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3

성수동 수제화 거리, 민노총 개입 1년만에 170여곳 문닫았다 1904

성수동 수제화 거리, 민노총 개입 1년만에 170여곳 문닫았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민노총 개입 1년만에 170여곳 문닫았다

입력2019.04.17.
'민노총 제화지부' 진입 후 제화공 줄파업, 공임비 30~50% 올라
업체들 "카페 몰려 임대료 급등, 임금 인상까지 겹치니 못버텨"


지난 15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구두 공장 '터치미나인'의 재봉틀 6대는 모두 멈춰 있었다. 오후 4시면 직원들이 한창 일할 시간이다. 이서현(62) 대표는 "워낙 일감이 없어 제화공 3명 모두 일찍 퇴근시켰다"고 했다. 원래 직원은 10명이었다. 올 들어 7명이 잇따라 그만뒀다. 회사 재정이 악화되면서 월급 줄 돈도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월급을 마련하러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하러 갔지만 거부당했다"며 "이대로 가다간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수제 구두 생산 단지인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서 최근 문 닫는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중심으로 5㎞ 반경에 수제화 공장 300여곳과 부자재 판매상 200여곳이 몰려있는 산업단지다. 지난 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찾아와 구두를 맞추고 상인들을 격려했다. 최근 복고풍 감성을 타고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일대가 크게 떴다. 동네 인기는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경기 불황도 계속됐다. 여기에 최근 제화공들의 공임(工賃·신발 한 켤레를 만들 때 제화공에게 돌아가는 비용) 상승이 덮쳤다.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 업체들이 수십 년 회사를 폐업하고 성수동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활기 잃은 구두공장… 직원 10명 중 7명 떠나 - 지난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구두 공장에서 대표 윤명원씨가 텅 빈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불황으로 인한 주문량 감소, 임대료 상승에 공임 인상
활기 잃은 구두공장… 직원 10명 중 7명 떠나 - 지난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구두 공장에서 대표 윤명원씨가 텅 빈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불황으로 인한 주문량 감소, 임대료 상승에 공임 인상까지 겹치면서 직원 10명 중 7명이 공장을 떠났다. /조인원 기자

서울 성동구 집계에 따르면 성수동 수제화 업체는 2월 현재 325곳이다. 지난해 초까지는 500곳 안팎이었다. 불과 1년여 만에 약 170곳이 사라졌다. 성수동 상인들은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민노총을 꼽는다. 민노총의 개입으로 제화공들의 임금 투쟁이 잇따르면서 업체들이 인건비 상승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줄폐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여섯 켤레를 만들어 유명해진 드림제화 대표 유홍식(71·서울시 구두 명장 1호)씨는 "영세 업체 사장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화공들이 공임비 인상을 요구하다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된 것 아니냐"며 "구두 업계의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민노총이 개입해 기술자들이 제 무덤을 파게 한 셈"이라고 했다. 40년 넘게 성수동에서 구두를 만들어온 전태수 장인은 "하루아침에 도산해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며 "이 거리마저 없어지면 '메이드 인 코리아' 수제화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고 했다.

성수동 수제화 업체는 유명 장인이 만들어 파는 고유 브랜드 공장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제품을 만드는 유명 구두 회사의 하도급 업체로 나뉜다. 민노총은 지난해부터 하도급 업체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제화 업체 공임 상승은 작년 4월 관악구 봉천동 탠디 사업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민노총 제화지부가 주도해 파업을 벌였다. 회사 측은 제화공 공임을 켤레당 평균 6500원에서 7800원으로 20% 올렸다.

여파는 제화 업체가 밀집한 성수동에까지 미쳤다. 민노총 제화지부는 지난해 6월 성수동 세라제화 본사, 지난해 9월 성수동 코오롱FnC 등에서 공임 인상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성수동 공장을 운영하는 박원태(65)씨는 "민노총 측이 공장에 찾아와 '탠디처럼 공임을 올릴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조합에 가입하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후 성수동 하도급 구두 업체들에서 제화공들의 공임 인상 투쟁이 잇따랐다. 공장들은 30~50% 공임 상승을 약속했다. 당장은 하도급 직원들의 처우가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에게 독(毒)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신히 경기 불황을 견디고 있던 업체가 인건비 상승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서 경영자와 제화공 모두 길바닥에 나앉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성수동에서 80평짜리 공장을 운영하던 박모(55)씨는 12년 동안 운영해오던 OEM 공장을 폐업했다. 그의 공장에서 일하던 제화공 15명은 임금이 오른 지 1년도 안 돼 실업자가 됐다.

임금 인상의 수혜를 본 제화공들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성수동 하도급 업체의 한 제화공은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 20켤레 이상은 만들었는데 요즘엔 기껏해야 10켤레만 만든다"며 "공임이 올라도 일감이 없으니 돌아오는 돈은 더 줄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화공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교육이나 영세 업체들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기도 전에 노조가 임금부터 올려버리니 결과적으로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노총 제화지부 관계자는 "최근 성수동 수제화 거리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나 공임 인상을 원인으로 볼 수 없다"며 "백화점 입점 수수료가 40%에 육박해 하도급 업체 측에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선엽 기자] [이해인 기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