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오늘>이 묵직하게 떠오르네요.
큐레이터로 일하는 제게, 역사는 늘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이고 미래의 책임감으로 놓인 현실 업무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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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 법고창신 이런게 어디 모셔진 과거 덕담과 격언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 설계와 솔루션으로 제시되어야 할 세계관-설정과 현실적 대안제시로 요구되는 "능력"의 사안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과거"가 아니듯이 쇄국과 국수주의, 민족주의 또한 과거 망령이 아니라, 현실적 제약이고 구체적인 장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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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반일 역사왜곡 박정희 나뻐 일본 싫어 이런 얘기들 그만하고
우리들의 공원이, 미술관이, 박물관이 곧 우리 아이들이 누리고 보게될 책임감이 필요한 공적 영역이며 정치polis의 영역이라는 것을 차분하게 알고 공부해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울 줄 알고, 명예를 생각하는, 고대 그리스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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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명의 의사를 왕의 봉분으로 처리한 박정희 시대의 칠백의총 조성.문제도 그렇습니다. 큐레이터 개인이 할 몫도 아니고, 업체 문제만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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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모 지역에 보고가 있어 갑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논에서, 장사되지 않는 읍내에서, 시장에서, 도로에서, 터미널에서 배회하는 그 미술관을 향유해야 할 도민들을 배반할 그런 공허한 쳇바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저 스스로에게 무력감과 윤리적인 가책을 느끼며 되돌아오게 되겠지요. 지역의 자원은 너무나 많은데, 지역에 감동적인 자원과 인물들도 너무나 많은데, 꿈꾸고 욕망하는 것은 중앙집중형 탈현실. 그렇게 오늘도 민중들은 왕의 봉분에 집단적으로 묻혀집니다.
칠백의총(칠백의사총)설계 자문을 하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호남의 곡창지대로 향하는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칠백의 의병들을 모신 칠백의총七百義塚이다.
이번 실시설계에서는 최초에 박정희 대통령이 조성한 칠백의총이 가지는 성역화의 이데올로기를 반성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익명화한 칠백 명의 의사(칠백명의 의사 중 대략 사백명의 신원과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다.)를 왕의 봉분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칠백의총 밖에 있는 '광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성역으로의 인터페이스이자 기념관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광장에서 이러한 시대를 세파의 시름과 깊은 상식으로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칠백명의 의사를 기리는 것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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