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알라딘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은이)
민서출판사200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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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 전혜린 에세이 2[품절]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책소개
독일 유학이후 대학교수로 생활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자서전적 에세이집. 홀로 걸어온 길, 마지 막 편지, 독일로 가는 길, 나에게 옮겨준 반항적 낙인, 집시처럼, 도나우 강 기행, 나의 딸 정화에게 등 자신의 생활 주변을 소재로 한 글들이다.
목차
001. 1958년 나는 죽음을 보았다 002. 1959년 헤세로부터의 편지 003. 1961년 미친듯이 살고 싶다 004. 1962~3년 흔들리는 영혼 005. 1964년 또 가을이 오고
책속에서
사랑의 행위에서도 지적인, 너무도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28쪽
- 이매지사랑은 일종의 영구적 예외의 상태이며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또 자기 자신에 대한 또 자기들 이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 상태다-33쪽
- 이매지추억은 괴로왔던 일로만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59쪽
- 이매지사랑하면서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를 고려하고 그 연후를 계산하고 하는 진정하지 못한 태도는 그들이 배격하는 바다. 일단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이다. 변명이나 보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다.-101쪽
- 이매지누가 그들을 쫓는 것일까? 바로 자기 자신들인 것이다. 케스트너의 말처럼 원을 그으면서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불안과 공포감을 가지고 그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그들은 마취를 찾는다. 절대로 혼자여서는 안되니까, 고독만은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니까,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무서운 것이다.-105쪽
- 이매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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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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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31세로 요절한 독문학자이자 독일문학 번역가.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여중고에서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 후 귀국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를 맡는 한편, 번역 작업을 했다.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등의 탁월한 독일문학 작품들이 전혜린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는 소녀 시절부터의 집념,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 관념, 지식에 대한 숭배, 그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은 이후 ‘전혜린 신화’로 남게 된다. 저서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있다. 역서로는 프랑소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에른스트 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온 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W. 막시모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 하인리히 노바크의 『태양병病』등이 있다. 1965년 1월, 항상 인습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너무 일찍 이 세상과 작별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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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선인(仙人)>으로 불리며 전후 독일 문단을 이끈 작가 하인리히 뵐. 그가 죽은 지 25년째 되던 해인 2010년, 독일의 주요 언론들은 그의 삶과 문학을 집중 조명하며 특집 기사들을 게재했다. <뵐은 25년 동안 죽어 있다>(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독립과 자유를 추구한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귄터 발라프). 독일 문단 내에서는 이와 같이 오늘날 뵐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을 보여 주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후반에 뵐의 중, 후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출간된 바 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에서는 <하인리히 뵐>이라는 이름을 모두에게 각인시킨 뵐의 초기 대표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정식 계약을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는 1952년의 어느 주말, 한 부부를 둘러싸고 48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당 전화 교환수로 한 달 임금이 320마르크 80페니히인 프레드 보그너와 그의 아내 캐테 보그너를 주인공으로, 먼지와 얼룩, 담배 연기로 가득한 전후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쓰라린 사색과 따뜻한 대화가 조화를 이루는 뵐 특유의 글쓰기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평단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출간된 해에 1만 7천부가 판매되었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절망감을 전면으로 드러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후의 먼지에 내몰려 침묵하는 가난한 부부 이야기
하인리히 뵐은 이 작품에서 가난한 부부의 시점을 교차시키는 형식을 통해 전후 하층민들의 동선(動線)을 추적한다. 주인공 프레드는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좁은 단칸방에서 사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어느 토요일 오전, 그는 임금을 집으로 부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러, 돈을 빌리러 이 집 저 집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술집, 간이식당, 오락 기계, 광장, 성당, 묘지 주변을 떠돌다 지인들을 찾아가 잠을 자는 것이 집을 나온 뒤 그가 반복해 온 일과다. 한편, 그의 아내 캐테는 세 아이 때문에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토요일 오전, 그녀는 벽에서 부서져 내리는 석회 가루들을 끊임없이 닦아 내고, <힘 있는> 이웃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주의시키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외출이라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서둘러 장을 보고 성당에 들르는 것이 전부다.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지 못하고, 머물고 싶지 않은 곳에 머무는 모순적인 상황을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쾰른 시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절묘하게 풀어내는 뵐의 재능은 가톨릭교회와 시민 계층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깊이를 더한다. 불에 타서 무너져 내린 폐허 더미들 사이에 솟아 있는 고딕식 성당, 성당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프레드는 생각한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저 안은 어쩌면 따뜻할지도 몰라.>(본문 38면) 그러나 실제로 그가 들어간 성당 안은 바깥보다 더 춥다. 프레드가 느끼는 박탈감은 성 히에로니무스 축일을 맞아 장엄하게 펼쳐지는 성체 행렬에서 붉은색 순교자 복장을 하고 위엄 있게 걷는 주교를 바라보는 순간 정점을 맞는다. 캐테 역시 집 안에서 같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부부와 같은 집에 사는 프랑케 부인은 주택 위원회의 회장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의 방 하나를 부부에게 손수 내어 주면서까지 부부가 새 집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 그녀는 <애들 중 하나가 화장실을 썼다 하면 서재에서 달려 나와 화장실이 청결한지 점검>(본문 151면)하는 등 캐테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시민 계층의 대변자다.
