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9

전쟁중 일러관계 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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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1actSthup7ouno Mdngasrtaccha aaat 22oredt:1se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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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Sejin Pak

팔장을 끼고 있는 것이 놀랍군요


Jaewon Choi

Sejin Pak 일본이 먼저 제안한 불가침 조약입니다. 1940년 5월.
일러 전쟁후에도 러시아 아니 소련과 일본 사이에서는 계속 전쟁과 충돌이 빚어졌는데 일본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동아공영권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했고, 소련도 유럽에서의 위협과 불안전 요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아마 일본이 당시 나치 독일과 동맹국이었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체결한 조약입니다.

사진은 1941년 4월 13일 일본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가 모스크바에서 소련과의 중립 조약에 서명하는 장면인데 당시 그는 독일에서 히틀러와 회담을 마친 뒤에 귀국하는 길에 모스크바에 들른 것이었고 마스오카는 팔짱 끼고 웃고는 있지만 곧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것이라는 계획을 히틀러에게 들어 알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각각 불확실성 요인과 위협을 관리하게 되자 조약을 체결한 뒤에는 보다 전장에 주력할 수 있었고 일본의 경우 1942년 대동아공영권을 확보하는데 대부분 성공합니다. 일본의 불안요인이었던 소련이라는 배후가 일본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거둘 수 있는 승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일본군에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 주둔군은 패배하게 됩니다.

소련도 조약의 혜택을 많이 보게 된 것이 극동 전선보다 유럽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배후의 위협요인인 일본이 중립을 지키고 있으니 나치 독일군의 침공을 내륙으로 끌어 들여 격퇴할 수 있었고 극동 지역으로 병력이 분산될 필요도 없으니 더욱 효과적으로 나치 독일군에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 일본 모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조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히틀러가 자살하고 연합국이 베를린을 함락하자, 나치 독일의 패망을 본 스탈린은 곧 일본의 항복을 예측하고 효용가치가 다한 일본과의 중립 조약을 유지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러 전쟁 때 가장 탁월했지만 일본의 국제정세를 읽는 통찰과 안목도 정말 놀랍고, 스탈린의 책략과 교활함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6.25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Sejin Pak

벌써 한참 여러가지 읽었답니다.


Park Yuha

최재원 소련의 배반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Park Yuha

그 때문에 만주/북한에 있던 사람들이 집단자살에 기아..정말 비참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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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Jaewon Choi

박유하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국제법의 본질적 핵심은 강대국의 힘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당시 전장에서 배반은 독일 히틀러도 했고 무솔리니, 스탈린 모두 힘의 역학과 이익이 공유될 때는 조약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허망한 것일 뿐이었지요. 외교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것이지요.
한국은 아직도 이 개념이 솔직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6.25와 휴전체제는 이 구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생각합니다.


Jaewon Choi

박유하 조금은 알고 있지만 더 공부해야 겠습니다.
일러 전쟁부터 쌓였던 보복 감정들도 같이 분출되어 얼마나 끔찍했을지. 독일에서도 2차 대전때 연합국에 앞서 소련군이 진주해서 벌인 살육과 강간은... 끔찍한 역사였습니다.
패권국과 강대국과 이익과 비전을 공유하느냐.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읽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이익을 줄 수 있는가... 이런 전략과 외교가 부재할 때 국민들이 겪는 일들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 살펴볼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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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Park Yuha

최재원
그런 이론이면 65년 체제를 지키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할말이 없어지지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무튼 그 때문에 자국민이 고통을 당했는데도(민간인여성강간. 명료하게 가해자는 군인),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현대 일본에 대해서였어요.



Park Yuha

물론 외교전략 부재에 대해선 저도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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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마쓰오까 인물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일어 위키백과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 [미국에서의 생활은 힘들어 첫 기숙시설에 도착하자 곧 장작패기를 하도록 명렬받기도 하고 하인으로 할당량을 해내면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종종 인종 차별의 피해를 당했다. 이 즈음의 경험이 "미국인에게는 비록 위협당해도 (내) 자신이 올바른 경우에는 양보해서는 안된다. 대등한 입장을 바라는 사람은 대등 한 입장에서 임해야 하지 않은면 않된다.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는 것에 의해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신조로 자신의 대미 의식을 키워 갔다.]

13세에 미국유학해서 9년간 거기 있었다네요.
고생하고 차별도 받고.
이런 경험에서 대미정책 그리고 대러정책이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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