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25세부터 30년 동안 저서 27권, 영어·독어·한문 번역서 20여권을 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일간신문 기자가 해낸 작업이다. 20대에는 ‘이한우’라는 동명이인이 여러 명인 줄 알았다. 서양철학, 해석학, 심리학, 미디어 분야의 영어, 독어 번역서에서 옮긴이 ‘이한우’를 발견하는 일이 잦았다. 영어, 독어에 능하고 문장을 잘 쓰는 서양철학 전공 번역가 정도로 기억했다.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고, 원서의 맥락을 철저히 이해하고 번역한 그의 책들은 번역투 문장이 없고 간결하여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후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돈 큐피트의 <신 그 이후>와 같은 책들을 접하면서 번역가 ‘이한우’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문기자가 이 모든 저서와 번역서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그 무렵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우연히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세종>을 읽게 됐다. 지은이 ‘이한우’. 이번에는 정말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다. 서양철학자이자 번역가인 이한우가 어느새 조선사와 사서삼경에 빠져 있었다. 신문사를 그만뒀나 보다 하고 살펴보니 기획취재부장, 여론독자부장, 문화부장, 선임기자를 거치며 바쁘게 살고 있었다. ‘뭐 이런 괴물이 있나!’
그가 쓴 <슬픈 공자>,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포함한 사서삼경 시리즈를 읽으며 공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내가 알던 공자와 논어에 대한 지식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역을 보고 공부하면서 갖게 된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게 되었고, 논어를 통해서 사람 보는 눈을 조금씩 뜨게 됐다. 논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찾아가 봤다. 기자를 그만뒀다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중앙일보> 뉴스위크, <문화일보>, <조선일보>를 거쳐서 25년 언론인 생활을 잘 마치고 다시 공부의 세계로 돌아왔다. 언론계에 들어갈 때 관심사는 독일철학이었는데, 나올 때는 중국사와 조선사다. 대학원 입학했을 때만큼 설렌다. 그는 단국대학교 인재개발원 주임교수로 부임해 있었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군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축하합니다.” 300개에 달하는 댓글은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서 대학교수 이한우를 만났다.
10분 간격으로 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터뷰는 계속 끊겼고, 이한우 교수도 학생들을 반기느라 인터뷰하러 온 사람은 뒷전이다. 2013년부터 단국대 인재아카데미 초빙교수로 특강을 해왔다고 했다. 인재아카데미란 단국대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40명을 에세이 쓰기와 면접을 통해 엄격하게 선발해 인문학 고전과 창업 실무를 집중 교육하는 독특한 기구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학에서는 유일하며, 대학 밖에는 건명원과 아산서원 정도가 있다. 줄여서 ‘단인아’라 한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 ‘단인아’ 졸업생들도 여러 명 찾아왔다. 이한우 교수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우선 학생들과 얘기를 나눴다.
대학생들이 교수 연구실에 찾아와서 수다 떠는 건 (웃음) 요즘 보기 힘든 풍경이에요.
“우리는 교수님이 기자 그만두고 대학으로 옮겨오실 줄 알았어요. 우리 예상이 딱 맞아서 다들 기뻐요. 보통 교수님들은 우리가 발표를 하면 대개 ‘잘 했어요’ 정도로 칭찬하고 끝나요. 그런데 이한우 교수님은 달라요. 자세히 듣고 조목조목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고, 어떤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하고, 연구실 데려와서 그 책을 주십니다. 다 읽으면 다른 책을 또 주시고요. 이 책장에 있는 책들이 우리가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책이에요.”(경영학과 4학년 김채은)
오늘도 책 받으러 온 거예요.
