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30

슬픈 아시아 - 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기행


슬픈 아시아 - 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기행 (1945-1966)
장세진 (지은이) | 푸른역사 |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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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66 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기행.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양서'라는 취지로 시행된 2012년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한국간행물위원회 주최) 당선작이다. 해방 이후 우리가 아시아를 표상하는 데 동원했던 개념이나 언어, 감각적 이미지는 식민지 시대를 거쳐 냉전 시기를 통과하는 가운데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쉽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종적인 동질성, 지역적인 인접성, 식민지 경험이라는 역사적 공통성에 기초한 아시아라는 연대 의식이 어느새 휘발되어가는 과정, 대신 전지구적 냉전 서사가 한국의 공론장에서 압도적인 우세종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추적이다. 해방 직후부터 베트남 전쟁 파병이 시작되는 20여 년동안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경험한 후 남긴 기록들을 참고하여 쓰여진 책이다.

머리말

1장 이제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다
뉴델리
박인환의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아시아 상상의 과거와 현재
냉전의 그림자와 아시아
기행 서사와 네이션
상징자본으로서의 미국

2장 신화의 해체와 새로운 아시아의 발견
아시아, 낯설고도 익숙한
밤아세아대회의 실제
식민지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대동아공영권의 유산
패전국 일본의 프로필
국민국가 서사의 우위
말해지지 않는 것 혹은 먈할 수 없는 것
미국, 새로운 탈식민 파워
"파도치는 태평양"

3장 적인가 동지인가
태풍 전야의 상하이
"중국을 반신불수화시킨 자 누구냐"
2 · 28 사건과 타이완의 일어 사용
홍콩, 영국의 점포
필리핀이 부러운 까닭
베트남 파병에 얽힌 이야기
아에아 공산주의와 전염의 공포
한국에는 있고 타이완에는 없는 것
공산주의가 두렵거든 토지개혁을 하라
시인과 요새의 섬 금문도
연대의 키워드, 반공과 독재

4장 중립은 없다
간디와 타고르와 나이두의 나라
유엔 조선임시위원단과 모윤순의 <타지마할>
김동성의 <우호국 예방기>
인도의 중립 노선
적의 적은 동지
테러와 그로테스크, 홍콩의 이중성
마카오의 영광과 조락
불가피한 아시아의 분열
반둥, 1955 : 초대받지 못하여

5장 아시아, 응시당한 자의 이름으로
개발자의 시선과 동남아시아
망각과 향수 사이에서
다케우치 요시마와 훗타 요시에의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손을 떼라"
아, 베트남

주석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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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장세진
 최근작 : <한국의 근현대, 개념으로 읽다>,<상상된 아메리카>,<슬픈 아시아> … 총 4종 (모두보기)
 소개 : 연세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했다. 1945년 이후 미국이라는 글로벌한 타자를 매개로 냉전 문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식사회학이나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논문을 써왔으며, 《상상된 아메리카》(2012), 《슬픈 아시아: 한국 지식인들의 아시아 기행(1945~1966)》(2012) 등의 책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냉전문화론》(2010)이 있다.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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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이후 아시아를 향해 떠난 한국의 파워엘리트들,
그들의 아시아가 우리의 아시아가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상상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

