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7

Namgok Lee -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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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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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정치에 깊게 또는 얕게 관여하는 한국 지식계(知識界)를 접하면서 조선 선조(宣祖) 당시의 사림(士林)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나쁜 정치를 할까?’를 한국 지식계에 추천하는 이유는 
물질과 제도가 상전벽해로 바뀐 것 같은데, 
지식계는 450여년 전의 조선 사림(士林)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들은 선한 지식인이라고 스스로는 굳게 믿고 있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자기중심의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척결 배제하려고 하였다. 
영정조 시대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 폐단을 근본적으로 넘어서지 못한 체 결국 조선은 망국(亡國)의 길을 걸었다.

한국 지식계(知識界)가 이 뿌리 깊은 폐단을 넘어서지 않으면, 
이중 삼중의 위기의 시대에 한국은 그동안 피와 눈물로 장만한 귀한 밑천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결국 쇠퇴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보이기에 나는 중도(中道)를 절절한 심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도(中道)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차례 언급하여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한가지 만은 강조하고 싶다. 

중도(中道)는 어떤 고정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은 중도(中道)를 양극단의 중간에 있는 어떤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중도확장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너나없이 한다. 중도와 통합이 인기 있는 말이 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조선 사림(士林)의 세계로 돌아간다.

내가 이야기하는 중도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실을 찾아가는 그 태도가 중도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것을 지적(知的) 혁명의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 지식계는 450년 전의 사림(士林)에서 벗어나는 지적 혁명을 거치지 못했다.
아무리 현학적(衒學的)인 언사를 구사하더라도 지적 혁명을 거치지 못하면 그것은 허사(虛辭)에 불과하다.
2500여년 전의 공자는 이미 이런 지적 혁명을 이야기 했다.

주자의 성리학이 크게 왜곡했고, 조선의 사림은 ‘나쁜 정치’를 했다.
물론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니고, 지적 혁명을 거친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 위기의 시대를 한국의 지식계가 지적 혁명을 거치는 과정으로 삼기 바란다. 어쩌면 그것에 우리의 운명이 달렸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적 혁명과 그 실천에 대해 논어에 나오는 몇 구절을 참고로 소개한다.
이제 이 정도는 보편화해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ㅇ“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무지(無知)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물어오더라도 
무지의 자각(空空)에 서서 그 양끝을 두들겨서 끝까지 밝혀 가보겠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9/7)

ㅇ“군자는 이 세상 모든 일에 
꼭 주장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고), 
의(義)를 구명하여 실천한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4/10)

ㅇ“자기와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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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義)

유교 개념 

인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해 사회적 질서를 확립하려는 인의 실천 방안으로 
맹자가 강조한 ‘마땅한 삶의 길’을 뜻하는 유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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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군자는 천하에 생활함에 있어 이렇게 해야만 한다든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하는 고정된 행동 원리를 갖지 않고 오직 의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고 함으로써 의를 인간의 실천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중심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仁)이었으며 
그 내용은 인간의 본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래 모습은 천명사상(天命思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人]과 사람[人]이 고립된 상태에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서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관계로 나타난다.

인간의 본래 모습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위는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자는 
인을 ‘애인(愛人)’이라고 하여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공자는 이와 같이 인을 실현, 즉 인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함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맹자가 생을 누린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이익 추구에 몰두해 쟁탈을 일삼게 되었고, 이단(異端)이 득세해 사상적 혼잡을 초래하는 등 사회가 더욱 혼란해짐으로써, 공자의 인에 대한 더욱 구체적이고 명석한 실천 방안이 요구되었다. 
맹자의 의사상(義思想)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인의 실천 방안이었다. 그리하여 맹자는 공자의 인에 의를 덧붙여 인의(仁義)라고 하였던 것이다.

