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서울의 한복판 중구 명동. 30~40층짜리 은행과 증권사 빌딩이 사방을 둘러싼 곳에 낡은 3층(가건물 옥탑까지 더하면 4층) 벽돌 건물이 움푹 파이듯 들어서 있다. 건물 정면에는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바로 향린교회다.
1965년부터 이곳에 자리잡은 향린교회는 1970년대 유신정권,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서 민주화·통일운동의 작지만 큰 성지였다.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 탄생지가 바로 이곳이며, 1987년 5월 직선제 개헌투쟁의 시작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문익환 목사와 쌍벽을 이루던 홍근수 목사의 통일운동도 이곳이 근거지다. 김호식·홍근수 목사에 이어 2003년 담임목사에 부임한 조헌정 목사를 2층 허름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자는 향린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에 대한 설명부터 듣기로 했다.
“향린교회는 다른 교회와 다른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953년 5월 17일 전쟁 중에 기독교 교단이 교권싸움에 휘말려 갈라집니다. 싸움에 크게 실망한 서울대 기독학생회 출신 30대 젊은이들 10여명이 기존 교회와 다른 신앙생활을 하자고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수도원이지요. 안병무 선생이 주축이 된 이들은 네 가지를 표방했습니다. 목사가 없는 평신도 교회,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는 교회 등입니다. 이후 설교가 좋아 많은 신도, 특히 지식인들이 신도로 왔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을 모시는 것으로 바뀌어 제가 3대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린교회는 여타 교회와 조금 다르다.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만 본다. 강단에는 목사는 물론 스님이나 이맘(무슬림 성직자)도 오른다. 교회는 교인이 500명이 넘으면 분가한다. 너무 큰 교회는 선교나 목회활동에 장애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점점 비대해지는 강남 대형교회와 정반대다. 교인들은 꼭 이곳뿐 아니라 제주 강정마을이나 용산참사 현장, 촛불집회 현장에서 예배를 본다. 지금도 교회 창립 정신인 ‘민중지향·통일지향’의 진보적 교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이런 방식이 예수의 삶에 부응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가”라고 묻자 조 담임목사는 명확하게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이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을 하기 위해 전국적 조직을 만들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이유는 로마제국의 지배에 항거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울이 종교·개인적으로 미화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정치적 사건이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고, 교회가 권력에 대한 저항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교회가 부패한 정치권력과 부자 등에게 바른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따라가는 삶’이라고 말했다. 1954년생인 조 담임목사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석사,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석·박사학위는 ‘민중해방적 해석’ ‘민중성서 신학적 접근’ 등 민중과 함께하는 예수다. 향린교회 정신과 딱 맞는 공부를 한 것이다.
공부를 마친 조 담임목사는 1988년부터 메릴랜드주 벨츠빌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를 시작으로 워싱턴 목요기도회 회장, 북미주기독학자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1999년 동양인 목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장로교 수도노회 노회장을 지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그는 미 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등 미국 정치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개량한복을 입고 활동한다. 수염도 길게 길러, 외모로만 보면 미국에서 공부한 개신교 목사라고 보기 힘들다. 아마 그의 대학 졸업논문인 ‘민속학에서 본 예수 전승’이라는 논문이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는 듯했다.
조 담임목사는 2003년 5월 이곳 향린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 6·15 남측위원회 서울대표, 평화실현국민행동 공동대표, 서울민주행동 공동대표,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등의 사회활동을 하며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5년 전부터 최근까지 전태일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경향신문>과 함께 ‘전태일 문학상’을 주최하기도 했다.
주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등을 하던 조 담임목사가 ‘갑자기’ 언론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최근 언론협동조합 ‘담쟁이’를 출범시키고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 언론협동조합은 곧 인터넷 보도매체 <민플러스(민플)> 창간을 앞두고 있다. 언론협동조합 ‘담쟁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전화(02-844-0615), 국민은행 013802-04-192226(예금주 류경완)으로 하면 된다.
왜 언론매체를 창간하는 언론운동에 나섰나. 지금의 진보언론도 못 믿겠다는 판단이 든 것인가.
“이번 총선이 의외의 결과가 나왔지만 우리 언론이 너무 한쪽 보수로 치우쳐 있고, 특히 자본에 지배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 빼놓고. (하하).”
<경향신문>도 상법상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다. (하하) 언제부터 언론매체를 준비했나.
“(이 질문에 동석했던 류경완 운영위원장이 보충설명을 했다) 작년 여름부터 몇 분이 언론운동의 필요성을 말하고 공감대를 갖다가 12월 30일 ‘새인터넷언론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올해 3월 9일 언론협동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4월 20일 언론사 등록필증을 받고, 5월 1일 창간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언론협동조합 ‘담쟁이’에는 개혁적 진보인사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 이사진으로 강병기 전 경남 부지사, 고광헌 전 한겨레신문 사장, 김하범 민주주의국민행동 운영위원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심재환 법무법인 향법 대표변호사, 윤택근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의장, 이호윤 전국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 장순향 민예총 부이사장, 한충목 평화행동 공동대표 등이 그들이다.
