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가 아니라 “일제시대”로 표기해야 합니다.>
Alexander Park 님께서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지금의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가진 전제국가 러시아에 대한 경멸감을 간파했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대 일본관을 형성하게 하는데, 여기서 일본 전통 사무라이 문화 등을 세련된 문화 상품으로 만드는 등의 문화전략을 통해 이 목적을 탁월하게 수행해 냅니다.
일본은 이미 일러전쟁(흔히 “러일전쟁”이라 부르고 있는)을 통해 각종 정보공작과 국제사회를 향한 프로파간다가 어떻게 일본에 우호적이고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여론의 추이로 프로그래밍되는지를 탁월하게 수행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선전전이 중요했던 이유는 외교적으로 동맹 관계의 레버리지 확보가 중요하기도 했고, 이미 전쟁은 선전전과 우호적인 국제 여론 형성을 통한 자본주의적 머니게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스벨트는 일러 전쟁을 유능하게 수행한 한반도 상황의 관리자로서 일본을 적임자라 생각했고, 또 미국의 필리핀 지배에 대해 안전핀을 걸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협상하여 가쓰라 태프트 합의각서(Agreed Memorandum)를 체결한 것이며 포츠머스 조약에 대해서도 이미 4대 강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놓은 상태로 이미 주체적인 국가 유지가 불가능했던(즉 러시아 극동전략의 노리개로 전락한) 조선의 운명은 이렇게 을사조약 체결 전에 미리 정해져 있던 것입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러시아 차르 체제에 대해 가지는 일러 전쟁 이후 국제사회에 형성된 반감, 야만성과 잔인성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당연히 무지했고 시대착오적으로 러시아 차르체제의 전제군주제를 도입한 대한제국 출범으로 본격적인 망국과 고립의 행로를 겪게 됩니다.
“일제강점기”라고 통용되고 있는 언어활동을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까닭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마치 무력으로 강점한 듯한 용어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본을 본격적으로 한반도 영토로 끌어들인 것은 고종 자신입니다. 고종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았던 봉건지배계급에 대해 분노한 농민들의 반란에 관군이 대패하자 바로 청나라를 끌어들였고 청군 파병 소식에 대응해 일본군이 조선에 진주하게 되면서 그것이 일러전쟁과 대한제국의 망국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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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라 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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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라 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동학농민반란도 진압하지 못하는 관군의 수준이 일본의 제국근대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나요? 아니 군사력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나요? 전쟁 수행의지 조차도 없이 고종이 일본 황실에 편입되어 막대한 자금과 품위유지에 관한 지원을 약속 받으면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백성들을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의 끔찍한 헬조선의 실상에서 벗어나 일본 제국의 지방으로 모던과 근대화라는 것의 수혜를 입고 위생, 보건, 치안, 교육 등의 소위 근대주의적 국가의 보호를 처음으로 겪어 보는 신문명의 체험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 그것이 어떤 근거로 강점입니까? 국제사회의 강대국들이 이미 “젠틀맨으로”뒤에서 협상을 마쳤고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에게 “젠틀맨으로”조약을 설명하고 맺은 조약입니다.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한일병합 모두 말입니다.
절대왕정이나 전제군주제인 대한제국에서는 선생님 말씀처럼 “국가를 왕실, 좁게는 군왕 개인의 사유 재산처럼 인식하면서 이를 자기 맘대로 팔 수 있는 재산처럼 취급한 매국의 주역”으로 고종이 나라를 넘겨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ver.1)은 러시아 차르 체제를 카피한 전제군주제이자 왕정체제였기 때문에 고종이 을사조약을 체결해도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의회 등의 장치는 없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전에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이 외교권 박탈 등의 내용을 담은 조약 체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자 고종은 대신들과 상의하겠다고 회피하니,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이 전제군주제 국가인데 무슨 대신과 상의하겠다는 거냐 되물었었죠.
을사조약 체결 후 바로 다음날 매일신보 보도를 통해 을사 5적에 대해 군중의 분노가 들끓었는데, 그건 항상 음모와 협잡질을 일삼던 고종이 언론사와 사주해 자신의 책임을 대신들에게 전가하고 면피하기 위한 고종의 공작이자 교활한 프레임 조작이었습니다. 천하의 개잡놈이죠.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할 당시에도 일본과의 긴밀했던 관계를 스스로 부정하기 위해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내각의 거두 김홍집을 희생양으로 몰아 광화문에서 성난 군중에게 발로 밟히고 맞아 죽도록 사주하고 유인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대한제국은 망해 없어져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과 러시아의 대극동 전략이 가지는 국제정세 변화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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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이나 조선 문제에 대해 안보 이익을 공유하고자 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라인과 개화 의식,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더 빨리 칭제(稱帝)를 통해 절대군주를 지향하는 고종을 견제하는 의회 제도를 마련하거나 고종과 민씨척족 세력을 제거한 뒤에 국제사회의 지지와 승인 또는 밀약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과 대안이 공유될 수도 있는 공화주의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이상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볼 때, 고종과 청나라를 뒤에 업은 민씨 척족의 존재 자체로서도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뿐 아니라 제국주의 팽창과 침략 전쟁을 수행했던 병합된 몸으로, “일본”을 “일제”로 칭하고 외지였던 조선의 윤리적 정체성을 “식민지”로 조작하는 기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일본 본토의 내지와 지방인 “외지”에 속했을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반미 선동을 위한 개념 조작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가쓰라 태프르 합의각서(Agreed Memorandum)를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마치 미국과 일본의 음흉한 제국주의 지배를 내재화한 것처럼 선동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말했듯 이는 젠틀맨끼리(소위 선수들끼리) 통상 국제 관계에서 하는 것(리스크 관리 및 레버리지 확보)이고 현대 한국(ver.2)에도 강대국과 강력한 국방 외교 안보 이익과 상호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교훈을 주고 있는 사건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정확한 표현은 가쓰라 태프트 “합의각서” 또는 “비망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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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이 아니라 “미북회담”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이자 혈맹 관계입니다. 동맹이 우선해야 합니다.
