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7

210327 Park Yuha 최재원님 “일제강점기”용어에 대한 비판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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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재원님이 지적하신 “일제강점기”용어에 대한 비판에 공감한다.

어느날 “일제”라고 치면 저절로 “강점기”로 써지던 걸 발견한 이후 줄곧 생각했던 일이기도 하다.
정확히 확인한 건 아니지만 이 단어를 정착시킨 건 신용하교수가 아닌가 한다. 전에 쓴 것처럼 신용하교수는 90년대까지 현재의 호사카교수나 전우용 교수같은 역할—적대적 일본관을 심는 ‘학자’—을 했던 대표적인 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그의 첫 책이 나온 건 1991년이었다.
하지만 용어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안부문제며 징용문제에서 나온 판결들이 다 ‘불법지배’’강제점령’을 전제로 한 판결들이기 때문이다.
1910년 합방을 불법이며 강제라고 하는 담론들은 90년대 이후에 나와 2000년대에 본격화되었고 2010년 “한일지식인 선언”을 거쳐 일각에서 당연시된 담론이다.
말하자면 저 용어는 87체제 30년동안 정착된 것이고 그런 담론에 대한 검증은 거의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에(이 담론을 주도한 건 법학자와 역사학자들이다), 용어를 바꾸려면 먼저 해야 될 일은 그런 담론 자체에 대한 검증이자 비판이다.
또하나 지적해 두고 싶은 건 최재원님식 ‘근대화 인정론’이 근대화자체가 갖는 문제점에 완전히 눈감고 있고,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을 추종하고 있다는 점.

합방이 <젠틀맨적 계약이었고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고 그저 ‘외지’였다>는 얘기는 일본의 식민지 부정론자들이 하는 이야기와 똑같아 너무나 위험한 이야기다.

당시 일본 사람들조차 조선을 “식민지”(외지란 식민지와 점 령지를 모두 포함한다)로 규정했고, 그런 전제하에 포섭과(동일화) 차이화(차별)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말하자면 “근대적 개인”으로 보이는 모던 걸/보이들이 받았던 교육 역시도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는 교육이었다.
실은 최재원님이 비난하는 민족주의자들도 강점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아닌)교전국이었다고 주장하면서(이 논지가 성립해야 임시정부법통론도 성립한다)도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피해’를 주장한다. 말하자면 이끌어내고 싶은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논지에는 일관성이 없는게 현재 진행 중이거나 끝난 역사청산 재판들의 문제점이다.