이미 진보언론으로 평가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여타의 많은 진보매체가 존재한다. 그 중에는 협동조합 형태의 진보매체도 있다. 물론 대부분 보수언론에 종편까지 가세해 무차별 보수 편향보도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작은 진보언론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도 소중하다. 하지만 사업적으로 성공 혹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존 진보언론과 무엇을 차별화할 것이냐도 중요하다.
이에 조 담임목사는 “<민플>은 속보 위주, 기사 위주가 아니라 깊이 있는 정론, 특히 담론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면서 “보도에서 강조하는 분야는 민족과 국제 부분으로,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른 평화와 협력·통일지향 입장에서 보도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 서민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는 ‘현장언론’을 추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를 위해 20여명의 고문·자문위원, 12명의 편집기획위원, 100여명의 전문 필진을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중에는 고광헌 전 <한겨레신문> 사장, 유영구 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팀장, 정용일 전 <민족21> 편집국장,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대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안재구 전 경북대 교수, 이채언 전남대 교수, 장순향 한양대 교수, 이산하 시인,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 등이다.
<민플>이 특히 자랑하는 것은 촘촘한 국제뉴스다. 렘지 클라크 전 미 법무부 장관, 브라이언 베커 미 평화단체 엔서 대표, 미셸 초스도프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명예교수, 시옹 레이 중국 신화통신 영문판 편집인, 후쿠야마 신고 일본 평화포럼 대표, 와타나베 겐쥬 일한민중연대 전국네트워크 대표, 핫토리 료이치 일본 전 중의원 의원, 허재철 일본 리츠메이칸대 연구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세계 인권·평화운동가들로, 이들 단체들과 이미 국제적 연계활동을 했기 때문에 필진 확보가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플>은 진보언론 최초로 미주·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해외 교포지국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민플>은 인터넷 언론으로 시작하지만 곧 모바일과 SNS, 팟캐스트, 동영상 등 뉴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선보인다. 또 교양강좌와 사회과학 학교 설립 등 다양한 부대사업을 실시하고, 궁극적으로 TV방송까지 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조 담임목사는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된 후 개신교가 급속도로 보수화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완전히 보수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남북관계에 대해 성명서를 내는 등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데, 언론이 다뤄주지 않는다. 언론이 보수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보다 역시 언론이 문제라는 두 번째 ‘역습적 대답’이다.
“지난 2월 중국 심양에서 열린 남북 개신교 관계자들의 연례모임에 통일부가 방북 자체를 불허했다. 신고만 하고 갔더니 우리 목사 5명에게 과태료(남북교류협력법 위반) 200만원씩 때렸다. 과거에는 그냥 신고만 하고 가면 통일부가 ‘이렇게 하시면 어떠합니까’라고 사정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종교인들에게 북한 종교인 접촉 위반으로 과태료를 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 선교 침해행위다.”
200만원 과태료를 부과받은 목사들은 동전으로 헌금을 받아 통일부 앞에서 동전으로 과태료를 전달하는 ‘유쾌한’ 퍼포먼스를 벌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 담임목사는 오는 7월 여러 목사들이 12일 동안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시민권자 10만명이 서명한 청원은 반드시 의회에서 심의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조 담임목사가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개신교도 꾸준히 남북화해를 위해 노력하는데, 언론이 이런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결국 언론이 문제라고 판단해 아예 언론사를 만들기로 하고 나선 것이다.
조 담임목사는 얼마 전 설교집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냈다. 이 설교집에서 말하려 했던 요지가 궁금했다.
“성서는 신도의 기도를 신에게 매개하는 제사장의 역할과 사회와 국가권력, 부자를 비판하는 예언자의 역할 등 2개 축으로 돼 있다. 그동안 교회는 성장에만 매달려 제사장의 목소리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성서의 예언자적 입장, 즉 정치와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이 미흡했다. 언론이 잘 해줬으면 교회가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또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세 번째 질타다. 세 번이나 연거푸 질타를 받은 기성언론 입장에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조 담임목사의 설교나 행보가 너무 정치적이고, 또 비(非)성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역습성’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정치는 정사 정(政)도 있지만, 바를 정(正)도 중요하다. 그 바를 정을 외치는 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교회가 하는 것이고, 이것은 지극히 성서적”이라고 차분히 받아 넘겼다.
이론과 신념으로 단단하게 무장된 그를 기자가 뚫기란 쉽지 않았다. 용기가 없어, 미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해 바른 말을 못하는 이 상황에서 그는 예수가 그랬듯이 ‘예언자적 행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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