가끔 나는 죽음을, 이승의 삶에서 저승의 삶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순간 내게 남아 있게 될 것을 상상해 본다. 아내의 창백한 얼굴, 고해실에서 본 신부의 빛나는 귀, 듣기 좋은 전례의 선율로 가득 찬 어스름한 성당에서 갖는 몇 차례의 차분한 미사, 아이들의 따스한 장밋빛 피부, 내 핏속을 돌아다니는 알코올, 아침 식사, 몇 번의 아침 식사… 그리고 커피 머신의 꼭지를 돌리는 소녀를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그녀도 남아 있게 될 것임을 알았다. - 본문 47면
나는 아내 캐테를 생각하며 그녀와 함께 저녁을 보낼 날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전에 돈을 마련해 방을 빌려야 했다. 돈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내게 돈을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 인구 30만이 사는 이 도시에서 부탁하는 즉시 돈을 내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부탁을 하기가 비교적 쉬운 사람을 몇 명 알고 있었다. 방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쩌면 호텔에 들를 수도 있을 것이다. - 본문 50면
나는 돈이 필요했고, 아내와 같이 잘 방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두 달 전부터 호텔 방에서만 결혼 생활을 영위해 왔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가끔 야외의 공원이나 파괴된 집의 현관, 그 밖에 남에게 들킬 염려가 없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도심의 으슥한 곳을 찾아다녔다. 다른 이유는 없고 우리 방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와 우리 옆방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너무 얇다. 더 큰 방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에너지라 불리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돈도 에너지도 없다. 내 아내에게도 에너지가 부족하다. - 본문 93~94면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아직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한 리듬을 따르고 있다. 갑작스럽게 그녀와 만나야 할 때면 저녁에 밤을 보낼 숙소를 잡기 전에 집에 들러, 내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우리가 약속한 초인종 신호로 그녀를 불러낸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지낸 지난 몇 주 동안 그 애들을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애들이 나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나에 대해 말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본문 97면
나는 산책을 많이 하고, 옛날 학교 때의 지식을 끄집어내 공부에 골치를 앓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계속 팔아먹으며 틈틈이 돈을 벌려고 한다.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대체로 멀리 교외까지 나가서 아직 문이 열려 있는 묘지들을 찾아다닌다. 잘 손질된 관목과 깔끔한 화단 사이를 돌아다니며, 명패와 이름을 읽고 묘지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저곳에 묻힐 거라는 생각에 가슴 떨려 한다. 전에 아직 우리에게 돈이 있을 때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하지만 정작 낯선 도시에 가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했다. 호텔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고, 담배를 피우거나, 아무런 계획 없이 쏘다녔다. 가끔 성당에 들어가기도 하고 멀리 묘지가 있는 교외까지 나가 보기도 했다.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고, 밤에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되는 모르는 사람들과 사귀었다. - 본문 128면
「내가 알았던 한 소위는 자기 애인한테 전화로 릴케 시를 읊어 주더군. 좀 다른 경우이긴 해도 그는 곧 죽어 버렸어.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불러 줬고, 전화로 서로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전화에 죽음을 실어 보냈어. 죽음이 전화선 속을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귓바퀴 속에 죽음의 소리를 퍼부어 댔어. 이 다른 사람이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이야. 고위 장교란 사람들은 사람이 떼로 죽지 않으면 대체로 전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 사망자 수에 따라 전투의 크기를 평가하는 건 헛짓이 아니었어. 여보, 묘지도 그렇지만 시체란 지루함을 몰라.」 - 본문 172면
그녀는 캐테였지만, 내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캐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 거리로 접어드는 동안 그녀, 어제 밤새도록 함께 있었고, 1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온 내 아내는 여전히 내게 낯선 동시에 또 무척 낯익게 생각되었다. - 본문 223면고통스러운 기억의 재생, 뵐 문학의 정수(精髓)
작가 뵐에 관한 전기적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이 그의 문제의식, 그것을 문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 양면에서 명실공히 그의 대표작임을 확인하게 된다. 진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기억, 1939~1945년까지 6년간 전쟁에 참전하며 탈영을 반복했던 기억, 전후의 파괴된 쾰른에서 첫 아들을 잃었던 기억. 이 모든 기억들이 주인공 프레드의 기억을 통해 재생된다.
