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Seok 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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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국가의 ‘비도덕적’인 국민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수학했던 일본의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는 일찍이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韓國は一個の哲學である)> 에서 ‘성리학(性理學)’을 매개로 한국사회의 특질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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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쉽게 말해, ‘성(性)은 이(理)다’ 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성’은 인간의 본성을 가리키면 ‘이’는 하늘의 이치-보편적 규범을 뜻한다. 즉, 자연의 법칙과 인간사회의 규범은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리학 내지 주자학의 밑바탕인데 이는 조선시대를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현대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성공과 명예를 누린다는 것은 ‘도덕-돈-권력’ 이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것과 같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에는 ‘과거급제’ 에 합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현재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명문대 진학’ 과 ‘좋은 직장’ 으로 변형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가 설정한 도덕은 예외 없이 상처를 입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지적을 소개하고 싶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도덕과 이념을 내세운 것처럼 보여도 이를 초월한 ‘부족주의’ 라는 개념이 최상위적 규범으로 내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LH주택공사의 부동산 투기사건이나 수십 년째 고쳐지지 않는 ‘전관예우’, ‘관피아(관료+마피아)’ 등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물 끓듯 여론의 공분이 진행되는 것은 잠시뿐, 이들의 안위와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부족 본능’ 은 여전히 살아남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투기논란 이후 LH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의 글들,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다",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꼬우면 니들도 이직하든가” 는 이 같은 노골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직자들만 그러느냐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선출직 공무원,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 윗물이 썩었는데 아랫물이 깨끗할 것이라 바랄 수는 없다. 요즘에는 스포츠스타나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폭력 스캔들이 터지는데 늘 이들의 도덕성, 위선논란이 기사의 헤드라인 앞으로 올라온다. 논란이 많았던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박원순 사태’ 등의 본질은 모두 같다고 본다. 이들의 위법을 둘러싼 온갖 이해관계를 또다시 도덕으로 규율하려다 보니 도리어 위선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한국은 ‘도덕 지향적’ 국가이지만 실제 도덕적이지 못한 국가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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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국은 단기간에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어냈으며 물질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성장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OECD 국가들을 기준으로 10위권에 이르는 부국(富國)이며 국민들은 변화에 능동적이며 대외지향성과 역동성이 강한 만큼, 그 혁신의 잠재성의 무궁무진함은 전 세계 석학들이 인정한다. 이를 나는 주자학적 철학이 지배하는 한국, ‘하나(一つ)의 철학’ 이 가져온 밝은 유산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하나의 철학’ 은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보편적 철학이 되어버려 모두가 ‘그 하나’를 꿈꾸며 지향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 하나’가 훼손되어버리고 만다. 모두가 전체를 꿈꾸지만 모두가 그를 누릴 수는 없다. 동시에 실제의 다수는 결여의 아픔을 겪는다. 하나의 가치와 철학만이 용인되는 까닭에 이런 환경에서 개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극심한 경쟁과 압박을 견뎌야 한다. 이 레일이 사회 전반으로 깔리게 되면서 독점과 배제, 이분법적인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단 하나의 가치가 아닌, 여러 개의 가치가 공존하고 있다. 예로부터 일본인의 종교적 관념은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에 가깝다. 한국은 예로부터 주자학적 규범으로부터의 그 근원적 가치는 바뀌지 않은 채 근대와 현대를 거쳐 기독교적인 교리와 명분으로의 겉치레만 바뀌었다. 반면, 일본의 ‘신토(神道)’는 애니미즘(자연물에 영(靈)이 깃들어있다고 믿으며 이를 인정하고 경외시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토착신앙이지만 대륙과 한반도에서 건너온 불교, 도교, 유교 등의 길항과 수용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상대적이며 다면적인 가치와 규범이 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종교적 다원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가치투쟁과 인정욕구를 둘러싼 갈등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고 사람들은 생업의 충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회 내에서 ‘최고’ 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형(型)’ 의 완성을 위한 치열한 자기수양과 그 끝에 ‘도(道)’ 의 깨달음을 통한 인격실현은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장인정신’ 의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라면만 잘 만들어도 최고이고 스시만 잘 만들어도 최고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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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한국인들 스스로 자각 할 때가 되었다. 우리를 얽매온 단 ‘하나의 가치’ 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우리의 의식은 왜 여전히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어야 할까? 저 균질적이고 부족적인 엘리트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한 우리의 몸부림과 노력을 전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하지만 저들의, 또는 우리들의 ‘알면서 다 하는’, 그러한 ‘비도덕적’ 관행을 혁파하지 못한 채, 형식만 달라진 채로 재생산시키는 사회적-문화적-심층적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들의 모습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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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공감되는 대목이 많군요. 주위에도 일독 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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