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9

Jaewon Choi 86의 유산과 97 X세대의 포획_40대 대깨문 현상에 대한 소고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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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의 유산과 97 X세대의 포획_40대 대깨문 현상에 대한 소고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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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당시 홍대앞은 산울림 소극장 주변 기차길과 히피나 펑크 느낌이었던 극동방송국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은 산울림 극장 가는 길 언덕 지하에 있던 <스팽글>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저는 PC통신 나우누리 활동으로 만난 소모임 분들과 정모도 여기로 불러 했던 걸로 기억해요. 전 모던락이나 브리티쉬락 좋아했는데 벨앤세바스찬, 소닉유스,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나오는 곳이었고 라이브도 보고 아지트같은 것인데, 지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 같은 것이고 당시 이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문화 코드는 분명 고급스럽고 중요한 것이었다 생각합니다.(이 문화의 소멸은 로컬 문화의 소멸과 맥을 같이 한다 생각합니다.) 산울림 근처는 기차가 안 다니는 철길이 있었고 클럽에 가기 전엔 기차길 옆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라한다>로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고 <스팽글>가서 라이브 보며 놀다 우르르 <흐지부지>로 이동해서 거기서 흐느적거리며 춤추고 새벽에 나오는 거죠. <명월관>이나 다른 클럽에서 놀던 친구에게 삐삐로 "365 82 20000(365식당으로 빨리 와 그럼 이만)"치면 서교동 365번지의 그 좁고 긴 건물 식당에서 만나 거기서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고 놀다 보면 아침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화난 사람들같은 얼굴을 하고 출근 하는 사람들의 아침에 마치 무슨 이탈자가 된 듯 그 기차길에서 친구들과 걷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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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극동방송국 근처 <흐지부지> '클럽(club)'을 그때는 락카페라 불렀는데 제가 자주 가던 락카페였습니다. 너무 서양 힙합 추종하고 "여자 꼬시는" 목적의 강남 클럽이나 나이트는 속물들이 가는 곳이고 홍대앞 락카페 중 몇 곳은 좀 '아는 애들만 모이는(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세련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흐지부지>는 힙합 선곡이 좋았고 락도 느낌있게 나왔고 라디오헤드의 크립같은 분위기로 몽롱하게 풀어 놓다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같은 거 나오면 다 슬램하고 헤드벵잉하고 무당춤추고 놀았습니다. 이 근처 극동방송국 주변은 좀 펑크와 힙합 느낌이 컸었어요. 산울림 소극장 부근은 브리티쉬락이나 모던락 느낌이 컸다고 할까요? 홍대 앞에는 분명 밴드 기반 공연 문화가 활발했고,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건스앤로지스GnR와 블랙사바쓰나 오지오스본의 Crazy Train 등도 너무 소프트하다 생각했고 데쓰메달이나 프로그레시브락에 다져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문화 배경에서 그때 홍대 앞 밴드 음악들은 너무 달달하기는 했지만 좋은 밴드 공연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아주 가끔 숙대 앞에서도 그런 공연이 있던 기억합니다. 라디오 방송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빼놓지 않고 들으려 새벽 시간에 졸며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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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에서 <천리안>은 노땅들이 많고 <하이텔>도 하다보니 구려서 저는 <나우누리>를 주로 했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고 재야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여기서만 공유되는 새로운 정보들은 기존 언론이나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글빨 날리는 비밀 소모임 활동도 있었고, 정모도 있었고, 정모후기와 인평(인물평가)도 잼있었는데,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전환은, 고수가 운영하는 모임의 시삽(동호회 장)은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었고 정모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님"이라고 부르던 개인들 사이의 수평적인 문화와 존중을 아마 처음으로 경험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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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에 관한 지난 포스팅 이후, (당시 97세대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아니라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었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봤습니다. 조정래를 봐서 망조가 들었다는 해석을 보고는 정말 세대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90년대 생을 대변할 수 없지만 86에게 조정래가 있었다면 97에게는 신해철이 있었습니다. (97 너네들이 그래서 안되는거야! 라는 86꼰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ㅋ) 어쨌든 신해철의 <길 위에서>를 들었던 세대의 서사와 발라드는 곧 서태지가 나타나며 파편화되고 분절화되었습니다. 그것은 혁신이었고 혁명적인 목소리로 뭔가 피 속의 온도를 높이며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흥분하게 했습니다. 이건 말로 옮기지 못합니다. 전 <어어부 프로젝트>도 많이 들었는데 90년대 중반 불어 닥친 미술계로부터의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은 발라드와 역사주의적 서사성, 먹물과 도련님주의(과거 운동권 선배들이 공유하던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의 해체와 탈중심화를 가속화시켰습니다. 권력과 자본을 타도한다고 하지만 졸라 구렸던 <현실과 발언> 등의 민중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고는 자취를 감추었고, 전 그때 한국 민중미술은 고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이 끝이었던가? 씨니컬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이 문재인 정권의 문화권력으로 부활하여 2021년과 그 미래 세대를 짓누르며 가로막는 헤게모니 세력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까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일단 구렸고 전형적인 과거 노땅들의 "울어주세요"와 운동권적 역사 인식으로 보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상업주의 포르노전략과 일차원적 선악구도를 만들어놓고 과도한 민족주의 서사를 선동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미 그런 세상이 아니었고 책을 읽거나 책만을 읽어야 하는 시대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86세대 운동권이나 소위 지식인들이 활자를 읽고 역사를 이해하고 가투에 나서거나 불의에 항거한다는 개념은 90년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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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들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권하고 <태백산맥>도 읽으라고 강요했는데 속된 말로 구린데 자꾸 강요하네.