“러일전쟁“이 아니라 ”일러전쟁“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안보협력국입니다. 한미일 3자는 특히 북한 핵미사일 관련해서 안보이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구 소련)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앞세워 한국을 침략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파멸시키려 했던 국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러전쟁“으로 표기합니다.
“한중일”이 아니라 “한일중”입니다. 한일중은 협력사무소도 있는 소다자 관계지만 엄연히 한국과 일본은 안보협력국이고 중국은 현재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이기는 하지만 배후에 소련 스탈린의 계략과 조종으로 6.25에 참전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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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북미회담”이 아니라 “미북회담”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이자 혈맹 관계입니다. 동맹이 우선해야 합니다.
“러일전쟁“이 아니라 ”일러전쟁“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안보협력국입니다. 한미일 3자는 특히 북한 핵미사일 관련해서 안보이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구 소련)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앞세워 한국을 침략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파멸시키려 했던 국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러전쟁“으로 표기합니다.
“한중일”이 아니라 “한일중”입니다. 한일중은 협력사무소도 있는 소다자 관계지만 엄연히 한국과 일본은 안보협력국이고 중국은 현재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이기는 하지만 배후에 소련 스탈린의 계략과 조종으로 6.25에 참전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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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158Edward Lee, 許修禎 and 15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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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입니다. 제가 다른분들과 쉐어하고 싶어 가져갑니다. 감사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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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공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과 쉐어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제가 감사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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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Active - ‘일제강점기’라는 표현도 북조선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L586의 문화헤게모니 장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지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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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김치관네 제가 앞선 포스팅에서 밝힌 대로 “일제강점기”도 “친일파”낙인도 조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했던 농지개혁을 위해 당시 소련 정보국에서 만들어 각 도의 인민위원회로 지령으로 내린 전략이었습니다.소련 군정 하의 북한에서,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할 때 그들에게 “친일파”낙인을 찍어 토지를 압류하고 처단하라는 것이었죠.현재 문재인 정권의 반일 민족주의 선동은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로 바꾸고 가상의 공동체 적을 “친일파”로 생산하여 그 적대감과 증오를 통해 내부를 결속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과거 소련 정보국의 이 공작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조금도 어색한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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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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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라 부른다면, 조선은 이씨왕조 강점기라 불러야합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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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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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29 replies- Soyeon Yang오히려 이씨왕조강점기가 더 말이 되죠 ㅎ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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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Soyeon Yang小生은 하늘에 맹세코 지금깟 단 한 번도 일제강★★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답니다. 소설의 머리글을 비롯해 공식적 비공식적을 막론하고 저 어처구니없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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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Soyeon Yang님도 혹시 예전에 서울 창경원에 가보셨었어요? 제가 너무 너무 옛날사람 질문을 하나?^^ ㅎㅎ 제가 정말 아쉬운게 창경원에서 동물원 없애고 벚꽃 없어지고, 제일 아쉬운게 이왕가 박물관이 없어진 거에요. 일제가 만들었다고 이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지금 창경궁을 복원해 놨어요.다들 미친거 같아요. 다 조선으로 되돌려요. 전제왕조시대가 끝나고 모던한 시대가 되어 새로 탄생한 “시민”들이 돈내고 들어가 왕만 독점하던 그곳을 즐기…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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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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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원유감스럽게도 창경원이란 곳은 못가봤어요. 창경원과 창경궁이 뭐가 다른지도 이제서야 최재원님 말씀 듣고 알게 되었네요.동물원뿐만 아니고 박물관 식물원 유원지 박람회 포함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상당수가 제국주의의 산물임과 동시에 근대의 산물이죠.이미 대중들의 일상이 되버린것들을 민족주의 내세워서청산하자는건 그야말로 전근대로 돌아가자는 소리밖에 안되는건데,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것이고,또 이념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원과 돈을 헛되게 소모하는것 같아 너무 한심합니다.전 도쿄역사건물 및 서울역사와 한국은행 건물 등 당시 근대건축물들이 너무 멋스럽고 좋던데, 총독부 관사였던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폭파시켜버린게 너무 안타깝습니다.