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제국의 위안부’ 예찬현상은 지적 퇴락의 종착점” 재일동포2세 역사학자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짬] 재일동포2세 역사학자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일본내 ‘제국의 위안부’ 예찬현상은 지적 퇴락의 종착점”
등록
2016-04-11 19:21
수정 2016-04-12 08:53
수정 2016-04-12 08:53
[짬] 재일동포2세 역사학자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일본의 논단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예찬하는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다.”
한국근현대사회사와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타가키 류타 일본 도시샤(동지사)대 사회학부 교수, 젠더 역사와 식민지기 조선교육사를 전공한 재일동포 2세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가 함께 엮은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배영미·고영진 옮김, 삶창 펴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왼쪽)와 책을 편집한 프리랜서 편집자 오카모토 유카.
9일 이 책의 한글판 출간 기념행사를 위해 서울에 온 김부자(58 사진) 교수를 서울 용산구 주택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중반에 떠오른 (‘아베 신조류’의)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 그리고 “박유하의 책을 지지하는 일본 진보(리버럴) 지식인들의 너무나 심각한 (퇴행적) 행태”에 맞서싸우기 위해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 나온 이 책의 한글판 출간을 서두르게 된 이유로 “’박유하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젊은 세대들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일본에서보다) 오히려 더 모르는 한국에서야 말로 이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는 점을 들었다.
‘조선인 위안부 중에 소녀는 적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했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반일이다?’ ’일본 덕분에 조선이 풍요로워졌다?’ ’조선인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였다?’, 질문-답변(Q&A)식으로 편집된 이 책의 소제목들이다.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이 책의 강점은 그게 왜 아닌지를 전문적 역사연구자들이 제시하는 문헌적·증언적 사실(팩트)들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예컨대, ‘위안부=소녀’ 이미지는
"정신대를 위안부로 오해한 데서 빚어진 것"이며, 조선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소녀가 아니었다, 소녀는 “소수이고 예외적”이었다는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연행 당시 할머니들의 나이는 박영심 17살(이하 존칭·단위 생략), 송신도 17, 김학순 17, 이계월 15, 곽금녀 17, 손판님 19, 박두리 17, 박옥선 17, 이옥선 15, 문필기 18, 황금주 19, 강덕경 16, 김영숙 13이었다.
“박유하는 내가 인용한 동일한 증언집을 사용하면서도 피해 여성 대부분이 ‘10대 소녀’였다는 전체적인 실상을 무시한 채 ’20살 이상’이라는 자신의 지론에 맞는 증언만을 골라내는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정보보작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박 교수가 말하는 버마 미치나의 조선인 위안부들(1944년 포로로 잡혀 미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의 심문을 받았다) ’평균연령 25살’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포로가 됐을 때 그들 평균나이는 23살이었고, 연행 당시는 21살이었다. 그리고 20명 중 12명, 즉 과반수가 10대 소녀들이었다.”(미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 <일본인포로심문보고>)
김 교수는 증언집들을 뒤져 찾아낸 87명의 위안부 피해자들 중 미성년이 74명이었다는 얘기도 했다.
당시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 통첩’(1938)은 일본 본토(’내지’)에서의 위안부 징집 대상을 “내지의 창기 기타 사실상 추업(매춘)에 종사하며 만 21살 이상, 그리고 화류병(성병) 기타 전염성 질환이 없는자”로 한정했다. 전투력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성병이 없는 젊은 위안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21살 이상으로 정한 것은 당시 국제조약에서 미성년을 20살 미만(1910년 조약), 21살 미만(1921년 조약)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이를 의식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여성을 내지에서 구하긴 어려웠고, 그들은 조선·대만·중국 등의 ‘외지’로 눈을 돌렸다. 종주국 일본은 내지와 달리 외지에선 국제조약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중국 한커우 위안소 병참위안담당 야마다 세이키치도 “반도(조선)에서 온 이들(위안부)은 (매춘)경력도 없고 나이도 18,
19살 젊은 여자들이 많았다”는 증언을 남겼다.
