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5

윤석열 정권에 대한 한 지식인의 '저항 일기'  <시민언론 민들레 2504

윤석열 정권에 대한 한 지식인의 '저항 일기' < 민들레 들판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윤석열 정권에 대한 한 지식인의 '저항 일기'

김영 인하대 명예교수, 민사네 공동대표
mindlenews01@mindlenews.com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25.04.05 11:25



7순 은퇴교수는 왜 책을 덮고 거리로 나와야 했는가

1. 지식인의 시대적 책무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탄 때 ‘절명시(絶命詩)’를 쓰고 순국한 황현 선생은 나라가 망해가던 당시에 지식인 노릇하기가 어렵다고 자탄하였다. 평소에 독서를 하며 진리를 찾고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사도(師道)의 길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는 강단을 지켜야 하는가 민주광장으로 나가야 하느냐 고민을 하게 된다. 근래만 하더라도 1987년 박종철 이한열 두 열사의 희생으로 촉발된 6.10민주화운동과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촛불항쟁 때에도 지식인 종교인들이 학생 시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탄핵을 당한 뒤 구속 영장을 받고 기소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이 검찰독재로 폭정을 저지르고 나라의 평화와 국민 생명을 돌보지 않고 몰상식한 정치행태를 보이자 민심은 이반하고 집권한 지 반 년도 안되어 ‘윤석열 퇴진, 김건희 구속’이라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8년 대학 강단에서 은퇴한 나는 그동안 읽지 못한 동서양 고전을 읽고 손녀들을 돌보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가 윤 정권의 무도한 정치행태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다시 책을 덮고 ‘자락서실(自樂書室)’을 나와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 섰다.

이 글은 윤석열이 당선된 2022년 3월 9일부터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의 파면을 선고를 한 2025년 4월 4일까지 한 지식인의 윤정권에 대한 대응과 조그만 개인적 저항을 기록한 것이다.

2. 시민언론과 시민교육 활동


깨인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은 옳다. 작년 말 12.3 비상계엄을 저지하고 탄핵을 이끌어낸 결정적 요인은 촛불시민들의 끈질긴 투쟁과 응원봉 세대들을 비롯한 범민주세력의 적극적이고 용기있는 비상행동이었다.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이 0.73% 간발의 차로 이기는 선거개표방송을보고 나는 절망했다. 나라를 이끌 만한 능력이나 준비도 없이 보수세력과 편파 언론의 일방적인 지원으로 당선된 윤석열은 민의와 국민통합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검찰 충견을 동원해 국가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조짐을 보였다. 이러한 현실을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표가 끝나 윤석열의 당선이 확정된 3월 10일 오전, 사전 예약도 하지 않고 무조건 김포공항에 가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표를 사서 서울 집을 떠났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제주의 서귀포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로 가서 파도 소리를 듣고 올레길과 숲길을 걸으며 3박 4일을 지내고 귀경했다.

집에 돌아오는 날부터 그자가 나오는 뉴스를 볼 수 없어 TV를 끄고 지내며, 진실을 알리는 시민언론운동과 정의로운 시민을 일깨우는 시민교육활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3월 15일에 국악방송의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 프로에 나가 졸저 《시민을 위한 한문강의》을 가지고 대담을 하고, 다음날인 3월 16일에는 여의샛강 생태교실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생태위기 시대에 노자읽기》를 가지고는 원불교의 원음방송에 나가 오경석 PD와 인터뷰를 했다. 3월 21일에는 한겨레 신문의 조현 기자와 《생태위기 시대에 노자읽기》와 《논어》에 대해 5시간의 걸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내용은 한겨레신문 ‘휴심정’(2022.3.24.일자)에 실렸고, 유튜브 조현TV에도 보도되었다.

