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 핵은 무엇이었나
서동주
승인 2023.12.07
저자가 말하다_
『핵과 일본인』 야마모토 아키히로 지음|
서동주·양지영 옮김|어문학사|266쪽
피폭의 비극 겪었는데 재현된 원전 사고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인의 ‘양면적’ 태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기억과 함께 시작된 전후 일본은 2011년 또 한 번의 피폭을 경험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원전 주변으로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사고의 여파는 근본적(radical)이었다. 무엇보다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많은 일본인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기로서의 ‘전후’가 더 이상은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전후의 일본인은 앞서 있었던 피폭의 체험을 그 이후의 피폭을 방지하는 교훈으로 삼지 못했을까?
일본인의 ‘전후’ 인식에 대한 독창적인 문화사적 연구로 주목받고 있는 야마모노 아키히로 고베시 외국어대학 준교수(부교수급)의 책 『핵과 일본인(核と日本人)』은 바로 이런 질문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전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후 일본의 핵·원자력 인식을 다룬 많은 책이 대체로 원자력발전 체제가 형성된 1950~60년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이 책의 범위는 1945년부터 2010년대까지 전후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있다. 이 책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기원’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기원에서 현재까지의 궤적 전체를 시야에 넣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시간적 범위만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의 측면에서도 전면적이다. 이 책은 전후 일본의 핵 ‘인식’을 지식인들의 발언이나 주요 미디어의 담론뿐만 아니라 만화·극화·영화·애니메이션 등과 같은 대중문화, 심지어 언론사와 내각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까지 실로 다양한 성격의 자료들을 종횡무진 섭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인식’이란 지식인이나 미디어에 의해 ‘대표’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본인의 ‘집단적 (무)의식’ 그 자체에 가깝다.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은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야마모토 교수는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인의 ‘양면적’ 태도에 주목한다. 양면적 태도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핵무기에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핵우산은 거부하지 않는 것. 원전의 위험을 알면서도 가동 중인 원전을 줄이는 데는 소극적인 것. 핵무기의 파괴력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대중문화에서는 그것을 즐겨 소재로 사용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피폭의 비극 겪었는데 재현된 원전 사고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인의 ‘양면적’ 태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 기억과 함께 시작된 전후 일본은 2011년 또 한 번의 피폭을 경험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원전 주변으로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사고의 여파는 근본적(radical)이었다. 무엇보다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많은 일본인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기로서의 ‘전후’가 더 이상은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전후의 일본인은 앞서 있었던 피폭의 체험을 그 이후의 피폭을 방지하는 교훈으로 삼지 못했을까?
일본인의 ‘전후’ 인식에 대한 독창적인 문화사적 연구로 주목받고 있는 야마모노 아키히로 고베시 외국어대학 준교수(부교수급)의 책 『핵과 일본인(核と日本人)』은 바로 이런 질문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전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후 일본의 핵·원자력 인식을 다룬 많은 책이 대체로 원자력발전 체제가 형성된 1950~60년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이 책의 범위는 1945년부터 2010년대까지 전후의 거의 전 기간에 걸쳐 있다. 이 책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기원’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기원에서 현재까지의 궤적 전체를 시야에 넣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시간적 범위만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의 측면에서도 전면적이다. 이 책은 전후 일본의 핵 ‘인식’을 지식인들의 발언이나 주요 미디어의 담론뿐만 아니라 만화·극화·영화·애니메이션 등과 같은 대중문화, 심지어 언론사와 내각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까지 실로 다양한 성격의 자료들을 종횡무진 섭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인식’이란 지식인이나 미디어에 의해 ‘대표’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본인의 ‘집단적 (무)의식’ 그 자체에 가깝다.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은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야마모토 교수는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인의 ‘양면적’ 태도에 주목한다. 양면적 태도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핵무기에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핵우산은 거부하지 않는 것. 원전의 위험을 알면서도 가동 중인 원전을 줄이는 데는 소극적인 것. 핵무기의 파괴력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대중문화에서는 그것을 즐겨 소재로 사용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은 왜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이 되지 못했을까. 사진=위키피디아
오히려 일본만의 특징은 핵무기를 핵에너지의 ‘군사이용’이라고 부르며 부정하고, 원자력 발전을 ‘평화이용’이라 호명하며 양자를 ‘용도’의 수준에서 철저히 분리시키는 사고법에 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원수폭(원자력수소폭탄)’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원자력 개발 체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핵에너지에 대한 이런 이분법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이런 ‘분열적’ 태도 안에 일본 특유의 주체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원전 반대의 입장도 원전을 지지하는 입장도 피폭이라는 ‘고통의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제3자의 공감을 얻기 쉬운 반면, 견해의 차이에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쉽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열적 인식의 사례이지만 동시에 그 저변에는 피폭의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일본인은 핵에너지에 대해 ‘선한’ 주체가 된다는 발상이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이런 발상에서 일본인은 피폭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핵에너지의 평화이용에 가장 적합한 주체가 되며, 동시에 같은 이유로 일본인은 핵무장을 해도 핵을 군사적으로 ‘남용’할 리 없다는 신념을 보게 된다.
이렇게 피폭의 기억은 ‘원자력이라는 꿈’과 강하게 접속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핵무장마저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핵에 대한 ‘양면적’이면서 ‘분열적’인 인식이야말로 ‘피폭국’의 정체성 위에 시작되었던 전후 일본의 행로가 세계 유수의 ‘원전 국가’로 귀착되었던 이유인 것이다.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Tag#서동주#서동주교수#서동주서울대#핵과일본인
오히려 일본만의 특징은 핵무기를 핵에너지의 ‘군사이용’이라고 부르며 부정하고, 원자력 발전을 ‘평화이용’이라 호명하며 양자를 ‘용도’의 수준에서 철저히 분리시키는 사고법에 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원수폭(원자력수소폭탄)’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에 원자력 개발 체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핵에너지에 대한 이런 이분법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이런 ‘분열적’ 태도 안에 일본 특유의 주체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원전 반대의 입장도 원전을 지지하는 입장도 피폭이라는 ‘고통의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제3자의 공감을 얻기 쉬운 반면, 견해의 차이에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쉽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열적 인식의 사례이지만 동시에 그 저변에는 피폭의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일본인은 핵에너지에 대해 ‘선한’ 주체가 된다는 발상이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이런 발상에서 일본인은 피폭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핵에너지의 평화이용에 가장 적합한 주체가 되며, 동시에 같은 이유로 일본인은 핵무장을 해도 핵을 군사적으로 ‘남용’할 리 없다는 신념을 보게 된다.
이렇게 피폭의 기억은 ‘원자력이라는 꿈’과 강하게 접속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핵무장마저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핵에 대한 ‘양면적’이면서 ‘분열적’인 인식이야말로 ‘피폭국’의 정체성 위에 시작되었던 전후 일본의 행로가 세계 유수의 ‘원전 국가’로 귀착되었던 이유인 것이다.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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