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1

위안부 문제는 피해여성의 인권 문제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위안부 문제는 피해여성의 인권 문제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위안부 문제는 피해여성의 인권 문제
등록 :2022-05-01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파견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지난달 26일 오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윤 당선자의 친서를 전달했다.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파견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지난달 26일 오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윤 당선자의 친서를 전달했다.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제공

[기고] 민병갑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사회학과 석좌교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일본과의 외교에서 위안부 제도는 성노예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해왔다. 그런데 윤 정부가 취임도 하기 전에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기자들을 만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안’을 인정했다는 보도를 접하고(<마이니치신문> 2022년 4월20일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2015년 말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가 함께 내놓은 ‘위안부 합의안’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도록 10억엔을 제공하면,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고, 두 나라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더는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기로도 약속했다. 박근혜-아베는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합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가 25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힘들게 싸워 얻어낸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성노예 제도였다’고 널리 알려낸 성과를 정부가 나서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는 일곱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국제인권기구의 결의안에도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등 국제인권기구는 일본 정부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첫째 위안부 문제 진상을 규명하고, 둘째 위안부 제도가 성노예 제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셋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끼친 것에 진정으로 사과하고, 넷째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다섯째 위안부 제도 책임자를 처벌하고, 여섯째 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일본 역사교과서에 포함해서 일본 학생들에게 알리고, 마지막으로 위안부 기림비를 일본에 세워서 다시는 이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안은 일곱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형식상 사과가 포함되었지만, 군 위안부 제도가 성노예 제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살아 계신 피해자 할머니 상당수가 10만달러 가까운 보상금을 받았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제공한 게 아니었다. 공식적인 배상금이 아니라 인도적인 지원금이란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피해지원 단체와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와 논의하고 합의했다는 절차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2015년 합의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일본 정부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한-일 관계는 냉각기를 갖게 됐지만, 위안부 제도는 성노예 제도가 아니었다며 왜곡해온 일본 정부는 역사적 멍에를 계속 짊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2015년 합의안을 다시 인정해준다면, 위안부 제도는 성노예 제도였다고 널리 알려낸 성과를 또다시 무효화하게 된다. 이는 또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는 돈벌이를 위해서 자원한 창녀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인정하는 셈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크게 모욕하는 셈이 된다.
개인 사이건, 국가 사이건 불행했던 역사가 있다면 그 매듭은 풀고 화해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나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이웃 사이다. 하지만 화해를 위해서는 가해자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도 일본 정부의 과거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 국제법도 가해자의 잘못 인정과 진정한 사과를 화해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과거의 역사적 범죄를 외면한 채 외교적 수단과 경제적 압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왔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외교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피해여성의 인권 문제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점을 명심해 위안부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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