그 훌륭한 근대문화유산이 땡삼이 미친놈 하나때문에 날라가다니 ㅜㅜ최재원님께서도 그걸 안타까워하는 글을 쓰신것을 보았는데요, 저는 민족적 서사보다 개인적서사가 중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크게 공감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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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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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eon Yang총독부 건물 뿐만 아니라, 시청, 역, 법원, 공장등 당시 건물들을 전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대로 보존 또는 리모델링 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넓이와 깊이겠지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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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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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eon Yang 네 대만에서 6개월 체류하는 동안,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순간순간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무엇이 다를까, 왜 다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후 대만 전도사가 되었답니다. ㅎㅎ 그리고 대만의 가르침에 대한 보답으로..., 대만산책을 쓰자했고요. (총독부 건물 폭파하기 전,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읍소했습니다. 일본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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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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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eon Yang류영하 (Yeongha Ryu)일제시대의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총통관저로 쓰는 것이 당연히 맞다고 봐요. 그리고 대만은 일본 이전에 이미 오랜 기간 여러 지배국들의 통치를 겪었고 나쁜 경험들도 많았었지요.그들 입장에서 일본은 오히려 획기적인 근대적 생활의 편이와 부강함을 누릴 수 있게 해주던 시기로 기억되어, 일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과거와 대중국 견제와 제어를 위한 굳건한 협력 관계의 미래로 일본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죠. 그런데 저는 한국이 대만과 다른 입장일 수 있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일제시대가 암울한 식민지 시대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어떤 강요...전 건물이 일제시대 잔재라고 부수는 반일 반달리즘의 히스테리야 말로 사실은 외국에서 이해하기 힘든 한국의 폭력적 행동이었다고 보고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읍소했던 것은 아마 유럽인들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간곡하게 제안하고 말렸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중앙청 건물을 폭파해서 없애면 한국은 자기 목적 달성해서 시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 건물에 개인의 추억을 갖고 있는 저같은 사람들의 기억은요?조선총독부 건물로서 동아시아와 미국 그리고 유럽이 공유하는 가치와 중요성은요? 중공군에 투항해야 했던 대만 국민당 병사들이 6.25때 중공군이 앞세워 총알받이를 되었었어요. 공산당 사상에 투철한지 믿을 수 없으니 되도록 전장에서 많이 죽여서 없애겠다는 중국 공산당 다운 발상이었죠. 이에 대해 대만인들이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런 역사적 배경을 아신다면 중공군으로 참전한 한 대만인 병사에게 인공기가 걸린 중앙청 건물을 보는 관점은 다르겠죠?. 6.25에 참전해 서울에서 공산연합군을 몰아내고 다시 성조기를 올린 미국 병사나 연합국 군인들의 기억은요?한국인들은 오직 자신만 생각합니다. 6.25에서 피흘린 우리 국군과 연합국 군인들 개인 개인들에게는 전우들이 전장에서 죽고 흘린 피의 댓가로 이뤄낸 서울 탈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였을 겁니다. 한국인들은 오직 자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인식적으로 계속 고립되고, 보편적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땡삼이 하나 때문에 날라간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당시 중앙청 건물 철거의 당위에 거의 아무도 반발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철거는 잘못되었다고 하면서도 건물을 어디로 옮기자는 식으로 사실상 절대 반대를 주장하는 입장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사람 공동체가 그걸 파괴한 겁니다. 2021년에도 그 건물에 대해 아쉬워는 해도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은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 건물을 옮길 수 있는 기술력도 없었고 한국이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1세기가 지나도 지을 수 없는 건축입니다. 건축을 지으면 뭐합니까? 같이 했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건축은 디자인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유가 새겨넣는 디자인인거지요. 그 자리엔 지금 경복궁 복원이라는 미친 세트장 제작이 한참 진행중이죠. 그거 아세요? 현장에서 참고하는 원 데이타들은 다시 일제시대 때 세키노 다다시(関野 貞)가 남긴 유리 원판과 실측 자료들이란 걸... 현장에서 보면 그냥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연합국으로 참전한 군인들과 중앙청 건물 앞에서 6.25를 같이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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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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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eon Yang한국전쟁 때 이승만이 달아나면서 폭파를 지시했는데, 당시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고 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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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Soyeon Yang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ㅡ 라고 했지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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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조선왕조가 아닌데 여긴 왜 이렇게 사람도 자꾸 죽이고 건물 없애고 부정해야 새로 뭐가 된다 생각하는데 부정하는게 아니라 긍정하고 관점을 바꿔야 하는 것인데. 참 원시적입니다.네 철거 지시는 김영삼이 고집부리고 강행했어요. 땡삼이가 한거죠. 문화유산이 중요하다는 것 까지 일본이 가르쳐줘야 압니까? 그런 기본도 안되어 있으면서 계속 부정 부정 부정Soyeon Yang님이 크게 공감해주셨다니 감사해요. 개인의 기억이 있는 장소들은 철거, 재개발, 보존이라는 철거를 해버리고 국가주의적 메모리얼과 익명화된 공원이 개인의 장소를 잠식해들어가는 문제에 대해 자문회의를 가던 강연을 가던 아무리 떠들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진짜로 개인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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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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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eon Yang김영삼의 93년 개혁 ㅡ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정말 전광석화였죠.32년 군부세력을 2달만에 몰락시킨.. 세계사에 길이남을 것이죠..그래서 그해는 지지율 90% 받았고.전시체제 때나 가능한 지지율이죠.정말 무협지보다 재밌었다고 회자대는 93년이죠..90년 3당합당 때 ㅡ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ㅡ 이 약속을 실현했죠.군정종식을 이루었으니까요.그런데 그 이후 반일본종족주의에 영합해서 총독부 철거와 쇠말뚝 Show는 정말이지 노답이였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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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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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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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Robert Fouser파교수님 보고싶어요 빨리오세요^^어떻게 읽으셨는지도 참 궁금하네요. 