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월북시인 임화 실명소설 나와
[문화] 월북시인 임화 실명소설 나와
'낭만에 취해 불길로 몸던진 부나비'
金侊日기
입력 2003.01.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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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용모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아 ‘연애박사 ’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현해탄 ’의 시인 임화의 1950년대 모습.
카프(KAPF) 서기장을 지냈으며, 해방 후 대표적 월북시인인 임화(林和)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실명 소설이 나왔다. '통한의 실종문인'
'문학사의 길찾기' 같은 현대사 실록물을 주로 써온 저술가 정영진씨가
장편소설 '바람이여 전하라-임화를 찾아서'(푸른사상刊)를 냈다. 이
책은 한국 일본 미국 등지로 임화(1908~1953)의 기록을 7년 동안
"추적한" 결실이다. 형식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90% 이상 실제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소설은 우선 임화가 북한에서 박헌영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임화는 1953년 평양에서 미국 스파이 죄목으로
숙청됐는데, "그가 진짜 미국 스파이였을까" 하는 의문이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북한의 최고 검찰소 검사를 지내다 남파된 비전향 장기수
'김철'에게 묻자 그는 대답한다. "임화가 뭐 대단한 놈이라고
난데없이 임화 얘기를 꺼냅니까? 임화? 흥, 그놈은 개요, 개!"(29쪽)
다시말해 "임화는 왜정 때 이미 일제의 개가 됐고, 해방 후에는 그 짓이
들통날까 봐 다시 미국의 개가 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임화는 카프
해체계(解體屆)를 일경에 내고 전향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에서 취재한 결과를 갖고 다른 결론에 도전한다. 당시
북한의 문예총 위원장이었던 소설가 한설야(韓雪野)의 시기와 모함
때문(180쪽)에 임화가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임화에게도 조기천(趙基天),
기석복(奇石福) 같은 우호세력이 있었으나 한설야에 대한 김일성의
총애가 워낙 컸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1962년 일본의 진보적 좌파 잡지 '중앙공론'에 연재된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의 '북의 시인 임화'에 대해 반박한다. 한국에도
번역된 (1987년·미래사) 이 소설은 임화를 "비열한 스파이"로
묘사했는데, 이에 대해 정영진씨는 "허위와 착오로 일관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21가지 예증을 들고, 이 소설이 "한국 현대사의 실록을
빙자한, 다분히 조작되고 왜곡된 거짓투성이의 대중추리소설에
불과하다"(100쪽)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1929년판 '기차여행안내'라는 책자까지 일본에서 구입, 어떻게
임화가 특급열차 노조미(望)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고, 밤11시30분에
관부연락선을 탔는지도 실증(實證)에 가깝게 추정하고 있다. 임화의
첫부인 이귀례(李貴禮), 둘째 부인 지하련(池河連), 그리고 처남인
이북만(李北滿)의 국내외 기록과 후손들을 낱낱이 추적하는 열정도
보이고 있다.
정영진씨는 "임화의 노래는 언제부터인가 시인의 노래가 아닌,
종파(宗派)의 노래로 들린 데서 비극이 싹텄다"고 말했다. 물론
임화에게도 책임은 있다. '일제를 순결하게 살지 못한 책임, 그럼에도
친일 청산을 앞장서서 부르짖은 책임, 주제넘게 정치에 깊이 개입한
책임, 하필 패자로 몰락한 박헌영에 줄을 선 책임, 뒤늦게 승자 쪽에
전향하려 했으나 또한번의 위장전향처럼 비친 책임'(92쪽) 등이다.
한마디로 '낭만에 취해 정치의 비정함도 모르고 불길에 뛰어든
부나비'(327쪽)였다는 것이다. '바람이여 전하라'는 임화의 전선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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