“책도 받고, 상담도 하고요. 교수님 연구실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어요. 가끔 족구도 함께해요. 오늘은 특강 들으러 졸업생들도 많이 올 거예요. 교수님 사진 찍을 때 우리도 옆에서 보게 해 주세요. 젊게 나온 사진이 잘 나가야 해요.”(졸업생 강주형)
이한우 교수가 음료수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지난주에 학생들과 족구 하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다쳤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만둔 걸 환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이유로.(웃음) 미련은 없었나요. 25년을 매일 아침 출근했으니, 요즘 매일 무단결근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원래 꿈이 대학교수였어요. 하지만 기자로 살면서 내가 진짜 대학교수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죠. 생활인으로 살면서도 공부가 너무 좋아서 놓지 않았던 건데, 뒤늦게 꿈을 이뤘어요, 2013년 여름부터 단국대 인재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어 올해로 3년째 학생들에게 동서양의 고전을 읽는 법을 강의해 왔고, 올해 주임교수로 발령 받았습니다. 낯설지 않고 편해요. 인재아카데미 원장 강은수 교수 덕분에 오랫동안 일해온 일터처럼 금방 적응했어요. 학생들이 눈에 보이게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숨어 있던 또 하나의 열정을 보게 됐습니다.”
원래 고전에 관심이 많았나요.“전공이 철학이어서 서양철학은 어지간히 보았지만, 역시 서양철학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어요. 그래서 <군주열전> 시리즈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공자의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조선왕조실록>을 7년 동안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는 아니고. 2001년 겨울 우연한 기회에 <조선왕조실록>과 만났어요. 친분이 있는 출판사 사장이 600만원 상당의 조선왕조실록 CD롬 제공을 전제로 <세종평전> 집필을 제의했는데, 그때는 역사에 대한 지식과 훈련이 없는 상태였지만 무조건 시작해보겠다고 과욕을 부렸죠. 덕분에 고통스러운 실록 읽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어요.(웃음)”
서양철학 공부한 게 도움이 되었나요.
“서양의 학자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술을 할 때 양면성, 특히 역사적 인물에 관해서는 일방적인 평가를 하지 않아요. ‘평가’라는 것은 왜곡될 수 있고, 자의적인 기준이 개입되죠.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인물의 실상에 접근합니다. 저는 실록을 통해 역사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편견을 깨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군주열전> 6권 중에서 세종은 감동적이었고, 태종은 읽고 나서 충격이 컸어요. 내가 알던 태종과 실록 속에서 걸어나온 태종은 너무 달랐어요.
“태종은 타고난 왕이고, 세종은 잘 만들어진 왕입니다. 태종은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이자 천재였어요. 태종은 건국 다음에 등장해 국가의 기틀을 만들었고, 정치투쟁이 불가피한 시기에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었죠. 역사의 현실을 맞이할 때는 교조주의적인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태종은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적을 제거한 행위를 선악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돼요.”
군주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기준 1순위는 무엇인가요.
“군주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를 보면 됩니다. 그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알 수 있어요. 군주가 받은 교육을 통해 한 시대가 결정됩니다. 몇 살 때 무엇을 배웠는가, 무슨 책을 좋아했나, 세자의 지위에서 배웠는가, 임금이 된 후에 배웠는가, 이런 것을 파악하면 군주의 성격과 정책 결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요. 실록을 읽는 방법입니다.”