뵐의 뮤즈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지네Mnemosyne였고, 그의 모토는 <과거의 죄악과 상실의 아픔을 기억하라>였다. 그는 서독이 화폐 개혁과 군부 재무장으로 서구 사회에 편입되어 경제적 부흥을 이룩한 상황 속에서 번영의 그늘 속에서 곪아 가는 정신적 상처를 문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 <역자 해설>, 240~241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의 제목은 예수의 수난을 다룬 흑인 영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He Never Said a Mumbalin’ Word」에서 따온 것이다. 가톨릭과 시민 계층의 폭력 속에 침묵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필두로 뵐의 여러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뵐은 침묵 속에서 소외된 자들의 얼굴을 담담히 조명한다. 농부의 얼굴을 한 신부(교회 내에서는 낙제점을 받은 자)와 간이식당의 소녀가 그러하다(하인리히 뵐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의 제목은 <간이식당Imbissstube>이었다). 상이군인 아버지와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살피는 소녀의 얼굴은 환한 빛을 발하는 천사와 겹쳐지며 절망한 부부에게 큰 힘을 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열린책들이 2009년 말 펴내기 시작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158번째 책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고전 시리즈의 새 이름으로,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낡고 먼지 싸인 고전 읽기의 대안
불멸의 고전들이 젊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목록 선정에서부터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본격 문학 거장들의 대표 걸작은 물론, 추리 문학, 환상 문학,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한국의 고전 문학 까지를 망라한다.
더 넓은 스펙트럼,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
소설 문학에 국한하지 않는 넓은 문학의 스펙트럼은 시, 기행, 기록문학, 그리고 지성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 인문학 저작까지 아우른다. 원전번역주의에 입각한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으로 정전 텍스트를 정립하고 상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더하여 작품과 작가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품격과 편의, 작품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 디자인
제작도 엄정하게 정도를 걷는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실로 꿰매어 낱장이 떨어지지 않는 정통 사철 방식,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재질을 선택한 양장 제책으로 품격과 편의성 모두를 취했다. 작품들의 개성을 중시하여 저마다 고유한 얼굴을 갖도록 일일이 따로 디자인한 표지도 열린책들 세계문학만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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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월 1일 태어난 전혜린 작가의 에세이다. 강경애 작가의 소금과 함께 빌려온 책인데, 이전부터 읽어볼까 하던 책을 강경애 작가와 동시대의 여성작가라는 이유로 함께 빌려와 그동안 밀어뒀다가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강경애 작가가 20세기의 시작 부근에 태어났다면 전혜린 작가는 그로부터 30년 뒤 태어났다. 둘의 처지는 몹시 달라 법학자라는 꽤나 부... 더보기
kangda 2022-05-15 공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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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사거리 6 오목한 것이 있어서, 그 안으로 너와 내가 들어가고, 다른 것들도, 예를 들면, 바람과 그늘과 새소리도 들어가고, 키스와 건널목과 벚꽃잎도 들어가고, 시간과 중력도 들어가고, 9월도 들어가고, 소매를 걷어붙인 처음 보는 셔츠와 비 오는 날의 맛이 나는 커피 두 잔도 들어가고, 목소리와 미소로 흥건한 오르막과 내리막들도 들어가고, 낮과 밤... 더보기
syo 2021-09-09 공감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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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의 모양 2 생은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회한, 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로 귀결된다. _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칫솔을 버렸다. 모가 다 누워서 더 쓸 수가 없었다. 버려도 진작 버릴 것을 오래도 썼다. 미련하게도. 아무리 J라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모퉁이를 만난 것이다. 끼고 돌면 ... 더보기
syo 2020-09-24 공감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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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사유를 기대했는데 없었던. 그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딸아이에 대한 사랑을 타고난 우울감으로 써내려간 글. 번역한 소설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쥬 2024-02-11 공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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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원래 그런거였는데 너무 똑똑한것도 흠이라면 흠
짱돌 2012-08-13 공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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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참아내기 힘든 상투성. 하지만 그녀의 무한한 열정을 시기한다.
