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6

(8) 배재희 -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식 표현을 빌리자면...

(8) 배재희 -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식 표현을 빌리자면...



배재희
10 July at 14:45 ·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식 표현을 빌리자면 신성(神聖)로마제국 황제는 일종의 ‘상징자본’이었다. 어둑어둑한 오리엔트의 가짜 기독교 군주 동로마 황제에 대응한다는, 유럽세계의 자부와 도덕적 명분을 그러모은 개념이 곧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가상의 권좌였다. 이 자리는 초기에는 프랑크 왕이, 나중에는 독일 황제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천국문 열쇠를 쥔 또 다른 상징자본가인 로마의 교황과는 구조적으로 알력 다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1054년, 젊은 군주 하인리히 4세가 독일 황제에 오른다. 사내는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그는 곧 자기 수하의 궁정 신부를 대주교에 임명했다. 교황을 제껴버린 첫 도발이다. 독일 땅의 대주교 임명권을 앉은 채 빼앗긴 교황은 분개했다. 둘 사이 갈등을 쥐죽은 듯 지켜보던 관련자들은 시간이 지나며 차츰 국왕파의 패배를 확인하였다. 교황은 황제 및 황제를 지지하던 뭇 주교를 죄다 파문해버렸다.

황제에 충성하던 제후들마저 하인리히의 반대편에 서면서 그는 이제 궁정에 고립되는 처지가 되었다. 1077년의 싸리눈 내리는 겨울,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머물던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Canossa) 성으로 향한다. 아내만을 대동하고, 수북한 눈 밭에 맨발로 서서 그는 내리 사흘간 교황 앞에 파문을 철회해달라는 이벤트를 벌였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교황은 이윽고 자애로운 포고를 선언했다. 네 죄를 사하노라!

이 파워 게임의 백미는 하인리히가 복권한 후다. 그는 철저하게 이전의 실패를 복기했다. 교황의 권세 때문에 이익을 침해당하는 여러 제후들을 살뜰히 챙겼고 본인 편으로 돌렸다. 자신감을 회복한 하인리히는 다시 한번 싸움을 걸었고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로마 교황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본인이 직접 허수아비 교황을 옹립해 버린다. 이듬해에는 독일 제후국 군대를 동원해 로마를 함락시켜버리기까지 했다. 대역전승이었다. 교황도 꽤 부덕하긴 했던지 자기네 로마시민들에게까지 쫓겨나 이태리 남부 살레르노에서 쓸쓸히 숨졌다.

들을수록 드라마틱하다. 야심가 독일 황제가 굴욕을 참으며 실력을 키운 뒤, 마침내 교황을 묵사발낸 서사. 비슷한 얘기로 아시아권에서는 오왕(吳王) 부차에게 복수하고자 굴욕을 참으며 실력을 키운 월왕(楚王) 구천의 이야기가 포개어진다. 포로 생활하던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똥까지 먹으며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극도의 애교를 부렸다고. 후일 월국은 국세를 키워 쇠락해진 오국을 보기좋게 무너뜨렸다.

이제 한국의 얘기로 가보자. 2017년 드라마틱하게 집권한 한국의 신정부는 일본과 거의 모든 면에서 극단의 대립을 빚어왔다. 일본 총리 면전에서 ‘미국과는 동맹이지만 일본과는 아니다’는, 노골적 파경의 선언을 했고, 위안부 지원을 위해 양국이 세웠던 '화해와 치유 재단'을 해산시켰다. 국가 간 배상이 끝난 백년 전 강제징용자 배상에 민간 기업들더러 위자료를 물라는 한국 판결은 파국의 정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인 750만명, 일본인 380만명이 현해탄을 넘어 놀러다니는, 민간베이스에서는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두 나라 간의 파문이라니. 요컨대 밑의 정서와는 하등 무관한 지극히 인위적인 갈등상이었다. 일본은 폭발했고 그제야 벼러온 일을 시작했다. 파문을 빗는 반도체용 핵심 3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는 지금 일본 정부와 그들 사회에 팽배한 분개의 ‘공기’를 처음으로 직면케 되는 광경이다.

일본이 이처럼 특정 국가에 대해 독자로 경제 제재에 나선건 2차 대전 후 처음이다. 일본 총리는 한국이 군용 전략물자를 북한에 몰래 유출한게 아니냐는 금도를 넘기려는 듯한 발언으로 의혹을 던지기 까지 했다. 자민당 중진의원은 한국 정부에 ‘좀 더 어른이 되는게 좋겠다’는 세계사에 듣도 보도 못한 훈수를 두기도 했다. 국내 일부가 정신승리처럼 떠드는 ‘참의원 선거 때문에 도발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타깝다. 이미 일본 측 단기 손실 약 1300억, 한국 측은 34조라는 계산식까지 내놓고 벌이는 싸움을 두고서.