우리 빨리 만나서 많은 토론해야 하는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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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Active - 최근 반일종족주의를 보면서 대한민국 식자들의 무조건적 반일이 왜 중국에겐 관대한지 이해 못할부분이 많습니다. 역사의식의 유무를 떠나 저열한 역사학자들의 편협한 아집이 대한민국의 정신과 현대 국제정치속에 처한 대한민국을 다시 과거로 되돌릴가 두렵습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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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Stanley Suh한국과 같이 주변 강대국 4강에 둘러 쌓여 국제정세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나라가 자폐적인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국사>와 한국은 거의 타자화되고 배제된 <세계사>를 따로 분리해 배운다는 것 자체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한국에 역사학자라는 분들은 이씨조선의 봉건지배질서와 억압의 역사는 모조리 빼고 성군과 왕도정치의 이상향으로 각색된 조선시대 빨기 서사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변 열강에 의해 순식간에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지정학적 조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그들의 소명 배반에 대해 역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그들의 자폐적 역사서사를 연명하기 위해서라도 반일은 좋은 구실이 됩니다. 그들은 나쁘고 외부는 못 믿을만하다 중국은 말고.그들의 의도된 반역은,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다시 과거로 되돌리는데 상당히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그림에서 북한이 선동하는 혈연적 민족주의 전략이 해방 후의 한국과 북한의 구도가 아니라 조선왕조 시대의 단일 민족 지대를 관념적으로 확보해야 남북한 민족 동일성 대 외세의 구도가 성립하기 때문이며 반일 민족주의, 더 나아가 반미 이데올로기로 한국 국민들을 프로그래밍하기 유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조금씩 선동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 바로 반미 운동, 주한미군 철수가 그들이 의도하는 최종적인 대국민 프로파간다의 귀착점으로 보입니다. 북한과의 평화, 통일 자체가 관념적이고 허황된 개념으로 국민들이 빨리 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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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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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요즘 국내 역사학자들 이야길 듣다보면 사람마다 틀리고 심지어 학원 강사들까지 끼어들어..만담 형태 로까지 이야기꾼들로 가득차서 아주 헛갈립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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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Stanley Suh미국과 유럽 또한 PC들의 문화 전쟁으로 이러한 문화전쟁의 배후에는 종동 국가들과 중공의 기획이 작동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애초에 북한과 중공의 선동과 공작으로 자신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상당히 혼탁한 인식을 갖고 있던 한국의 정확한 역사인식 작업에도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위안부 문제도 PC들의 페미 인권 레토릭에 영합하여 확대 재생산되는 대표적인 사기와 거짓말입니다. 물론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기존 좌파들이 인권을 얘기하며 자신의 선입견 위에 귀납적으로 해 왔던 연구성과도 쉽게 부정할 수는 없겠죠.그러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또한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공작과 모략을 맞서 싸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듯이 지금의 이 문화전쟁에 더욱 치열하고 칼날같은 국제정세 인식과 대응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합니다. 가장 최우선 중요시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 개념의 정립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철저히 사실에 기반한 국제정세 속에서의 자기인식과 성찰입니다.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자기 자리 차지하고 교수직 꿀빨고 성과 올리는데 열심히 인지는 모르나 국민을 무지로 몰고 좌파들 문화전쟁에 홍위병이 되어 반일 민족주의 장사질을 하고 있는... 이들의 소명배반에 대해 국민들이 더욱 분노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나쁜 새끼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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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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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 일제시대가 정확한 표현한국전쟁도 한국동란이 정확한 표현, 요즘에 중공산을 왜 대륙산이라고 부르죠? 반도식민국임을 자처하는 것으로 들립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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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Hide 13 replies- Justin Kum대륙산이라..갈수록 태산이군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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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stin KumStanley Suh저는 6.25로 중의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과거 이 “한국전쟁”이란 표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말씀하신대로 미국에서 말하는(즉 미국 관점에서) ‘한국전쟁(Korean War)’도 그렇고 한국동란(韓國動亂)이라는 정의도 맞지만 이 표현에 문제가 있다면, 전쟁이 일어난 장소와 전쟁의 주체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명칭을 ‘한국’이라는 주체에 한정시키면서 6.25전쟁의 내전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6.25전쟁이 내전이라는 한정적 뉘앙스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6.25 전쟁은 공산연합군과 유엔군이 맞붙은 국제전이었습니다.북한은 6.25를 ‘조국인민 해방전쟁‘ 또는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미제국주의에 예속된 대한민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으킨 정의로운 전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공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전쟁‘ 또는 ’조선전쟁‘으로 부르고 러시아는 ’Корейская война(한국 격전)‘으로 부르며‘ 정치적 구호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치색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때문에 저는 우리 동맹 미국이 부르고 있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명칭도 좋지만, 만일 가능하다면, 동맹 미국에게 <6.25>라는 명칭으로 역사적 사건의 발생 시간을 기초로 명명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이승만의 북침론 등을 근거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학자가 주장한 수정주의는 “6.25전쟁이 남침이 아니며, 미국의 사주를 받은 한국이 북침한 것”등으로 북한에 남침의 면죄부를 주었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만일‘한국전쟁(Korean War)’ 이라는 장소 지시성과 주체를 한정적으로 귀속시킨다면 내전이라는 논리 즉, 한반도내에서 단일 민족이 동란(動亂)이나 내전을 통해 통일 한국을 회복하기 위해 치룬 전쟁에 미국과 기타 자본주의 국가들이 개입한 것으로 선동하는 북한 중공 러시아의 거짓 주장에 말려들 수 있는 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동맹과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과연 진지하게 토론하고, 필요할 땐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와 같은 오류와 맹점이 있을수도 있다는 설명을 동맹에게 해주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오늘자 일간지 보도에서는 미국 국무부가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금지와 조국, 윤미향 부패를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기사와 외교가에서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둔 한국, 인권 문제로 지적받”는 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네요.