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을 맞아 정읍에 내려갔습니다. 전라도 산골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은 차고 매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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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는 동학 유적지에 있는 전봉준 동상을 철거하고 새로운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여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수도 있을 것 같아 그곳으로 갔습니다. 조각가 김경승의 이 작품을 철거하는 이유가 그가 친일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이 철거되어서는 안됩니다. 중국도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으로 4500만명의 인민을 사망시킨 정치적 실패를 감추기 위해 조작한 것이 문화혁명입니다. 중국은 전통유산에 대한 총체적 반달리즘적 파괴였던 문화혁명의 여파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신문화의 죽음이고, 도덕의 파탄이자, 중국식 자본주의의 미래에 한계를 잉태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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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주변에 있는 조각이나 공공미술이 예술적 즐거움보다는 공해와 테러에 더 가깝다는 것을 똑같이 느껴본 적이 있으시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솔직하게 용기 내어 말하겠습니다.
한국 조각은 일제시대 일본 도쿄대학교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배운 김복진, 윤효중, 권진규, 김경승, 김종영이라는 한국 근대조각 1세대의 작품까지만 볼만합니다. 일본은 프랑스에서 앙투앙 부르델 등 유럽 조각의 거장에게서 근대조각을 배워온 세대에 의해 부흥을 맞지만 그것 또한 중국 문화혁명처럼 전통의 척결이나 부정이 아닌, 일본 전통 조각에 극도로 세밀한 묘사를 도입해 혁신적으로 부활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전통과 근대의 다양한 계보로 이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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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윤효중, 권진규, 김경승, 김종영의 근대조각은 사실주의나 아카데미즘, 추상주의 조각 등으로 분류하지만 허망하게도 그 세대에서 조각 예술의 도입과 절정을 보여주고는 끝나버리고 맙니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일본 유학 1세대의 작품 말고는 조각이 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좀 볼 줄 아는 보는 극소수의 눈밝은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다만 반일 정서라는 파시즘적 억압 때문에 침묵하고 있을 뿐. 볼만한 예술적인 조각이 극히 드문데 남아있는 김경승의 조각 마저도 친일 이라는 이유로 파괴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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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돈이 되고 인기를 얻을 수 있으니 친일 반달리즘에 편승하는데, 이렇게 권력에 추종하고 인민 파시즘에 영합해서 꿀빠는 것이 바로 현재적 매국의 본질입니다. 저는 동학난 또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하는 운동을 3.1운동과 촛불정국에 이르기까지의 저항 서사로 꾸미려는 현 정권의 서사조작에 반대합니다. 당시 조선 조정의 부패와 흡혈귀같은 착취가 극에 달해 인민 봉기와 마적떼들이 들끓었습니다. 저는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의 반봉건 구호는 공감하나 근대적 운동의 비전까지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고종은 안타깝게도 먹고 살기 위해 마적떼가 되거나 봉기에 의해 일어설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을 다시 외세를 끌어 들여 살육했습니다. 반외세는 동학난의 또 다른 캐치 프레이즈였습니다. 하지만 동학은 오히려 외세가 개입하는 구실을 제공하여 청일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동학은 궁극적으로는 러일전쟁으로 외세가 체제화되는 구실을 제공하여 현재의 분단상황으로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주어진 이 성찰의 기회를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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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저는 예술 작품을 볼 때 전봉준과 동학난에 대한 의미구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작품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일본유학 1세대이자 한국 근대조각에서 사실주의적 미학과 아카데미즘의 교과서, 서구화된 신체에 대한 탐미적 추종이 아닌 조선 사람 있는 그대로의 신체성과 조형적 비례를 찾고, 동학의 엄숙하고 숭고한 시대정신과 분노 그리고 저항을 읽어 내려했던 예술가의 작품을 존치해야 할 뿐더러 더욱 존중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이것의 파괴가 테마 자체가 될 수도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친일 행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 조각을 둘러싼 담론으로 그것을 제안하고 기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이같이 중요한 근대 유산에 대한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후대에 다양한 차원의 해석과 상상력으로 주어져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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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조각가들은 일본에 유학했던 근대조각 1세대 선배인 김복진, 권진규, 김경승이 왜 그토록 처절하게 조각에 있어 사실주의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연구하며 작업에 실천하려 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주의 조각을 먼저 배우고, 추상주의나 초현실주의 조각을 추구할 때 도착할 수 있는 미학적 지점은 훨씬 풍요롭고 다양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추상과 초현실 조각에 매몰되었다고는 하지만 조각적 완성도에서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김경승의 전봉준 조각은 지금의 한국에 더욱 필요한 조각가의 메시지이자 유산입니다. 정읍 동학 유적지에 있는 김경승이 조각한 전봉준 동상을 철거하기로 한 정읍시의 결정을 규탄합니다. 이 작품 파괴하면 안됩니다. 어제 눈보라 속에 직접 작품을 보고 영상을 찍으면서 몇 번이나 외치고 외쳤던 말입니다. 작품이 좋습니다. 이거 철거되면 안됩니다. 미래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주세요. 절실하게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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