교육을 통해 리더십이 결정되는 거라면, 잘 만들어진 왕 세종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세종>을 읽은 뒤 늘 궁금했는데 <대학연의>가 번역되어서 기뻤어요. <대학연의>는 국내 최초로 번역된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실록 완독 과정에서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보다 철저함을 추구했던 세종대왕이었어요. 특히 세종대왕이 읽고 또 읽었다는 송나라 진덕수의 <대학연의>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단순히 세종대왕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넘어 조선사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지요.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이 책이 번역돼 있지 않았어요. 결국 한문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됐죠. 이때 문득 대학시절 피상적으로 수업시간에 배웠던 사서삼경을 철저히 독파를 하다보면 <대학연의>라는 책을 어느 정도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 책의 절반은 중국 역사서의 사례 인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사서삼경에 대한 풀이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방법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열심히 읽었던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그리고 비평 공부를 시작하면서 해석학에 빠져들었을 때 눈을 뜨게 해준 블레이처의 <해석학적 상상력>,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원키의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딜타이의 <체험 표현 이해>와 같은 영어·독어 번역서의 옮긴이는 모두 이한우였다. 이후 심리학 공부를 할 때 만난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은 그 중에서도 정독했던 책이다. 그 책에서도 옮긴이 이한우를 발견했다. 이후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돈 큐피트의 <신 그 이후>와 같은 좋은 책들을 접하면서 관심은 더 커졌다. <한국은 난민촌인가>,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과 같은 저서는 저자의 철학적 사유와 문화적 식견이 돋보이는 재밌는 책이다.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를 출간한 이후에도 <논어로 논어를 풀다>,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논어로 중용을 풀다>, <왕의 하루>, <조선을 통하다>, <슬픈 공자>, <논어로 대학을 풀다>, <논어로 맹자를 읽다>, <대학연의>와 같은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이한우의 군주열전>이 나오기 시작한 2003년부터 2015년 사이에 <논어>, <중용>, <대학>, <맹자>에 대한 풀이와 해석을 담은 사서삼경 시리즈 4권을 포함해서 최근 <심경부주>까지 26권의 책을 내셨어요.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1400쪽이 넘고 벽돌 한 장과 같은 무게예요.(웃음) <대학연의>도 1600여쪽이고요. 동양고전뿐만 아니라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와 같은 독일어 원서 3권과 <아부의 즐거움> 같은 저서도 포함돼 있어요. 필자가 써내는 속도가 독자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빨라요. 비결이 뭔가요.
“학문에 대한 사랑과 갈증이겠죠. 철학과 박사과정 땐 <문화일보> 기자였어요. 기자로서도 바빴던 시기지만, 학문에 대한 열망은 접을 수가 없었고 학교를 벗어난 이후에도 공부를 놓아본 적이 없어요. 좋아서 했습니다. 주말이나 주중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대학연의>를 번역하는 일에 정신적 노력 대부분이 투입됐습니다.”
학문에 대한 사랑과 갈증이 ‘꿈을 이루는 비결’이군요. 책의 문장도 논어나 여타 사서삼경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고 들었어요. 한문은 어디서 배우셨나요.
“독학했어요. 누구한테 배워서 했으면 오히려 고정 틀에 얽매여 번역을 제대로 못했을 거 같아요.”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새로운 논어 교과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원서를 100번도 더 읽었고,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집필에 매달렸다고 들었어요.
“<논어>를 제대로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큰 싸움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고수들이 바둑을 둘 때 첫 수가 가장 중요해요. 포석의 그림을 그린 다음에 첫 수를 두는 것이고, 상대방의 두 번째 수를 본 다음에 다시 포석의 그림을 약간씩 조정해가면 세 번째 수를 두겠죠. <논어>의 첫 구절은 바로 논어 읽기라는 큰 바둑시합을 하면서 나오는 첫 수에 해당합니다. 논어는 총 20편이고, 모두 500개 가까운 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즉 바둑돌 500개로 이루어진 한판 승부가 <논어>인 셈입니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읽으면서 불혹의 참 의미를 새로 알게 됐어요. 그동안 오역을 읽고 마흔이 되어서도 유혹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한탄했었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은 불혹을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 어딘가에 미혹되지 않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이유는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논어 풀이 책들이 그런 식으로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두 사례를 들어볼게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도) 그를 살리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그가 (버젓이 살아있는 생명인데도) 죽기를 바라니, 이미 누군가를 살리려 하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혹이다. (혹에 빠지면) 진실로(誠) 덕이 왕성해지지도 못하고 다만 괴이함만을 취하게 될 뿐이다’, ‘하루아침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을 잊어 그로 인한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 바로 혹(惑) 아니겠는가?’ 