교전국이라거나 아군이었다는 식으로 주장은 완전히 다르지만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 양쪽 역시 상통한다.
동시에 박명림 교수의 글이 해방이후 한일관계—65년 체제에 의해 받았던 일본의 지원과 인적 협조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엔 나도 놀랐다. 얼마전엔 어떤 학자가 일본이 전두환정권이 요구한 차관을 일본이 주지 않았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박정희 때 뿐 아니라 전두환때도 한국은 100억을 요구해 40억달러를 받았다.
현재의 경제발전이 전부 일본의 도움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20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이 진짜 독립을 (꽤) 이룬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여러 문제도 생겼다)
하지만 있었던 사실은 기억해야 공도 과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역사왜곡은 멀리 있지 않다.
이렇게 간단히 쓸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즘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반론으로서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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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n Jung, Chee-Kwan Kim and 10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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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원님 글. 210322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일제시대”로 표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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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에 익숙한 저로서는... 최재원 님께서 "동학농민'반란'"으로 규정? 언급한 이유도 궁금해졌습니다~ ^^(용어에 대한 관점이 있는 것 같아서... 같은 맥락으로 궁금한 것이라 혹 오해하실까봐 이렇게 이모티콘을 넣은 것입니다~^^ 표정이 없는 글은 참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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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h
  •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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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 중앙일보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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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가 사회적으로 정착한 이유는 신용하 선생님 등 선학들의 연구도 있었지만 국회 결의를 통해 공식 용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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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경
       그러고보니 일본에 그런 인식 요구를 했던 90년대 중반에 같은 결정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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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에도 김원웅씨가 활약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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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2000년대에 들어와서 있었어요. 그래서 특별법 용어도 위원회 이름도 바뀌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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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경
       그렇다면 역시 90년대 움직임의 영향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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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림 글에 대한 생각을 내가 댓글에 조금 달았던 고종석 선생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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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요.. 일제가 강제로 조선을 점령한 건 맞는데.. 한일합방조약도 치밀한 일본의 준비였구요. 미개했던 조선을 일본이 거저먹게 한건 못난 조상들 탓이기는 한데.. 문빠식 국뽕도 어리석지만 강제로 근대화시켜준 일본에 고마워해야하나? 참 아이러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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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권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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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을 너무 많이 왜곡하고 무시하고 쓰는 '학자'가 많습니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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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림 교수님 칼럼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문제에 동의합니다, 지적하신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데 알고도 모른척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그 외에 개인적으로도 아실만한 분이 너무 논의를 단순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근대화, 근대성과 그 부정적 유산으로서의 식민성이 공존할 수 없는것이 아닌데도 이 둘을 배타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도 문제고, 일제시대의 유산이 해방 이후에 뿌리뽑히고 서구적 근대성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것도 무리한 서술로 보입니다. 발전국가 모델로 대표되는 한국의 국가발전모델부터 해서 한국의 법, 제도에 일본의 유산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를 모르지 않으실 분이 저런 주장을 하시는군요(제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내셔널리즘만 해도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인종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과거 일본제국의 내셔널리즘과 유사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네요). 식민지 시혜론과 근대화/근대성론의 차이도 당연히 아실 분이신데 뒤섞어서 쓰시는 것도 그렇고, 근대화나 근대성은 일단 좋은 것이라고 전제하고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신문 칼럼이라는 지면의 특성도 고려해야 겠지만 저자의 다른 글들에 비하면 상당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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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 한글에서 일제시대라고 치니 정말 일제강점기라고 자동교정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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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식민통치의 ‘공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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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필 사춘기 직전에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양육되어서 성인이 된 후 구조되면 그 사람은 납치되어 양육된 동안에 "성인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하고 그 시기에 "성인화"가 되었다고 하면 납치범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조선이 운나쁘게 근대화라는 단계를 앞두고 식민지가 된 것이고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현대로 넘어왔고 우리 스스로 근대라는 역사를 쓰지 못해 원통하긴 하지만 그 시기에 근대화라는 프로세스가 진행된 것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것 자체를 부정해야만 하고 그걸 인정하면 일본의 식민지배가 고마운 것이었다는 말로 들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남의 아이 유괴해다가 성심껏 기르면서 대학까지 가르치면 감사받을 일일까요. 여전히 유괴범일 뿐이죠. 물론 일제가 조선을 "성심껏" 보살폈다고 할 수도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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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감합니다. ‘수탈론’이든 ‘계획된 정복’이든 그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한편으로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관대하다거나, 조선인을 근대화시켰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주장까지 가니 오히려 민족주의 성향보다 더 좋지 않게 보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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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강점기에 사는 사람으로서 심사가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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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학계에서 언제부터 ‘식민지가 아닌 교전국이였다.’란 주장을 시작했는지 궁금해지긴 합니다. (교전국이였던 국가들의 다른 대우, 위치를 보게 되어서 그런 것일지, 학계가 시간이 흘러가며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한건지.. 궁금해지네요.) 2. 언급하신 한일 합방이 일어난 시기나 65년 체제에서 미국의 영향과 역활이 가미되어 설명된다면.. 사람들이 그 때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덜 감정적이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당시에 한일 관계 밖의 가장 큰 맥락이 미국에 좌우되었다는 것이.. 어쩌면 한일간의 관계에 대한 감정의 버퍼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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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年初版金錫享『朝鮮封建時代農民の階級構成』(日訳1960年、学習院大学東洋文化研究所)の13ページには下のように「日帝強占時期」という用語が見えます。この用例が一番古い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歴 同 た 鮮 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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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e translation
    • 20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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