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의 유산과 97 X세대의 포획_40대 대깨문 현상에 대한 소고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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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당시 홍대앞은 산울림 소극장 주변 기차길과 히피나 펑크 느낌이었던 극동방송국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은 산울림 극장 가는 길 언덕 지하에 있던 <스팽글>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저는 PC통신 나우누리 활동으로 만난 소모임 분들과 정모도 여기로 불러 했던 걸로 기억해요. 전 모던락이나 브리티쉬락 좋아했는데 벨앤세바스찬, 소닉유스,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나오는 곳이었고 라이브도 보고 아지트같은 것인데, 지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그것은 하나의 공동체 같은 것이고 당시 이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문화 코드는 분명 고급스럽고 중요한 것이었다 생각합니다.(이 문화의 소멸은 로컬 문화의 소멸과 맥을 같이 한다 생각합니다.) 산울림 근처는 기차가 안 다니는 철길이 있었고 클럽에 가기 전엔 기차길 옆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라한다>로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고 <스팽글>가서 라이브 보며 놀다 우르르 <흐지부지>로 이동해서 거기서 흐느적거리며 춤추고 새벽에 나오는 거죠. <명월관>이나 다른 클럽에서 놀던 친구에게 삐삐로 "365 82 20000(365식당으로 빨리 와 그럼 이만)"치면 서교동 365번지의 그 좁고 긴 건물 식당에서 만나 거기서 감자탕에 소주를 마시고 놀다 보면 아침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화난 사람들같은 얼굴을 하고 출근 하는 사람들의 아침에 마치 무슨 이탈자가 된 듯 그 기차길에서 친구들과 걷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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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극동방송국 근처 <흐지부지> '클럽(club)'을 그때는 락카페라 불렀는데 제가 자주 가던 락카페였습니다. 너무 서양 힙합 추종하고 "여자 꼬시는" 목적의 강남 클럽이나 나이트는 속물들이 가는 곳이고 홍대앞 락카페 중 몇 곳은 좀 '아는 애들만 모이는(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세련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흐지부지>는 힙합 선곡이 좋았고 락도 느낌있게 나왔고 라디오헤드의 크립같은 분위기로 몽롱하게 풀어 놓다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같은 거 나오면 다 슬램하고 헤드벵잉하고 무당춤추고 놀았습니다. 이 근처 극동방송국 주변은 좀 펑크와 힙합 느낌이 컸었어요. 산울림 소극장 부근은 브리티쉬락이나 모던락 느낌이 컸다고 할까요? 홍대 앞에는 분명 밴드 기반 공연 문화가 활발했고,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건스앤로지스GnR와 블랙사바쓰나 오지오스본의 Crazy Train 등도 너무 소프트하다 생각했고 데쓰메달이나 프로그레시브락에 다져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문화 배경에서 그때 홍대 앞 밴드 음악들은 너무 달달하기는 했지만 좋은 밴드 공연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아주 가끔 숙대 앞에서도 그런 공연이 있던 기억합니다. 라디오 방송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빼놓지 않고 들으려 새벽 시간에 졸며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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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에서 <천리안>은 노땅들이 많고 <하이텔>도 하다보니 구려서 저는 <나우누리>를 주로 했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고 재야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여기서만 공유되는 새로운 정보들은 기존 언론이나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글빨 날리는 비밀 소모임 활동도 있었고, 정모도 있었고, 정모후기와 인평(인물평가)도 잼있었는데,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전환은, 고수가 운영하는 모임의 시삽(동호회 장)은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었고 정모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님"이라고 부르던 개인들 사이의 수평적인 문화와 존중을 아마 처음으로 경험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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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에 관한 지난 포스팅 이후, (당시 97세대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아니라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었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봤습니다. 조정래를 봐서 망조가 들었다는 해석을 보고는 정말 세대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90년대 생을 대변할 수 없지만 86에게 조정래가 있었다면 97에게는 신해철이 있었습니다. (97 너네들이 그래서 안되는거야! 라는 86꼰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ㅋ) 어쨌든 신해철의 <길 위에서>를 들었던 세대의 서사와 발라드는 곧 서태지가 나타나며 파편화되고 분절화되었습니다. 그것은 혁신이었고 혁명적인 목소리로 뭔가 피 속의 온도를 높이며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흥분하게 했습니다. 이건 말로 옮기지 못합니다. 전 <어어부 프로젝트>도 많이 들었는데 90년대 중반 불어 닥친 미술계로부터의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은 발라드와 역사주의적 서사성, 먹물과 도련님주의(과거 운동권 선배들이 공유하던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의 해체와 탈중심화를 가속화시켰습니다. 권력과 자본을 타도한다고 하지만 졸라 구렸던 <현실과 발언> 등의 민중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고는 자취를 감추었고, 전 그때 한국 민중미술은 고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이 끝이었던가? 