이런 언론활동 외에 여의샛강 생태공원 샛숲학교 교장을 맡아 ‘노자생태교실’ ‘장자의 소요유와 제물론 읽기’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4월 17일에는 청주 길동무도서관 초청으로 ‘인문학’ 강의를 하였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20대 대통령 취임날에는 박노해 시인의 <역사의 무대에서>라는 시구처럼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뜻있는 분들과 만남을 확대해나갔다. 성공회 최자웅 신부, 감리교신학대 박충구 교수, 정종훈 연세대 교수, 김근수 소장을 비롯한 민주진보진영의 뜻있는 지식인 종교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 이러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이 윤석열 퇴진을 위해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결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3. 파리의 여름휴가 뒤 본격적인 퇴진집회 참가

윤석열 취임 후 TV를 보지 않고 시민교육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지내면서도 그 자와 함께 이 좁은 한반도 남쪽에서 함께 지낸다는 게 참으로 답답해서 여름방학이 빨리 와 파리에 가기만을 기다렸다. 두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에 가서 손녀들과 지내며 이 남루한 윤건희 정권의 난정(亂政)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2022년 6월 2일 파리에 가서 9월 1일에 귀국했으니 거의 세 달을 프랑스에서 지낸 셈이다. 파리에 있는 동안 손녀들의 등하교를 도와주고 돌아오면서 보주광장과 빅톨 위고 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수시로 들르며 프랑스의 문화를 향유했다. 손녀들의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는 동계올림픽이 열린 알프스 알베르빌 산맥에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프랑스 휴가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좀 잘 나가는 큰 딸이 아빠의 70세 고희 선물로 런던 토트넘 구장에서 열린 손흥민 게임 직관 티켓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2008~2009년 1년 동안 런던대학 SOAS 객원교수로 지내던 런던에 가서 며칠 지낼 수 있었다. 그때 레셀 스퀘어가든 부근의 SOAS 캠퍼스를 오랜만에 들렀는데 대학 건물은 그대로였으나 여름방학 중이라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3박 4일의 런던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귀국선물을 준비하러 파리시청 옆 베아슈베 백화점에 들렀더니 프랑스 국기색인 파랑 빨강 하양 색깔의 스카프를 50%에 세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를 사려다가 세일을 해서 몇 개 더 샀다. 9월 1일 귀국하면 반드시 윤석열 퇴진 집회가 열릴 터인데, 그때 ‘네 게바라’가 이 스카프를 함께 매고 피켓을 들면 폼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네 개를 산 것이다. ‘네 게바라’는 평소에 페이스북을 통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명하던 박충구 감신대 명예교수, 정종훈 연세대 교수,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을 장난삼아 부르던 명칭인데, 자주 쓰다 보니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네 게바라 피켓팅 장면

9월 1일에 귀국했더니 윤석열의 몰상식한 국정운영은 점점 파행으로 치달아, 민주시민들이 또다시 거리에서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었다. 귀국한 뒤에 파리에서 사 온 머플러와 체 게바라가 파이프를 물고 머리에 썼던 것과 비슷한 검은 베레모를 동지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우리 ‘네 게바라’가 촛불행동 집회에 참가한 것은 추석을 지난 뒤 열린 2022년 9월 17일(토) 오후 5시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제6차 촛불행동 집회에서부터였고, 피켓구호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이었다.

4. 주말 촛불집회 참석과 시국논평, 월례포럼 운영

매 주말 시청 앞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태평로에서 윤정권 퇴진 집회를 하고 페이스북과 카톡에 우리의 주장과 시위 사진을 올리자 뜻있는 은퇴 교수들과 목사님, 신부님들이 호응해왔다. 이명재 원로출판인, 조성민 교수 내외분, 김창규 유정현 두 분 목사님이 합류해주셨고, 12월 26일 연말모임에서 이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대선패배 원인의 하나가 기울어진 언론지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시민언론인 뉴탐사와 민들레 창간과 운영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뉴탐사의 강진구, 최영민 기자의 ‘나깨좋’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중에는(2023.2.26.) 시민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교양함양을 위해 뉴탐사 시민학당을 개설하여 교장을 맡아 10개의 강좌를 운영했다. 뉴탐사와 자매관계인 인터넷 시민언론 ‘민들레’ 창간에도 강기석 고문, 이명재 대표와 함께 발기위원으로 참여하여 <명령의 과잉과 압수 수색 전성시대>(2022.12.16.)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2023.1.6.> 등의 칼럼을 민들레 광장에 기고했다.

그러던 중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 사고예방임무를 소홀히 하여 159분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난 뒤 희생자를 애도하고 촛불행동 시 ‘유가족 대기 천막’에서 집회에 참석하는 이지한 군 어머님을 비롯한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을 하면서 그 원인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이태원, 용산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러다가 2023년 2월 18일 윤석열 타도를 위한 촛불전국집회 전 할리스카페에 모여서 시국담을 나누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약칭 ‘민사네’)를 결성하자고 합의를 하였다. 박충구 교수와 내가 공동대표를 맡고, 3월 1일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검찰독재와 민생파탄, 전쟁위기를 막기 위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이만열 교수님(전 국사편찬위원장)을 뵙고 우리 민사네의 원로 고문으로 모셨다.


