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의 아이덴티티는 다양한 시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기존의 연구는 재일조선인의 아이덴티티를 『조국지향』과 『일본정지향』(이하,정주지향)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주류였다. 그러나 한국민주화운동에 잠가해 민주화 운동을 전개한 민족단체 소속의 재일조선인에게는 다양한 아이덴티티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한층 더 애매하고 복잡한 것이다.
민족단체인 닌단에서 활동했던 재일조선인이 70~80년대의 한국민주화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에 있어서 한국민주화운동의 모체가 되는 조직인 한민통을 결성했다. 『한민통』은 김대중 구원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추진하고, 나아가서는 해외에서 개별적으로 진개되었던 한국민주화운동을 규합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그런 가운데 한국정부・민단과 한민통은 항상 대립하고 한민통과 헤외민주세력이 연대를 방해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8・13』사건 이다.이 사건은 한국징부・민단측과 민주화운동을 추진한 세력과의 사이에 생기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부각시켰다.또한 운동을 전개한 세력 안에서도 1세와 2세의 사이에 존재하는 아이덴티티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미 민족의식이 형성된 1세와는 다른 2세는 정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민주화운동과 일본내에서의 권리획듣운동을 동시에 전개했다. 2세는 한국민 주화운동과 권리획득운동을 민족이 겪고 있는 부조리를 없애는 민족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민족운동을 전개할 때 조국민주화운동에 대해 재일조선인의 주체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조국지향』으로 볼 수 있는 한국민주화운동과 정주지향으로 보이는 권리획득운동을 동시에 전개하는 것은 이들 지향이 재일조선인 2세에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재일조선인의 아이덴티티는 조국지향이나 정주지향 등으로 간단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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