이 두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공자가 말한 혹, 불혹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요. 불혹이라는 것은 자신의 성질부터 다스리라는 뜻이죠. 반대로 혹한다는 것은 요즘 식으로 하자면 ‘욱’하는 것이에요. 인내심을 잃고 욱하는 것이 혹이다. 따라서 불혹은 인내심을 유지하여 감정 조절을 잘하는 것입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학이시습에서 배운다는 것은 문(文)을 배운다는 것이에요. 이한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학(學)자를 정리해본 결과 일관되게 학문(學文), 즉 문(文)을 배우는 것으로 돼 있어요. 물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오늘날의 학문은 한자로 배울 학(學), 물을 문(問)이지만 논어에서 학문(學文)은 문(文)을 배우는 것입니다. 학문(學問)은 <논어>에는 없고 <맹자>에는 등장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알기도 쉽지 않아요. 오랫동안 <논어>를 파고들어야 알 수 있죠. 지금 당장 서점에 가서 수십 종의 논어 번역서나 소개서를 살펴봐도 ‘배운다’의 뜻을 문(文)을 배운다고 돼 있는 책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최근에 나온 책들을 보니 우리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서는 예(禮)를 배우는 것이라고 해설한 책은 보았어요. 질문의 의도도 좋았고 예(禮)를 배운다고 한 것은 정답은 아니지만 틀린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예(禮)야말로 우리가 보게 될 문(文)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문(文)을 배워 익히면 기쁘다는 말이 되는데, 문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부에서는 이 문(文)을 글월 문(文)이라고 해서 학문(學文)도 글을 배우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틀렸어요. 이 문(文)은 글이 아니에요. 애쓰는 것, 애쓰는 법, 애쓰다는 뜻입니다. 뜬금없이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애쓰는 법을 배워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번역해야 합니다. 학(學)을 학문(學文)으로 풀이하고 애쓰는 법을 배우다로 번역할 경우 시(時)는 절대로 때로, 때때로, 시간에 맞춰 등과 같은 듬성듬성한 의미로 번역해서는 안 돼요. 애쓰는 법을 배우다와 맞아 떨어지려면 시(時)는 시간 나는 대로, 수시로, 항상에 가깝게 번역해야 합니다.”
1985년 처음 번역서를 내셨어요. 그동안 낸 번역서가 20권이 넘고요. 신문기자가 힘든 번역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 지겹게 받았겠어요.
“제 답은 한 가지입니다. 좋아서 했어요. 돈 때문도 아니고 현학 심리 때문도 아니죠. 이유는 또 있어요.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 실력이 늘기 때문입니다. 처음 두세 권 번역했을 땐 번역 과정에 우리말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논어> 학이편 첫 장에 등장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을 통해서 삶의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장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기대하죠. 그러나 공자는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꽁해 하지 말고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나갈 것을 주문합니다. 원칙을 외부로부터 찾지 말고 자기 안에서 찾으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뭔가 일이 잘못되면 자기 탓보다는 남의 탓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기발전을 할 수가 없어요. 공자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어 기탄없이 고쳐나갈 것을 주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의 탓을 한다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됩니다.“
영어, 독어, 한문 번역을 모두 해낼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번역의 법칙을 찾아낸 것 같아요.
“모든 언어는 다 언어 일반의 규칙이나 룰을 따르고 있죠. 처음 외국어 배울 때는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집니다.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작동하는 문법뿐만 아니라 언어의 역학관계를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한문은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 어려운 언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글의 문제일 뿐 말로 보자면 한 가지예요. 그 때문인지 한문을 번역할 수준만큼 이르는 기간이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서는 2~3배 걸린 것 같아요. 대신 문자의 깊이 때문에 번역 자체는 한문 번역이 가장 즐겁고 뜻깊습니다.”
그 무렵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우연히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세종>을 읽게 됐다. 지은이 ‘이한우’. 이번에는 정말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다. 서양철학자이자 번역가인 이한우가 어느새 조선사와 사서삼경에 빠져 있었다. 신문사를 그만뒀나 보다 하고 살펴보니 기획취재부장, 여론독자부장, 문화부장, 선임기자를 거치며 바쁘게 살고 있었다. ‘뭐 이런 괴물이 있나!’