가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97세대는 86이 남긴 후배로서 동생으로서 형 누나 선배의 권위에 무릎 꿇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마 마지막으로 체화한 세대입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적 파편화 분절화 다원화 속에서 전 (그 번역이 마음에 안드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눈뜨고, 그 개인주의를 베이비부머와 86세대의 유교적 가부장제가 끊임없이 파괴하고 분쇄시키는 좌절과 분열을 몸으로 겪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갈등은 현재에도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아직까지도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그 개인이 다른 취향과 코드를 가지며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기존의 편견과는 다른 행동양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데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 자체가 놀랍도록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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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개인주의 경향을 가진 많은 97세대들조차 이성적으로는 개인주의를 부정적이고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며 체제안에서 이를 스캐닝해내고 추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코드적으로 소비되지만 로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창의적 결과물과 생태계가 살 틔우기 어려운 지점들이 생깁니다. 97세대는 분명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눈을 뜬 세대입니다. 국제화와 자유화, 그리고 일본문화 개방에 따른 문화적 풍요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물질주의 가치관과 (실은 가장 국제적이지 못하고 가장 문화적이지 못한) 86선배들의 유교적 권위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기술환경의 퇴행적 징후로서 노빠, 문빠와 팬덤 카테고리에 스스로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화된 취향과 가치관을 중요시하고 싶지만, 텍스트의 권력을 쥐어잡은 86과 같이 글을 쓰지는 못하고, PC통신과 당시 계간지 <리뷰>등을 통해 소위 "문화연구"로 잔뼈가 굵은 86들에게 해석의 권력을 맡겨 놓고, 피상성과 탈물질주의 영역으로 도피합니다. 97세대는 문화 예술 영역에서 영상, 사진,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역사주의 서사에 익숙한 86들에게 쥐어져 있고, 97세대는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영상의 해석을 맡겨버립니다. 해석학의 귄위는 '저자의 죽음'이 추인될수록 더욱 공고해지며, 86세대의 글을 읽고 쓰는 해석학적 권위는 97세대의 탈물질주의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작을 선형적이고 역사주의 시대의 텍스트로 해석해버립니다. 서바이벌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과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젊은 참가자들에게 한 마디씩 떠들며 그들의 예술적 가능성의 미래를 울게도 웃게도 하는 86세대들의 모습에서 저는 지극히 한국적인 유교문화가 문화예술을 어떻게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길들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퇴행의 한 징후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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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기여가 86세대의 유산이라면 산업화, 국제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탈물질주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 세대가 새기고 있는 상처 또한 깊습니다. 일제시대의 풍요로운 국제감각과 외국어 속에서 틔웠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20년대 생들이 기여한 대한민국 건국과 건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 세대의 기적과도 같은 기여는 86에게 부정되고 왜곡되었습니다. 산업화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x세대라는 ‘개인’을 창출할 수 있던 것이지만 건국과 산업화의 위대하고도 피눈물나는 산업화 세대의 노력들은 NL버전의 포르노로 각색되어 유신과 독재와 미제가 개입한 학살과 죽음, 압제의 서사로 조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치된 대의명분은 다시 개인을 억압합니다. 드라마적 장치의 극적 효과를 위해 악의 존재는 더욱 치밀하고 정교한 실체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상당 부분 하나의 가설적 성격이 아니라, 2021년 대한민국에 하나의 현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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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 다니고 그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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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환상 속의 그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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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선생님 질문에 두번째로 회신드립니다.
Chee-Kwan Kim, YoonSeok Heo and 8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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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세대에게 이병주를 읽으라 한 건 아니에요. 천만에요^^ 그 대상은 "한국사회 전반, 한국사회 지식인 전반"에 대한 거죠. 지금 한국의 주류 지식인 사회에서도 오히려 태백산맥류의 사고방식이 훨씬 더 횡행하니까요. 첨언하자면, 각 세대 전반은 여러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해도, 적어도 어느 세대나 그들을 대변하는(혹은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물며 이 글을 쓰는 선생님조차도 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권력(힘)이 아무리 자그마한 것이라 해도, 세대가 바뀌어도, "글"을 쓰는 사람의 손에 담겨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태백산맥"보다는 "지리산"이 훨씬 더 의미가 풍부하고 가치있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오히려 이병주 선생의 글에서 그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역사라는 잔혹한 톱니바퀴와 부딫치는 모습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지, 태백산맥류의 달달한 통속극에서는 그렇지가 않지요. 개인적인 소회를 몇 가지 더 덧붙이자면, 저는 87인데 민중가요를 포함한 소위 민중문화 작품들이 85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훨씬 더 좋았고, 가슴에 와 닿았어요. 86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은 그냥 군가였고, 가사도 훨씬 더 구렸고, 한심했는데 그것들이 90년대까지 살아남다가 (멸종하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NL포르노가 굳어져가는 과정이었죠. 일종의 "문화적 타락"이라고 보이는데, 그에 대해 깊이 고찰한 사람은 아직 못 보았어요. 그리고...개인적으로 신해철이 조정래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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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가지 더 질문을 드리자면, "하지만 물질주의 가치관과 (실은 가장 국제적이지 못하고 가장 문화적이지 못한) 86선배들의 유교적 권위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권력은 왜 역사적 서사에 익숙한 86세대에게 맡겨져 있는 것일까요?? 집단주의와 지금도 작동하는 (전대협 동우회 식의) 네트워크 때문일까요? 안면타당도가 절대적으로 작용해서 밀고 끌어주기는 역시 그 세대가 잘 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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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o Kwon