2012년 노벨 평화상이 유럽연합EU에 돌아갔다.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아닌, 지구상 최대의 현실 정치 조직 중 하나에 상이 수여된 데다, 유로존eurozone의 안정이 거세게 동요하고 있는 시점인 탓에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아시아 국가들의 사정과 비교해 본다면 현재의 유럽연합이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선 거대한 실험이자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실체라는 점만은 어쨌든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유럽연합 출범 이후 더 이상 프랑스와 독일이 과거와 같이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군사적 게임을 벌이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분위기가 그쪽에선 이미 조성되었다. 그렇다면 아세안ASEAN을 비롯하여 각종 지역협력기구들을 갖고 있는 아시아는 어떠한가. 최근 한, 중, 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오히려 영토 분쟁의 기나긴 공회전空回轉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아시아의 경제와 정치 협력이 쉼없이 이야기되는 가운데서도 중국은 여전히 일본의 으뜸가는 견제 대상이며, 미국과 일본은 서로 손을 굳건히 잡은 채 부상하는 ‘아시아 지역주의’를 불안한 눈길로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단순히 한국산 제품과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교역 파트너나 ‘시장’으로서가 아니라면, 대한민국 사회는 이웃 아시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어떤 이미지와 관련된 서사narrative들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소비해왔을까.
이번에 출간된 ≪슬픈 아시아≫는 1945년 8월, 즉 해방 이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들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그리고 저자 장세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은 여기에 다시 질문을 추가한다. 이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어떤 목적으로 아시아를 향해 떠났을까? 해방 이후 아시아에 관한 이러저러한 인식과 표상들은 과거 식민지 시대와는 또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차이는 현재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동)아시아가 일종의 학문적, 저널리즘적 유행과 상투어가 되어버린 요즈음이지만, 우리의 근近 과거 아시아 인식에 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해방 직후부터 베트남전쟁 파병이 시작되는 20여 년 동안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경험한 후 남긴 기록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정책을 입안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들의 생각은 중요했고, 그들이 그 시절 아시아와 만나 문자로 남긴 기행문은 사회사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였다.…… 시간을 소급하여, 식민지 시기 아시아 인식이나 역사적 경험과도 뿌리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행문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차츰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부와 지식인들의 기대와 논리가 고스란히 일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말> 중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목, 미국과 조우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 어떤 능력과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 아시아를 향해 떠났을까. 1947년 뉴델리에서 최초로 열린 범아세아 대회에 남조선 과도정부 대표로 참석했던 3인(백낙준과 하경덕, 고황경)의 경우가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이들의 대다수는 교육계, 언론계, 여성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인 동시에 국가를 대표하여 선발된, 일종의 공식사절단이었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은 모더니티를 습득할 수 있는 장소로 간주되지 않았던 탓에, 구미 지역과는 달리 개인적인 학습 동기를 가진 민간 부문의 유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시기 아시아행은 고스란히 정치인과 파워엘리트들, 국가가 후원한 문화인들의 몫이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이들이 해당 아시아 지역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지역 언어 능통자라기보다는 식민지 시기 미국 유학 경력과 기독교라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상징자본을 소유한 이들이었다는 점이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여권 1호 소지자인 초대 공보처장 김동성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통’이었다. 모든 아시아행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와의 조우는 파워엘리트들이 미국이나 유럽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가는 도중에 ‘덤’으로 얹힌 형태,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일 때조차도 더러 있었다. 여행자의 상징자본과 식민지 시기 이력, 여행의 목적, 여행지에서의 구체적 경험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아시아행 전체에 드리워진 미국이라는 요소는 ‘해방’ 이후 한국의 아시아 인식이나 재현의 방향 자체와 내용을 결정짓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아, 낯설고도 익숙한
저녁 후에 호텔 라비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노라니까 마래馬來(말레이지아)에서 온 대표자가 먼저 인사를 한다. 여러 가지 대회의 유쾌한 경험을 다 이야기한 후 전쟁 중에 일병日兵이 마래에 왔을 때에 얼마나 조선 사람이 일병의 부하가 되어서 잔혹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과 자기는 마래에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까닭에 많은 주목과 시달림을 받는 중에도 전 가족이 붙들려 조선 사람에게 무지한 고문을 당하였다는 말을 한다. 조선 사람의 칭찬이나 나오면 흥치興致가 날지 그만한 불평이 나오니까 입맛이 써서 말이 안 나왔다. 온 세상이 조선을 몰라주는데 혹시 조선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악惡 인상을 통하여만 알려졌으니 참으로 불행이라는 감이 전기와 같이 머리 속을 찌르르하게 하였다(고황경, ≪인도기행≫에서).
―<2> 중에서

독립을 맞은 아시아 신생국가들이 국가 건설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저마다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시 여행자들의 주된 미션 중 하나였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까. 미래의 청사진을 기획하며 설레임 속에 떠난 그들은 그러나 아시아 각지에서 조선인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적대적인 타자의 시선과 가장 먼저 맞부딪쳐야 했다. 제국의 프로파간다였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에 충실했던 과거 조선인들은 아시아의 이웃들과 새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알아야했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 이웃들의 실상을 알아야했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며 어떤 역사적 경험을 겪어왔는지에 대해서. 여행자들은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익숙한 단어 속에 얼마나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들이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왔는지 현지 체험을 통해 비로소 실감하는 중이었다. 아시아와의 소통이 이제야 가능해진 것일까. 그러나 독립을 맞이한 아시아 지역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했다. 비록 제국의 통치는 끝났지만, 미국과 소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 지구적 냉전서사가 탈식민의 감격에 들뜬 아시아 지역을 장악하려는 즈음이었다. 미소냉전이라는 흐름 속에서 신생국가는 장차 어떠한 비전을 가져야 할지 약자들의 상호연대와 참조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아시아는 우리의 닮은꼴이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웃이었다.