≪맹자≫ 260장 가운데 첫머리 제1장, 즉 개권(開卷) 벽두의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한 맹자의 말에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그의 간절한 소망과 그 기본 정신을 간취할 수 있다. 이 때의 인과 의 가운데 인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며 의는 그 실현 방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맹자에 있어서의 인, 즉 인간의 본래 모습이란 고향에서와 같이 안주할 수 있는 편안한 집(仁 人之安宅也)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러한 편안한 집에 안주하는 인간의 본래 모습은 하늘에서 부여 받은 고귀한 것(夫仁 天之尊爵也)을 잘 실현함으로써 하늘의 뜻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의 인간 관계에서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관계인 부자 관계(父子關係)가 둘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로 유지되는 상태(親親仁也)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맹자의 의사상은 하늘에서 부여 받은 고귀한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문제와 부자 관계를 계속 하나인 상태로 유지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하늘은 사람을 창조하고 그 피조된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 해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뜻을 이어 받아 사람과 사람이 사회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잘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게 된다.

이 질서를 위해 인간의 상하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 때의 인간의 상하 관계에서 나타나는 윤리가 모두 의다. 맹자는 상하 관계의 대표적인 예로서 군신 관계(君臣關係)를 들고 군신 관계에서의 윤리를 군신유의(君臣有義)라고 의로 설명한다.

군(君)은 신민(臣民)의 안락한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신민은 그 군에게 충성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군이 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민의 삶을 저해할 때의 신민은 군을 미워하게 되고 그 결과 군을 몰아내고 군다운 군을 새로이 옹립해야 한다는, 서로 상반된 이 두 행동 원리가 의의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부자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의의 내용은 부모를 매개로 해 성립되는 형제 관계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맹자는 형에게 순종하는 것을 의의 내용으로 설명하였는데(義之實 從兄是也), 이 때 종형, 즉 형을 따른다는 것은 부모와의 원초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론적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만약 형이 부모를 해하려 한다면 형을 처단해야 하는 것이 의의 내용이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의 본래 모습인 인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의로 정의된다. 
본래의 형제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관계를 의형제(義兄弟), 원래의 다리, 원래의 팔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다리와 팔을 의족(義足)·의수(義手)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맹자는 또한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의에서 나오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이 때의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 즉 인을 전제로 해 나타나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못 살게 하는 독재자를 미워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괴롭히는 도둑을 미워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괴롭히는 침략자들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는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는 의가 발달하였다.

  •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 등으로 이어지는 
  • 여말선초의 의리학파를 거쳐 완성된 조광조(趙光祖)의 도학 정신(道學精神)을 비롯, 
  • 사육신의 절의 정신(節義精神)
  •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군에 항거한 조헌(趙憲) 등의 의병 운동, 
  • 외세에 항거해 일어난 동학 혁명
  • 조선 말의 일본 침략군에 대항한 의병 운동
  • 3·1운동이나 독립 운동
  • 4·19학생의거 등이 
모두 이러한 의사상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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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논어(論語)』
『맹자(孟子)』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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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유교)  위키백과

유교 (儒敎)

의(義)는 유교의 덕목 가운데 하나이며, 인간의 행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수치를 알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맹자는 스스로의 불선(不善)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불선을 증오하는 마음, 즉 정의심(正義心)을 의의 발단(發端)이라고 했다. 송학(宋學)에서는 마음의 제(制), 즉 마음속에서 일의 가부(可否)를 재결(裁決)하여 가(可)에 따르고 부(否)를 물리치는 일, 다시 말해서 사리(事理)를 분명히 함을 뜻했다. 또한 맹자는 군신(君臣) 사이의 도덕을 의(義)라고 했다.

'의'와 인명
'의'의 덕목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의경 (義慶), 의현 (義賢) 등 '의' 자를 넣은 이름도 쓴다. 하지만 '의'는 주로 남성이 사용한다.

'의'와 지명
의성군 (義城郡), 의왕시 (義王市) 등은 '의'의 덕목을 본받아 이를 지명에 쓴 것이다. 북한에는 의주군 (義州郡)과 신의주시 (新義州市)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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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의(義)가 의(宜)"에 대하여(1)
[明泉] 맑은 샘물 2023. 8. 26.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그를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맹모삼천지교"와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맹모단기지교"로도 유명하다.

춘추전국시대
맹자(孟子)는 기원전 372년경 태어나 289년경까지 살았던 인물로,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주나라 왕실 기반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7개의 제후국이 서로 힘을 다투던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이같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천하를 제패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레 다양한 사상가들이 출현하였다.
맹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전국 시대에 왕들은 횡포와 폭력을 무자비하게 행사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그런데 백성들은 왕을 천자(하늘에서 정한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을 함부로 비난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생각을 뒤집어엎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맹자이다.
그가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성선설",
인간은 본시 태어날 때부터 선하게 태어났다.