       감사합니다^^ 영상이나 사진 매체는 글에 비해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매체라 그러한 매체적 수단으로 소통하는 97세대는 역사적으로 서사하는 86세대에 대해 쉽게 포획됩니다. 역사적 서사는 틀에 갇혀 짜여지고 저작되고 정형화되며 교조화하기 쉬워 그만큼 전파력과 집단화하는(말씀하신 전대협 동우회와 안명타당도? 작용의)권력의 형성은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권력은 내러티브와 이념의 전쟁이며 개인화된 97세대가 자기 좋은거에 탈물질적으로 꽂혀 있을때 역사와 이념과 서사로 무장한 86세대에게 대적하기 힘든 것입니다. 문화 마저도 운동(텍스트)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현대미술에서는 이렇게 예술의 텍스트화의 문제에 대해 첨예하게 반성하려는 노력들이 있으며 아트&테크놀로지, 아트&사이언스 분야에 있어서는 이에 대해 상당히 흥미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도 문자 독점 연구 형태가 아닌 비문자에 기반한 연구방법론 및 아티스틱 리서치가 이러한 성찰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텍스트의 독점적 지위를 부여잡고 있는 주자성리학과 사문난적의 권력 체계는 이런 국제적인 흐름 자체를 모르기도 할 뿐더러 문자-해석을 넘어선 영역을 통제하고 길들이려는 기제를 강력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조정래보다 신해철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해철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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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지난 포스팅부터 쓰신 선생님 글은 참 흥미롭고, 페북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것 같아요. 좀 더 보완해서 더 공적인 매체에 실으시면 좋을 듯 해요. 저도 많이 자극을 받았고 생각할 재료를 많이 얻어갑니다. 박유하 선생님이 어떻게 댓글을 다실지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해철이는 제 어릴 때(초등, 중등) 친구에요^^. 그 녀석 멘탈리티에는 너무 공감하고 있기에...너무 빨리 가서 정말 안타깝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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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o Kwon
       아 그러시군요. 너무 안타깝고 그냥 개인적 감정의 해철이형에 대한 그런게 아니라 어쩌면 97세대가 서태지를 만나기 전에 도도하게 전염되고 경도될 수 밖에 없던 한 시대의 아이콘이란 깨달음을 가졌어요. 격려 감사합니다. 공적인 매체는 안전하고 글속에 갇힌 도련님들만 좋아하시는지 통 연락을 못 받아봤는데 기회가 되면 기꺼이 공유하는 기회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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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이제야 정독했네요.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어요. 홍대라는 문화코드부터 여러 가지가 너무나 잘 정리 되어 있어서 꼭 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페친중에 출판사분들도 많으니 주목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일단 아침 먹고.. 급한 일 해치우고 다시 조인할게요!
      Ivo Kwon
       하여 다시 천천히 쓰겠습니다^^ 권선생님 덕분에 새해 벽두부터 너무나 지적이고 필요한 담론을 만나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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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vo Kwon
       이병주의 지리산 언급은 실은 선생님 포스팅보고 한 말은 아닙니다.^^ 약간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다른 분 포스팅 보고 그 뉘앙스에 가졌던 느낌 말씀드린 겁니다. 부끄럽게도 이병주 선생님의 "지리산"은 못 읽어보았는데 꼭 읽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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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학번이시라니 정말 그 현장에서 투쟁하셨던 학번이시군요. 이한열 열사, 시청앞 노제, 문익환 목사, 노동자들의 789투쟁..후에 온 세대는 이렇게 피상적으로밖에 그 시절을 모릅니다. 다만 민중가요의 경우 86이후 만들어진 것들은 그냥 군가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는게 많이 없습니다. 저는 <노래패 새벽>을 좋아했고 장작불, 새, 스텐카라친, 벗이여 해방이 온다 등을 좋아했는데 6월 항쟁 이후 운동이 통일, 노동, 빈민 등 거대담론으로 재편되면서 노래의 절실함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문화적 타락은 의미와 마음이 담기지 않을때 형식이 흉내내기 하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징후입니다. 권력타도라 외치며 자신들이 가장 엘리트 주의에 찌들어있던 민중미술 세대는 현 정권의 문화권력인데, 그 소란 뒤로 묵묵히 작업해 왔던 민중문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세상에 소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작년에 제가 기획했던 공연의 포스터도 그런 작가님의 판화 작품을 영광스럽게 모시고 소개할 수 있었지요. 풍물과 대동문화의 그 시대 속에 살지 않았지만, 민주화에 기여한 선배 세대들이 남긴 유산 중 전통음악과 사회적 기능의 재발견에 특별한 존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창의력과 통찰이 필요한 숙제입니다. 양반사대부 옆에서 딴따라 하던 기능이 아니라, 근대적 시민사회에서 공유되는 예술적 가능성으로서 말입니다.
      May be an illustration of text that says "주정이동웨이오209중이위에옥만화25.25cm 2019 경기 아티스트 스테이지 어울, 여울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橋蒲記 경기민요, 경기도당굿과 김시습의 고전소설이 만나 펼쳐지는 창작국악의 세계 2019.11.1.fri 2019. 8pm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 공정한세 경기도문회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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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좀 음주를 하여...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읽고 감상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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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자꾸 감기는 눈으로나마 대충 읽었어요.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 주셨네요! 이건 거의 제가 낄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듯 하고 또다른 97세대의 의견을 듣고 싶어집니다. 맑은 정신으로 읽으면 질문 정도나 겨우 생기겠지요. 오늘은 우선 쉴게요. 다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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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lt Line
       오해하셨네요. 입을 막는 게 목적이 아니라 페삭을 했을 뿐입니다. 페친인 사람만 댓글을 달 수 있어서 그런 거구요. 저는 본명과 얼굴이 있는 사람만 수락합니다. 잘못 수락한 것 같아 삭제한 겁니다.
