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가폭력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지난 2000년 그의 역작 <전쟁과 사회>를 출간했다. 당시 나도 이 책을 밤새워 읽으며 가슴을 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그는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피학살자 진상규명이라는 금기를 건드리는 일을 시작했다. 지난 2005년엔 진실화해위원회의 상임위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피학살자 조사활동을 지휘했다. 그런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최근 <권력과 사상통제>라는 신간을 냈다.
▲책 표지 ⓒ 역사공간관련사진보기
저자는 최근작인 <권력과 사상통제>에 대해 이렇게 자평한다.
"이 책은 2000년 <전쟁과 사회> 첫 출간 당시 구상했던 <전쟁과 사회> 제2부라고 봐도 좋다. 그 당시 곧바로 <전쟁과 사회> 제2부 작업에 돌입하려 했으나, 한국전쟁 민간인 피학살 진상규명운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차분히 연구 작업에 몰두할 여유가 없었고, 특히 2004년 과거사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어 애초에 구상했던 기획이 20여 년 미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은 저자의 20년 밀린 숙제인 셈이다.
요즘 대통령 윤석열이 임명한 김광동씨가 이끄는 진실화해위원회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지난 16일 진행된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는 국정원 출신 황인수 진실화해위 조사국장에 대한 보고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황인수씨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석달윤 등 간첩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조작은 아니"고 "절차상의 하자"라 주장했으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과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의 숫자를 맞추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한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회 변장 출석'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욱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 등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는 지난 16일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파면 촉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피해자 유족들이 김광동 위원장의 망언을 규탄,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사무실 앞 복도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김광동 위원장 측은 이런 피해자들 마음을 헤아려 주거나 화해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싸늘하게 경찰을 불렀다. 유족들은 퇴거불응 혐의로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가 연행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 진화위 김광동 위원장 규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농성을 하며 김광동 위원장의 망언을 규탄하고 있다. ⓒ 이정민관련사진보기
이런 와중에 최근 김동춘 교수가 펴낸 <권력과 사상통제>는 뜨거운 '역사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요즘 대한민국에 시의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지난 5일부터 19일까지 저자와 이 책과 관련해 간간이 서면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역대 정권들의 사상 통제... "해방 뒤 미국, 친일 세력 그대로 앉혔다"
- 먼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
"박정희 정권, 특히 유신체제 하의 전향 공작을 중심으로 해서 이승만 정부 이후 역대정부의 요시찰인 (국민) 사찰, 주민통제, 교육을 통한 사상주입 등을 살펴보면서 한국 사상통제의 역사와 특징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사상통제가 어떻게 일제의 사상통제를 이어받고 있는지, 동시대 냉전체제 하의 자유진영의 사상통제와 얼마나 같은 궤도 속에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오래전에 정치사상적인 이유로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인 30년 이상 엄혹한 수형생활을 한 사람이 수십 명이 남한사회에 있었다는 사실이 한국의 냉전 분단 지배체제와 사상통제,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하는 한국정치의 허구성 혹은 실제모습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현미경이라 생각했다.
즉 좌익수에 대한 가공할만한 폭력은 바로 보통 (비정치적인)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의 제약, 사상과 양심의 자유 제한을 달리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김동춘 ⓒ 김동춘관련사진보기
-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내가 수행한 과거의 한국전쟁 피학살자에 대한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가혹한 사상통제의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언과 기록을 대면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난 30여 년 동안 수집했던 사상통제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 그것을 전체의 책 구도 속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녹여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피해자의 증언은 풍부하지만, 전향공작과 요시찰인 사찰을 담당한 과거 공안기관의 요원들이나 경찰, 그리고 주변의 망원 즉 비밀 감시요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 대한민국 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사상통제의 특징은?
"경찰력을 동원한 동·리, 마을단위의 감시 체제와 연좌제, 한번 반(反) 체제 반정부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집요한 사찰과 감시 등이다. 정치범을 처형하는 지금까지의 전체주의 북한도 그렇지만, 20세기 전 세계에서 한반도에서처럼 권력이 집요하게 반대파를 사찰하고 감시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기성세대 한국인들이 대체로 이런 내용을 모두 알고 있으나 드러내고 말하지 못한다."
