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북한을 제대로 알고 있나
<서평> 김광운의 '북한정치사 연구 1'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ㆍ정치학 박사 | 2004-03-27 09:20:00 | 2004-03-26 17:16:00
해방 직후 북한정치를 다룬 책이 하나 또 나왔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김광운 박사가 쓴 <북한정치사 연구 1- 건당ㆍ건국ㆍ건군의 역사>(펴낸 곳 '선인')이다. "또 나왔다"는 말은 해방 이후 북한 연구가 이제 상당히 축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연구해야 할 그 무엇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북한정치사 연구 1> (김광운 지음ㆍ선인 펴냄) @프레시안
사실 북한역사의 출발점인 '해방 이후 북한'은 아직 연구자가 탐험해야 할 것이 풍부한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북한이라면 알 만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해방공간에서의 북한 연구라면 더욱 그렇다. 북한전문가, 북한연구자 사이에서는 물론 일반인 가운데도 그런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다. 우리는 정말 북한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가.
1980년대 말~1990년대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고 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했을 때로 되돌아가 보자. 이 때 이름있는 정치학자들은 북한체제가 며칠을 버틸지 몇 년을 버틸지 점을 치느라 분주했다. 학자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ㆍ미국의 정책결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영변핵시설 동결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준다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핵합의는 '경수로 완공 전에 북한은 붕괴한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는 극심한 식량난이 닥쳤다. 기아가 급증하고 탈북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1997년까지는 북한권력의 핵인 노동당 총비서가, 1998년까지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없는 '이상 상태'가 지속되었다. 북한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연착륙이니 경착륙이니, 내폭이니 외폭이니 붕괴의 방법론이 무성했다. 이 때의 북한연구는 북한붕괴론과 동의어였다.
그러나 북한은 붕괴되지 않았다. 붕괴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북한연구'였다. 그런데도 붕괴론은 변이를 일으키며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 북한이 그럭저럭 버텨나간다는 현상유지(muddle through) 개념이 그 것이다. 이 개념은 붕괴 이전 상태에 대한 잠정적이고 타협적인 규정에 불과하다. 개혁 개방을 하면 그 결과로 붕괴하고, 개혁 개방을 하지 않으면 체제의 한계 때문에 붕괴한다는 '개혁 개방 딜레마론'도 붕괴론의 변형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50여년간 여러 차례의 위기 속에서 북한 나름의 적응력과 대응방법으로 체제를 유지해왔다. 오늘의 북한은 바로 그 결과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위기와 도전에 맞서 변화하고 적응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그동안 반복되어온 예측의 실패와 북한 이해의 부족은 "우리의 북한인식 혹은 북한연구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시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을 해야 할 상황이다. <북한정치사 연구 1>의 저자인 김 박사도 그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 50여년간 개혁을 해왔고, 최근 10년간의 위기도 나름대로 관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지속생존이 가능한 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형성과 특징을 올바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해방 이후 4년간 북한권력 구조의 형성과 변화, 그 모순구조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매우 현실적 호소로 들린다. 사실 우리의 잘못된 북한인식과 실제 북한간의 괴리를 좁히는 작업은 북한체제의 원형이 감춰져 있는 해방 이후 북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김 박사는 저서에서 당과 정부, 군대의 형성과정을 정밀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 풍부한 사실(史實)을 동원해 꼼꼼하게 이 시기의 역동성을 재현해냈다. 해방 이후 북한은 연구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으로 색칠된 공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색칠을 벗겨내기 위해 사실에 근거한 실증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방대한 1차 자료의 수집과 정리는 그런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보였음을 드러낸다. 특히 북한 지배엘리트의 충원과 재생산 과정에 관한 연구는 두드러진다.
이제 저자가 제기한 몇가지 논쟁적인 문제를 검토해 보자. 그는 당ㆍ국가체제가 1947년 2월 북조선 인민위원회 창설 직후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조선노동당은 정권기관을 이끌어 나가는 '혁명의 참모부'가 아닌, 인민위원회의 사업 집행을 보장해주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자신의 설명과 배치된다. 각 기관의 당조직이 아직은 해당 단위의 최고지도기관, 참모부가 아니었다는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무리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일성 단일 지도체계구축도 일반적 해석과 달리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중앙상무위원회가 분산되어 있던 재정권과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 근거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당중앙상무위를 완전 장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당의 중앙집권화 조치를 김일성의 권력집중과 동일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접근법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좀 더 분석적이면 좋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소 평면적이고 서술적이다. 물론 이런 판단은 사학도의 글을 정치학도의 시각으로 읽을 때 생기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학도로서는 충분한 사실의 수집과 사실에 대한 경외감이 없는, 정치학도의 과도한 추론이 엉성해 보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해방 이후 북한 연구는 아직도 논쟁중이다. 북한정치사에서 새로 찾아내서 고치고 규명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다. 그러므로 북한문제를 어떤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올바른 북한이해를 가로막는 몇가지 고정관념이 있다.
그 첫째는 "나는 북한을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이다. 김 박사도 지적했듯이 많은 자료의 공개로 북한연구가 많이 진전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북한내부 자료는 여전히 이용할 수 없다. 우리가 북한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둘째,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사회주의, 수령제, 주체사상, 당-국가체제의 관점에서 북한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북한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60년대의 북한은 80년대의 북한이 아니며, 80년대의 북한은 2004년 현재의 북한이 결코 아니다.
셋째,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체제이다"라는 관념이다. 북한체제의 특수성은 분명 북한만의 현상이다. 그러나 그 것이 북한의 전부는 아니다. 북한체제는 사회주의 체제 일반의 성격이라는 범위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북한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북한의 특수한 현상과 일반적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어느 한 순간에 고정된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북한을 본다면 그것은 '우리가 보는 북한'일 뿐이지, 북한 그 자체는 아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ㆍ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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