이는 “위안부를 ‘소녀’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은 식민지를 오점 없는 ‘순결한 소녀’로 표상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키는 일”이라며 “무엇보다 ‘미성년 소녀’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그와는 달랐던 위안부들을 억압한다”(<한겨레>
2016년 2월6일 토요판 ‘박유하 교수의 반론’)거나,“한국의 피해의식을 키우고 유지시키기에 효과적이었기에 나타난 무의식의 산물”(‘제국의 위안부’)이라고 말한 박 교수의 입론 근거 자체를 무너뜨린다. 박 교수와 그를 지지하는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은 과도한 한국 민족주의를 탓하지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심각한 인류 보편의 문제의 문제를 민족주의 문제로 축소 왜곡하면서 초점을 흐리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에서 경남 남해군 출신 부모 슬하에서 나고 자란 김 교수는 홋카이도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오차노미즈대에서 식민지시대의 젠더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추궁을 위해 만든 누리집 ‘파이트 포 저스티스’(정의를 위한 싸움·fightforjustice.stores.jp)의 운영위원,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리서치 액션센터(VAWW
RAC)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3부로 구성된 책 제2부는 이 누리집 내용에서 골라내 수정·보완한 것이다. 그는 “1990년 일본에 와서 위안부 문제를 가부장제의 문제라 지적했던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의 강연에서 큰 자극을 받고” 위안부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2005~09년 3년 반 동안 한신대 일본지역과 조교수로 고국에 머문 것도 그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이 책에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 전국행동’ 양징자 공동대표는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에 나오는 피해자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두고, 박 교수가 “스스로 갔다”는 정 할머니의 증언 부분을 고의로 삭제했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비판했다. 놋그릇 공출에 저항하던 아버지가 체포되자 딸 정서운이 ‘아버지를 석방시켜주겠다’는 말을 믿고 대신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 당국이 요구한) 공장 일을 나가겠다면서 “그래가지고 내가 자청을 해서 간 기라”(한국어판),
"간다고 해버린 거라"(일본어판 자막. 한국어판 음성도 그대로 실림)라는 게 본래 한 말이다. 김 교수는, 이 증언 부분을 작가와 운동단체가 (자신들의 논지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고의로 빼버렸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으나, 실제는 빼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선 “이것(이 증언)을 ’자발적으로 갔다’고 해석하는 박유하의 감각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또 실제로 지우지도 않은 음성을 작가 또는 운동단체가 지웠다는 말까지 지어내며 운동단체를 ’기억을 조작하는’사람들로 묘사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군인들이 몰래 찔러줬는데, 같이 아편을 찌르고 그걸 하면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여자도 찔러주고 자기들도 찌르고, 그렇게 했어요”라는 한 할머니의 증언을 “성적 쾌락을 위해” 병사들과 함께 마약을 한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지적한다.
저널리스트 니시노 루미코는 ‘업자가 인신매매로 징집, 연행했으니 일본군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글판과 일본어판이 다르다. 예컨대 한글판에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 사죄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일본어판에는 그 부분이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 이 사실은 한국에 보다 더 알려야 하겠지만 그것(지금까지의 사죄)은 실로 애매한 표현에 불과했다”로 뒤집혀져 있단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경우에 처한 일본인 또한 그러한 사죄나 보상이 되지는 않았다”는 얘기로 식민지배와 민족적 차별을 흐리는 물타기까지 했다고 책은 지적한다.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의 ‘제국의 위안부’ 예찬을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라고 한 이는 조선근현대사와 재일조선인사를 전공한 재일동포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준교수. 그는 한국어판으로 곧 출간될 저서 <망각을 위한 ’화해’-’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세오리쇼보)이 ‘제국의 위안부’가 범한 수많은 사실 인식상의 오류와 모순, 논리적 비약을 파헤칠 것임을 예고하면서, 일본어판을 읽어야 핵심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박 교수가 “일본사회가 어떠한 셀프 이미지를 원하는지를 알아내고 그 이미지에 걸맞은 위안부론을 제시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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