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2

[무교회주의 김교신 70주기… 평전·학술대회 등 재조명 활발]

(24) Sejin Pak - Sejin Pak shared 박상익's photo.
박상익
"신앙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배당"
[무교회주의 김교신 70주기… 평전·학술대회 등 재조명 활발]일제 강점기 '성서조선' 발간무교회주의… 신앙 본질 충실기독교인들, 순수성 롤모델로
"어떤 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어떤 자는 의술을 조선에 꽃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뼈를 세우며, 그 피를 만들고자 한다."(1935년 '성서조선' 중)
올해는 일제강점기 '무(無)교회주의'와 '조선산(朝鮮産) 기독교'를 주창한 김교신(1901~1945)의 70주기다. 최근 2~3년 사이 '김교신 평전'과 '김교신의 철학'이 출간된 데 이어 '복음과 상황' '기독교사상' 등 개신교 잡지들이 잇달아 김교신 특집을 냈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해 발족한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는 오는 25일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26일엔 기념 강연회도 연다. 왜 지금 김교신인가?
◇'양(洋)칼 선생' 별명
김교신은 44년의 길지 않은 삶을 신앙인, 교육자로서 치열하게 살았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김교신은 유교적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 그가 기독교를 접한 것은 3·1운동 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유학 시절.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 성서연구회에서 공부하면서부터다. 그의 무교회주의는 제도적 교회나 교단보다는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김교신은 "새벽 산상(山上) 기도에 영감이 소나기 같다. 우리 예배당의 벽은 북한산성이요, 천정은 화성, 목성이 달린 청공(靑空)이요, 좌석은 숲 속의 반석이요…"라고 말한 바 있다. 신앙인이라면 삶의 자리가 바로 예배당이란 뜻이다. '조선산(産) 기독교'란 한국의 개신교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전해졌지만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1927년 함석헌 송두용 등과 함께 창간한 잡지 제호에 '성서'와 '조선'을 연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교신은 교육자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귀국 후 함흥 영생고보와 서울 양정고보·제일고보(경기고)·개성 송도고보에서 지리학과 박물학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정기를 심어줬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고, 교사로 일하면서 '하이칼라'로 헤어스타일에 멋 부리는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머리카락을 박박 밀어버리고 평생을 살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 '양(洋)칼 선생'이다. 서양의 스테인리스 칼처럼 철두철미하다는 뜻이다.1942년 필화(筆禍) 사건을 겪은 '조와(弔蛙)'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기어다니는 개구리를 보면서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고 썼다. 일제는 이 글을 문제 삼아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을 투옥하고 성서조선을 폐간했다. 출옥 후 교직을 떠나 함흥질소비료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지내며 발진티푸스 환자를 돌보다 광복을 불과 넉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신앙의 순수성 롤모델 삼아야
김교신이 다시 조명받는 것은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그의 신앙의 순수성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교신의 철학'을 펴낸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는 "김교신은 '참신앙인=참사람=참조선인'이라는 삼위일체를 강조했다"며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은 지금 김교신은 롤모델로 역사에서 불러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김교신은 '신앙=교회'라는 착각을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증명하는 것을 기독교인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신앙인의 시민적 책임성과 공공성을 환기시켜줬다는 면에서 지금 시점에서도 뜻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학술대회는 2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02-763-9746), 강연회는 26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일심빌딩(02-333-0022)에서 열린다.
조선일보 2015년 4월 17일 금요일
김교신은 일제 강점기 "참 신앙인은 참사람, 참조선인이어야 한다"며 교회나 교단보다는 성서중심의 신앙을 주창했다. 오른쪽 위는 '성서조선' 창간호, 오른쪽 아래는 양정고보 교사 시절 학생들과 북한산을 오른 김교신(오른쪽 끝).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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