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Park Yuha - 주진오 교수가 쓴 글의 오류를 이승엽교수가 지적했더니 차단당했는지

(1) Park Yuha - 주진오 교수가 쓴 글의 오류를 이승엽교수가 지적했더니 차단당했는지 원글이 보이지 않게 된 듯 해... | Facebook

주진오 교수가 쓴 글의 오류를 이승엽교수가 지적했더니 차단당했는지 원글이 보이지 않게 된 듯 해 공유한다. 많은 이들이 봐야 할 것 같아서.
나도 차단당할 수 있으니 주교수 글은 캡처해 둔다.
이승엽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일제가 탄압한 건
꼭 조선인이거나 독립운동가이기 이전에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였다.
‘국체‘라는 이름의 천황제체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전에 쓴 적이 있지만, 조선을 합방하던 해에 일본은 자국의 사회주의자/무정부부의자들을 체포해 24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12명을 사형에 처했다.
관동대지진때도 경찰은 무정부주의자/사회주의자들을 십수명을 살해했다. 조선인만 희생된 게 아니었던 것.
30년대에도 경찰의 처참한 고문끝에 숨진 이가 있고, 이교수님도 언급한 고바야시다카지다. 그도 공산주의자였다.
참고하십사 댓글에 그 모습을 옮겨둔다.
너무 끔찍해서 번역은 하지 않는다. 궁금하신 분은 번역기 도움을 빌려 주교수가 인용한 ”박군의 얼굴“과 비교해 보셔도 좋겠다.
’일제‘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조선인’이 타깃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건
결코 ‘일제‘를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
식민지란 전쟁처럼 절멸대상이 아니라 포섭대상이었다.
시대와 구조를 보려 하지 않는 비판은, 본질주의적 증오와 혐오를 키울 뿐이다.
—————————-

<이승엽교수의 지적>
사실관계에 관해 한마디.
(1) 태형과 고문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태형은 형사판결에서의 과료, 벌금 또는 구류, 징역을 환산해서 매로 맞는 것(환산기준은 벌금 1원에 매 한대, 징역 1일에 매 한대)이라, 악법이긴 하지만 합법적인 형집행의 한가지.
그에 비해 고문은 애초부터 불법, 무조건 불법.
(2) 이 글에서는 박헌영 등 조선인 민족운동가에게 가해진 고문과 폭력이 '조선태형령' 때문이라는 듯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착각 내지는 오해.
조선태형령은 1920년에 폐지되는데, 고문은 그와는 아무 상관없이 (어차피 불법인데 뭐) 식민지시기가 끝날 때가지 자행.
(3) 역시 이같은 기술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오해.
'그럼 태형이 없는 일본 본토(내지)에는 고문이 없느냐?'
없긴 뭐가 없어요. 죽도록 때렸는데. 아니 때려 죽이기도 했는데.
프롤레타리아 문학가로 유명한 小林多喜二가 경찰 특별고등계에 잡혀 빨가벗겨진 채로 맞다가 죽은 사건은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
(4)결론. 태형과 고문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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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omments



Park Yuha
“「前歯は折れてる、首には細引きの跡、左のコメカミにはね、何でなぐったか十円硬貨ぐらいの傷あとがある。それから裸にしたところがね、身体中傷だらけで、オマケに腹の下から腿全体が紫色にふくれあがって、それがね、ふつうの人間の倍くらいあるんですよ。よく見ると、その両腿もには、釘か錐を打ちこんだような穴の跡が十五、六もあって、そこは皮が破けて青黒い肉がむきだしているんですよ。それで立会いの安田徳太郎博士が『これでは腸も膀胱も破けてますよ。腹の中は出血でいっぱいでしょう』と言ったんです。で、睾丸も、陰茎もね、普通の人の三倍くらい脹れあがって、やっぱり内出血で紫色になってるんです。指もね、人差し指が逆にヘシ折られてね、指の背中が手の甲へつくんですよ。”
(手塚英孝「小林多喜二」)

"앞니가 부러졌습니다, 목에는 날카로운 흔적, 왼쪽 꼬리에 튀어, 왜 헛된지 10엔 동전 정도의 상처 후가 있다. 아래에서 허벅지 전체가 보라색으로 부풀어 오르고, 그것이, 보통의 인간의 배 정도 있어요.
잘 보면 그 양쪽 허벅지에는 못이나 뿔을 꽂은 것 같은 구멍의 흔적이 15, 6도 있고, 거기는 껍질이 찢어지고 푸른 검은 고기가 벗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입회의 야스다 도쿠타로 박사가 “이것에서는 장이나 방광도 찢어지고 있어요. 배꼽 속은 출혈로 가득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환도, 남근도, 보통 사람의 3배 정도 굳어 오르고, 역시 내 출혈로 보라색이 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집게 손가락이 반대로 헤시 접혀, 손가락의 등이 손등에 붙어 있어요. (데즈카 히데타카「고바야시 타키지」)

