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7

연찬문화연구소 | as one community 방문기 1 - Daum 카페

연찬문화연구소 | as one community 방문기 1
as one community 방문기 1 |에즈원커뮤니티 교류
차차(임경환)|조회 280|추천 0|2013.01.29. 01:06http://cafe.daum.net/nshumanschool/W2ve/12
일본 스즈카시에 있는 as one community에 다녀온 지 일 주일이 지났다. 갔다 와서 바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게으른 탓에 이제야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그때의 느낌을 기록해 놓아야겠다.

다녀 온 뒤로 as one community의 실험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사명감에 불타서 일을 무겁게, 그리고 단번에 해 치우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가볍게, 즐기면서, 장기적으로 이 작업을 하고 싶었다.

다녀온 느낌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이 되었다. 우선 글을 재구성하기 전에 일단 수첩에 적어 놓은 원자료들을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녀온 분들에게는 반복되는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 분들에게는 회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다녀오지 못한 논실마을학교 카페 회원 분들에게는 as one community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탐방기를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만, 써서 올릴까 한다.

나는 논실마을학교에서 생활하기 전까지 야마기시 공동체나 as one community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논실마을학교에 와서도 야마기시 공동체나 as one community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연구한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부분적으로 그 내용을 전해 듣거나 체험하는 수준이었다. 2012년 4월쯤(?)인가 Masashi ono 씨가 논실마을학교에 오셔서 as one community를 소개해 주셨던 것을 들었고, 2012년 2월에 이남곡 선생님 외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연찬회 경험을 해 보고, 학교너머에서 생활하는 길잡이들과 논실마을학교 선생님들과 야마기시 공동체 공부를 2번 정도 했을라나? 이상한 번역체의 문건을 조금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경험 밖에 없었다. 하지만 as one community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귀동냥으로 듣는 이야기들 속에서 얼핏 얼핏 비춰지는 모습들, 논실마을학교 사람들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모습들은 as one community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2012년 여름 방문에 이어서 2013년 겨울 방문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 여름에 학교너머 일정 때문에 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참가비에 대한 부담이 약간은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설레임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2013년 1월 17일 출발~

김포에서 나고야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나고야 중부 국제공항에서 배로 40분 정도 가니 츠나기사마치에 도착했다. 그 곳에 도착하니 3명의 community 멤버(야구치 상과 루시오, 한 명의 성함은 모르겠네요)와 맛있는 엄마손 도시락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항구 터미널 한 켠에서 엄마손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은 두 종류였다. 메인 요리가 닭고기인 도시락과 연어 구이인 도시락. 한 종류의 도시락으로 통일해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는 것에서 세심함과 배려가 느껴졌다. 그 덕에 다행히도 채식(생선은 먹음)을 하는 탐방원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도 문제없이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커뮤니티 연수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야구치 상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을 하였는데, 운전이 너무 얌전했다. 야구치 상 차량뿐만 아니라 다른 차들도 끼어들기나 과속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마지막 간담회 자리에서 야구치 상이 이번 탐방 일정을 회상하면서 첫째날 운전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야구치 상은 그날 츠나기사마치에서 커뮤니티 연수원으로 이동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는데, 그때 목표가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 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보통 탐방객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성과다. 보통은 말로 그들이 그동안 이루어 왔던 성과들을 자랑한다. 그런데 야구치 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 주었다.

커뮤니티 연수원에 짐을 풀고 모두가 큰 방에 모였다. 그 방에 들어오자마자 뭔가 써야 할 것이 있었다. 이름, 나이, 주소, 하는 일 등등이 항목으로 되어 있는 조그만한 종이였다. 만남을 가지기 이전에 이런 것들을 쓴다는 상황이 조금은 낯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쓴 내용은 컴퓨터로 입력이 되어서 community 구성원들에게 모두 전달이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종이 한 장 씩을 들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우리가 첫날 연수원에 도착할 때 썼던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구성원들은 우리들이 이야기를 할 때, 그 종이를 보면서 누구인지 확인을 했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오면 그 종이에 계속 메모를 하였다. 개개인에 대한 관심, 그것은 이곳의 하나의 문화였다. 반대로 나는 수첩 속에 수많은 내용이 쓰여져 있지만, 그들 개개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오노 상, 미야지 상, 야구치 상, 노리코 상과 함께 간단한 자기 소개를 나누었다. 자기 소개는 아마 탐방 중에 가장 많이 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멤버들이 추가될 때마다 간단하게나마 자기 소개를 하고 넘어 갔다. 이 곳의 독특한 문화였던 것 같다. 계속 반복된 자기 소개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들은 매번 소개를 할 때마다 곤혹스러워했다. 초기에는 매번 다르게 소개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도 생겼다.

자기 소개를 한 뒤에 오노 상이 as one community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해 주었다. 오노 상은 야마기시 공동체 초기 멤버로 그 곳에서 16년 동안 살았다. 그곳에서 살면서 야마기시 공동체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community를 만들기 위해서 그 곳을 나와 2001년부터 12년 째 as one community를 만들어 가고 있는 as one community 초기 멤버다. 아래의 내용은 오노 상이 설명하는 as one community다.

오노 상은 “(어느 일정한 공간에서 멤버들이 함께 사는 형식의 공동체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지역에 흩어져서, 정말 사회는 어떨까?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 사회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연구하고, 그것을 베이스로 삼아 정말로 그런지 하나 하나 검토해보자.”는 취지로 as one community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노 상은 “사회는 규칙이 필요하다는데 정말로 그런지에 대해 연구만이 아니라 실제로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없고, 상하 관계가 없는 회사인 어머니 도시락 가게를 만들어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경영이 성립이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 20-30여명이 모여서 시작한 이 곳에는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제로 보통 조직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as one community는 누가 공동체 구성원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략 100가구 정도가 관계를 맺고 있는 정도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들은 “연구한 것을 시도해 보고, 시도해 본 걸 가지고 연구한다”고 한다. “인간은 이런 거다, 사회는 이런 거다”는 고정관념 없이.

이런 것들을 행하면서 살다보니, 이 곳의 공기는 일반 사회 공기(공기라는 표현은 이번 탐방 기간을 통해서 참 자주 듣는 단어였다)와 다른 것 같다고 한다.

as one community는 야마기시 공동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왔다. 오노 씨의 표현에 따르면 야마기시 공동체가 “사람이 조직에 맞춰가는, 조직의 질서가 우선되는, 조직을 위해 사람이 굴복되는” 조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조직이 우선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조직”을 꿈꾸고 있었다. 개인이 해방되고 고정관념이 흩어지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이런 곳이다’라고 상정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는 삶이 아니라...

오노 상은 말하는 중에 “연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삶에 의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질문하는 것.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as one community에 대한 오노 상의 소개가 끝나고 35년 동안 야마기시 공동체에 산 미야지 상이 그 뒤를 이어 계속 이야기를 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