      저를 비난한 게 아니니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강제로 입막음한 것과는 맞지 않는 비유인 것 같네요. 옛날에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 댓글도 하나도 안지우고 그대로 다 있답니다. 그러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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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w 전반부 글을 읽으니 90년대 중후반 홍대 르네상스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네요.
    저는 스팽글, 발전소, 드럭 같은 콘셉 바부터 피카소 거리의 전형적인 록카페 그리고 프리버드, 드럭, 재머스 등의 라이브 클럽까지 두루 즐겼었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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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제가 어찌 스팽글과 흐지부지만 갔겠습니까. 글 분량상 하나만 썼습니다ㅜㅜ 그땐 분명 홍대 르네상스였습니다. 그 부흥은 개인들의 문화적 소양이 달랐었고 그만큼 실천들도 터져 나온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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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나중에 코로나 좀 수그러들면 홍대가서 그때 그 기억을 반추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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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이었는데,
      저는 홍대에 판화과를 신설하셨던 이승일 교수님에게
      판화를 배웠던 때네요....
      체육관 밑 판화실에 휘발성 잉크 냄새가 그립네요...
      오가며 느껴졌던 거리의 젊음의 열정도 어렴풋이 떠오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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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dividual은 원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individual(ity)를 개별성의 의미로 쓰인, 즉 개별, 개인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인데, 이를 최초로 번역한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람에 빗대어 독일개인 獨一個人으로 처음에 썼었죠. 그러다 길다보니 독일이 빠져서 지금의 개인이 되었는데 여기에 ism이 붙어서 '개인주의'가 되면 각기 주체의 개성과 특성을 강조하는 개별주의보다는 다분히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같은 오해가 발생되는 단어죠.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약된 언어가 말을 이끄는 상황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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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후쿠자와 유키치 뿐 아니라 스기타 겐파쿠 등 난학과 유럽의 근대 학문들을 번역하는 과정에 참여한 그들의 비교문화적 대질과 뼈저리게 힘들었을 그 과정들에 경이를 느끼고 존경을 표합니다. 아시아와 한국에서는 '개인주의'가 부정적인 어감으로 해석당하곤 하는데 집단과 관계의 끊임없는 개인에 대한 포획의 문제는 정말 중요하게 의심하고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 개인을 억압하여 국가주의로 함몰시키는 NL들의 기제 중 하나가 바로 반일주의, 반미주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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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네 일찍이 난학을 수학하고 기술, 과학 등의 용어를 만든 니시 아나메 역시도 언급해야겠죠.
      개인과 개인주의가 결국 어감으로써가 아닌 그것이 내포한 시니피에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 오랫동안의 공동체 문화에 반하는 개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봅니다.
      이야기하신 NL의 반일주의 탓만으로 돌리기보다는 오랫동안 우리를 가두고 있는 동양 고유의 유교적 공동체 의식부터 그 기원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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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반일주의는 현 정권과 문화권력이 적을 생산하여 자체 내 모순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고 북한이 선동하는 혈연적 민족주의의 고리와 코드를 맞춰가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이해합니다. 즉 반외세=우리민족끼리의 쇄국주의입니다. 우리가 "동양 고유의 유교적 공동체 의식"과 같은 얘기를 할 때 과연 조선이, 대한제국이 한국이 정말 공동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회의해보는 것이 먼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은 근대적 의미의 시민 공화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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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분의 대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선교단체에 올인했던 87로서
      새로운 세계네요....^^
      87, 97세대에 대해서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분석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개인적으로 Ken Wilber 의 의식발달 이론을
      가지고 사회현상에 적용해 보곤합니다.
      우리사회의 권위주의 문화는 조선시대 유교(성리학)문화, 군대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건강한 자유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교육에서도 학문 숭상, 노동 경시는
      21c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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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형
       저도 동의합니다. 20년 전 몇 학자들이 이러한 기류를 '우리 안의 파시즘'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박사님 (개인적 의견) 해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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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어떻게 하면 매슬로우가 말하는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까?
      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안의 '권위주의와 억압적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까?
      제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mindfulness" 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를 두고 조망하는 근력을 키우는 마음챙김(mindfulness) 기술...^^
      관점(Perspective)과 의식을 확장하여,
      권위주의 와 억압을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사회적) 무의식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메타 인지로 자신을 성찰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87세대의 개인에게 체화된(Embodied) 내적. 외적 요소들을 거리를 두고 조망해 볼 수 있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산업화 시대 부모님의 경제적 성취, 돈의 힘,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광장의 힘. 문화 예술 경험의 결핍과 한계...)
      켄 윌버는 우리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발달 단계가 어디 만큼 왔는지
      통찰 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개인이 이 집단 무의식을 넘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구요...
      저도 수평적 관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데,
      제안의 권위주의적 요소에 놀랄 때가 매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군대 제대후 대천덕 신부님(Archer Torrey)과의 만남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중국 선교사로 사진 분인데,
      동양의 가장 극복해야할 문화로서 '권위주의 가부장적 문화'로
      진단하셨고, 평생 수평적 관계(코이노니아)를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때 나이가 칠순이 넘으셨었는데, '아쳐 형제'로 불렀고
      만나면 친구처럼 허깅을 했었죠...^^
      켄 윌버 관련 글 소개...
      부서진 녹색진보의 대안과 트럼프 당선의 이유. 켄 윌버
      BRUNCH.CO.KR
      부서진 녹색진보의 대안과 트럼프 당선의 이유. 켄 윌버
      부서진 녹색진보의 대안과 트럼프 당선의 이유. 켄 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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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형
       아.. 이런 접근방식도 있군요. 저도 관심 가지고 추천해주신 글이나 방법론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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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세상을 보는 다양한 틀이 있어서,
      삶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엄기호, 오찬호 샘과 같은 사회학적 틀도 매력이 있구요...