그가 쓴 <슬픈 공자>,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포함한 사서삼경 시리즈를 읽으며 공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내가 알던 공자와 논어에 대한 지식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역을 보고 공부하면서 갖게 된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게 되었고, 논어를 통해서 사람 보는 눈을 조금씩 뜨게 됐다. 논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찾아가 봤다. 기자를 그만뒀다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중앙일보> 뉴스위크, <문화일보>, <조선일보>를 거쳐서 25년 언론인 생활을 잘 마치고 다시 공부의 세계로 돌아왔다. 언론계에 들어갈 때 관심사는 독일철학이었는데, 나올 때는 중국사와 조선사다. 대학원 입학했을 때만큼 설렌다. 그는 단국대학교 인재개발원 주임교수로 부임해 있었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군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축하합니다.” 300개에 달하는 댓글은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서 대학교수 이한우를 만났다.
10분 간격으로 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터뷰는 계속 끊겼고, 이한우 교수도 학생들을 반기느라 인터뷰하러 온 사람은 뒷전이다. 2013년부터 단국대 인재아카데미 초빙교수로 특강을 해왔다고 했다. 인재아카데미란 단국대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40명을 에세이 쓰기와 면접을 통해 엄격하게 선발해 인문학 고전과 창업 실무를 집중 교육하는 독특한 기구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학에서는 유일하며, 대학 밖에는 건명원과 아산서원 정도가 있다. 줄여서 ‘단인아’라 한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 ‘단인아’ 졸업생들도 여러 명 찾아왔다. 이한우 교수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우선 학생들과 얘기를 나눴다.
대학생들이 교수 연구실에 찾아와서 수다 떠는 건 (웃음) 요즘 보기 힘든 풍경이에요.
“우리는 교수님이 기자 그만두고 대학으로 옮겨오실 줄 알았어요. 우리 예상이 딱 맞아서 다들 기뻐요. 보통 교수님들은 우리가 발표를 하면 대개 ‘잘 했어요’ 정도로 칭찬하고 끝나요. 그런데 이한우 교수님은 달라요. 자세히 듣고 조목조목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고, 어떤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하고, 연구실 데려와서 그 책을 주십니다. 다 읽으면 다른 책을 또 주시고요. 이 책장에 있는 책들이 우리가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책이에요.”(경영학과 4학년 김채은)
오늘도 책 받으러 온 거예요.
“책도 받고, 상담도 하고요. 교수님 연구실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어요. 가끔 족구도 함께해요. 오늘은 특강 들으러 졸업생들도 많이 올 거예요. 교수님 사진 찍을 때 우리도 옆에서 보게 해 주세요. 젊게 나온 사진이 잘 나가야 해요.”(졸업생 강주형)
이한우 교수가 음료수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지난주에 학생들과 족구 하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다쳤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만둔 걸 환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이유로.(웃음) 미련은 없었나요. 25년을 매일 아침 출근했으니, 요즘 매일 무단결근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원래 꿈이 대학교수였어요. 하지만 기자로 살면서 내가 진짜 대학교수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죠. 생활인으로 살면서도 공부가 너무 좋아서 놓지 않았던 건데, 뒤늦게 꿈을 이뤘어요, 2013년 여름부터 단국대 인재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어 올해로 3년째 학생들에게 동서양의 고전을 읽는 법을 강의해 왔고, 올해 주임교수로 발령 받았습니다. 낯설지 않고 편해요. 인재아카데미 원장 강은수 교수 덕분에 오랫동안 일해온 일터처럼 금방 적응했어요. 학생들이 눈에 보이게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숨어 있던 또 하나의 열정을 보게 됐습니다.”