홍승기
주진오가 머리를 드는군요, ㅎㅎ
Park Yuha
홍승기 20년쯤 전에 한겨레에서 같이 대담한 적도 있었네요. ㅠ
홍승기
박유하 그때는 그가 덜 아팠겠지요 ~
Gwang-hong Park
전임 대통령께서 제국시대에 통용된 "아카"라는 낙인이, 마치 조선인들을 표적으로 한 폭력이었던 것처럼 연설하셨던 게 생각합니다. 졸저에 동대신인회나 특고경찰 등에 대해 서술했더니, 일본 본토에서도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놀라던 독자반응도 기억에 남습니다.
Park Yuha
박광홍 사실 몰라서 그렇죠. 모르는 일이 훨씬 많은 게 당연한데 알려진 게 전부인 걸로 생각하니까요. 심지어 역사학자조차.
김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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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박헌영은 일제한테 잡혀서 죽지 않았던거지 국민당정권이나 대한민국에서 잡혔다면 죽었을겁니다. 이재유의 동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정부에게 죽었죠. 만주쪽은 이야기가 다르긴한데 일본이나 한반도만 놓고보면 공산주의자로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는경우는 있었지만 죽이진 않았다는게 특이한 경우입니다.
Park Yuha
김용우 치안유지법으로 탄압했는데 사형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실제로는 사형 아닌 고문등으로 죽였는데,
위키에 따르면
“치안유지법 피해자 국가배상청구연맹에 따르면, 이 법에 의해 체포되어 특별고등경찰의 고문과 학대로 194명이 사망했으며(고바야시 다키지 역시 고문으로 사망), 이 사망원인과는 별도로 병사한 사람이 1,503명[21][22]에 달한다. 또한 이 법으로 체포된 사람은 수십만 명, 검찰청에 송치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7만 5,681명(오기노 후지오의 조사에서는 6만 8,274명. 그 중 기소된 사람은 6,550명[23])이 있었다고 후와 테츠조가 제77회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발언한 바 있다[24].”
고 합니다.
김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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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공산주의자를 죽이면 안된다는게 대중의 상식이 된건 그들이 정치적으로 패망한 냉전이후의 관념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를 전복하려 했고 정치적 삶에 대한 책임을 진거죠. 그들은 절대한 무고한 사람이 아닙니다. 파시스트가 무고한 사람이라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죠
Park Yuha
김용우 무서운 얘기네요. 어떤 사상이든 죽이는 것이 당연시되면 안되죠. 그게 바로 파시즘이고요.
김종민
1907년 조선이 사법권을 빼앗겼을 때 조선 백성과 언론의 반응이 흥미로워 도면회 교수님 책을 인용해 페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요즘 교수들은 연구는 안 하고 전부 소설가로 전업하신 듯
.....
1907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은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키고 행정과 사법사무를 통감부 감독 하에 두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위 조약이 반포된 후 신문 논설에서는 조약에 내포된 예속적 성격을 지적하면서도 사법사무와 일반행정 사무와 구분한다는 제3조에 대해서만은 상당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실로 희망하는 하나의 개량은 제3조에 사법사무와 행정을 구분한 것이로다. 금일까지 한 명의 관찰사가 무관과 행정관 및 재판관과 기타 각양을 겸한 자가 많았던 바 이는 부패의 원인이라.
개량이 확실히 필요하니 금번 이 규칙을 적절하게 진행하면 여러 사람에게 유익하리로다 " (대한매일신보, 광무 11년 7월 27일 <신협약>)
개혁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한협회는 1908년 9월12일 "대한법계(大韓法界)의 신일월(新日月)을 비추니 장래 인민 행복은 모두 알 바"라고 찬사를 표하였으며
개혁된 재판제도 하에서 전국민의 억울한 사정을 대표하고 생명 재산의 보호를 담보하기 위하여 신리강구소(伸理講究所)라는 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황성신문, 융희 2년 9월 29일 잡보 신리강구소)
일본인 판검사가 조선의 재판기관을 장악해 감에도 불구하고 (1908년 판사 81명, 검사 35명 - 1910년 판사 183명, 검사 54명)
군수, 관찰사의 불공정한 재판에 피해를 받아왔던 지방민들과 중앙 상급재판소의 폐해를 목도해 왔던 지식인들은 신재판소 개청, 민형사 재판 관련 신규 법령 실시에 많은 기대를 표명하고 통감부의 '시정개선' 사업 중 괄목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도면회 <한국 근대형사재판 제도사> 444쪽)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통감 때 있었던 일이다. 역사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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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김종민 도면회 교수 그 두꺼운 책, 저도 읽었습니다.^^ 좋은 책이죠.
김종민
박유하 저도 읽으며 깜짝 놀랐던 책입니다. 막연히 일제치하 일본 경찰의 독립투사 고문 같은 이미지가 머리 속에 들어 있었는데 조선의 형사사법제도는 능지처참과 고문의 일반화 등 너무나도 야만적이고 형 확정 개념도 없어 숱한 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형사사법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이었습니다.
Park Yuha
김종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생각만이라도 모두가 공유하면 좋을텐데요.
강기봉
믿고 거르는 주진오.
Park Yuha
강기봉 오랜만에 글 읽고 놀랐네요.
Jongin Park
김에 저 주 前관장 포스트를 훑어봤는데, 이태진보다 더 간교하더군요. 며칠 내에 경박한 글 하나 예정입니다.
Park Yuha
Jongin Park 슬퍼요를 누르려다 글 올리신다니 좋아요 눌러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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