togawa 2009-11-23 공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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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분위기있고 어딘가 우울한 마력이 있는 글..
foxpro73 2009-04-20 공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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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문학사상 불후의 인물이 된 전혜린... 그의 내면세계로 곧장 빨려들게 된다...
밭고랑 2013-03-22 공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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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 고치기
오늘과 내일의 흐릿한 경계가 어제와 오늘의 경계로 선명해지는 늦은 시간까지, 전혜린을 읽었다. 전혜린으로 밤을 밝히는 일이 전에도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침대 머리에 기대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창문을 통해 한 뼘짜리 하늘을 겨우 더듬을 수 있는 반지하 하숙방에서 나는 나쓰메 소세키를, 폴 오스터를, 장 그르니에를, 그리고 전혜린을 읽었다. 지상에서 나는 방황하거나 고독감에 잠겨 드는 대신 학점과 친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지하의 나는 그 좁은 공간이 허락하는 최대치로 방황하고 고독했다. 특히 고독과 그 열심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나는 놀라울 정도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고독이 필요하였고 기필코 고독해지고자 했고 최선을 다해서 고독해졌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도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어른이 된 아이들은 이제 막 어른이 된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또 함께 술을 마셨다. 우리는 우리를 고독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아무도 저절로 고독해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닭 뼈로 산을 쌓고 빈 소주병을 꽂아 그 산을 푸르게 푸르게 만드는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씩 지쳐갔다. 어느 순간, 우리는 고독을 바라는 눈빛을 자기도 모르게 슬쩍 내비치다가도 그게 그저 피곤한 표정인 것처럼 위장하는 아이들과 그걸 보고도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아이들이 모인 이상한 집단이 되어 있었다. 그러느라 반년이었다. 각자 여름을 지내고 다시 만난 우리는 이제 설탕 가루 주변에 까맣게 모여든 개미떼 같던 우리가 아니었다. 마치 함께인 시간과 혼자인 시간의 황금비율이 적힌 레시피를 손바닥에 적어놓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고독을 모르고서는 어른이 될 수 없노라는 선고를 듣고 귀환한 사람들처럼 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독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함께 있으면 저절로 우리가 되던 아이들은 혼자 있다고 저절로 고독해지지 않아서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고독을 추구했고, 고독을 달성한 아이들, 예컨대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 중앙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중랑천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아련한 눈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을 선망했으며, 이제 자신을 품어줄 고독이 충만한 공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그들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탐냈다.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데는 그저 우리만 있으면 충분했으나, 나를 고독한 나로 만들어 주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고독해질 수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고독의 씨앗을 찾아서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내게 그것은 책이었고, 그중에서도 전혜린이었다. 왜냐하면, 수십만 권의 책과 수백억 개의 문장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도서관을 식은 눈으로 뒤적거리다가 하필 이런 문장을, 마치 누가 그렇게 되도록 정해놓은 것처럼 내 앞에 나타난 이런 문장을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우주선이 달세계로 가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영혼의 소박함을 잃은 지 오래된다. 사랑도 변형된 호기심인 경우가 많고 사랑의 행위에서도 지적인, 너무도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 누구나가 자기의 원칙과 독백 속에 감금되어 있다. 자아에 망집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공관 속을 꿰뚫는 것은 현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적 같은 희귀한 몇 개의 순간에서만 우리는 변신을 한다. 헌신과 희생이 가능해진다. 그 순간이 지나면 생은 다시금 어두운 것, 무표정한 것으로 된다. 그 속에서 아무 관련도 없이 제각기 인간은 산다. 고독한 탐구를 계속한다. (31-32)
마냥 먹먹해졌다. 고독을 이겨내려 몸부림하다 떠난 사람의 글 속에서 나를 의탁할 만한 고독을 발견한 것에 어떤 섭리 같은 것이 숨어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고, 그저 오독을 고독으로 바꾸어 내 안에 쌓기에 바빴다. 전혜린의 고독은 크고 깊고 나의 얕은 눈으로는 바닥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서, 그리고 그 어두움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느 예술가의 처절한 기록이라는 아우라가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어서, 나의 허영이 그의 고독으로 넘치게 배불렀다. 읽는 순간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는 문장. 곳간에 쌓아놓은 그녀의 문장으로 20대를 충분히 고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고독은 끝내 그녀의 고독이었다. 내 것인 줄 알았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고독은 오독할 수는 있어도 오해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내 몫의 고독은 언젠가 반드시 내게 오게 마련이었다.