역사가 증명하지만, 자신의 고립된 민족주의와 위정척사의 헛된 망상으로 국제적 보편주의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현대에는 되도록 지양하고 있는 표현으로 만일 적성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국내 여론을 압박하고 적성국과 이익을 옹호하고 내통하거나 한다면 그는 적과 동일한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민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지 동맹과 안보협력국을 배신하거나 북한과 같은 깡패국가를 옹호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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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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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잘 읽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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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 작금의 실태를 잘 설명 해주셧습니다 계속 좋은글 부탁 드립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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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Stanley SuhJustin Kum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격려로 듣고 큰 힘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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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김세한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은 본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 느낌입니다.^^ 말씀하신 바로 그런 의도의 자기 조작과 선동으로 “강점”이 쓰이고 있어 이를 “일제시대”로 맞게 표기해야 한다 말하는 것입니다.달리 방도가 있었다면 일본이 왜 동학난 때문에 일청전쟁을 벌여야 했을까요? 일러전쟁은 일본이 자발적으로 원했을까요? 일본은 “강한 자”인가요? 영국과 러시아는요? 일러 전쟁에 나서는 일본 제국군대 군인들이 왜 우리가 패하면 나라가 망할수도 있다면서 울면서 출정식을 해야 했을까요? 왜 영국은 일본에게 러시아에 관한 첩보를 주고 왜 일본의 국채를 사주고 반강제로 일본을 등 떠밀어 그 전쟁에 나서게 했을까요? 그럼 “강요”라고 주장하면 되나요? “강점”이든 뭐든 국제질서에 그런 말장난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일러 전쟁의 원인에서도 조선은 결정적인 배경이 아니었나요? 그런 상황에 조선의 책임은 없나요? 당시 초강대국 영국은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왜 극동 지역의 일본과 동맹을 맺었을까요?고립되어 있을수록 한국은 더욱 더 국제정세와 힘의 질서를 냉철하고 기민하게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어야 하는데 노예로서 많은 비극을 겪고도 조작서사를 꿀빨듯 소비하고, 가해자임에도 국제법의 허점과 강대국의 효용가치 덕분에 신분세탁을 통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코스프레와 반일 선동이 점점 더 자기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입니다.감사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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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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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동의합니다. 일본의 식민정책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지능적이랄까 세련되었달까, 점령이 아니라 '2등이지만 너희는 우리 국민이다'라는 제안은, 피폐한 이웃나라를 흡수하는 방법으로서 아주 잘 설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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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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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어차피 영국은 러시아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을 이용하는 거였고 일본이 패했다면 한반도가 영국과 러시아의 전쟁터가 되었을 것입니다.전 한국사람들이 역사를 볼 때 노예의 비루한 운명순응적 태도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줄도 잘서고^^ 상황을 리더쉽을 갖고 돌파하려는 외교력과 오너쉽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위안스카이가 한 짓이야 말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 못하는 민족을 대하는 딱 맞는 수준의 하대와 경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영국의 배치가 다른 것이었다면? 러시아 어딘가로 뿔뿔히 흩어지거나 대량 학살 당했을 거라 생각합니다.주체적인 국가운영 능력이 안되거나 국제정세에 대처하지 못하는 주체들이 겪는 운명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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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한영국 입장에서는 일본에 붙었다 미국에 파천했다 영국 미국 일본이 고종을 잘 메이드 해 놓았더니 갑자기 배신 때리고 러시아로 붙은 그런 고종을 더이상 가만히 놔둘수 있었을까요?체스의 말로 허사(platzhalter)가 필요했던 거지 대체제가 있으면 죽였을 겁니다. 중국이 미국과 조마수호통상조약을 맺게 하고 다른 강대국과도 힘의 평향을 위해 조약을 맺게 주선해주고 심지어 내용조차도 다 써줘도독립국이라는 개념도 이해 못했고 조약은 국가 대 국가의 조약이므로 중국을 끌어 들이지 않고 너와 내가 국교를 수립하고 할 수 있다 설명해도 조선은 스스로 그게 아니라며 우리는 중국의 속방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결국 조약 체결 뒤에도 조선은 중국 속방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문서를 보내는 일들도 있었습니다.조선에게 독립국이라는 건 상상에서도 못 가져보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한 노예적 습성은 2021년 한국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알게 모르게 많이 남아 있는것 같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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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병합을 쉽게 비유하자면..망해가는 대한제국을 일본이 대가를 지불하고 합병한것이죠.고려의 신라흡수합병 ㅡ 경순왕에게 딸을 시집보냈죠.신라의 가야 흡수합병..김유신 등 김해김씨 왕족을 귀족층으로 편입..이씨가문 일본황실의 왕공족 편입 ㅡ 천황직계 다음 서열..그리고 이씨왕족에 시집온 이방자 여사의 경우만 봐도..황태자비 후보였잖아요.그런 화족여성들과 결혼도 하고.고종의 경우도 경순왕처럼 말년에 안정된 생활을 했죠.엄귀비와 아이까지 만들고..물론 신라부흥운동이 있었지요.일부 몰락 신라귀족 등에서요.그럴줄 알고 고려군이 신라에 주둔해서 진압했죠.고려왕조 왕씨들은 학살을 당했죠.그래서 전씨 등으로 바꿨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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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Jaewon Choi네. 저랑 견해가 같으십니다.자기 스스로 극복한게 아니기에 그게 어떤 건지 모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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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新免武蔵그러니까요. 