      켄 윌버의 틀의 장점은
      " All is Right"
      상대방 의식의 스펙트럼을 이해하면
      어떤 내러티브든 연민의 마음을 갖을 수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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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m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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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에 앞서 쓰인 최재원샘 글 공유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글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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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깨문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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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 미스터리에 대한 글이 쏟아져 나오는건가요? https://news.joins.com/article/23961927
    [고현곤 칼럼] 결국 40대도 돌아섰다
    NEWS.JOINS.COM
    [고현곤 칼럼] 결국 40대도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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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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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세대는 문화 예술 영역에서 영상, 사진,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역사주의 서사에 익숙한 86들에게 쥐어져 있고, 97세대는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영상의 해석을 맡겨버립니다." 이 문장이 핵심인데요 체계적인 데이터가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anecdote를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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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R MO
       저도 이런 계기로 생각해보게 되네요. 주변 40대 친구들이 거의 몰빵에 가까우리만치 대깨문인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하며 큰 의미에서 추상화하면 그렇다는 취지로 적은 내용입니다. anecdote도 정리하고 논의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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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90년대 생을 대변할 수 없지만 86에게 조정래가 있었다면 97에게는 신해철이 있었습니다. 신해철의 <길 위에서>를 들었던 세대의 서사와 발라드는 곧 서태지가 나타나며 파편화되고 분절화되었습니다. 그것은 혁신이었고 혁명적인 목소리로 뭔가 피 속의 온도를 높이며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흥분하게 했습니다. 이건 말로 옮기지 못합니다.
    > X세대에게 확실히 신해철, 서태지의 영향이 컸군요. 그들이 주류 음악인들과 결이 다른 메세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지요. 저는 특히 신해철의 <아주 가끔은> 가사에 도취된 적이 있었어요.
    한평생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오다 결국엔 뼛속까지 박혀버린 인종들 있잖니
    그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뭔 줄 아니 남들도 자기처럼 살길 바라는 거야 쳇!
    그렇게 산다고 누가 상주니 또 누가 상준다고 그거 받아 어따 쓰니
    난 아무 생각없이 사는걸로 보이겠지 그게 너의 편견이고 교만이고 한계야 잘가
    개인의 사유와 가치보다 공동체 문화와 규율에 길들어진 기성세대에게 날리는 신나는 펀치 같았죠. 초기 아이돌 이미지를 탈피하고 ‘마왕’이란 타이틀을 획득한 후 그를 따르는 물신숭배는 극을 이루었는데 나중에 사교육을 비판하면서 사교육 학습지 광고를 찍고 비난을 받자 ‘사교육과 학습지는 다르다’는 변명을 내놓은 후부터는 제 마음에서 많이 멀어졌습니다.
    서태지가 신해철 만큼의 레토릭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에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죠. 다만 초기 ‘난 알아요’가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의 코드 진행과 주요 가락을 거의 카피한 부분을 슬그머니 넘어간 사실은 뮤지션으로서의 윤리의식( X세대를 대변하는 메신저로서의 공로와 별도로)에 치명적이라 생각합니다.
    구태와 구악을 타파하고자 했던 그들의 모토와 설파력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현실 속애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그런데 기대가 컸던 만큼 또는 범인凡人과 다르다고 생각했었던 탓인지 그 실망도 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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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예술가들 작업에 대해 먼저 존중해주면 좋겠습니다. 만일 좋다면, 고맙다.가 먼저고 작업 내적인 공감에서 비판을 할 수는 있겠죠. 작업에서의 윤리는 다르며, 사교육 학습지 그런 말 가지고 비판하기보다 먼저, 시장에 맡기고 윤리적 예술가를 소비하고 싶은 사람은 소비하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개인주의의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 한마디, 윤리적 결점 등을 예술가들에게 들이 대면 말 잘 듣고 온갖 착한척 위선까는 거세된 예술가 흉내내기들만 남습니다. X세대 대변하라고 한 건 누구도 없습니다. 그가 X세대의 무엇인가를 건드리고 불러 일으킨 것 뿐입니다. 제 비판을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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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아녀요~^^ 충분히 공감되어요. 제 식견에 신해철은 자신만의 음악적 독창성을 구축한 아티스트이면서도 세상의 부조리와 세속의 권위에 맞섰던 투쟁가(그래서 세대적 팬덤을 형성한)였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그의 앨범 중 '비트겐슈타인'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논리철학논고를 쓴 언어철학자의 이름이죠. 다소 현학적이긴 하지만 이런 지성체계까지 어설프지않고 당당하게 그의 음악에 녹일 수 있는 능력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요인이었을까요?