그것은 조금씩 천천히 왔다. 다시 모두가 자기만의 고독을 찾아 나서던 그때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고독을 찾으면서도 고독을 찾는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여전히 함께 있는 동안은 밝고 유쾌하고 세상에 열려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말해야 했다. 고독은 그런 와중에 은근슬쩍 흘리듯이 드러나야 폼 나는 것이었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어- 하는 표정이나 깊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눈동자 속에 스치는 빛처럼 들어있어야 섹시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가면이 탄생했다. 우리는 밝은 순간에 고독을 연출해야 했고, 고독의 시간을 걷고 서로를 만날 때 온-오프 스위치를 켜듯이 유쾌함을 연기해야 했다. 나의 진정한 내면은 너무나 깊고 고독하여 네가 차마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컨셉이 유행하면서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매야만 했다. 결국 누구도 누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두가 모두를 이해하는 척했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하다가 분명히 뭔가를 잊어버렸는데, 그것이 연기하는 법인지 연기하지 않는 법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수렁에 잠긴 몸을 완전히 빼내지도 못한 나를은 학교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알았다. 내가 정말 고독해졌다는 사실을. 내 몫의 고독은 그런 모양새였다. 그때 나는 전혜린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내가 읽었으므로 내 것인 줄 알고 믿고 따랐던 고독은 오롯이 그의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훔친 것이었다.
나는 고독을 오래 점유해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고독은 나를 오래 점유하면 소유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내 몫의 고독을 누리고 때로는 그것과 싸우느라 나는 바빴고, 전혜린의 고독은 이제 전혜린의 것이 확실해 보여서, 이십 대의 끝물에서 나는 전혜린을 놓아주기로 했다. 전혜린이 세상을 버린 것과 같은 서른두 살의 나이가 되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읽고 이 책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상자에 넣어두고, 나는 나의 고독을 마주하러 걸어갔다.
고독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고독의 원인은 세상에 널렸고, 외로움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서, 나도 고독을 넘고 다시 고독해지기를 반복하며 길고 짧은 고독들을 통과해 여기에 왔다. 그리고 고독은 증상인 동시에 하나의 능동적 계기여서, 자신의 고독을 넘어서거나 고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길어 올리는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배웠다. 내가 고독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을 때, 전혜린의 문장이 내게 남긴 흉터들은 약인 동시에 독이기도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늘에 와 생각건대, 고독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다. 고독은 사서 깃들거나 세 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혜린의 고독에 세 들지 않고 전혜린을 재료로 나의 고독을 건축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렇지만 생이 완결될 때까지 고독은 완결되지 않을 것이어서, 나는 잠시 고독하지 않을 때를 틈타 또 공구함을 채우고 헛간을 손본다. 비울 것을 비우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다. 안녕, 전혜린.
