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소모품 같은 존재...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 - 오마이뉴스 모바일
"강사는 소모품 같은 존재...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
[인터뷰] 7년째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 농성중인 김영곤·김동애 교수
신영준(oo098)오주석(govl603)등록 2014.01.03 11:15수정 2014.01.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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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을 이어온 김영곤·김동애 교수 부부의 농성천막. ⓒ 오주석
어떤 싸움은 오래간다. 승기가 보이지 않아서 절망스럽다. 상대가 크면 더 어렵다. 그런데 어떤 노교수 부부는 길고 승산이 없고 거대한 상대를 대하는 싸움을 2000일 넘게 이어오고 있다. 2013년 12월 31일 세상이 1년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이하느라 바쁠 때, 이들은 7년 동안 지켜온 자리에서 내년이 아닌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관련기사 : 교수 부부가 7년째 천막농성하는 이유는?).
31일 오후 9시,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근처 빌딩 숲 사이로 부는 바람은 귀가하는 사람들의 등을 밀고 있었다. 제과점과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케이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거대한 빌딩은 크리스마스 트리마냥 수십 개의 불빛을 달고 있었다. 여의도역과 연결된 쇼핑몰에선 가족 단위로 외식을 나온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Marry Christmas(메리 크리스마스)"란 문구는 "Happy New year(해피 뉴이어)"로 바뀌어 있었다. 여의도공원 너머 KBS 서울본관에서는 긴 빛의 기둥이 하늘을 휘젓고 있었다. 그날 KBS에선 연기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KBS를 지나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했다. 그 너머 어둠이 내린 돔형 지붕 아래에 꺼지지 않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올해도 '지각예산' 처리로 바쁜 국회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선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길 너머에 있는, 비닐로 바람막이를 친 농성장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어 가로등 아래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가로수에 기대 서 있는 폼보드 선전판이 없었다면 몇 분이고 헤맸을 것 같았다.
"'가보니 노인네 둘이 앉아 있었다' 이렇게 써요."(김영곤)
2007년 9월부터 7년째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을 이어온 김영곤·김동애 교수 부부는 자신들의 농성천막 내부를 그렇게 묘사했다. 농성장의 모습은 7년 동안 다섯 번 바뀌었다. 농성장이 위치한 곳은 국민은행의 사유지다. 하지만 국민은행 측이 조경환경 정비공사를 세 번 진행하는 동안 농성장의 위치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한테 그렇게 말해요. '1, 2년 더 기다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요. 우리는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7년 동안도 기다렸는데 1, 2년도 못 기다리겠어요?"(김동애)
2013년 마지막 날, 국회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2년 더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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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천막농성을 이어온 김동애 교수. ⓒ 오주석
2011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14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시간강사법은 시간강사를 '강사'로 명명하고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등의 적용 대상에서는 제외돼 '무늬만 교원'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마지막 날, 국회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2년 더 유예하기로 했다. 시간강사법이 '진짜' 강사의 권리를 보장할 때까지 김 교수 부부는 몇 번이고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들한테는 연말이나 새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어요."(김동애)
매주 수요일과 주말을 제외하고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은 "처음엔 30일 정도면 끝나겠지 싶었다"며 "이렇게 오래 싸움을 계속할지는 몰랐다"(김동애)고 했다.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제야의 종'은 부부에게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강사는 대학에서 소모품 같은 존재예요. 대학강사만큼 처우와 신분보장이 안 되는 직업이 없어요. 방학 때는 강사료도 없고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어요. 강사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는 있을 곳이 없어요. 강의 준비하려면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해요.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고 준비해요. 처음 투쟁을 시작했을 때는 '내 후배 강사들에게는 이런 열악한 조건을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가장 큰 피해자는 강사들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더라고요."(김동애)
현재 대학 강의의 절반은 '강사'들이 책임지고 있다. 강사들의 평균 주당 강의 시간은 4.2시간으로 전임교수 6시간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강사가 받는 연봉은 한 강의당 약 600만 원 수준이다. 방학 동안은 강사료도 없고, 다음 학기 강의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모품'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시간강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적용 제외 대상이기 때문에 다음 학기에 '강의가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 고용이 유지된다. 전화가 없으면 사실상 '잘린' 것이다.
김동애 교수는 강사들의 교권지위와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대학교육 문제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아무런 처우도, 신분 보장도 되지 않는 강사들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강사들에게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어 김동애 교수는 등록금 문제까지 덧붙였다.
