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대학살: 독일이 여전히 비판 받는 이유
사진 출처,National Archive of Namibia사진 설명,1904~1908년 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 수만 명이 살해됐다
2021년 6월 8일
지난 5월 28일 독일 정부는 지난 세기 자국이 나미비아에서 자행한 대량학살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나미비아의 분석가 엠지 에라스투스는 독일의 사과가 유럽이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말 나미비아와의 협상을 마치며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과거 자국이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 자행한 살육을 대량 학살로 규정했다.
학살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독일의 식민지배 '배상' 시도
그러면서 9억4000만달러가 넘는 규모의 개발 원조를 나미비아에 약속했다.
독일은 1904~1908년 나미비아에서 수만 명의 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살해했다. 당시 오바헤레로족의 80%, 나마족 인구 4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은 피해자들의 땅과 가축도 몰수했다.
이 모든 건 주민들이 봉기에 참여한 데 대한 처벌이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사진 설명,쇠사슬에 묶여 있는 헤레로 반정부 세력들
언론을 통한 독일의 사과 발표가 잘 짜여진 '보여주기'식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독일은 법적 책임을 피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언어로 성명을 발표했다.
또 이번 사과는 오바헤레로족 내 가장 큰 파벌이 독일을 대량학살로 제소하려던 와중 발표됐다.
독일의 사과 내용이 회의적인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상당수 연구에 따르면 현재 독일인들은 과거 독일이 제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오늘날 토고, 나미비아, 부룬디, 탄자니아 지역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데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공허한 약속'
1990년 나미비아가 독립을 이룬 뒤에도 독일이 나미비아에 지원을 이어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은 자국의 식민지 과거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을 항상 꺼려왔다.
2004년 독일 개발부 장관이 나미비아 대량학살 100주기를 맞아 발표한 사과문은 '반쪽짜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사진 출처,Getty Images사진 설명,나미비아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 동상
나미비아에선 독일의 대량학살에 대한 명백한 인정과 사과,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그 결과 양국은 '모두들 알고 있지만 다루기 꺼렸던'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양국의 협상은 독일이 대량학살을 인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협상 선언문은 빈 껍데기라는 지적도 샀다.
먼저 국내 사정과 기타 정치적 이유로 독일 정부가 선언문 발표를 서두른 측면이 있다. 독일이 서두르는 바람에 나미비아 정부를 포함한 모두가 허를 찔렸다.
독일이 사과 성명을 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을 때, 나미비아에선 학살 피해 지역의 지도자들이 독일의 보상 문제를 둘러싼 협의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일각에선 독일이 프랑스를 의식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의 르완다 집단학살을 사죄했는데, 이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독일도 '이 때다' 싶었을 거란 주장이다.
독일이 사과 목적으로 제시한 금액이 원칙적인 배상 요구에 못 미친다는 점도 비난의 대상이다.
독일의 배상액은 일부의 기대치보단 훨씬 적은 액수로 나미비아 재건과 개발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사진 출처,Getty Images사진 설명,전통 부족 지도자들은 정부의 이번 협상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과 나미비아가 맺은 협정이 어느 쪽에 더 이득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번 합의는 피해자를 배제한 채 이뤄졌다.
개발 원조금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독일은 식민지 범죄에 대해 '과소 포장하거나 얼버무리지 않고' 속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독일 정권은 자신들의 세계관에 아프리카인을 최하위로 보는 등 인종 차별적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월감에서 우러나온 지원금'
식민지 시대 독일은 아프리카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경제적, 기술적 변화를 끌어낼 능력이 부족한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이런 관점은 과거엔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인식을 정의하는 기준이 됐고, 오늘날에도 종종 포착된다.
개발 원조는 여전히 우월감의 일환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원조를 받는 자와 주는 자 사이엔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된다.
독일의 이번 사과가 법적 파장이 적은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애당초 나미비아에서의 학살을 가능케 했던 양국의 불평등한 관계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식민주의 지배국으로부터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건 오바헤레로족와 나마족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단체와 국가들이 배상을 요청해 왔다.
부룬디와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와 독일에 각각 배상금 43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필리프 벨기에 국왕은 콩고민주공화국에 '가장 깊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완전한 사과는 아니었다.
최근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의 유감 또는 사과 발표가 빈번해졌지만 이들이 배상금을 지불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배상금 지급시 생길 법적 파장, 그리고 지급 대상 규모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EPA사진 설명,이번 협상은 수년에 걸친 피해자 측 화해 요구의 결과물이다
나미비아의 희생자 후손들은 문화와 관습을 박탈당한 채 고국에서 쫓겨나야 했다.
일부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다.
유대인 피해자들이 홀로코스트 배상금을 받은 것처럼 오바헤레로족과 나마족 역시 같은 처우를 받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나미비아 피해자 대부분이 (심지어 독일과의 협상을 지지했던 이들마저) 독일의 이번 사과를 완강히 거부한 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한 지역 지도자는 정부 측 지역 수반 5명을 대표해 '독일의 합의가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피해자는 배제된 협상
나미비아 피해자 측은 독일이 30년간 나미비아 재건사업에 쓴 금액이 대량학살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독일 정부가 어떻게 고작 그 정도의 금액을 내놨는지 묻고 있다.
또 비공개로 진행된 독일과 나미비아의 회담에서 피해자 후손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선 식민주의 폐해를 직접 겪은 당사자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이 진정으로 식민지와 화해하고 싶다면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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