씨니컬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이 문재인 정권의 문화권력으로 부활하여 2021년과 그 미래 세대를 짓누르며 가로막는 헤게모니 세력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까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일단 구렸고 전형적인 과거 노땅들의 "울어주세요"와 운동권적 역사 인식으로 보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상업주의 포르노전략과 일차원적 선악구도를 만들어놓고 과도한 민족주의 서사를 선동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이미 그런 세상이 아니었고 책을 읽거나 책만을 읽어야 하는 시대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86세대 운동권이나 소위 지식인들이 활자를 읽고 역사를 이해하고 가투에 나서거나 불의에 항거한다는 개념은 90년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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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들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권하고 <태백산맥>도 읽으라고 강요했는데 속된 말로 구린데 자꾸 강요하네.가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97세대는 86이 남긴 후배로서 동생으로서 형 누나 선배의 권위에 무릎 꿇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마 마지막으로 체화한 세대입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적 파편화 분절화 다원화 속에서 전 (그 번역이 마음에 안드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눈뜨고, 그 개인주의를 베이비부머와 86세대의 유교적 가부장제가 끊임없이 파괴하고 분쇄시키는 좌절과 분열을 몸으로 겪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갈등은 현재에도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아직까지도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그 개인이 다른 취향과 코드를 가지며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기존의 편견과는 다른 행동양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데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존중 자체가 놀랍도록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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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개인주의 경향을 가진 많은 97세대들조차 이성적으로는 개인주의를 부정적이고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며 체제안에서 이를 스캐닝해내고 추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코드적으로 소비되지만 로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창의적 결과물과 생태계가 살 틔우기 어려운 지점들이 생깁니다. 97세대는 분명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눈을 뜬 세대입니다. 국제화와 자유화, 그리고 일본문화 개방에 따른 문화적 풍요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물질주의 가치관과 (실은 가장 국제적이지 못하고 가장 문화적이지 못한) 86선배들의 유교적 권위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기술환경의 퇴행적 징후로서 노빠, 문빠와 팬덤 카테고리에 스스로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화된 취향과 가치관을 중요시하고 싶지만, 텍스트의 권력을 쥐어잡은 86과 같이 글을 쓰지는 못하고, PC통신과 당시 계간지 <리뷰>등을 통해 소위 "문화연구"로 잔뼈가 굵은 86들에게 해석의 권력을 맡겨 놓고, 피상성과 탈물질주의 영역으로 도피합니다. 97세대는 문화 예술 영역에서 영상, 사진,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글을 쓰고 읽는 자들의 영역으로 남아 역사주의 서사에 익숙한 86들에게 쥐어져 있고, 97세대는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영상의 해석을 맡겨버립니다. 해석학의 귄위는 '저자의 죽음'이 추인될수록 더욱 공고해지며, 86세대의 글을 읽고 쓰는 해석학적 권위는 97세대의 탈물질주의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작을 선형적이고 역사주의 시대의 텍스트로 해석해버립니다. 서바이벌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과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젊은 참가자들에게 한 마디씩 떠들며 그들의 예술적 가능성의 미래를 울게도 웃게도 하는 86세대들의 모습에서 저는 지극히 한국적인 유교문화가 문화예술을 어떻게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길들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퇴행의 한 징후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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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기여가 86세대의 유산이라면 산업화, 국제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탈물질주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 세대가 새기고 있는 상처 또한 깊습니다. 일제시대의 풍요로운 국제감각과 외국어 속에서 틔웠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20년대 생들이 기여한 대한민국 건국과 건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 세대의 기적과도 같은 기여는 86에게 부정되고 왜곡되었습니다. 산업화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x세대라는 ‘개인’을 창출할 수 있던 것이지만 건국과 산업화의 위대하고도 피눈물나는 산업화 세대의 노력들은 NL버전의 포르노로 각색되어 유신과 독재와 미제가 개입한 학살과 죽음, 압제의 서사로 조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치된 대의명분은 다시 개인을 억압합니다. 드라마적 장치의 극적 효과를 위해 악의 존재는 더욱 치밀하고 정교한 실체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상당 부분 하나의 가설적 성격이 아니라, 2021년 대한민국에 하나의 현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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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 다니고 그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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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환상 속의 그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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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선생님 질문에 두번째로 회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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