적이냐 동지냐 갈림길에서
≪슬픈 아시아≫에서 다루고 있는 기행문들이 1966년에서 끝을 맺는 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아시아 인식에서 1차 베트남 파병(1965)이라는 사건이 갖는 상징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그렇다. 1945년 8월 이후 한껏 분출된 아시아 신생국들을 향한 동질성과 탈식민의 연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희미해졌다. 결국 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의 프레임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반공 서사로 대체되어 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변화 사이에는 중국대륙 공산화라는 국제정세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거대한 트라우마가 놓여 있었다.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이 남긴 기록은 점차 역내 집단 반공 안보 체제를 성사시키기 위해 아시아 지역을 동분서주한 기록으로 혹은 그들의 불안과 욕망, 지역주의의 구상이 투영된 텍스트로 빠르게 변화해갔다. 실제로, 1950년대로 넘어가면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유럽의 군사동맹인 나토NATO에 대응하는 아시아 버전의 태평양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필리핀과 타이완, 동남아시아 각지를 오가며 각국의 반공노선에 대한 의지를 절박하게 타진하는 중이었다. 아시아 역내 동맹이었지만, 그러나 이 동맹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지원과 참가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조건을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서구 열강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인도나 동남아 지역에서 바라 본 미국은 전통적인 식민 세력에 보다 가까웠고, 미국을 체감하는 온도 차이에 따라 이제 아시아 국가들은 진영의 양쪽으로 명확하게 구획될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반공의 형제지국兄弟之國 타이완이 한국 문인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동지가 생긴다는 것은 적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특히 미소 양측 모두에 대한 ‘비동맹’과 ‘중립’을 표방하고 동남아 국가들을 리드한 수상 네루와 인도 정부는 ‘적’에 값하는 나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식민지 시대 이래 간다와 타고르의 나라로 한국의 지식인들이 깊은 존경과 선의의 염을 바쳤던 나라 인도의 이미지는 이렇게 바뀌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 책에 의하면, 과거 아시아에서 유일한 식민종주국이었던 일본은 한국 정부가 아시아 반공동맹 구상에서 늘 첫 번째로 제외시키기 위해 가장 애쓴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언제나 아시아 반공블럭의 맹주로서 미국의 낙점을 받는, 한국 파워엘리트들의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된 나라였다. 반공이라는 날줄과 식민의 역사라는 씨줄이 복잡한 그물처럼 얽혀있는 아시아에서 역내 정치적 동맹의 실현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 쉬웠다.
요컨대, 이 책은 인종적인 동질성, 지역적인 인접성, 식민지 경험이라는 역사적 공통성에 기초한 아시아라는 연대 의식이 어느새 휘발되어가는 과정, 대신 전지구적 냉전 서사가 한국의 공론장에서 압도적인 우세종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추적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한국은 1950년대 이미 자발적으로 인도차이나 파병을 제안했고, 1965년에는 우리 민족보다 훨씬 장구한 세월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전투 병력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아시아, 응시당한 자의 이름
아시아 역내 국가들 사이에는 비록 반공이라는 군사, 안보적 이슈에 한정된 것일지라도 서로 협력하여 주도하는 식의 다자동맹은 향후에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다만, “아세아주의의 포기”가 확정된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은 미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 간의 개별적인 양자 동맹 방식이었다. 미일동맹(1951), 미비 동맹(1951), ANZUS(호주-뉴질랜드-미국), 한미동맹(1953), 미국-타이완 동맹(1954)의 잇따른 성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아시아 역내에서 미국에 대한 개별 국가의 의존도를 극적으로 늘리는 벡터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그러나 “새로운 보장이 없는 한 아세아의 갈 길은 익히 결정된 셈이다”라는 한국 지식인들의 인식 하에서라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한편, 미국 발 근대화 이론의 영향 속에서 ‘아시아적 정체성停滯性’과 후진성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으로 인식되었다. 195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지식인들은 무진장한 동남아시아 자원들의 마케팅 가능성을 위해 다시 이 지역으로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정치적 연대가 실패한 자리에 남은 것은 아시아에 대한 도구적 이윤 창출만을 꾀하는 개발자의 시선,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양서’라는 취지로 시행된 2012년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한국간행물위원회 주최) 당선작이다. 해방 이후 우리가 아시아를 표상하는 데 동원했던 개념이나 언어, 감각적 이미지는 식민지 시대를 거쳐 냉전 시기를 통과하는 가운데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쉽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과 탄탄한 구성력을 이미 검증받은 셈이다. ≪슬픈 아시아≫를 통해 만나는 기행 서사들은 현재 한국인들이 아시아를 상상하고 사유하는 틀의 기원이 생성된 현장,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상상에 대한 역사적 변화를 이해할 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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