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5

한국사회 온갖 모순, 1960년대에 시작됐다 :: 문화일보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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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온갖 모순, 1960년대에 시작됐다

예진수 기자
입력 2012-12-10 


1960년 7·29 총선을 앞두고 한 여성단체 주최로 열린 여성 시위 행렬을 다룬 일간지 기사. ‘축첩자(첩을 두고 있는 남성)엔 투표하지 않는다’‘아내 밟는 자, 나라 밟는 자’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1960년대는 월간 종합교양지 전성시대였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종합교양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쟁쟁한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한 사상계, 최인훈의 문제작 ‘광장’이 연재됐던 새벽, 1963년에 창간된 세대, 일제강점기에 창간됐던 신동아 등 숱한 월간지들이 지성의 불빛을 밝혀줬다.

또한 1960년대는 소설가 김승옥의 ‘감수성의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답답한 냉전 체제와 원조에 의존하던 지긋지긋한 보릿고개 경제, 어두컴컴한 서울 거리, 포장마차의 참새구이처럼 전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청년의 모습 등이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을 매개로 한국의 문학뿐 아니라 지성계도 빠른 속도로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0년대 첫 무대에 오른 신중현 역시 ‘한국 록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인 1960년대 사회, 문화, 시대풍조를 탐사한 책이 나왔다. 시간적으로 지금과 가장 가까웠던 과거를 제대로 탐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현재를 헤쳐나갈 통찰력을 얻기도 어렵다.

권보드래(국문학) 고려대 교수와 
천정환(국문학) 성균관대 교수가 공동으로 쓴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는 

지금과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들 삶과 마음속의 ‘좋은 전설’인 동시에 ‘어두운 망령’인 1960년대를 성찰하고 있다. 

문학, 철학, 음악, 영화, 학술, 문화평론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1960년대 격변기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지식인과 예술인의 발자취를 좇는다. 책에서는 미디어와 대중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치사, ‘사상계’ ‘청맥’ 등의 잡지, 최인훈의 ‘광장’ 등 문학작품을 분석한 지성사적 조명이 교차한다.

먼저 ‘1960년대를 묻다’의 저자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풍요와 개발을 향한 욕망이 충돌하는 등 한국사회의 온갖 불협화음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4·19 세대와 1960년대 지성의 자기 모순도 꼬집는다. 자유와 반공의 시대를 동시에 살고, 민족(주의)적이며 동시에 열렬히 서구를 추종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의 적대적 공생관계도 분석했다. “빵보다 자유”를 선택한 이청준의 ‘허기’의 정신성, 반공영화의 도구화, 박정희 시대 문화정치의 명암도 들춰낸다. 

이어령붐의 허실, 1960년대 한국 독서계의 일본 대중문학 번역 신드롬, 좌절된 중립의 꿈 등 당대의 논쟁을 입체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960년대에 황금 만능, 경제 제일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졸부를 등장시켰음에도 저항의식과 인문학적 교양이 함께 커가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광경도 있었다는 것.

저자들은 민주화와 산업화가 각각 인간적 존엄과 인간계발의 필요조건이듯, 이 두 이념은 1960∼1980년대 개발연대의 화두이자 지상목표로 경쟁하고 보완되며 커져 왔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상계 연구팀이 펴낸 ‘냉전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사상계’(소명출판)도 
1950년대부터 1962년 말까지 한국 지식인 사회에 단비 같았던 종합 교양지 사상계의 담론 지형을 그리고 있다. 
4·19 혁명을 전후한 잠깐의 시기를 빼면 이 시기에 사상계 역시 정치사회적인 면에서 반공주의의 틀 안에 갇혀 당대 정치현실에 대해 피상적·관념적 비판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은 사상의 전반적 논조가 반독재 투쟁으로 바뀐 1963년 후반 이후에 대한 연구는 다음으로 미뤘다. 보다 입체적이고 광범위하게 1960년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분석할 수 있는 학제간 공동 연구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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