전혜린의 문장을 처음 만났던 그때, 나는 그가 이 책에 들어갈 글을 처음으로 쓰던 나이보다 어렸다. 그리고 오늘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전혜린이 쓴 가장 나이 든 문장보다 더 나이 든 문장이다. 그의 책을 마지막으로 덮으며 궁금한 것은 이제 하나 남았으니, 내가 전혜린을 관통하여 여기에 온 것인가, 전혜린이 나를 관통하여 저기로 간 것인가, 이제는 그것만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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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9-18 공감(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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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이 천재라는 느낌은 없었다. 자의식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했단 사실이 그녀를 천재스럽게 보이게 만들지만, 냉정하게 말해선 천재가 되고 싶은데 되지 못하자 그 괴로움에 목숨을 끊은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글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총기가 번쩍이는 구절이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그 재능으로 그럴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아무리 후하게 평가를 해주려 해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현실의 남루함과 존재의 누추함을 이겨낸 다른 천재들에게 불공평한 일이라 차마 그녀를 천재라 부르진 못하겠다.
어릴 때 전혜린을 읽었다면 평이 더 후하였을텐데, 지금 내 나이 스물일곱은 그녀를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냉소할 수 있는 나이인 듯 하다. 그녀의 넘치는 자의식을 이해한다. 그걸 추제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내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비겁한 모습까지 사랑할 순 없다. 자살이 옳니, 그르니 하는 걸 떠나서 자신의 삶과 넘치는 재능 그리고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 모습이 참 안타깝고 그걸 넘어서지 못한 열정이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닥치는 대로 좀 살아보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뭘 알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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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2-04-01 공감(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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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느낄수 있는...

요즘 서재에서 유행하는 가나다 문답... 개인의 취향을 엿보기 하듯..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제 저녁 파***님의 서재에서 슈바빙에서 맥주를...하는 말이 나왔다..
슈바빙.... 독일의 슈바빙하면 전혜린이 떠오르고... 어젯밤 책장에서 이책을 꺼내 다시 읽어 내려갔다...
우리 아빠 보다 1년 먼저 태어나셨으니 그녀가 삶을 끈을 너무 일찍 놓아버리지 않고 살아서 삶을 살고 있다면 72세의 멋진 할머니 였을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혜린하면 떠오르는 얘기가 있다.. 고딩시절 친구들은 늘 전혜린 전혜린 하면서 그녀의 삶이 너무 멋지다는등 왜 그랬을까 하는등 누구나 여고시절 그녀의 삶을 꿈꾸듯 얘기했었다.
내가 그땐 전혜린의 책을 읽기 전이있고 도대체 전혜린이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길래 저러나 싶어 그길로 서점에 달려가서 전혜린에 대한 책을 사서 보았었다.
그런데 그때 내게 잡힌 책은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였는데 나는 왜 그렇게 큰 착각을 했는지 번역자가 전혜린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전혜린이 쓴 글이 생의 한가운데 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친구들이 하는 말과 동떨어져서.. 나는 왜 같은 책을 읽고서도 저렇게 저들과 다른 느낌을 받는걸까 하면서 속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내 책장속에는 그때 사서 본 문고판 생의 한가운데가 꽂혀있다..
전혜린의 글을 읽으면서 무의식중에 가지게 된것중의 하나는 서른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기억한다.
목마른 계절.. 20대와 30대의 중간 지점에서 라는 글속에 자기에 대한 권태기.. 탄력 상실의 시대.. 수레바퀴같이 타성처럼 회전하고 있는 생활이 30대 여인으로 되어가는 징후가 아닐까 했으니 10대 소녀들이 봤을때 멋져 보이기만 하는 그녀가 내뱉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박혀 버렸을까...
많은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방해받고 또 스스로 아이를 방해하면서 자기가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방법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 거기 있는 어머니'다 그러나 과연 그 여자들은 정말로 있는걸까? 있는 것은 그들의 공허한 희망의 메아리뿐이다... 아무도 그 여자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대개의 경우는 조만간에 증명되고 마는 것이니까.....
그들은 스스로의 생을 택하지도 살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남의 생(아이들의 또는 남편의 생) 속에서 그 보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무런 생활도 갖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그리고 환멸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끝나 버린 생을 지속하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의의를 찾고 실증하고 있는여인이 가장 겸손한 어머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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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하루에 몇 시간 동안 맡길 수 있는 탁아소가 단 한개도 없다는 것은 확실히 사회의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직장을 가진 어머니가 격증할 것이며 그에 따른 어떤 선처가 있을 것이 기대된다.
