남편이 아내를 때린'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유독 일본 여대생들만 "아내가 그럴 만한 짓을 했다"는 반응이 많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는 일본 여성들에 대해 갖는 '순종적' 이미지를 더 강화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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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순종적 이미지는 본래부터 그렇다기보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측면이 강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회적 강요는 일본에서 불륜 스캔들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을 더 비난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스위크'는 제도적으로 한국, 중국에 비해 일본이 이혼하기 훨씬 쉬운 구조임에도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일본 여성들이 인내와 순종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016년 터진 일본 여성 연예인 '베키'의 불륜 스캔들과 관련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상대 남성은 놔두고 여성인 '베키'만 집중 비난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죠.
'유책주의' 한국 vs '파탄주의' 일본
▲ 지난 3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후 소감을 밝히고 있는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재판상 이혼과 관련해 현재 한국은 유책주의를, 일본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책주의는 배우자 일방에게 책임이 있을 때만 이혼을 인정하는 것인데, 한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홍상수 감독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청구가 기각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파탄주의는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혼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까지 이혼청구를 폭넓게 인정합니다. 의미 없는 형식적 부부관계를 청산할 수 있고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보다 부합한다는 이유로 파탄주의가 국제적인 추세입니다. 한국 법조계에서도 현재 유책주의 채택 국가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고, 50여 년 전 경제권이 없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라 현 세태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잘못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이혼당하는 데 대한 우려도 있기에 파탄주의 채택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법적 보호장치 도입이 우선 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잠재적 사회 혼란 방지 차원에서 유책주의 고수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한국법, 가족주의적 사회상 반영...이혼청구 시효도 존재
한일 양국 모두 형법상 간통죄는 없습니다. 한국에선 2015년, 일본에선 이보다 수십 년 빠른 1947년 폐지됐죠. 민법은 어떨까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혼 사유로 "배우자가 심한 정신병으로 회복 가망이 없는 경우"를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알게 된 후 6개월, 또는 부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2년이 지났을 경우 이혼청구를 못 한다"고 시효에 대한 규정이 있는 반면, 일본법에 시효 규정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이혼청구에 대해 더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국법에는 이혼사유와 관련해 '직계존속'에 대한 규정이 있어, 일본에 비해 혼인의 '인척계약'적 성격이 강하다이혼 관련 양국 민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직계존속'에 대한 규정 입니다. 한국법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또는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는 곧, 남편 또는 아내가 처부모 또는 시부모에 잘하지 못할 경우, 한국에서는 이혼사유가 되지만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법은 그 나라 사회체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회가 일본사회에 비해 더 가족주의적이고 혼인에 있어서 '인척계약'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日'불륜학' 책도 출간..."불륜은 사회문제"
▲ 이혼사유에 있어 한일 양국 모두 성격차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에선 경제문제가 두번째로 비중이 큰 반면, 일본에서는 배우자 부정이 두번째로 경제문제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점이 눈에 띈다/그래픽=유제민2015년 일본에서는 '최초의 불륜학'이라는 타이틀로 불륜 문제를 사회적으로 분석한 책이 처음 출간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륜을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처럼 전염이 되는 감염병에 빗대며, 불륜을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보며 일본 풍토에서 통용될 만한 해결책도 제시했죠. 저자는 "어떤 문화, 종교, 국가에서든 불륜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개인의 감정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 어떻게 불륜으로 인한 불행을 줄일 수 있을지 다각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불륜은 현대사회에서 엄연히 범죄행위이고,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을 무너뜨려 각종 청소년 문제, 빈곤 문제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긴 어렵습니다. 불륜과 관련된 사연과 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국내 한 인터넷 카페는 최근 회원이 2만5000명에 이를 정도로 가입자가 늘면서 사회적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사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사회인 만큼 불륜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같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양국 모두 불륜이 가정 파탄의 주요 사유이고 늘어나는 황혼이혼 등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볼 때, 한국도 불륜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그 폐해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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