정말 정직하게 말해서 그렇습니다.^^이게 웃음이 나와도 웃기지가 않은 얘기지만 어쨌든 그게 어떤 건지를 몰라요.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직하게 대질하고 진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 분들이 싫어하고 피하더라도 붙잡고 물어볼 수 밖에 없는 부분들도 솔직히 많습니다.제가 문화재 관련 일도 가끔씩 합니다. 궁궐이나 일제시대의 일식가옥 등을 답사할 때 일본 목수님들 방식으로 나무를 다루거나 일본에서 나온 자재로 지어진 건축 들이 있습니다.정말 보다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장인 정신이 발휘되어 마감 처리한 부분도 있고 한국 1세대 대목수들도 사실 일본 장인들에게 현장에서 인부로 배우며 출발한 분들이 많아서 그 단절에서 오는 갭이란 정말로 큽니다.가까운 대목수님은 당시 타일 형식의 1935?년산 일식 자재를 너무나 궁금해하셔서 해당 공장을 찾아 편지를 보냈는데 그 일본 공장에서 당시 생산된 타일과 관련 데이타를 친절하게 보내주셔서 대목수님도 저도 정말로 감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일제시대에 생산된 한옥 유리도 정말 너무 궁금한게 많아요..오히려 한국 사람이 더 궁금해 해야 하지 않나요?. 당시 한국(ver.1)실상이 어떻게 보였는지 문화재 건축 유산들에 대해 도무지 무엇이 중요한지 개념 자체가 없어서 얼마나 처참하게 내팽개치쳐 있었으며 어떻게 답사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는지 등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언어는 또 어떻습니까? 그건 조상의 민낯, 미개하고 불결하게 보였을 수 밖에 없는 전근대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ver.2)이 분명히 다른 나라로 실은 거리를 가지고 있고 쿨하게 볼 수 있는 건데 그걸 연속적인 체제로 인식하려니 자꾸 트라우마만 느껴지고 결국 고립으로 귀결하는 것이 아닐까요?오히려 일제시대는 기존 조선의 문화유산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유의미한 연구 성과가 제시되고, 그것으로 최초 해석과 가치부여, 의미가 제안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위계와 타자의 시선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애초에 주체가 부재한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문화의 본질이란 반드시 다름의 소식이 서로 충돌하고 교류하면서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풍요로와지고 새로운 해석이 풍부한 영감을 던져줄 수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일제시대의 음악이나 미술 등도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고달픈.."이따위 개같은 거짓 서사 말고 있는 그대로의 풍요로운 재발견의 시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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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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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나의 침실로에서 마돈나가 왜 독립이냐고 ㅅㅂ ㅇ ㅍ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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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新免武蔵일본은 유교성리학을 학문과 사상의 한 갈래로 쿨하게 수용하고 공부했지만, 조선은 인조 시대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청 황제앞에서 삼배구고두(한국에서 소위 ‘삼전도 굴욕’이라는 ‘피해 호소인’서사로 부르는)를 하고 청나라가 아들인 소현세자를 인질로 잡아가는 장면과 다시 그 아들을 인조가 죽이고를 거치면서 자기가 지은 원죄가 있으니 겸사겸사 본격 고립과 폐쇄 정책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그 유교성리학이 산 사람을 잡아먹는 교조주의로 변질되기 시작했어요.성리학 아주 쉽게 설명하면,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있어요(빼앗긴 들). 왕의 은덕과 덕치로 모두 행복하고 풍족하지 않아도 부모와 자식들은 삼강오륜을 잘 지키고 또 붕우유신 잘 지키면서 왕과 백성들도 아름답고 가족도 화합하고 이웃간에도 배고파도 나눠먹는(봄) 이런 개같은 소리인데일제시대가 좀 짧았다고 생각해요. 모던과 근대화를 체화하는데 시간이 좀 짧았고, 반도인들이 당시 일본 제국을 운영하는 브레인 집단에 진입하기는 어려웠겠죠. 일제시대에 한반도 내의 소련의 빨간 세뇌가 ‘반제국주의’로 일본의 지배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하고 ‘반자본주의’로 체제의 근본 모순을 인식하게 하면서 “조선 민족”이라는 피해 호소인 서사가 만들어 지는데 이것이 위에 말한 유교성리학적 이데올로기와 근친상간 하면서 전근대의 망상 위에 신화들을 조작하게 되요..각설하고, 백두대간과 대륙의 산 그리고 흙과 민족 정기 단군 환웅 곰 호랑이 들이 등장하면서 애초에 모던 근대화는 이해를 잘 못하니, 자신의 상황을 회복되어야 할 어떤 피해호소인으로 조작하게 되어요. 그래서 이상화가 나의 침실로를 시로 쓰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쓰건 또 그 시를 해석하건 거기에 저 혈연, 토지, 설화적 민족주의가 반모던=반근대=반일본>민족정기의 회복(유교성리학적 이상사회의 회복)=독립운동(깨끗한 피로 돌아가자)을 지향하는 것처럼 구성을 하게 되죠.원래 예술작품은 저런 이념과 토템적 미신, 피해호소인의 망상 서사 등의 필터 없이 봐야 하는건데 저 모든 시와 미술과 음악들에 암울한 식민치하의-나 독립을 갈망하는-식의 주사바늘을 꽂아 대면서 시적 유희와 해석의 다양성, 예술로서의 상상력이 모두 박탈되어 버리죠. 이상화보고 저항시인이래요. 뭐에 대해 저항? 근대적 시인이라서 자기의 시를 쓰는 거잖아요.예술 작품을 우물안 딸감으로 만들어 버린 거에요. 북조선은 조선을 계승하며 김씨왕조로 이어지면서 순혈주의와 성분을 따지잖아요. 그게 저기서 온 거에요. 동굴에서 마늘을 존나 많이 먹은 새끼들인 거죠.^^ 그래서 많이 숙청하고 깨끗한 (명나라의)피를 보존하려고지금 2021년 한국 학교들에서 이런 시와 미술과 음악들을 시와 예술 그 자체로 보게 하는게 아니라 주사로 꽂아서 이념 선동 도구로 쓰고 있는 것 같아 눈 앞이 캄캄하네요. 아직도 모던과 근대를 이해 못하니.제가 보기에 이상화 이 시는 자꾸 시써도 저항시라 그러고 시의 운율은 독립의지라고 하니까 이 지겨운 것들과 작별하고 아! 난 서양의 모던 근대의 마돈나와 함께 도망칠거야 이 지겨운 조국을!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데요?^^....마돈나내게로 와서 함께 침실로 가자내 마음의 촛불도 꺼지려 하고이제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다제발 빨리 와서 나를 구해다오함께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가자안개가 사라지기 전 빨리 와라나의 아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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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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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 일제강점기 같은 거짓선동에 몰입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모던 도시 경성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몸으로 빨리 체화하며 일본 자본가들에게 반도인으로 무시를 당했어도 당당히 조선인으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던 인물들입니다.조선시대 내내 한성 즉 서울 중심의 출세가도에서 철저히 차별받고 배제당했기 때문에 상인 정신으로 무장해야 했던 서북인들은 일제시대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한국 근대사의 산업경제 부흥의 주역으로 활동했습니다. 평안도 용강에서 쌀장사로 돈을 모아 지물업으로 성공하고, 당시 귀금속 가계였던 화신상회를 인수하고 바로 옆 동아백화점을 합병하여 당시 일본인들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 신식 미츠코시 백화점과 혼마치 상점가의 독점적 지위에 당당히 맞섰던 자랑스러운 기업가 조선인 박흥식도 있었습니다.저는 당시를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굳이 분리해 보는 구도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하지만, 2등 국민이자 반도인으로서 천황의 신민이 될 순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장벽을 기업가로서 당당히 맞서 싸우고자 했던 그분들의 헌신과 투지를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화신백화점은 한국 최초의 네온싸인 건물이기도 합니다. 