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너무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누구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지
인재를 대접하지 않고 노력과 헌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 것
선배님 전상서
죄송한 말씀 먼저 올립니다. 저희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년 3월에 막연히 돌아올 거라 생각하셨다면 기대를 버리십시오. 저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정부와 비의료인을 향한 눈속임이 아닙니다. 수사적인 표현도, 겉치레도 아닙니다. 수련의 이유가 사라졌으니 정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진심을 그대로 전한 것뿐입니다.
저는 권역응급센터의 살림을 책임지던 응급의학과의 치프 레지던트였습니다. 서울의 학교를 졸업하고 모교 인턴을 마친 뒤 인기과 경쟁에서 밀려났던 저는, 고향인 이곳 강원도로 넘어오기 전 로컬을 먼저 경험했습니다. 첫해는 응급실에서, 다음 해는 통증클리닉에서 일을 했습니다.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던 초보 의사에게 로컬은 매혹적이었습니다.
말로만 80시간이지 실제로는 일주일에 120시간씩 일하던 대학병원의 살인적 로딩은 없었고, 의사 중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잡부의 일을 하며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을 받던 대학병원과 달리 과장님이나 원장님 소리를 들으며 과분한 대우를 받았죠.
제가 좀 더 게을렀거나 돈에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 선배님들이 의사 취급도 하지 않는 일반의 신분으로 그대로 로컬에 주저앉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긴박한 응급실에서의 드라마틱한 경험을 잊지 못해서, 좀 더 배우고 익힘으로써 ‘사람 살리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싶어서, 나아가 의사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일반의로 남고 싶지 않아서 수련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미약한 제 힘으로 위기를 넘긴 분들의 감사하다는 말 덕분에 바이탈을 하기로 결심했고,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이 진심으로 즐거웠기에 응급의학과를 택했습니다. 로컬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요.
그런 저조차도 이제는 돌아갈 생각을 버렸습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불합리한 수련 시스템을 견딜 만큼 전문의 자격증의 가치가 높았던 이전과 달리,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모든 것이 휴지조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던 양말을 던져서 벽에 붙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백일당직의 시대도 아닌데 뭐가 불합리하냐고요?
요즘 내과 전공의들은 내시경 스코프를 구경조차 못합니다.
그뿐입니까. 외과 전공의들은 충수돌기 절제술을, 정형외과 전공의들은 쇄골 ORIF를 단 한 건도 집도하지 못한 채 졸국합니다.
저만 해도 모시고 있던 교수님들께 직접 배운 것보다 유튜브로 배운 술기가 많습니다.
한때 어엿한 의사의 표식이었던 전문의 자격증은 도제식 교육의 붕괴와 함께 가치가 바닥으로 내리꽂혔고, 수련은 병원이 염가에 의사를 부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전문의가 되면 수가라도 더 받을 수 있지만 어차피 적자인 건 똑같고, 그마저도 부당한 삭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웠던 선배님 시절과 달리, 이러한 사정을 나누며 학생 시절부터 수련에 환멸을 느낀 젊은 의사들은 전문의가 되는 일에 예전만큼 집착하지 않습니다. 무리한 정책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 이전에도 면허를 따자마자 개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많았습니다.
교과서대로 진료해도 삭감을 일삼는 심평의학의 횡포와 ‘의사는 잘못이 없어도 도의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사법의학의 압제에 시달리다 자의로든 사고로든 목숨까지 잃는 선배님들을 보며, 저희 세대는 전문의가 되어 보험과를 하느니 차라리 일반의로 비보험 진료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입니다.