      아니죠. 구태스러움을 거세한 옳다고 믿는 바를 일갈했던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대중적 인지도나 팬덤과 상관없이 자기의 예술에 몰두하는, 아티스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과오를 문제 삼아 그의 역량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대중의 인지도에 의하여(본의든 아니든) 세속적 성취를 획득하는 구조에 놓여있다면 자신의 메세지에 반하는 행동의 불일치를 보이면 안된다고 봅니다. 그거 바로 작년에 일어났던 사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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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예술가들의 세속적 성취에 대한 것도 저는 시민들과 시장에 맡겨 놔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상행위나 이윤 추구에 대한 성리학적 검열을 극히 주의하고자 하는 건 그것이 창의적인 작업에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표님 의견 존중합니다. 신해철 형이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나 비트겐슈타인 노래하고 좋았는데 갑자기 서태지가 나오면서 "됐어 됐어 이제 그만 가르침은 됐어"해버린 시대가 되었고 (그걸로)족해! 족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외치는 시대가 되버렸죠^^ 아 지금 봐도 살떨려요 정치 선동말고 이런 예술적 선동이 한국 사회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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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선배들의 유교적 권위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기술환경의 퇴행적 징후로서 노빠, 문빠와 팬덤 카테고리에 스스로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화된 취향과 가치관을 중요시하고 싶지만, 텍스트의 권력을 쥐어잡은 86과 같이 글을 쓰지는 못하고, PC통신과 당시 계간지 <리뷰>등을 통해 소위 "문화연구"로 잔뼈가 굵은 86들에게 해석의 권력을 맡겨 놓고, 피상성과 탈물질주의 영역으로 도피합니다. 97세대는 문화 예술 영역에서 영상, 사진,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역사주의 서사에 익숙한 86들에게 쥐어져 있고, 97세대는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영상의 해석을 맡겨버립니다. 해석학의 귄위는 '저자의 죽음'이 추인될수록 더욱 공고해지며, 86세대의 글을 읽고 쓰는 해석학적 권위는 97세대의 탈물질주의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작을 선형적이고 역사주의 시대의 텍스트로 해석해버립니다. 서바이벌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과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젊은 참가자들에게 한 마디씩 떠들며 그들의 예술적 가능성의 미래를 울게도 웃게도 하는 86세대들의 모습에서 저는 지극히 한국적인 유교문화가 문화예술을 어떻게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길들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퇴행의 한 징후를 봅니다.
    >’권력은 여전히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역사주의 서사에 익숙한 86에게 쥐어져 있고’를 읽으니 17세기 루이 13세의 재상 아르망 리슐리외의 ‘펜은 칼보다 강하다’가 생각나네요. 이 말이 보통 무력에 맞서는 지성의 힘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의는 ‘체포영장과 펜만 있으면 어떤 누구든 반대나 반란을 꾀하는 자들 벌줄 수 있다’는 서슬 퍼런 이야기더라구요.
    여하튼 텍스트의 권력을 쥔 86을 언급한 부분은 ‘왜 X세대가 문화, 예술 해석의 주요 역할을 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86이 쥐도록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에 대한 고민과 고찰이 엿보입니다. 매우 예리한 식견이자 통찰입니다. 향후 좀 더 보강하여 한 권의 멋진 단행본으로 완성되었으면 합니다. 아마도 (제 눈에 보이는 이로는) 그 주체자로 최큐가 단연코 앞장 서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짚고 숙의할 점이 있습니다. (반대편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재 권력을 행사하는)86세대의 패악은 기울은 운동장 같은 민족주의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표리부동함이지 오히려 공동체주의의 예속적 양태가 심화되었던, 베이버부머 세대에게 이어받은 유교적 권위주의를 마치 86세대의 맹점으로 대두시킨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건 동북아 그리고 조선땅에 태어나면서 생득될 수 밖에 없었던 숙명이었죠. 그 DNA가 그래도 많이 희박한 MZ세대가 주류가 되는 시점애 극복될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금 사람들 안 변해요. 그게 삶의 이유고 자부심일 수 있는 인간들이 많으니까요.
    오히려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운동권조차 소위 SKY출신이면 내재화되어있던 엘리티시즘이 일종의 권위주의로 둔갑해 보일 수도 있죠. 그들이 소련 붕괴를 목도하면서 곧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채택하면서 (말씀하신대로) 네오맑스적 문화연구로 텍스트의 권력을 놓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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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소련 붕괴도 TV를 통해 보는 것이 저는 예전부터 디게 웃기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유교적 권위주의는 오래된 패악이고, 특별히 86세대의 권위주의를 말했던 것은 그들 자신이 권위주의 독재에 저항한다고 하면서 위계적 내적 모순과 젠더 문제, 현실의 미시적 실천과 자기 일에 대한 윤리보다 이념에 경도된 그리고 그 이념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는(지금의 전교조)강요를 보지 않고 자기 정당화에 빠져 스스로 타도했던 그 권위주의의 모습을 닮아 있기에 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 2-30대는 오히려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유시장경제도 몸으로 더 잘 아는 세대라 생각합니다. 다만 꼰대들이 그들의 미래를 막고 있어서 그게 문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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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타도와 직선제 개헌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해피엔딩의 결말 후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 같았던 순진한 로망이 당시 있었죠.
      성윤리, 젠더이슈, 개인의 사유와 생활 존중 등은 희박했죠.
      60년대말 미국히피들이 반전, 자유, 평화를 외치면서 자기네 땅에서 자행되어온 인종차별(원주민, 흑인), 빈민 등의 문제를 외면한 것도 마찬가지로 선택적 지각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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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집단 뒤에 숨어 우르르 몰려 다니며 거대하고 큰 거짓말은 이제 그만하고 개인으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구요? 015B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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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운동의 기여가 86세대의 유산이라면 산업화, 국제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탈물질주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 세대가 새기고 있는 상처 또한 깊습니다. 일제시대의 풍요로운 국제감각과 외국어 속에서 틔웠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20년대 생들이 기여한 대한민국 건국과 건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 세대의 기적과도 같은 기여는 86에게 부정되고 왜곡되었습니다. 산업화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x세대라는 ‘개인’을 창출할 수 있던 것이지만 건국과 산업화의 위대하고도 피눈물나는 산업화 세대의 노력들은 NL버전의 포르노로 각색되어 유신과 독재와 미제가 개입한 학살과 죽음, 압제의 서사로 조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치된 대의명분은 다시 개인을 억압합니다. 드라마적 장치의 극적 효과를 위해 악의 존재는 더욱 치밀하고 정교한 실체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상당 부분 하나의 가설적 성격이 아니라, 2021년 대한민국에 하나의 현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후 한국사가 얇은 책자로 나온 것을 펼쳐본다면, 현대사 20세기편은 ‘박정희(6~9대 대통령 역임)는 경제를 김대중(15대 대통령 역임)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완성하여 ……….. 로 짧게 기술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모든 위정자들은 공과 과가 있는데 해방 후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 이데올로기는 서로의 ‘공’에 매우 인색합니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이분법적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라 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 외에도 중동, 발칸반도 등에서는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주의의 문제로 교전과 갈등이 속출하는 곳이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갈등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모두 다 오랫동안 또는 근대 이후 급변화된 정세 속에서 잉태된 민족국가 national state들이 가진 양극성의 결과이기에 근시안적인 어느 한쪽의 시각에서 답을 찾기 힘들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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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전 좀 근본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주체와 개인이 설정되야 퍼스펙티브가 나오고 자신의 관점이라는 것이 구성되는 것입니다. 정치 진영의 갈등과 선전에 도구화된 떼거리들이 공보다는 과로 공격하지만 '공'에 대한 비판적 평가야말로 개인의 창의적 능력의 중요한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창의성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첨예한 공방속에서는 방어 논리와 트릭만이 난무하는 법입니다.