원래 고전에 관심이 많았나요.“전공이 철학이어서 서양철학은 어지간히 보았지만, 역시 서양철학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어요. 그래서 <군주열전> 시리즈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공자의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조선왕조실록>을 7년 동안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는 아니고. 2001년 겨울 우연한 기회에 <조선왕조실록>과 만났어요. 친분이 있는 출판사 사장이 600만원 상당의 조선왕조실록 CD롬 제공을 전제로 <세종평전> 집필을 제의했는데, 그때는 역사에 대한 지식과 훈련이 없는 상태였지만 무조건 시작해보겠다고 과욕을 부렸죠. 덕분에 고통스러운 실록 읽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어요.(웃음)”
서양철학 공부한 게 도움이 되었나요.
“서양의 학자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술을 할 때 양면성, 특히 역사적 인물에 관해서는 일방적인 평가를 하지 않아요. ‘평가’라는 것은 왜곡될 수 있고, 자의적인 기준이 개입되죠.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인물의 실상에 접근합니다. 저는 실록을 통해 역사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편견을 깨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군주열전> 6권 중에서 세종은 감동적이었고, 태종은 읽고 나서 충격이 컸어요. 내가 알던 태종과 실록 속에서 걸어나온 태종은 너무 달랐어요.
“태종은 타고난 왕이고, 세종은 잘 만들어진 왕입니다. 태종은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이자 천재였어요. 태종은 건국 다음에 등장해 국가의 기틀을 만들었고, 정치투쟁이 불가피한 시기에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었죠. 역사의 현실을 맞이할 때는 교조주의적인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태종은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적을 제거한 행위를 선악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돼요.”
군주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기준 1순위는 무엇인가요.
“군주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를 보면 됩니다. 그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알 수 있어요. 군주가 받은 교육을 통해 한 시대가 결정됩니다. 몇 살 때 무엇을 배웠는가, 무슨 책을 좋아했나, 세자의 지위에서 배웠는가, 임금이 된 후에 배웠는가, 이런 것을 파악하면 군주의 성격과 정책 결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요. 실록을 읽는 방법입니다.”
교육을 통해 리더십이 결정되는 거라면, 잘 만들어진 왕 세종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세종>을 읽은 뒤 늘 궁금했는데 <대학연의>가 번역되어서 기뻤어요. <대학연의>는 국내 최초로 번역된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실록 완독 과정에서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보다 철저함을 추구했던 세종대왕이었어요. 특히 세종대왕이 읽고 또 읽었다는 송나라 진덕수의 <대학연의>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단순히 세종대왕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넘어 조선사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지요.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이 책이 번역돼 있지 않았어요. 결국 한문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됐죠. 이때 문득 대학시절 피상적으로 수업시간에 배웠던 사서삼경을 철저히 독파를 하다보면 <대학연의>라는 책을 어느 정도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 책의 절반은 중국 역사서의 사례 인용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사서삼경에 대한 풀이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방법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열심히 읽었던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그리고 비평 공부를 시작하면서 해석학에 빠져들었을 때 눈을 뜨게 해준 블레이처의 <해석학적 상상력>,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원키의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딜타이의 <체험 표현 이해>와 같은 영어·독어 번역서의 옮긴이는 모두 이한우였다. 이후 심리학 공부를 할 때 만난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은 그 중에서도 정독했던 책이다. 그 책에서도 옮긴이 이한우를 발견했다. 이후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돈 큐피트의 <신 그 이후>와 같은 좋은 책들을 접하면서 관심은 더 커졌다. <한국은 난민촌인가>,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과 같은 저서는 저자의 철학적 사유와 문화적 식견이 돋보이는 재밌는 책이다.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를 출간한 이후에도 <논어로 논어를 풀다>,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논어로 중용을 풀다>, <왕의 하루>, <조선을 통하다>, <슬픈 공자>, <논어로 대학을 풀다>, <논어로 맹자를 읽다>, <대학연의>와 같은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이한우의 군주열전>이 나오기 시작한 2003년부터 2015년 사이에 <논어>, <중용>, <대학>, <맹자>에 대한 풀이와 해석을 담은 사서삼경 시리즈 4권을 포함해서 최근 <심경부주>까지 26권의 책을 내셨어요.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1400쪽이 넘고 벽돌 한 장과 같은 무게예요.(웃음) <대학연의>도 1600여쪽이고요. 동양고전뿐만 아니라 마르트 룰만의 <여성철학자>와 같은 독일어 원서 3권과 <아부의 즐거움> 같은 저서도 포함돼 있어요. 필자가 써내는 속도가 독자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빨라요. 비결이 뭔가요.