"옛날 같았으면 교수들이 앞장서서 쏟아져 나왔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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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을 이어온 김영곤 교수. ⓒ 오주석
"나도 그랬지만 월급에서 가장 먼저 빼놓는 게 교육비예요. 제대로 안 먹고 교육비 등록금 보태고. 이것은 국민의 문제죠. 벌이가 대단하지 않은 이상, 보통 중산층 가정들은 한두 학생 등록금 대려면 못 먹고 못 입거나 노후까지도 포기해요. 그런데 이런 등록금을 내고도 대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 이건 강사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의 문제라는 거죠.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해 많은 대학생들이 동참을 했어요. 하지만 정작 교수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옛날 흘러간 사진을 보면 교수님들이 4·19 때도 앞장서서 나왔잖아요. 그걸 박정희가 본 거예요. '대학 안에서 비판을 제거하자.' 결국 그때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던 젊은 강사들의 교원 지위가 박탈당했어요. 이것이 독재의 잔재가 된 거죠. 거기다 신자유주의까지 결합된 거죠. 이런 상황에서 강사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기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옛날 같았으면 학생들보다 교수들이 앞장서서 쏟아져 나왔을 거예요."(김동애)
대학에서 비판적 담론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김동애·김영곤 교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성균관대의 류승완 교수를 비롯해 부산대 민영현 교수, 영남대 유소희 교수, 경북대 정일우 교수 등 10여 명에 달한다. 부부는 이 숫자가 그나마 '파악 가능한' 숫자일 뿐,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이 더 있을 것이라 말한다(관련기사 : 경찰, '선거법 위반 혐의' 교수 강의 사찰 의혹).
유서를 남기고 다른 길을 택한 고 한경선 교수와 고 서정민 교수도 있다. 이렇게 대학강사들은 부딪혀 싸우기도, 그러다 지쳐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했다. 김동애 교수는 "유서 없이 돌아가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다"며, "이게 바로 우리나라 대학 강사의 현실이며,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사들은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오랜만에 다시 찾은 광주에서 일인시위를 하다).
죽은 이들과 안타까운 이들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김동애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다른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지켜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짊어진 무게 때문일까?
"학생들, 청소노동자 문제는 동참하면서... 소수만 이 문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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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을 이어온 김영곤·김동애 교수 부부의 농성천막. ⓒ 오주석
지난해 12월 10일 고려대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대학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대학 내부의 문제인 시간강사 문제는 어떤 대자보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운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김동애 교수는 "함께 연대해야 할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학교 내 청소노동자 문제는 동정도 하고, 연민도 느끼고, 동참도 하잖아요. 하지만 '싸우는 강사'들이 있는 학교의 학생 중 소수만 이 문제를 인지해요. '싸우는 강사'가 없는 곳은 문제 인지 자체를 못 해요."(김동애)
김영곤 교수는 자신이 강의하던 고려대학교의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 시간강사의 현실과 처우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냉랭했다.
"강사 얘기 고파스에 올리지 마세요."
"아니꼬우면 강사 관둬라."
이러한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 김 교수는 "사회 지배층으로서 물신화돼 있는 학생들의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김동애 교수는 "강사들에게 '너희들이 못났으니까 정규직 교수가 못 된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삶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다"라고 비판했다.
"처음 투쟁을 시작했을 땐 자식들이 전화를 끊기도 했어요. 지금은 (사이가) 나아져서 연락도 하고 걱정도 하고 그렇게 지내요. 요즘은 함께 투쟁하겠다는 몇몇 강사들이 농성장을 찾아오곤 해요. 학생들도 궁금해 하기도 하고요. 때때로 힘들기도 해요. 그런데 마음을 약하게 먹을 때마다 위기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매일매일 마음을 굳건히 하려 해요."(김동애)
인터뷰를 끝낼 때 즈음 시간은 자정을 넘겨 2014년 1월 1일이 됐다. 이들 부부는 이제 생활의 터전이 돼버린 농성장에서 다시 한 번 새해를 맞았다. 이들은 7년을 넘게 거리에서 투쟁했고, 앞으로도 투쟁을 이어간다. 오래된 싸움을 이어온 이들에게 새해가 무슨 '새 해'겠느냐마는, 마지막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건넸다. 제야의 종 소리가 이들에게는 연장전 종소리처럼 들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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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을 이어온 김영곤·김동애 교수 부부의 농성천막 내부. ⓒ 오주석
덧붙이는 글 신영준·오주석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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