혼마치(현 충무로)와 하세가와초(현 소공동)에 희미한 영란등이 불 밝히면 저 먼치 영란등도 들어오지 않던 종로길의 "철근 콘크리트" 화신 백화점에서는 점점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이 불밝히며 모던 도시 경성의 취할 것 같은 모던삘을 발산해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인들의 자긍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헌신과 유산 위에 오늘날 경제강국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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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 만큼 언어가 없으면 존재도 없는, 언어는 사실 인간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 여겨집니다그리고 언어를 구성하는 기표 기의 두 요소애서 특정 기표를 통해 사람들의 사유를 지배하기 위한 메시지인 기의를 전달하고자 하는것이 정치 목적의 상징조작 전략, 이른바 선전선동의 핵심 수법이라 하겠지요그래서 정치 헤게모니 구축의 핵심 방법론으로서 언어 지배를 위한 담론투쟁이 문화 전략의 주요 수단이 될 수 밖에 없겠죠NL주사 세력이 가장 특화돠어 있는 경쟁력 있는 부문이 바로 사회 공론장을 통한 담론 투쟁 주도 역량이라 생각됩니다85년을 기점으로 주사가 꿘 전면에 등장한 이래 오늘날의 지배 권력으로까지 등장 하는데에는 거의 40년에 걸친 담론 투쟁을 통한 한국 사회 역사와 정치를 비롯한 대중의 머리 속 장악을 위한 거의 전 영역에 걸친 언어 헤게모니 구축을 성실하게 해 온 그들의 진지전 수행이 결정적이 었다는 생각을 합니다이를 통해 형성되어 온 각종 상징 조작 기표들, 예를 들면 토착 왜구, 일제강점기 등을 찾아내고 이 용어들의 배후에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와 사실 왜곡의 문제를 밝혀내어 해체 후 새로운 언어 기표를 비롯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상징 기호들을 생산해 내고 이를 일반화 하는 전쟁 수준의 담론 투쟁 전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그러기 위해 진보 좌파 보수 우파 따위의 한국사회와 전혀 맞지 않는 실체와 동 떨어진 용어부터 해체하고 그 허구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 하다 싶더군요진보와 보수의 조건을 재검토 하고 오늘날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화 영역 전 부문에 걸친 사회 공론화 등의 작업 들이 필요하겠다 싶네요그래야 퇴행 폐쇄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체주의 파시스트들이 진보 좌파를 참칭하는 아이러니가 해체 되고 제대로 된 오늘날의 진보의 모습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대중들에게 자리 잡을 수 있지 않겠는지요대중으로 하여금 현재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기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가지게 만드는 작업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기호의 전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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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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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ander Park격하게 공감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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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Alexander Park김치관 (Chee-Kwan Kim)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개별 사안보다 근본적인 패러다임 설정 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철저히 사실과 진실에 기초해야 하고, 국제적 보편성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이 담론에 우리 동맹인 미국의 국민도, 안보 협력국인 일본의 국민도, 그 밖의 타자들의 시선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대한 성찰과 비판 뿐 아니라 깊이 각인된 혈연적 민족주의로부터 총체적으로 낯설게 하기까지 매우 중요한 인식 재전환 작업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로의 개방과 협력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우리가 새겨 듣고 생각하고 또 함해야 할 문제를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저도 몇 번이고 곱씹고 고민하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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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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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ander Park386의 의식화에 대한 탈의식화 작업이 필요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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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Alexander Park영국은 이미 기호전쟁에 돌입했내요. 중국대사관 앞 지명을 ‘천안문 광장’으로 개명한다는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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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Bum Choi네 맞습니다. 시차時差가 있어 "의식"이 특정한 인식으로의 구성적 산물임을 망각하기 때문에 시차Parallax가 발생하는데, 말씀하신대로 탈의식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시작은 이렇게 텍스트로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토론과 프리젠테이션,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 생산과 매체 기반의 공유까지 모두 너무나 중요하다 생각합니다.Alexander Park님과김홍식 (Hongsik Kim)님 말씀처럼 상징 조작 기표의 문화전쟁은 모든 종류의 매체를 통해 전파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도 했고 부드럽고 달콤한 민족주의로의 몰입과 피해자 서사로 우리를 선동했던 작품들도 텍스트보다 위력적인 영상으로 전파되었죠. 그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CJ기업과 중국 자본이 현재 한국의 미디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화전쟁을 위한 포석이고 한국 좌파들은 상당히 많은 수가 이러한 중국 자본의 자장안에서 노예가 되어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화전쟁이고 세계관 전쟁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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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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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리수 누나! 나의 조상님이애리수 누나의 ‘애리수’는 서양 이름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라죠?1928년 가을 동방극단이 경기도 개성으로 공연을 떠나 극단의 중요 멤버인 작곡가 전수린, 작사가 왕평이 “송도의 만월대에서 잡초가 무성한 폐허로 변한 고려 궁궐의 잔해를 보며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의 서글픔에 전율했다” 하시는데 그날의 참담한 심정이 곧 이 노래 <황성의 적>의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하죠.!?저는 감히 그 스케일과 시절 감각하는 깊이를 따라갈 수도 알 수도 없네요. 그러니 애리수 누나 가사나 흥얼거리며 정처없습니다..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성은 허물어져 빈 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끝 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있노라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아아 한 없는 이 설움을 가슴 속 깊이 안고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 터야 잘 있거라.황성(荒城)의 적(跡) 이애리수 , Korea, 1932황성옛터 왕평 작사|전수린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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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Jaewon Choi replied·2 replies - Active
