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정치 / 관념의 운동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사할린교포들의 한국으로의 귀국과 정착은 한국정부나 재일교포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적극 나서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한 한 일본인 연구자에 따르면, 여기에도 몇개의 단체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귀국을 성사시킨 건 이른바 ‘북방영토반환’을 운동의 최종목표로 삼았던 이들이 아니라 ‘당사자의 귀국’자체를 목표로 운동했던 또다른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숭고한’ 민족적/국가적 목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바램에 귀기울이며 ‘당사자중심주의’를 초지일관했던 이들이 최종적으로는 운동에서도 성공했던 셈.
하지만 ‘영토반환’을 주장했던 이들이 꼭 당사자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무시하려고 했던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이들에겐 개개인의 바램실현보다 더 ‘숭고한’것으로 여겨지는 목표가 있었을 뿐. 그러다 보니 다른 건 무시되거나 ‘나중에’로 미루어졌던 것.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의당 국회의원들이 검수완박을 해치우고 만 건, 이재명지키키나 자기보신이라는 뻔히 보이는 목적 이상으로 ‘검찰개혁’자체가 이들에게 ‘숭고한’ 목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입을 피해 같은 건 안중에 없거나, 있어도 가볍게 제쳐질 수 있었던 이유.
이들에겐 ‘검찰개혁’이 사할린 운동가/지원자들의 ‘영토반환’과 동의어다. ‘영토반환’이라는 ‘더 큰’ 목표가 그 크기 때문에 목표달성이 가져다 줄 희열을 상상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검수완박’도 이들에겐 이미 ‘아무도 흔들 수 없’어야 하는, 그 자체로 숭고한 목표가 되었던 것.
하지만 인간을 구원하는 건 그런 관념이 아니라 실체다.
일본의 징병에 맞닥뜨려 대아(大我.천황의 자식)/소아(小我. 낳은 아버지의 자식) 구분을 해 가며 대아를 선택해야 한다고 일제시대 조선인 지식인들이 외치면서 ‘국가를 위한 죽음’이 개인적 죽음보다 더 ‘숭고한’ 것으로 여기도록 교육했어도,
정작 죽음의 순간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천황폐하 만세!’보다는 ‘어머니!’를 외치며 죽어갔던 것처럼. 물론 일본인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586 정치가와 운동가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숭고한’ 목표에 이끌리기 쉬운 건 아무래도 두번이나 정부를 무너뜨려 본 체험이 만든 거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위대한 ‘힘’에 대한 믿음이 바깥에서 보면 터무니 없는 독재조차 허용하는 것.
그리고 엘리트로서의 당시위치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생각이 옳고 그래서 사회를 리드해야 한다는 책무감이 되어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자아는 살찌웠어도 정작 자기성찰을 가능케 할 공부는 하지 않았다는 것.
이들이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할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사실 위안부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을 내 방식으로 굴복시키겠다는 , 혹은 남북연대라는 ‘숭고한’ 목표가 앞서 정작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가려졌던 세월이 30년이다.
어제의 난장판은 내가 보기엔 그 30년의 축약판이다.
8년 전 나에 대한 폭력에 관해, 관계자들이 아무도 반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법정에 가둬두고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