민사네 촛불집회 성명서 발표 장면.

이후 민사네는 윤석열 정권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우리 지식인 그룹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 시국 논평을 발표하고,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월례포럼을 개최하여 공론을 모으는 작업을 했다. 2023년 9월부터 박충구 공동대표의 <시대착오적인 윤석열 정권,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와 나의 졸고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 쿠데타를 멈추라>를 시작으로 매주 시국논평이 발표되어 총 31번을 이어갔고, 같은 달 9월 16일 시작한 월례포럼은 조성민 교수의 <인권이 존중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하여>라는 발제를 시작으로 올해 3월 한동수 변호사의 <검찰개혁>에 이르기까지 17차례나 진행되었다.

5. 지속적 퇴진운동과 12.3 비상계엄, 내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의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고,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의 3권이 독자적으로 분립되도록 되어 있지만 사실상의 국정운영은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윤 정권의 폭정을 보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검찰총장 재직 시에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수사와 기소를 하면서 정적과 밉보인 사람을 탄압하고 제거하는 데 익숙한 검찰독재자 윤석열은 국민의 여론이나 야당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고 무속인과 처의 말을 따르며 과대망상에 가까운 언행을 계속해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국민들의 호된 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독재자 스타일을 고집하여,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들을 수십 차례 거부하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철저히 무시하더니 지난해 말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셀프쿠데타를 일으켜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2년 반 동안 매 주말 윤석열 퇴진과 김건희 특검을 외치며 거리에 나선 촛불시민들도 사실 이렇게 끈질기게 싸우는데도 오불관언의 태도로 폭주하는 윤석열에 대해 좀 지치기도 하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신부님이 표현한 대로 ‘지랄발광’답게 21세기 문명국가 대한민국에서 모든 정치활동과 언론 출판 집회를 금지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장악한 뒤 국회의원을 끌어내어 정치적 반대자들과 함께 구금하여 영구독재를 획책한 비상계엄/내란을 일으켰다.

1972년 박정희의 유신독재체제를 겪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광주민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전두환 살인마의 반생명적 반인륜적 파렴치한 행태를 쓰라리게 경험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늘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1980년 전두환 독재자에 대해 항거하다 숨진 광주 민중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역사의 고비 때마다 나를 일깨웠다. 나는 1972년 군 복무중 감시하에 실시된 유신헌법 찬반투표에서 부끄럽게도 내 양심에 반하여 찬성표를 던졌고, 1980년 광주민중들이 전두환 계엄군에 저항하다가 피를 흘렸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항상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아마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6.10민주화운동 당시에 내가 35살 조교수의 신분으로 시국성명서에 서명을 하고, 7년 전 박근혜 국정논단세력 축출을 위한 탄핵 촛불집회에 참여한 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 앞으로 달려간 것은 다 이런 부끄러움 때문이 아닌가 한다.

6. 12월 3일 밤 국회 앞 상황과 남태령, 한남동 대첩

지난해 12월 3일 저녁 ‘지랄발광’ 윤석열이 전쟁이나 국가 혼란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반대하는 여야당 지도자와 국회의장, 국회의원을 종북 좌파세력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무장한 공수특전단 부대원을 국회 본관과 선관위에 투입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계엄이 선포된 그 날 오후 나는 광화문의 안병무도서관에서 ‘난세에 맹자 읽기’ 강의를 하고 좀 지쳐서 10시쯤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하다가 잠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뜨개질을 하며 강진구 기자의 뉴탐사 유튜브 방송을 시청하던 아내가 뛰어 들어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유튜브 생중계로 시민들에게 빨리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하는 방송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생각하고, 해병대 출전태세완비 5분 대기조 출신답게 후다닥 점퍼를 입고 집회용 등산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국회 앞으로 갔다. 국회 정문 앞에는 국회경비대와 국회의원, 시민들과 경찰들이 엉켜있었고 계엄군을 실은 육군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국회 정문을 향해 서 있었다. 나는 목동 집에서 국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에게 “나는 올해 73세로 이제 살 만큼 살았고, 1980년에 숨진 광주 민중들에게 빚이 있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이번에는 죽음을 각오한다, 당신은 남아서 뒷일을 수습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시오”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때 계엄군을 탑승시킨 육군차량이 국회진입을 막기 위해 민주 시민들과 함께 차량 앞에 주저앉자고 하면서 ‘계엄을 해제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좌시위를 하였다. 시민들이 점차 늘어나 국회 앞 도로를 메웠고,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국회 뒤쪽으로 날아갔다. 성난 시민들은 국회 정문 왼쪽 문 앞에서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과 직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밀치고 소리를 질렀다.