      .
      저는 한국 사회는 창조적 파괴가 아닌 말 그대로 축출과 파괴와 힐난과 짓밟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창조없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86세대가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왜곡시켰던 대한민국의 기적같은 건국과 건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시기, 피눈물 나는 산업화의 서사를 진영을 떠나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다음 세대에 대한 도리입니다. 그리고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의 투쟁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근대 시민사회가 뭔지 자유 민주주의가 뭔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뭔지 서투르고 무지했던 것도 정직하게 인정하고 권위주의 정부가 저질렀던 잘못과 부끄러운 민낯도 그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전 좌나 우나 그런 얘기 하는거 아닙니다. 그걸 넘어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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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이제라도 아니 이제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민중말고) 시민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실천할 시기 같습니다.
      프랑스만 해도 1789년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혁명)이후 공화정이 제대로 안착하기까지 수백년이 걸렸잖아요?
      머리와 몸이 굳어진 기성세대가 어떤 계몽에 의해 쉽게 변하긴 힘들거라봐요.
      신세대들이 이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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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오늘 미국 의회 점거를 비난하는 포스팅과 댓글들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혼란과 피의 광기와 폭력과 보복과 선동의 측면도 있다는 것을 보려 하지 않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성과 엘리트들의 깨끗한 축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성향에 대해 대체 저런 성향으로 한국의 근본적인 변화와 성취가 가능하기는 한걸까? 회의가 들었어요. 누구나 합법적이고 온화하고 완만한 방법론을 선호하겠지요. 한국사회에는 세대교체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위선과 몰상식 타인에 대한 존중과 매너 등 기본적인 행위들에 대한 뼈저린 쇄신 노력이 없이는 교체는 의미가 별로 크지 않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혁명이요? 듣기는 멋있지만 그건 사실 광기 단두대와 피와 살인의 축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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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저도 미국 의회 점거를 보고 말문이 막혔네요. 전부는 아닐지라도 마지노선은 있는 법인데..미국의 민주주의..요르단 강을 건넌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제 포스팅에서 프랑스 혁명 옹호한 것은 아니구요. 아시다시피 그건 로베스 피에르 같은 부르주아들이 서민에게 환상을 줘서 자기들 권력을 쟁취한 권력이동에 불과했던거죠. 여하튼 아주 오랜 후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공화정이 성립된 것이구요.
      그것이 최선의 시스템이 아니라도 차선으로라도 생각해야죠. 다시 광기어린 파시즘을 맞이할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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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세대는 86이 남긴 후배로서 동생으로서 형 누나 선배의 권위에 무릎 꿇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마 마지막으로 체화한 세대입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적 파편화 분절화 다원화 속에서 전 (그 번역이 마음에 안드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눈뜨고, 그 개인주의를 베이비부머와 86세대의 유교적 가부장제가 끊임없이 파괴하고 분쇄시키는 좌절과 분열을 몸으로 겪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한 마디로 ‘낀 세대’죠. 가정의 형제로 치면 차남이겠죠? 보수,권위적 장남과 자유분방한 막내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더욱이 대학을 간 x세대라면 캠퍼스를 누비면서 선배들은 아랑곳없이 자유를 누리다가 사회에 진출해서 ‘찐’조직생활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직의 쓴맛을 본. 제가 X는 아니지만 86의 뒤 켠에 앉았던 탓에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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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선배들을 운동으로 똘똘 뭉치고 취업도 잘 되는데 x세대 중 어떤 나이들은 imf직격탄을 경험해야 했던 것이 어떤 담론적인 이유보다 큰 것이었죠. 전 가정의 형제 비유보다 그냥 자본주의 학습에 큰 기회가 왔던 세대이기도 하다 말하고 싶어요. 그 전까지의 문화적 경제적 풍요의 시기와 큰 콘트라스트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전환을 몸으로 겪은 세대이구요. '낀 세대'라고 하면 뭔가 알아주세요 하는 것 같아서 싫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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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그렇네요. 3저 현상에 가장 풍요로웠던 대중문화를 만끽했던 세대가 (자기 선배들처럼 취업도 '척'붙을거라 믿었던)IMF하고 맞물렸던 취업의 벽을 겪으면서 엄청난 아노미 상태가 되었겠네요. '낀 세대' 이거 그나마 양심있는 86들이 던지는 위로의 표현인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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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정말 감사하지만, 97세대 입장으로 보면 97이 메인 스트림이고, 86이 주변입니다^^ 그런 매핑과 인식이 세대교체에 더 좋을것 같아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97은 알아서 할께요^^ 개인주의 캠페인이라도 할까봐요. 개인주의는 원래 고독한 거에요. 해철이형이 제게 가르쳐 준건 그런 '개인'의 탄생에 대한 것이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IZYRZlBR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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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그럼요~ 자기 주체적 인식과 사유의 틀이 중심이 된 행동이야말로 자유 민주주의 시민의 본령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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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씨가 너무 많아지니 포스팅이 점점 건조해집니다. 이래서 문자위주는 안되는 거에요^^ 수분을 좀 공급합니다. 당시 1990년대의 서곡을 알린건 <현진영과 와와>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혁신적이었고 섹시했으며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쿨한 도시감성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https://youtu.be/7Gno5agdDPI
    현진영과 와와 데뷰곡-야한여자/홍종화작곡/Hyun Jin Young-Debut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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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수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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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세대로서) 다른 문단은 시간 두고 정독하겠고, 스팽글과 흐지부지 죽돌이었음은 고백하겠습니다(흐지부지에서는 심지어 파트타임 DJ알바 시도도...성사되지는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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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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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때 대학 간 건 30% 정도인데 너무 과잉 대표하는 듯하네요. 요새처럼 대부분이 대학 갈 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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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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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세대가 86세대를 넘어 자기의 시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랍니다.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몫이니까요. 시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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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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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글에 이어 이 글도 몇 번 정독했습니다. PC통신을 하고 계간 <리뷰>를 사 보고 홍대앞에서 놀던(저는 주로 연대앞 향음악사에서 음반을 사고 홍대앞으로 넘어가 프리버드에 죽치고 있었네요) 기억이 생생합니다.
