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6

조현 위안부 공출 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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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무려 74년. 적지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광복이 내겐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 어린시절부터 앉기만하면 옛날 시집 올 때, 또 시집 와서 울던 이야기를 하곤했는데,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날이면 날마다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런 이야기만 나오면 "또 그 얘기냐"고 지겨워하며 안들으려한 못된 아들이었다. 그런 핀잔을 들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것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 때의 한이 풀리지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16살에 시집을 오셨다. 생일이 음력 12월14일이니, 만으로는 14살에 시집을 왔다. "뭐 한다고 시집은 그렇게 일찍 왔느냐"니 "누가 그렇게 어려서 시집을 가고싶어 갔겠느냐"고 말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1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바로 아래 남동생, 그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었다. 외할머니가 막내이모를 낳은 뒤 시름시름 앓아서 엄마는 어려서부터 부엌살림을 도맡아서 밥을 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서당을 했는데도 장녀인 어머니는 글공부도 못하고, 식구들 밥을 하고, 병 든 어머니를 돌봐야했단다. 외할아버지는 글만 읽을줄 알았지, 집안 살림이라고는 아무 것도 할줄을 몰라서 10대 초반의 큰딸이 없으면 전부 밥숟가락을 놓아야할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외할아버지가 소녀가장이나 다름없는 큰딸을 시집 보내기로 한 것은 '공출'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위안부 징발을 지금도 '공출'이라고 한다. 그 때 공출 당하면 인생이 끝장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너도 나도 아직 크지도않은 아이들을 시집을 보냈고, 외할아버지도 급히 수소문해서 장녀를 시집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시집을 오는데, 어머니는 병이 들어 누워있지, 동생들은 "누나,언니! 가지마"라고 치마를 붙들고 놓아주지않지, 외갓집에서 황룡강을 건너 십여리길을 눈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신방에 들어가긴해야하는데,
너무 어린 나이라 부끄러워서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밖을 서성이면서 외갓집 쪽을 바라보며 혹시 외갓집에서 밥하는 연기라도 오르는 것을 볼수 있지않을까하고, 망원경도 없던 시대에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글 만 읽는 선비여서 부엌에 한번 들어가본적도 없어서 온 식구들이 오늘도 굶고있지나않을지, 동생들이 누나, 언니를 찾으며 배고파 울지는 않을지 생각하면서 밤마다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다.
얼마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기일과 외할아버지 생신 등 일년에 두세번 외갓집을 갔고,
그 때면 모처럼 며칠 따뜻한 밥과 반찬을 외할아버지와 동생들에게 해주었는데, 돌아올 때는 또 동생들이 울며 가지말라고 젖먹이 막내이모가 안놔주는 바람에 어머니도 외갓집에서 우리집에 오는 내내 엉엉 울면서 왔다며. "저 황룡강 물이 다 내 눈물이다"고 했다.
'공출'의 산증인이 지금도 그날들을 증언하는데, 아직도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이들이 있다니, 그 때 이야기를 하면 다시 눈물을 흘릴 어머니에게 차마 그런 말씀은 드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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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Chung Hyun Kyung and 39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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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참으로 힘든 시절을 견뎌오신 우리 어머니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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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에 돈것들이 종족이니 뭐니 우리 민족 폄하 하는 개소리를, 돈에 눈먼 더런 족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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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맞아요. 저도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데이신따이. 정신대 끌려가는 걸 보면 두려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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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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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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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으로 도적같은 못된 심보.
    그들은 아웃입니다.
    하늘이 무심치 않으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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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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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투쟁과 꿈은 지금도 계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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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썩은 지식인들이 몇몇 물을 흐리지요. 언젠간 청소가 되거나 자연 소멸할 존재들...
    아픈 시절 살아낸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 위대하십니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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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오늘에 귀한 우리 대한민국의 장한 어머님이십니다.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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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적인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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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저, 그, 황룡강 상류서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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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우익애들에게 더러운 돈받고 알바하는 쓰레기들 이 나라에 많죠~~/@
    몇년 전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박유하같은 매국노들 말 입니다.
    언제나가야 이런 매국좀비들을 처단하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광복이 이뤄질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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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심스럽게 공유합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이야기라서 더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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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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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1400회 수요 시위
    오늘은 위안부 할머님들의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1400여 일을 맞는 날입니다. 나물을 캐다가, 일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강제로 끌려가선 수십, 수백, 수천의 일본군의 탐욕스런 폭력을 억지로 받아내야만 했던 할머님들의 수치와 고통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온 뒤에도 친지와 가족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는커녕, 전혀 잘못이 없음에도 정조를 잃은 여인은 무조건 자결하도록 압박받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유교적/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이루어진 한국 사회의 집단폭력을 당하며 견뎌내야 했던 수치와 모멸감은 또 어떤가요?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필리핀 해구보다 깊은 그 고통과 한, 잃어버린 꿈과 시간들은 수천 억의 돈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녀의 분홍빛과 꿈과 잃어버린 시간들은 신이 있어서 다시 태어나게 하지 않는 한 완전히 치유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무한한 그 고통과 한과 수치에 한 자락이라도 다가가는 공감을 하며 위안부 할머님들께서 가장 고통을 많이 받으셨을 남쪽을 향하여 조용히 묵념을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고 아주 조금이었지만 눈물이 찔끔 납니다.
    고개를 들고서 분노합니다. 1993년 일본의 고노 수상조차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 및 관헌의 직접 개입”을 인정하였습니다. 브란트 수상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사회 전체가 철저히 성찰하여 유럽의 지도국이 된 독일처럼, 일본정부와 아베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한일협정을 새로 맺고 일본 사회 전체가 위안부, 강제징용, 민간인 학살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성찰하며 아시아의 지도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 국가(그들이 그토록 추앙하는 대일본국의)의 수상마저 인정했음에도 ‘관헌이 강제로 끌고 간 증거는 없다’는 주장을 펴는 한국의 친일매판 학자나 언론인들은 더 이상 팩트마저 왜곡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아니, 팩트를 객관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유럽의 언론들은 성폭행을 보도할 때 가해자의 시선에서 쓰지 말라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문제나 민족적 사건을 떠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영훈 교수와 같은 친일매판 학자와 언론인은 더 이상 가해자의 시선에서 위안부 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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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님께 효도 부탁드릴 처지는 아닙니다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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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ㅠ.ㅠ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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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역사를 거스르려는 것은 그들의 야욕이 남았기때문 이죠..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해요. 단순히 경제적 종속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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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님 고향이 저희 처가와 같은 곳인가 봅니다 저희 처가 동네에도 황룡강이 흐릅니다... 저희 장모님 돌아가신 후 첫 생신이라 엊그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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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살 때 가끔씩 갔던 장성의 황룡강은 그렇게 어머님의 가슴 아픈 사연과 눈물을 담아 흘러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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