12월 3일 밤 국회 정문 앞에서 계엄군을 가로막는 장면. ‘미디어오늘’ 김용욱 기자 촬영

그렇게 승강이를 하면서 연신 ‘계엄 해제!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그러던 중에 유튜브 생방송으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의장이 계엄 해제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긴장되어 있어서 시간이 몇 시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연신 구호와 노래를 불렀다. 시민들이 점차 늘어나 국회 앞 도로를 거의 메우고 있었다. 그 뒤 탄핵 가결을 촉구하기 위한 국회 앞 집회부터 어처구니없는 계엄선포와 계엄군 난입사태를 본 응원봉 세대들이 여의도 광장에서, 남태령, 한남동, 헌법재판소 부근도로,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해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을 이루어 ‘빛의 혁명’을 시작했다.

7. 헌재의 심판 연기와 만장일치 파면 선고

그런데 온 국민과 전 세계가 TV와 유튜브 생중계로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계엄군을 입법기관인 국회와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수거해 제거하려는 국가내란과 헌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파면인용 선고는 명약관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을 옹호하는 파시즘 세력의 준동과 법비(法匪)들의 교활한 법적용으로 내란수괴범 윤가가 어처구니없게도 ‘법적 탈옥’하게 되자, 금방 이루어질 줄 알았던 헌법재판소의 파면 인용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서울서부지법에 극우 유튜버와 폭도들이 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리나라 헌정질서가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당연한 헌재 파면선고가 하루 하루 늦어지자 민주시민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가 점차 분노가 한덕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헌법재판소를 향했다.

낙관하던 민주당 지도부도 긴장하며 대응책을 마련했고 분노한 시민들은 2년 반 동안 윤석열 정권 퇴진을 주도해온 촛불행동 뿐만 아니라 이번 내란을 사회대개혁의 계기로 삼으려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환경 여성운동 등의 여러 단체들이 특색 있는 깃발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긴장은 고조되고 윤석열의 신속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점점 대규모로 늘어났다. 주말에만 하던 시위가 매일 벌어지고, 국내외에서 파면촉구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선결제를 한 제주귤, 오뎅, 커피, 꽈배기 등을 나눠주는 부스와 푸드트럭이 곳곳에 설치되는 훈훈한 민주공동체 분위를 조성했다. 촛불행동은 헌법재판소 부근도로와 열린송현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사회대개혁을 위한 비상행동은 광화문에서 집회를 한 뒤, 깃발을 휘날리며 시가해진을 하였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집회에는 스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시민들과 청년,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긴장된 국면은 윤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하던 정치검찰로부터 수 백가지의 기소를 당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에 대한 항소심 무죄가 나온 뒤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고, 이제 시민들 뿐만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각 시민종교 단체도 다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우리 민사네 회원들도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이들과 끝까지 연대하여 남태령, 한남동에서부터 안국동 광화문에 이르는 조속한 파면촉구 시위에 참여해서 드디어 2025년 4월 4일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을 이끌어냈다. 어제 헌법재판소 문형배 재판관의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선고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다시 되살리고 헌법질서를 재확인한 역사적인 판결이 될 것이다.


문형배 재판관의 윤석열 파면선고 장면. MBC뉴스 캡처

1970년 대학에 입학하여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경험한 나에게는 헌재의 파면선고가 있은 2025년 4월 4일이 1987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빼앗긴 국민주권을 6.10 민주화운동으로 되찾고, 7년 전 박근혜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낸 이후, 시민들, 젊은 여성을 주축으로 한 청년들과 함께 검찰독재 및 내란 세력 윤석열을 쫓아낸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이번 운석열 검찰독재정권에 함께한 모든 시민, 동지들께 감사드린다.


추천24반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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