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7

독일, 나미비아 식민통치 시절 '학살' 인정…13억달러 지원 2021

독일, 나미비아 식민통치 시절 '학살' 인정…13억달러 지원

독일, 나미비아 식민통치 시절 '학살' 인정…13억달러 지원
2021.5.29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28일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독일이 과거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종족학살’을 자행했음을 110여년 만에 공식 인정했습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27일 성명에서 "독일은 1904∼1908년 제국주의 시절 나미비아에서 행한 만행을 미화 없이 공식적으로 종족학살로 명명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에 비춰 나미비아와 피해자들의 후손들에게 용서를 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미비아 대통령실은 “종족학살 자행에 대한 독일 측의 인정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과거 독일 제국은 1884∼1915년 나미비아를 식민 통치하면서 1904∼1908년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헤레로족을 최소 6만여 명, 나마족을 1만여 명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독일과 나미비아는 2016년부터 종족학살 등 과거사 문제와 배상 문제에 대해 협상을 별여 최근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독일은 이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막대한 고통을 인정하는 조치”로서 나미비아에 11억 유로, 약 13억 4천만 달러의 재정을 지원해 “재건과 발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정 지원은 향후 30년에 걸쳐 이뤄지며 종족학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헤레로족’과 ‘나마족’ 후손들에게 우선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독일 측은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번 지원이 “보상에 대한 법적 요구”에 대해 문을 여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VOA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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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008131807001


식민지배 보상하겠다는 독일 제안 거부하는 나미비아...왜?
입력 : 2020.08.13 18:07정원식 기자




1904년 남서아프리카에서 독일의 식민지배에 반기를 들었던 헤레로 부족이 사슬로 묶여 있다.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남서부 국가 나미비아가 20세기 초 식민지 시절 학살 사건과 관련한 독일의 배상 제안을 거부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12일(현지시간) 전날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이 “나미비아 정부는 독일 정부가 제시한 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일간 더나미비안은 독일이 1000만유로(약 139억원)의 배상금을 제시해 협상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독일 정부가 배상보다는 경제원조를 원하고 있으며 ‘배상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1990년 독립한 나미비아에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왔다는 이유로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와 직접 배상을 거부해왔다. ‘학살’이나 ‘배상’ 같은 표현도 꺼린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독일의 태도와는 대조적인 대목이다. 나미비아 정부는 1000만유로는 자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1884년 나미비아(당시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한 독일은 1904년 헤레로 부족과 나마 부족이 식민지배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독일은 부족민들을 사막에 몰아넣고 음식물 공급을 끊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단수용소에 감금돼 질병과 굶주림, 학대 등으로 사망했다. 그 결과 최대 8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은 1985년 이 사건을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독일은 나미비아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독립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5억유로(약 7000억원) 규모의 경제원조를 했다. 2004년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개발장관이 나미비아를 방문해 사과했고, 지난해에는 다니엘 귄터 연방상원의장이 강제수용소 사망자 위령비 앞에서 묵념을 한 적은 있으나 독일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미비아와 독일은 2015년부터 학살 보상 문제를 놓고 8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독일의 소극적 태도 탓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5년까지도 학살 사실을 부인했다. 지난해에는 귄터 연방상원의장과 게르트 뮐러 개발장관이 잇따라 독일을 방문하면서 독일이 보상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게인고브 대통령은 지난 6월4일 “독일이 1904~1908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학살’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고 정부 최고위층에서 공식 사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나미비아 언론도 “독일이 마침내 학살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와 관련해 “협상이 상호 신뢰 속에서 건설적인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고만 밝혔을 뿐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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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008131807001


탄자니아 간 독일 대통령 "식민지배 시절 범죄 사죄"


송고시간2023-11-01 


이율기자

"부끄러움 느껴…식민지배 희생자 앞에 고개 숙인다"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 옛 식민지였던 탄자니아를 방문 중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독일의 식민지배 시절 폭력행위에 대해 사죄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탄자니아 손게아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독일 대통령으로서 독일인들이 이곳에서 여러분의 조상에게 한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식민지 군인들이 여러분의 조상과 그 전우들에게 한 일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독일 식민지배로 인한 희생자들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일인들은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괴롭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날 1905∼1907년 탄자니아 남부에서 일어났던 마지마지 봉기의 중심지였던 손게아를 방문해 이같이 연설했다.

당시 독일 식민지 주둔군은 독일 식민지배에 대항한 원주민들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수년에 걸쳐 20만∼30만명이 살해되거나 아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독일 제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황제 빌헬름 2세(1885∼1918년) 시절 독일-동아프리카 제국의 일부였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사미아 수루후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과 만나 양국 간 경제협력관계 확대와 식민주의 과거에 대한 공동 규명에 합의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나에게는 우리가 이 어두운 역사의 장을 직시하고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은 문화재와 유해를 반환할 채비도 갖췄다고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덧붙였다.

수루후 하산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나라의 식민주의 유산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서 독일은 지난 2021년 110여년만에 옛 식민지 나미비아에서의 종족학살을 공식적으로 자인하고 용서를 빌면서 나미비아 재건을 위해 30년간 11억 유로(약 1조5천800억원)를 내놓기로 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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