당시로서는 참 파격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여인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되었지만 세상이 변한건 없다... 이렇게 따라오지 못하는게 현실이란것을 그녀는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하루를 L.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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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6-16 공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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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래 리뷰를 얼핏, 전혜린에 대한 지독한(이라고까지 하긴 뭣하지만) 혹평이 눈에 띄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사람들은 소문을 내고 가까운 사람을 데려와 그 음식을 맛보인다. 그것은 공유한다고 해서 닳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다르다. 배타적이 된다. 소유하고 싶은 독점욕이 싹트기 시작한다. 언젠가 은희경의 소설에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어서 너무 많은 이들이 이 '유명하지 않은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나의 한없이 우울한 빛깔을 그려주던 이 노래가 매일 극장에서 울려퍼지는 것보다도 더욱 참을 수 없던 것은 나의 상처와, 방황과, 말하기 싫은 침묵의 퉁명스러움을 너무나도 무심한 이들이 듣고 있다는 치욕감이었다.
전혜린은 존경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오래 살지 그랬나, 하고 아쉬워할 수도 없다. 그저 그녀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저편에서 눈동자를 빛내며 기름도 없는 등잔의 불꽃처럼 비현실적으로 타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학문적인 성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자살한 것이 훌륭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도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글 행간행간에서 자꾸 삐져나오려고 하는 앎에의 갈망과 삶을 살아숨쉬는 치열한 의지 때문이다. 그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서 살았고,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던 카프카 못지 않게,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진정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먼곳에의 그리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웃긴 일이다. 그리고 전혜린의 글이 아무나 읽을 수 있도록 서점에서 대량화되어 팔리고 있다는 것도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보다 무거운 신화와 전설에 묻혀버린 그녀를 나무라거나 혹은 비웃게 됐다. 그러나 나는 몰래 기쁘다. 어딘가 예전 나의 열여덟때와 같이, 전혜린의 눈빛에 이끌려 누군가 - 삶이 어떤 것인가, 생의 한가운데 서서 곧은 시선으로 죽음과 대면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또 생겨나게도 됐기 때문이다. 단 그런 사람이 너무 많지 않길 바란다. 전혜린과 그녀의 삶은 아무나 덥석 집어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생을 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긴긴 생을 낭비하며 파먹고 사는 일이다. 이제야 전혜린은 혹자의 비웃음과 다수多數의 무관심과 나같은 이를 미치도록 매혹시키는 진실로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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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헤라자데 2003-08-31 공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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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두번의 충격을 준 책...

내가 처음 이책을 읽었던 것은 중학교 때였고,2번 충격을 받았다. 첫번째는 여학생의 감수성으로 와 닿는 글의 아름다움이었고, 뒤 이은 것은 이육사와 윤동주가 고문과 생체실험으로 죽어가던 그 시절에 '일제의 훌륭한 관사'에 핀 '아름다운 코스모스'속에서 살아갔던 한 여자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나의 role model 아버지', '아름다운 그 시절'이었던 것이 두번째 충격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소장의 딸로 자란 머리 좋은 독일 소녀가 성인이 되어서, 아우슈비츠의 추억을 '코스모스 한들 한들', '저녁이면 공부를 가르쳐 주던 멋지고 훌륭한 나의 아버지'라고 공개적인 글을 남겼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조금은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최소한 조용히 살거나, 맹목적인 아버지에 대한 흠모를 공개적으로 표시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나의 아이들에게는 소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1940년 이후 일제의 수탈이 강화되었고, 1950년에는 625가 있었다. 불행히도 그녀의 책 어디에도 그 어둡고 힘든 이야기는 없었다. 그 시절 그녀는 어디에서 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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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모 2013-04-10 공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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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고 싶어요 귀여운닉네임ㅣ 2023-05-01
꼭 소장하고싶은책입니다~ alohasmㅣ 2023-04-11
갖고 싶어요... 정말.. 정말... deeeeaㅣ 2023-04-10
제가 어렸을 때에 나온 책이라 지금 보려니 볼 수가 없네요 ㅠㅠ 꼭 보고 싶습니다 끼룩끼룩ㅣ 2023-04-10
너무 찾던 책이라 신청합니다..제발 스욤ㅣ 2023-04-09
전혜린 작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소장하고 싶어요 sssㅣ 2023-04-09
간절하게 가지고 싶어요 110236ㅣ 2023-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