"측은지심",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 어린아이가 우물로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이를 구해주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인면수심",
그런데 왕이라는 사람이 눈앞에서 백성이 그렇게 죽어가는데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니 필시 인간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면상을 한 짐승일 것이다.

"역성혁명론",
그러니 저런 짐승 같은 왕을 내쫓아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민본주의" 정치
맹자는 무력에 의한 패도정치가 만연했던 세상에서 이를 부정하고 인의(仁, 義)를 통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한다.
인의(仁義, 어짐과 의로움)를 정치사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통치자의 필수 조건으로 인의(仁義)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였다.
맹자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이 "인(仁)과 의(義)"이다.《중용》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인(仁)은 인(人)이요, 의(義)는 의(宜)이다"하였다.
여기서 인(仁)은 인(人) 곧 '사람다움'을, 의(義)는  의(宜)로 '마땅함, 도의'을 뜻한다. 맹자는 '의'가 곧 올바름을 행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친친이인민, 인민이애물), 어버이를 어버이로 어짐으로 받들고서, 백성들에게 인자하게 함같이, 만물도 사랑하여야 한다” <맹자, 진심 하편 제45장>
맹자는 의(義)를 현실 정치에 적용할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의'를 체계화하여 인(仁)과 같은 지위로 끌어올렸다.
맹자는 의(義)는  의(宜)로 '마땅함, 도의'를 행함이 개인의 안격적 완성이며, 또한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위해 필수적인 규범으로 규정하였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를 실천하여 건강한 사회가 수립되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왕도정치"
이를 구체적 실천하여 백성을 살리고 백성과 함께하는 정치이다. 위정자가 세상을 다스릴 때 민심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도정치를 통해 민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장부(大丈夫)론"
이러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데는 왕이나 신하나 불의에 꺾이지 않는 '호연지기'를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 아부와 아첨으로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물욕을 가진 신하들이 득세하면 국정이나 백성의 삶은 파탄에 이른다.
그러므로 권세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올바른 뜻을 펼치는 사람,  '대장부(大丈夫)'를 필요로 한다. 대장부는 불의나 물욕에 흔들리지 않으며, 지극히 올곧고 굳센 도덕적 기개를 지닌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들을 대인(大人)이라 일컫는다.
당시 춘추전국시대 '힘이 강한 자가 위대한 자'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맹자는 이러한 인식과 시대정신을 변혁시키고자 올바른 사람의 필수 조건으로 "도덕성"에서 대장부론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존재한다.
순자는 인간의 번성이 악하게 발현한다고 반론(성악설)이 제기하였고, 고자에 의해 또 반론이 제기하였는데,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성악설을 주장하였다.

'사람다움'과 '마땅함(도의)' 곧 "올바름을 행하는 길"을 실천하려면

사람은 선천적으로 선한 기질을 가지거 태어나는데, 이를 양지양능(양심)이라고 부른다. 양지(良知)란 생각하지 않아도 마땅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고, 양능(良能)이란 배우지 않아도 실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같이 본성이 착하고 선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꼭대기 단, 끝 단(耑, Posted on by) 端의 古字
耑 = 山(뫼 산) + 而(말 이을(우두머리) 이)
산(山)의 우두머리(而) '꼭대기, 봉우리'


사단[四端(끝)]

시단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네 가지 마음이다. 맹자는 이 네 가지 마음을 키워나가면 네 가지 덕목인 사덕(四德)이 터득된다고 주장하였다.
사단(네 가지 덕목)은
(1)측은지심, 측은한 마음에서는 《인자》함이
(2)수오지심, 부끄러움에서는 《의리》가
(3)사양지심, 사양하는 마음에서는 《예의》가
(4)시비지심, 시비를 가리는 마음에서《지혜》가 생겨난다.

그러면, 악한 사람은 왜 악해졌는가?
그들도 본성은 착(선)하게 태어났으나 삶에 현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사욕과 물욕에 빠져 원래 본성의 마음의 빛을 잃고 악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선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악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물질의 욕망을 제어하여 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이것이 대장부의 길이며, 호연지기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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