- 일본이 군국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일제시대가 너무 짧았다는 지적 저도 항상 생각하고 있는 점입니다. 역사가 순행했다면, 일본, 조선, 대만, 만주를 아우르는 인구 4억의 강대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며 세계를 리드하게 되었을 수도 있죠. 각국의 개개인들에게도 비할 수 없이 큰 경제적, 문화적 기회가 주어졌을 겁니다. 60년대 쯤 오면 자치권과 참정권을 확보한 조선과 대만이 손을 잡고 제국의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서 수상을 배출했을지도 모르죠. (실제 전간의 영국의회에서 아일랜드 세력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말이 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일본이 삐딱선을 타는 바람에 무산된 역사의 경로이지만 흥미있는 상상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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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11 replies- 전재욱군국주의가 침략, 약탈, 정복, 무기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쟁 행위를 국가의 근간으로 삼는 시스템을 의미하고 그러한 전쟁과 침공에 주력하기 위해 정치, 문화, 교육, 경제까지 국가의 모든 요소를 군대에 종속시킨다면 말씀하신 형태의 스케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우리는 흔히 “제국주의”는 나쁘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한 번 거꾸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자식들이 저 멀리 타지에 가서 새롭고 다양한 문물을 경험하고, 피식민국 또는 병합국에 가서 학문적 연구를 위해 본국의 툴을 적용하거나 개발하고... 저는 그런 제국주의의 부와 스케일이라는 기회를 피해자 입장이 아니라 행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뭐 물론 윤리적 도덕적 성찰도 필요하죠.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되구요.사실은 제국주의 자체의 경험도 많지 않고,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실 피식민 지배국을 운영하고 자원 등을 착취하고 수탈을 위한 인프라 조성 등에 들어간 막대한 재정 등은 일본제국에게는 큰 부담이었고 이러한 부분에 서투르기도 했습니다. 즉 대동아 공영은 군국주의라는 추동 없이 가능하기 어려웠겠지만 내지 일본, 외지 조선, 대만과 만주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대동아 공영을 실현해야 했던 필부불가결한 정세 인식과 인종 차별의 현실 등을 일본이 가장 적나라하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는게, 당시 서양 제국주의의 부상과 막대한 산업 경제적 축적들을 알고 있던 일본이 “모욕을 당하지 않고” 아시아에서 제국을 형성하고 서양 세력과 일정한 힘의 평형과 긴장을 이루는데까지는 인식하고 그걸 이뤄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기도 하고, 아시아인으로 눈물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제 기억에는 1945년 부터였던 것 같은데 조선인의 제국의회 선출 권한을 갖고 있었고 사실 의회 진출에 있어 조선인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 병사의 전쟁 동원을 맞거래했던 배경에서 춘원 이광수 등이 당시 대동아 공영 전쟁에 조선인 병사들이 참전할 것을 선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해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그런데 이런 배경과 맥락은 제거하고 선전만 떼어놓고 친일파로 몰아가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흥미있는 상상이 많아지고 풍부해지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상상력은 아이러나하게도 항상 탄탄한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했을 때 더 풍부하고 커질 수 있다 생각합니다. 만주국이라는 제3의 지대, 만주국이라는 상상의 국가, 유라시아적 상상력! 이런 생각을 펼치다 보면 저쪽에서 뭔가 툭 하고 건드리고 부딪칩니다. 이런! 중국의 <일대일로>와 부딪치네요!!!^^."다른 나라들이 군대를 가진 국가라면, 프로이센은 국가를 가진 군대다."-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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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욱미국이 채택한 인도 태평양 전략도 실은 일본이 미리 현지 국가들을 모두 답사하고 외교적 스킨쉽을 통해 구상해 놓은 전략을 미 트럼프 정부가 차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제 보편적인 언어이자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기저에 깔고 진행된 비전과 전략 작업이라는 말이죠. 여기서는 미얀마도 중요한 거점이고 한국도 핵심 지정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스탠스를 정확히 정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한국 정부는 동맹국 미국과 안보 협력국 일본과는 긴밀한 공조를 취하지는 않고 미얀마에 대해 아시아 최초 제재나 한류 확산 등의 헛소리들을 하고 있네요. 참 웃기지도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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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중국이 7-8 개의 관리가능한 단위로 분열되지 않는한 대동아공영권류의 카운터발란스는 필연입니다. 문재인의 실정과 친중노선의 정체발각은 어떻게 보면 다행입니다. 이제 국내 제3렬, 즉 조선족과 탈북민 관리부터 시작해야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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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외교 부문에 있어서 정말 등신소리 듣게 생겼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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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성주 사드기지에도 공사 장비 자재를 실은 차량들이 못 들어가고 있는거 아세요? 아직도요. 아직도 그곳의 동맹국 장병들은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동맹을 모욕해도 정도가 있지. 저 주민들과 관련 단체는 당장 강제진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비루하게 사대질하고 조공 바치던 근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See more[단독] 美국방 “성주 사드기지 방치, 동맹으로 용납 못할 일”CHOSUN.COM[단독] 美국방 “성주 사드기지 방치, 동맹으로 용납 못할 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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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몰랐습니다. 이런 ㅆ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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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미국이 말을해도 듣지않을 겁니다 외부 충격요법으로 국지전이 벌어져야 정신들 차릴겁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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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저것들은 국지전이 벌어져도 이미 다 내팽개치고 중국에 붙어 결국 확전을 초래한 성분들입니다. 그거 믿고 원대한 꿈인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식욕 떨어지기 전술을 부리는 것인데 왜 국민들이 인질이 되느냐는 것이죠.슬픕니다. 외세의 공작으로 정권교체를 강제로 해야만 되는 나라라 인식하는 것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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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nley Suh전재욱 (Jaewook Jeon)저것들은 좋~답니다. 성주 사드기지에선 주민들이 나서서 미제를 막아주고 자기들은 계속 핵실험하고 미사일 업뎃사양 과시하고 문재앙은 시진핑과 김정은 눈치보고 20대 이하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게 현실을 바로 보고 북한을 타자화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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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국지전 발생, 1000명 이상 전사.. 정도 되는 사태가 벌어져야 살짝 정신이 들겠죠. 미군은 당장 개입 말고 뒷처리 정도 해주고요. 멸망 직전까지 가지 않고는 정신 차릴 기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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