    "심지어 개인주의 경향을 가진 많은 97세대들조차 이성적으로는 개인주의를 부정적이고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며 체제안에서 이를 스캐닝해내고 추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코드적으로 소비되지만 로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창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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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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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대 초중반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도 락카페에서도 레코드 샵에서 골목에 내놓은 스피커에서도 커피 마시는 카페에서도 모두 이 노래였죠. 삼겹살 집에서도 커트 코베인이었습니다. 홍대 앞은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니 그건 오프라인의 완벽한 음악 감상 생태계와 즐거운 강요의 사슬이었습니다^^
    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 (Live At The Paramount, Seattle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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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수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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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에 가면 1994년, 1995년에는 마로니에 광장 모퉁이에서 김광석이 기타치고 혼자 노래도 부르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사람이 모여든 모습도 봤지만, 아는 척하거나 모여 들면 안될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적도 있었지요. 1995년 6월 29일 그의 공연입니다. https://youtu.be/IwZtD0XB7JQ
    김광석-너무 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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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일 저녁엔 거의 매일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알바를 했었어요. 유학비를 마련하느라. 그래서 당시 인사동 분위기도 잘 알아요. 지금 인사동이 저 꼴이 되기 전엔 도심 내에서 한적하고 운치있고 나름 끈끈한 공동체가 있는 장소였어요. 거의 사장급 알바라 영업 끝내고 새벽에 문 닫으면, 옆집 한정식집 사장할머님 이모들이(아줌마나 할머니라 그러면 혼남) 강제로 끌고가서 낙원상가 앞에 쭉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쏘주 마시고 있으면 영업 마친 다른 집 이모님들도 모여 들었지요^^ 나이 많은 누님들 사이에서 유일 청년으로 과거 인사동과 종삼과 기생으로 연희도 했던, 그런 부분이 거세되면서 한정식 집으로 된 독특한 역사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제가 당시 전통찻집에서 선곡하며 틀었던 이 노래는 나중에 홍상수 감독이 로케와서 듣고는 실제 "강원도의 힘"에 삽입 되기도 했지요^^ 그거 찍는다고 거의 3일은 영업을 못했었지요^^ 그때 인사동은 그 나름의 정취와 격이 있었어요. https://youtu.be/9wxI4KK9ZYo
    Lou Reed - Perfect Day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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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글만 읽어도 마치 제가 그 낭만적 현장에 와 있는 것 같네요~.
      루리드 velvet underground 때부터 좋아했었는데, 이 노래 어디 헐리웃영화OST로 쓰였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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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트레인스포팅!!!이죠. 지금처럼 멀티플렉스로 변하기 전 볼만한 영화는 90년대 중반까지는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에서 그 이후에는 동숭시네마텍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트레인스포팅 정도도 예술영화상영관에서 봐야 했죠. 레오 까락스나 짐 자무쉬 빔 벤더스 배용균의 영화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죠^^ 관객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필름 상영 전에는 짧은 한국 독립영화를 보여주는 시기도 있었는데 그중에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좋은 인디필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운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처럼 화려하고 편리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러한 장소를 찾아오는 분들의 문화적 수준은 분명 높았다고 봐요. 우리는 어쩌면 "취향"을 읽어버린채 시스템적 알고리즘과 큐레이션의 멀티플렉스로 내던져져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취향을 갖기 어려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오프라인과 장소성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영화라는 단순 기능과 목적이 아니라, 대학로와 동숭아트센터와 시네마텍,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일시적일지라도)우연한 공동체, 그것을 공유하는 pc통신과 같은 게토와 플랫폼들. 그리고 극장에 이르기까지 대학로와 마로니에와 그 골목들과 또다른 골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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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
       맞네요~. 철길에 못 올려놓는 트레인스폿게임~^^ 이때 볼만한 영화 많았었는데.. 동네서점처럼 동네극장 아님 동네 아트비디오상영점이라도 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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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수
       추억은 추억으로 아름답게 남기고^^ 지금은 동네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혁신 모델이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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