5공화국 이래 의사들에게 항상 적대적이었던 정부의 강압에 끌려다닌 원로들의 원죄를, 젊은 의사들은 대속(代贖)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조건 선배님들의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고요하게 멸망을 향해 나아가던 의료 시스템에서 20년 뒤에 벌어졌어야 할 일이, 뜻하지 않은 계기로 조금 빠르게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수련을 안 받는 게 합리적임에도 십 원 한 장 안 되는 감사 인사와 사람을 살렸다는 ‘바이탈 뽕’에 취해 몸과 마음과 젊음을 갈아넣던 저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공부를 못해서 바이탈과를 한다는 ‘낙수의사’ 취급을 받았고, 저희 응급의학과는 성범죄자가 자신의 과오를 방어하기 위해 가는 ‘속죄의학과’이자 사람을 청부살인할 음모를 꾸미는 ‘암살의학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응급실에서 취객의 발에 속절없이 얻어맞을 때도, 타과에 최종 진료를 의뢰하며 굽실거릴 때도, 경증 환자가 왜 자신을 먼저 봐주지 않느냐고 악을 쓸 때도 이 정도로 굴욕적이고 참담한 심정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려낸 환자들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응급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2월 말 응급실 식구들에게 ‘곧 해결되겠죠. 다음 주에 봐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온 저희는 의사면허를 봉인당한 채 반년 넘게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저는 대리운전을, 제 동기는 과수원 일용직을, 제 아랫년차는 학원 보조강사를, 예비 1년차는 카페 알바를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일자리만 문제였을까요. 저희를 도와주신 의국 선배님도 물론 한두 분 계시긴 했지만,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분들은 대부분 저희의 사정을 알면서도 힘내라는 연락조차 주지 않으셨고, 기껏 오는 연락이라고는 ‘너희가 없어서 힘드니까 나 좀 덜 힘들게 돌아오라’는 투정뿐이었습니다.
삶이 위기에 다다라야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기(史記) 자객열전의 주인공 예양(豫讓)은 ‘주군이 자신을 범부(凡夫)로 대하면 자신도 주군을 범부로 대하고, 주군이 자신을 국사(國士)로 대하면 자신도 주군을 국사로 대한다’고 했습니다. 짧다면 짧은 수련 기간 내내 충성을 다한 저희를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 분명해졌으니, 돌아갈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혹시 모르죠. 주 52시간 근무도 많다고 불평하는 시대에 80시간 넘게 일하며 사람이 실제로 죽어나가는 수련 시스템이 바뀌면, 바이탈과 의사가 더 이상 낙수의사 취급을 받지 않으면, 무분별한 소송과 무과실 배상 판결이 사라지면, 유튜브보다 스승님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지면 돌아갈지도요. 그런데 그런 세상이 오면 저는 수련을 받을 수 없을 만큼 늙어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탈과를 무시하는 풍조가, 의사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이, 착취로 얼룩진 수련 시스템이, 교과서대로 진료하면 빚더미에 앉는 수가 지불체계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내년 3월이든 내후년 3월이든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안 돌아가면 뭘 할 거냐고요? 반년 동안 대리운전과 매장 카운터 알바를 전전하며 살다가 6월에 대출을 내어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선배님들처럼 ‘전문의가 돼야 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문의 자격을 따고 나서 부업으로 하려던 가게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았음에도 잠재적 살인자 취급을 받던 응급실에서의 삶보다 하루 열두 시간씩 카운터에 앉아 손님을 맞으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파는 지금의 삶이 행복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곳에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정부도, 살리지 못한 의사를 살인자 취급하는 사람도, 노예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주인도 없습니다. 다만 손님이 머무는 동안의 소음과 손님이 지나간 뒤의 정적이 있을 뿐.
2월에 병원을 나온 직후 친구들과 꽃나들이를 갔습니다. 인세(人世)의 지옥인 응급실과 달리 바깥세상은 참으로 평온하더군요. 따스한 햇볕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온 젊은 엄마도, 손을 맞잡고 벤치에 앉아있던 노부부도, 서툴게 사랑싸움을 하던 어린 커플도, 저 멀리서 뛰어다니던 강아지도 모두 봄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게 꽃이 흐드러지던 봄날에 병원을 나와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의사이기 전에 엄마와 아빠의 꿈과 사랑으로 자라난 아들과 딸임을, 병원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수련만이 의사의 유일한 길이 아님을,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업(醫業)만이 아님을, 행복도 불행도 슬픔도 기쁨도 병원 바깥에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요.
다시금 죄송한 말씀 올리며 맺습니다. 저희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말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의사가 아닌 곳에서 비로소 삶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기쁩니다. 수련병원을 떠난 제 동료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여 언젠가 다시 뵐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돌아오지 않을 마음으로 떠난 지역 필수의료의 벼랑 끝에서,
한때 응급의학에 투신했던 후배 올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