“학문에 대한 사랑과 갈증이겠죠. 철학과 박사과정 땐 <문화일보> 기자였어요. 기자로서도 바빴던 시기지만, 학문에 대한 열망은 접을 수가 없었고 학교를 벗어난 이후에도 공부를 놓아본 적이 없어요. 좋아서 했습니다. 주말이나 주중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대학연의>를 번역하는 일에 정신적 노력 대부분이 투입됐습니다.”
학문에 대한 사랑과 갈증이 ‘꿈을 이루는 비결’이군요. 책의 문장도 논어나 여타 사서삼경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고 들었어요. 한문은 어디서 배우셨나요.
“독학했어요. 누구한테 배워서 했으면 오히려 고정 틀에 얽매여 번역을 제대로 못했을 거 같아요.”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새로운 논어 교과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원서를 100번도 더 읽었고,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집필에 매달렸다고 들었어요.
“<논어>를 제대로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큰 싸움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고수들이 바둑을 둘 때 첫 수가 가장 중요해요. 포석의 그림을 그린 다음에 첫 수를 두는 것이고, 상대방의 두 번째 수를 본 다음에 다시 포석의 그림을 약간씩 조정해가면 세 번째 수를 두겠죠. <논어>의 첫 구절은 바로 논어 읽기라는 큰 바둑시합을 하면서 나오는 첫 수에 해당합니다. 논어는 총 20편이고, 모두 500개 가까운 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즉 바둑돌 500개로 이루어진 한판 승부가 <논어>인 셈입니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읽으면서 불혹의 참 의미를 새로 알게 됐어요. 그동안 오역을 읽고 마흔이 되어서도 유혹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한탄했었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은 불혹을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 어딘가에 미혹되지 않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이유는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논어 풀이 책들이 그런 식으로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두 사례를 들어볼게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도) 그를 살리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그가 (버젓이 살아있는 생명인데도) 죽기를 바라니, 이미 누군가를 살리려 하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혹이다. (혹에 빠지면) 진실로(誠) 덕이 왕성해지지도 못하고 다만 괴이함만을 취하게 될 뿐이다’, ‘하루아침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을 잊어 그로 인한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 바로 혹(惑) 아니겠는가?’ 이 두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공자가 말한 혹, 불혹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요. 불혹이라는 것은 자신의 성질부터 다스리라는 뜻이죠. 반대로 혹한다는 것은 요즘 식으로 하자면 ‘욱’하는 것이에요. 인내심을 잃고 욱하는 것이 혹이다. 따라서 불혹은 인내심을 유지하여 감정 조절을 잘하는 것입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학이시습에서 배운다는 것은 문(文)을 배운다는 것이에요. 이한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학(學)자를 정리해본 결과 일관되게 학문(學文), 즉 문(文)을 배우는 것으로 돼 있어요. 물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학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오늘날의 학문은 한자로 배울 학(學), 물을 문(問)이지만 논어에서 학문(學文)은 문(文)을 배우는 것입니다. 학문(學問)은 <논어>에는 없고 <맹자>에는 등장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알기도 쉽지 않아요. 오랫동안 <논어>를 파고들어야 알 수 있죠. 지금 당장 서점에 가서 수십 종의 논어 번역서나 소개서를 살펴봐도 ‘배운다’의 뜻을 문(文)을 배운다고 돼 있는 책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최근에 나온 책들을 보니 우리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서는 예(禮)를 배우는 것이라고 해설한 책은 보았어요. 질문의 의도도 좋았고 예(禮)를 배운다고 한 것은 정답은 아니지만 틀린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예(禮)야말로 우리가 보게 될 문(文)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문(文)을 배워 익히면 기쁘다는 말이 되는데, 문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부에서는 이 문(文)을 글월 문(文)이라고 해서 학문(學文)도 글을 배우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틀렸어요. 이 문(文)은 글이 아니에요. 애쓰는 것, 애쓰는 법, 애쓰다는 뜻입니다. 뜬금없이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애쓰는 법을 배워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번역해야 합니다. 학(學)을 학문(學文)으로 풀이하고 애쓰는 법을 배우다로 번역할 경우 시(時)는 절대로 때로, 때때로, 시간에 맞춰 등과 같은 듬성듬성한 의미로 번역해서는 안 돼요. 애쓰는 법을 배우다와 맞아 떨어지려면 시(時)는 시간 나는 대로, 수시로, 항상에 가깝게 번역해야 합니다.”
