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칼럼] 교토국제고의 ‘고시엔(甲子園) 기적’에 감동한 이유
김대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28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고교 전 학년을 다 합쳐도 138명에 불과한 일본의 한국계 교토국제고(京都國際高)가 고시엔(甲子園)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 준 기적에 감동하는 이유가 여럿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감동·감격하는 이유가 다르다. 제일 저열한 것은 반일 민족주의적 호들갑이다. 적진(敵陣) 한복판에 태극기라도 꽂은 양, 한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기라도 한 양 야단법석을 떨며 일본을 적대하는 행태다. 교토국제고 학생 및 야구부원 대다수와 야구 감독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습고 황당한 호들갑이다.
필자가 감동한 것은 첫째, 한국계 학교의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한국어 교가(校歌)가 일본의 KBS 격인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울려 퍼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8·15 광복절을 전후하여 한국에서 벌어진 유아적·정신병적 소동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그 소동은 1948년 8월15일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뉴라이트 시비(친일 매국노 혹은 일제 밀정 규정), KBS가 방영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2~3초짜리 배경음악(일본 국가)에 대한 친일매국 시비, 8월15일에는 일본 국적 투수가 등판하면 안 된다는 등 유치 졸렬한 추태였다.
둘째, 중·고교를 다 합쳐도 학생 수가 16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요, 1999년에야 창단된 야구부가 평균 100대 1이 넘는 지역(교토) 예선을 거쳐 고시엔 본선에 진출한 것만도 대단한데 기적처럼 본대회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필자는 교토국제고 관련 뉴스를 듣고 한국인 특유의 변칙·편법을 쓰지 않았나 잠깐 의심했다.
예컨대 외국계 국제고의 이점을 살려 일본 전역에서 특출난 선수를 스카우트했다든지 대한민국 민단 차원에서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여 아주 좋은 환경에서 연습했다든지 등. 그런데 아니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내막을 비교적 잘 아는 재일교포 출신 김성근 감독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출난 선수를 스카우트 하지 않고 순수하게 교토국제고에 입학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워크와 선수들의 실력을 키워 우승을 차지한 것은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구장의 환경이 좋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운동장 폭이 최대 60m에 불과하여 외야 연습 때는 다른 구장을 빌렸다고 한다. 혹시 한국에서처럼 교과 공부는 별로 안 시키고 야구 연습만 시키지 않았나 의심도 했다. 당연히 일본 교육 당국과 학교는 고교 야구선수를 야구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기계’로 만드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기적은 학생 수와 학교가 줄어드는 저출생 시대요, 민족의식이 희석되는 시대에 학교와 야구부 운영의 본보기가 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198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스토리다.
셋째, 1915년에 시작하여 태평양전쟁 시기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고시엔 대회(올해는 제106회)의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관심 저변이다. 2023년 기준 한국 고교 야구부는 95개인데, 일본은 3800개에 육박한다. 2012년 이전까지는 4000개가 넘었다. 따라서 고시엔 구장의 흙이라도 한번 밟아 보려면 평균 100대 1 수준의 지역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일본 고교 야구팀 100개 중 99개 내지 98개는 고시엔 구장의 흙조차 밟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야구팀이 유지되는 것은 야구가 일본 고교생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가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버린 한국 고교 현실을 떠올리면 참으로 부럽다.
넷째,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된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고교생들의 꿈의 무대가 현재 일본의 수도 도쿄도, 과거 수도 교토도 아닌 곳에 있다는 사실도 작은 감동의 하나였다. 1924년 개장한, 아시아 최고(最古)의 고시엔 구장은 오사카 서쪽 효고현(兵庫縣)의 세 번째 도시(인구 48만 명)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다.
다섯째, 교가(校歌)에 얽힌 사연과 학교 측이 NHK에 제공한 일본어 번역 자막이다. 이 자막에는 한·일 양국 간에 명칭 갈등이 있는 ‘동해’는 ‘동쪽의 바다’로 ‘한국(韓國)의 학원’은 ‘한일(韓日)의 학원’으로 살짝 바뀌어 있다. 한·일 간의 외교 갈등에 불을 지피지 않으려는 지혜로운 오역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선거로 선출된 총리와 행정각부 장관을 천황의 대신(大臣)으로 부르면서도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편 교가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내용이 있어서 별도의 응원가를 만들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학생 대다수가 학교 정체성을 존중하여 한국어 교가를 부르기를 고집했다는 사실도 감동적이다. 일본의 포용력과 한국(좌파)의 협량함을 절감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