'역사를 잊지 말자'면서도 같은 실책을 반복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나 귀감이 될, 곱씹어 볼 역사가 뇌리에 수두룩하니 더 그렇다. 예 들자면 어떤 바보도 피할 수 있었다는 ‘병자호란’ 같은. 그 시절 17세기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청의 팔기군을 상대로 조선왕은 거친 외교적 행패를 부렸다. 본디 청황제는 명과 싸우느라 진이 빠져 조선과 다툴 의향도 없었다. 9년 전 정묘년에도 이미 한번 혼줄이 나서 청과 형제의 연도 맺었던 지간이었다. 그런데도 조선 임금은 굴기하는 청제국에 기상천외한 모욕과 수작을 부렸다. 청 황제의 친서도 거절하고, 청이 선물로 보낸 낙타는 길에서 굶겨죽였다. 조선 사절은 청 황제에게 가서는 절도 안했다. 황제는 기가 막혀했다. 그 짓들을 벌이며 싸움을 걸었으면 이기기라도 하던지. 막상 심양에서 출발한 청군은 단 보름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싸움이고 뭐도 없이 그냥 직선으로 시원하게 내달린 셈이다. 경기도 광주의 쌍령전투에서는 청나라 기병 300이 조선군 4만을 멸절시켰다. 방구석에서 소중화의 거창한 호기를 부리던 이들의 본 실력이 드러난 광경.

조선 임금이 남한산성에 틀어박힌 40여일은 싸우는 것도 항복도 아니었다. 매우 조선다운 지리멸렬이요 자멸이었다. 같은 근본주의자들이지만 로마에 저항하던 시오니스트들은 요새 ‘마사다’에서 집단자살하며 전율할 정도의 비극적 종지부라도 찍었다. 그러나 떵떵대던 조선 임금은 뒤늦게야 삶이 궁했다. 그는 삼전도에서 평복을 하고는 청 황제 앞에서 흙밭에 머리를 박았다. 차라리 카노사의 굴욕이 품위 있어보일만한 광경. 청 황제는 조선 임금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발도 털었다. 그 꼴을 보면서도 그간 주전론의 온갖 대의명분을 떠들던 유학자 중 자결하는 이 하나 없었다.

본디 그렇다. 애민(愛民)이라곤 눈꼽만큼도 속에 갖고 있지 않은 권력자들일수록 말의 겉자락을 애민의 낌새로 포장한다. 소중화니, 명에 관한 사대(事大)의 도리니 하는 따위를 떠들던 양반들과 임금은 오랑캐 군주의 오줌 발 앞에 무릎 꿇은 이후에도 계속 잘 먹고 잘 살았다. 무명의 민중, 조선인 60만이 노예로 심양성에 끌려갔을 뿐이다. 거기서 굶어 죽고 맞아죽고 얼어서, 정절을 잃은채, 버림받아 죽어간 무수한 익명들이 역사의 어둑한 뒤꼍에 널부러져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죄없는 민초였다. 흠이라면 죄많고 우둔한 군왕을 둔 운명에 속했을 뿐이다.

19세기 독일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교황과 대립하였을 때 유명한 의회 연설을 했다. "우리는 카노사로 가지 않는다.” 더는 게임이 되지 않는 적에 대한 호기요 강자의 거드름이었다. 부럽다. 나는 우리나라가 그런 거드름을 부리는 체급이 되었으면 좋겠다. 속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경험상 그 정도 사이즈의 실력자가 되면 대개 쓸데없는 거드름도 별로 안부리게 되더라. 패자의 컴플렉스나 적의(敵意) 같은 것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일테면 승자의 느긋한 여유랄까. 반대로 ‘죽더라도 싸우자’는 화전론은 약자의 울화다. 왜소하고 신경질적인 조선 임금과 주자학자들이 주로 지닌 심기다. 강자는 본디 다 이겨놓고 싸우는 병법을 따른다. 명분에 대한 뒤틀린 집착은 착색된 이념의 다른 말일 뿐이다. 나는 그런 일에는 손사레치고 싶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의 정신이라니. 아서라. 나는 아Q들의 정신승리에 편들어 줄 수 없다. 그저 오늘도 울며 버티듯 질경이처럼 살아 버텨야 하는 민초들의 생애에 편 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

‘극일(克日)’이라는 말이 요새처럼 간절한 때가 없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비스마르크처럼 ‘이제 카노사로 갈 일 없다’는 강자다운 심플한 외마디를 이죽거릴 수 있을까. 그런 때가 오긴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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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e Young Choi 이번엔 제대로 뭐라도 배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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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희 replied · 1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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