1985년 처음 번역서를 내셨어요. 그동안 낸 번역서가 20권이 넘고요. 신문기자가 힘든 번역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 지겹게 받았겠어요.
“제 답은 한 가지입니다. 좋아서 했어요. 돈 때문도 아니고 현학 심리 때문도 아니죠. 이유는 또 있어요.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 실력이 늘기 때문입니다. 처음 두세 권 번역했을 땐 번역 과정에 우리말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논어> 학이편 첫 장에 등장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을 통해서 삶의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장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기대하죠. 그러나 공자는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꽁해 하지 말고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나갈 것을 주문합니다. 원칙을 외부로부터 찾지 말고 자기 안에서 찾으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뭔가 일이 잘못되면 자기 탓보다는 남의 탓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기발전을 할 수가 없어요. 공자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어 기탄없이 고쳐나갈 것을 주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의 탓을 한다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됩니다.“
영어, 독어, 한문 번역을 모두 해낼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번역의 법칙을 찾아낸 것 같아요.
“모든 언어는 다 언어 일반의 규칙이나 룰을 따르고 있죠. 처음 외국어 배울 때는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집니다.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작동하는 문법뿐만 아니라 언어의 역학관계를 이해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한문은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 어려운 언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글의 문제일 뿐 말로 보자면 한 가지예요. 그 때문인지 한문을 번역할 수준만큼 이르는 기간이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서는 2~3배 걸린 것 같아요. 대신 문자의 깊이 때문에 번역 자체는 한문 번역이 가장 즐겁고 뜻깊습니다.”
2600년 전쯤 중국 땅에서 살다간 공자를 현대인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후대에 만들어진 공자(孔子)는 위대한 성인(聖人)인지 모르지만 그 시대와 공간을 살아내면서 그의 입에서 나온 육성들은 진솔한 인간의 목소리일 뿐입니다. 논어는 적어도 우리가 공자라는 한 인간이 생생하게 내뱉은 육성을 가감 없이 들어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텍스트예요. <논어> 속의 공자는 연단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나란히 앉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토해냅니다. 그런데 <논어>를 깊이 들어가 읽다보면 공자는 자신의 말이 이 세상에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를 성의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공자의 발언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간곡한 마음씀씀이인 것 같아요.”
“후대에 만들어진 공자(孔子)는 위대한 성인(聖人)인지 모르지만 그 시대와 공간을 살아내면서 그의 입에서 나온 육성들은 진솔한 인간의 목소리일 뿐입니다. 논어는 적어도 우리가 공자라는 한 인간이 생생하게 내뱉은 육성을 가감 없이 들어볼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텍스트예요. <논어> 속의 공자는 연단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나란히 앉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토해냅니다. 그런데 <논어>를 깊이 들어가 읽다보면 공자는 자신의 말이 이 세상에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를 성의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공자의 발언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간곡한 마음씀씀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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