- 박정희-전두환 정권하의 대다수 지식인들은 반공주의 도그마를 비판하지 않은 채 복종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함석헌, 문익환, 리영희, 송건호 등 극소수 지식인들은 용감하게 그런 야만과 맞섰다. 맞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월남한 기독교인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발언 면허증 혹은 신분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남한 출신들은 대부분 좌익으로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조그만 정부비판도 자제하면서 살았다. 물론 신앙의 힘도 무시할 수 없고, 조선시대 이래의 선비정신도 이들의 용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 진실화해위, 유족을 두 번 죽여... 활동 중단해야"
▲지난 5월 30일 성공회대 퇴임 강연, 김 교수 ⓒ 김동춘관련사진보기
- 종교적 동기라 해도, 전쟁 참전·군 입대를 거부하는 퀘이커 교도들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행위도 국가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국민의 의무를 무시한다며 대한민국에서는 정치범죄로 취급된다. 이런 '정치범' 또는 '사상범'들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양심적 병역거부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으나, 국가 시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각종 위협과 불이익은 여전하다. 정말 이들 확신범들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본다면 타이완에서 실시된 정도의 일정한 사회적 격리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범이 아닌 이상 어떤 인신 통제도 정당화될 수 없다."
- 일본 식민지 정권이 대한민국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일까?
"경찰, 군대, 검찰 등 억압적인 지배기구다. 한국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은 강력한 경찰과 헌병 기구, 교육을 통한 국민통제가 필요했다.
그런데 해방이 분단으로 이어진 남북한은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시행한 것보다 더욱 조직적으로 사상을 통제하는 기관을 부활시켰고, 일제의 것보다 훨씬 가혹한 사상통제가 실시되었다."
- 해방 후 미국이 대한민국 역사에 미친 가장 큰 명암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제의 경찰제도, 친일 우익세력을 이후 대한민국의 항구적인 지배세력으로 앉힌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국가를 수립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 오늘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검찰은 과거 군부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에 의해 육성된 세력이다. 그들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사건조작, 정치적 편향적 수사, 고문까지도 묵인하고 방조한 세력이다. 그런데 그들을 길러낸 군부, 독재정권이 사라지자 그들이 이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 세월 정치검찰은 오직 자신의 이익, 즉 옷을 벗은 다음 막대한 경제적 부를 취득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는 일만 자행했지, 법치를 제대로 준수한 적이 없다.
때문에 검찰은 한국의 법치, 도덕과 윤리의 타락, 사회정의의 실종을 가져온 최대의 책임 세력이다. 이 조직을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정의 수립은 불가능하다."
- 대통령 윤석열이 임명한 김광동씨가 이끄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진실화해위원회의 입법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좌익 감별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학살 유족을 두 번 죽인다. 당장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 과거사정리 문제,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없다. (직에서) 빨리 내려오는 것만이 우리 국가와 국민에게 복이 될 것이다."
- 올해 성공회대를 정년 퇴직하셨는데 대학을 떠나며 느끼는 감회는 어떤지. 향후 계획은?
"대학을 개혁하고 교육과 학문을 바로 세우려 몸부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제대로 성공한 것은 거의 없고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이 좁은 땅, 작은 나라에서 학문하는 쓰라림과 불행감을 수십 년 간 맛보고 있다.
시민의 정치적 각성, 사회의식의 제고를 위한 시민교육을 계속하기 위해 좋은세상연구소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좀 긴 호흡을 갖고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저작을 한두 개 남기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저자 김동춘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비평』 편집위원,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성공회대 명예교수다. 제20회 단재상과 제15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저서에 『반공자유주의』, 『대한민국은 왜?』,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전쟁과 사회』,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 『분단과 한국사회』, 『한국 사회과학의 새로운 모색』,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시험능력주의』 등이 있다.
권력과 사상통제
김동춘 (지은이), 역사공간(2024)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